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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주 - 이런 날엔 아마 그대 창에도 비가 오겠습니다
이런 날엔 아마 그대 창에도 비가 오겠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있는가 봅니다
아니
모든 게
어제는 저렇다가
오늘은 이렇고,
색색이 변해가는 걸
나의 눈은
많은 것으로
보는 것같습니다
그래도
세상에는 많은 것들이 있을 것같습니다
모든 빗장을
걸고 사는
나마저도
그리운 게 많아
애를 태우는데
하물며
나 아닌
너부터
시작해서
세상엔 눈물을 흘려도,
다 풀지 못할
사랑이 허다할 겁니다
저창 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가
짝을 물며 사는지요
저렇게 많은 중에
나에겐 걸어오지 않습니다
가슴에 붙은
살점처럼
부드러운 말조차
그렇게 좋고
그렇게 부드럽데
말하지는 못했어도
안녕이란 말 뒤에
사랑이란 말은
너무나 여리어
금세 녹아 내립니다
그토록
소중했던 것이
이토록
대하는 것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그리움이 되어 버린
이런 날엔
아마 그대 창에도 비가 오겠습니다.
< 선물 > - 아폴리네르 -
당신이 만일 바라기만 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려 하노라.
아침, 나의 그 명랑한 아침과
또한 당신이 좋아하는
나의 빛나는 머리카락과
나의 푸르슴한 금빛 눈을.
당신이 만일 바라기만 하신다면
나는 당신에게 드리려 하노라.
따사로운 햇살 비치는 곳에서
아침에 눈뜰 때 들려오는 모든 소리와
그 근처에 있는 분수에서 들리는
흐르는 물줄기의 감미로운 소리를.
이윽고 찾아들 저녁 노을과
내 쓸쓸한 마음으로 해서 얼룩진 저녁.
또한 조그만 내 손과
그리고 당신의 마음 가까이에
놓아 두어야 할
나의 마음을.
벗 하나 있었으면 - 도 종 환 -
마음이 울적할 때 저녁 강물 같은 벗 하나 있었으면
날이 저무는데 마음 산그리메처럼 어두워올 때
내 그림자를 안고 조용히 흐르는 강물 같은 친구 하나 있었으면
울리지 않는 악기처럼 마음이 비어 있을 때
낮은 소리로 내게 오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 노래가 되어 들에 가득 번지는 벗 하나 있었으면
오늘도 어제처럼 고개를 다 못 넘고 지쳐 있는데
달빛으로 다가와 등을 쓰다듬어주는 벗 하나 있었으면
그와 함께라면 칠흑 속에서도 다시 먼 길 갈 수 있는
벗 하나 있었으면
비 가 - 유 하 -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비 오듯 그립습니다흩어진 그대 천둥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내 눈과 귀, 작달비가 등 떠밀고 간 저 먼 산처럼
한 방울의 비가 아프게 그대 얼굴입니다
한 방울의 비가 황홀하게 그대 노래입니다
유리창에 방울 방울 비가 흩어집니다.
그대 유리창에 천갈래 만갈래로 흩어집니다.
흩어진 그대 번개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멀고 또 멉니다.
그리하여 빗속을 젖은 바람으로 휘몰아쳐가도
그대 너무 멀게 있습니다.
그대 너무 멀어서 이 세상
물밀듯 비가 내립니다.
비가 내립니다
그대가 빗발치게 그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ㅡ아낌없이 주는 나무ㅡ
너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이고 싶었다.
봄에는 싱그러움을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가을에는 탐스러운 열매를
겨울에는 넉넉한 땔감을 건네주고 싶었다.
새벽이면 이슬 모아 촉촉한 아침을
아침이면 산새를 모아 고운 노래를
낮에는 잎을 흔들어 향기로운 바람을
밤이면 편안히 잠들 수 있는
정적을 준비해두고 싶었다.
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마음마저 너는 몰랐다.
나무는 어디에고 서 있지만
나무는 아무 말도 없지만
너만을 위한 나무가 있다는 사실마저 너는 몰랐다
이정하 - 조용히 손을 내밀었을 때
내가 외로울 때 누가 나에게 손을 내민 것처럼
나 또한 나의 손을 내밀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싶다.
그 작은 일에서부터 우리의 가슴이 데워진다는 것을
새삼 느껴보고 싶다
그대여 이제 그만 아파하렴
류시화 - 아카시아 길
[편지]
이해인 - 너에게 띄우는 글
류시화 - 길 위에서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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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시화 -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살고 싶다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사랑하고 싶다
두눈박이 물고기처럼 세상을 살기 위해
평생을 두 마리가 함께 붙어 다녔다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사랑하고 싶다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사랑하지 않았을 뿐
외눈박이 물고기처럼
그렇게 살고 싶다
혼자 있으면
그 혼자 있음이 금방 들켜 버리는
외눈박이 물고기 비목처럼
목숨을 다해 사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