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 거룩하시니 높여 찬양하여라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들이 크시오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다 기리는도다.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 그의 기적을 사람이 기억하게 하셨으니 여호와는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 그가 그들에게 뭇 나라의 기업을 주사 그가 행하시는 일의 능력을 그들에게 알리셨도다. 그의 손이 하는 일은 진실과 정의이며 그의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토록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훌륭한 지각을 가진 자이니 여호와를 찬양함이 영원히 계속되리로다.”
본 글은 시편 111편입니다. 본 시편은 ‘할렐루야’란 말로 시작합니다. 이는 ‘여호와를 찬양하라’입니다. 이는 온 마음을 다 바쳐 고마워해야 할, 여호와께 감사해야 할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편 기자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면서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설교자<목사>는 구약의 절기인 수장절이 감사절이라면서 추수감사절을 지켜야 할 것과 이 날에 감사 생활을 해야 할 것으로 성경의 어느 한 곳을 선택하는데 그 중에 신명기 16:13-17, 출애굽기 23:14-17과 함께 시편이 자주 사용됩니다. 그것은 시편에는 여호와께 감사하여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구절이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 111편도 그중에 하나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여야 할 것을 설교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여야 할 것을 설교하면서 그 의도는 성도들에게 감사 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감사 생활을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지 그 방법을 알려 줍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빈 손으로 나아오지 말라고 하였다며 진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야 할 것이며, 예물을 가지고 나와야 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서 힘께 드리되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였으니 감사함으로 드려야 한다느니 하는 따위의 등 등입니다.
구약의 절기인 수장절이 추수감사절에서 가져가는 감사절의 성격의 것도 아니거니와, 감사절의 근거로 삼으면서 근거 구절로 삼고 있는 내용에서 ‘여호와께 감사하라’는 말씀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에서 보는 바와 같은 감사 생활을 요구하는 것으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시편 111편 에서 ‘감사하리로다’에서 사용되고 있는 말은 ‘할렐루야’, 곧 ‘여호와를 찬양하라’에서 보는 ‘찬양하다’의 뜻이기도 하고, ‘경배하다’, ‘고백(인정/시인)하다’의 뜻이기도 합니다. 물론 ‘감사하다’의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호와이신 하나님을 찬양, 감사, 경배, 시인할 것에 있는 것은 정직한 자들의 모임, 곧 올곧게 살려고 몸부림 치는 이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 있는 자리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 엄청나고 놀랍기 때문에, 그 기쁨에 넘친 사람들이 두고 두고 그 일을 그 생각할 것이기 때문인데, 여호와는 은혜롭고 자비로우시다는 것에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 모시고 사는 이들에게 양식을 주시고 맺으신 그 언약을 있는 법 없으셔서 뭇나라를 그들 차지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백성을 해방시키시니 맺으신 그 언약은 영원합니다.
이것을 알기에 말이죠. “거룩하고 놀랍습니다. 주님의 그 이름. 여호와이신 하나님를 모시고 사는 것이 사람의 도리요 그것이 슬기의 첫걸음입니다. 주님 말씀 따라 사는 가는 사람, 그에게는 건실한 판단력을 주실 것이기에 영원 영원히 찬양 받으실 주님의 이름 높일 것입니다.” 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찬양하여라’, 또는 ‘감사하여라’에서 찬양 생활이니 감사 생활이니 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드높여 여호와의 존재를 온 세상에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만이 주님이심을 온 세상에 알림에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찬양 생활을 찬송가를 부르며 복음성가를 불러 노래하는 것에서 찬양하는 것에 있고 감사 생활을 감사헌금을 매주 하되 물질을 다 바쳐 지극 정성으로 하는 것 등으로 말하는 것은 여호와를 찬양하여라, 여호와께 감사하여라는 뜻을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편에서 말씀하시고 있는 것에 따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은 말이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주가 되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어 그 언약하신 대로 일해 나가시는 것에서 여호와께서 참으로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분이심을 알게 됨에 따라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임에 있으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