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백마역> 주변을 걷다
1. 조금씩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아직 낮은 덥지만 오랫동안 활동하기 불편했던 더위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가을’과 어울리는 장소를 찾았다. 과거의 느낌과 분위기는 잊혀졌지만 그래도 추억이 남아있는 백마역으로 갔다. 70-80년대 많은 사람들이 찾던 백마역 화사랑은 아직도 풍동 애니골 음식거리 구석에 남아있었다. 한동안 애니골을 찾았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화사랑의 존재를 이제야 확인한 것이다. 80년대 아마도 나는 화사랑을 가지는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방문하던 이곳보다 옆에 있는 다른 주점으로 향했을 것이다. 주류에 대한 묘한 반감이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정서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 요란스럽게 확산되고 있는, 끝없이 줄이 이어지는 소문난 특정 장소와 달리 텅텅 비어 있는 같은 업종 가게의 모습은 왠지 슬픈 모습이다. 작은 차이에 대한 집착과 선택을 개성의 실현이라는 허황된 만족감으로 포장한 채 표면적인 정체성만을 강화하는 모습은 상업적인 욕망에 종속되어 있음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사소한 것에만 분개’하는 씁쓸한 소시민적 태도와 닮아있는 것이다.
2. 애니골을 들러본 후 철도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걸었다. 이 길은 일산 지역에서 조금은 후미진 지역에 해당한다. 별다른 건물도 없고 걷기 좋은 길만 연결되어 있다. <백마역> 다음역인 <곡산역>은 숨어있듯 자리잡고 있는 역이다. 역 앞, 기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주차한 차량만이 있을 뿐 어떤 건물도 없는 곳이다. 다만 조금 더 이동하면 ‘백석’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된 ‘흰돌’이 전시되어 있는 장소가 나타난다. ‘흰돌’은 과거 이 곳에서 살던 사람들이 마을굿을 지낼 때 정성을 올렸던 성스런 상징이었다. 마을은 사라졌고 덩그라니 남은 ‘흰돌’은 시간의 영겁 속에서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무심히 기억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파괴와 개입이 없다면 흰돌은 평화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언제든 그것은 사라질 운명이다. 인간의 변덕과 무심은 ‘흰돌’의 의미를 쉽게 지워버릴 것이다.
첫댓글 - 기쁘다! 한강, 노벨문학상을 받다니........ 박경리 박완서 공지영 신경숙 정지아 김애란...... 여성문인들의 이름들이 스쳐지나간다. 우리 문학의 감수성이 온몸을 휘감고 도는 느낌이다. 멋진 날!!!!!!!!!!!!!!!!!!!!!!!!!!
- "작은 차이에 대한 집착과 선택을 개성의 실현이라는 허황된 만족감으로 포장한 채 표면적인 정체성만을 강화하는 모습, ‘사소한 것에만 분개’하는 씁쓸한 소시민적 태도와 닮아있는 것" - 그렇게 살아 온 우리들의 이야기요 그게 바로 정체성이다. 그러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다. 모두 저마다의 삶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