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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4일 목요일.
[일본/산행기] 구주산~아소산
시모노세끼
여행이란 일상에서 한시적인 일탈을 의미 할 수 도 있고 잠시잠깐 주위를 되돌아 볼 수있는
여유로움을 주기 때문에 필드의 골퍼들에게는 그늘막 같고, 먼길을 가야 할 과객에게는
주막의 봉놋방이, 어정개비 백수들에게는 공원벤치의 한가로움을 가져다 주는
공간의 역할과도 같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궁금증과 그리움으로 잠못이루던 동심을
또한 되집어 꺼내들어 볼 수 도 있고, 아직 그 불씨가 꺼지지 않은 동심의 심원에도
아련한 추억이 생생하게 살아 있을 것이니 적당하게 짬을 내서 훌쩍 여행을 다녀 오는것도
생활의 활력을 불어 넣는 데 한몫 단단히 할 게 틀림없다.
일본의 구주산과 야소산 트레킹 3박4일의 일정은 부산을 출발하는 부관(釜關)페리호인
크루즈 성희호의 승선으로 시작이 된다.선박의 이름이 우리식으로 보면 여성의 이름임이
예상되는데 가이드 말로는 선박회사 주인의 딸이름이라고 하니 예상이 적중 된 셈이다.
최근에 신형 전염병인 신종플루(H1N1)의 확산으로 전 세계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방역에 비상이 걸린 탓으로 참가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버려 기운은 빠졌지만 여행이
가져다 주는 엔돌핀이 상기(上氣)시켜주니 역시 여행은 쇄락한 기운을 보하고 기력을
신장시켜주는 천하의 명약임이 틀림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짐짓 알면서도 모르쇠로 일관하도록 떠다미는 경제가 우리를 또한
슬프게 한다. 어서 이런 불황의 터널을 벗어나야 하는데 앞일을 예측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복잡한 구조가 답답증만 더욱 깊어가도록 부추긴다.
생활의 여유가 있다면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마음은 역마살이 끼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기꺼이 여행가방을 꾸리고자 하는 마음의 준비는 언제든지 되어있을 것이다.
부산항 국제 여객선 터미널 제5부두, 출국수속을 마친 해외 출국자들이 썰물처럼
대합실을 빠져나간다. 길어진 낮시간 때문인지 오후8시 해거름이 넘은 시간인데도
대낮같이 맑은 부두의 모습은 아직도 초롱초롱하기만 하다.
부산시가지인 뭍에서 섬인 영도를 잇는 부산대교에는 오고가는 차량들이 분주하고
군데군데 하나 둘 불빛이 스멀스멀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산허리까지 올라붙은 고층아파트가 우후죽순을 방불케하고, 컨테이너 터미널의 산처럼
쌓여있는 컨테이너가 아파트의 몸매를 점차 닮아간다.육중한 몸매의 여객선이 굉음의
엔진소음을 내지르며 기동하기 시작한다. 컨테이너를 들어 올리는 대형크레인이
이곳저곳 해안가 화물터미날에서 소매를 걷어 부치고 있다. 신선대 부두를 지나고 오륙도,
태종대를 뒤로하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기필코 돌아와야 할
조국 대한민국의 제2도시, 첫손꼽히는 대외 수출의 전진기지 부산항이 점차 멀어진다.
가물가물 시야를 벗어난 부산항구, 출렁이는 망망대해의 사위는 점점 어둠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물비릿내 풍기는 바닷 바람만이 육중한 여갯선 성희를 희롱한다.
비교적 평소보다 늦은 시각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에 든다. 함께 한 동료들과
같은 숙소에 들었으니 처음 대하는 객지 분들과의 어색한 인사도 없이 곧바로 흉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이 반갑다. 그리 흔치 않은 해외 트레킹의 흥분도 남아있고
미지의 여행지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쉽게 잠에 빠지기도 쉽지 않은 시간,
역시 이럴 땐 술좌석이 제격이다. 배낭에 고이 모시고 온 술병의 마개를 누가 먼저
잡아 돌렸는 지도 모르게 연초록빛 병속의 맑은 소주가 숨가쁘게 술잔에 쏟아진다.
술이란 적당하게 마시면 백약(百藥)중의 으뜸인 백약지장(百藥之長)이고, 절제(節制)를
못하고 지나치면 백독지장(百毒之長)이라 했으니 아쉬울 무렵 거둘줄아는 주선(酒仙)의
혜안 과유불급의 지혜도 빌려 올 필요는 다분히 존재한다.
[첫째 날 6월5일, 금요일].
부시럭 부시럭 웅성웅성거리는 소음에 잠이 깨 버렸다. 선창(船窓)은
희붐히 밝아있고 엷은 운무가 내려 깔린 망망대해는 여전히 성희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세면과 용변을 해결하니 뱃머리는 목적지 항구인 시모노세끼(下關) 나와바리(구역)에
들어 선 모양이다. 해안이 드러나고 해안가에 들어차있는 제련소가 첫눈에 띠고
화물여객의 물류창고들이 조용히 아침을 맞고 있다. 입항 선박들을 위한 유조등이
껌벅거리고 입항을 고하는 성희의 고함소리가 조용한 시모노세끼의 아침잠을 깨운다.
명색에 비하여 소박한 어항 시모노세끼, 거뭇한 구조물이 오벨리스크처럼 멀쭝하게
서있는 것이 높다랗게 보임은 주위에 키큰 건축물이 없는 것도 한몫을 한 것일게다.
단층짜리 살림집,기껏해야 이삼층의 일본식 가옥들이 거뭇한 기와를 이고 주택가를
이루고있고 시가지를 앙증맞고 쫄쫄대며 똥방개처럼 쏘다니는 손바닥만한 경승용차들이
아금맞고 바지런해 보인다.입국수속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나라에 왔으니 수속절차에
빨리빨리증의 내림병이 있는 우리로서는 속에서 열불이 날 수 밖에 없다.
얼굴은 둥굴둥굴하고 눈매에 악기(惡氣)는 붙지 않았고 볼태기에 빈티는 들지않았으나
머리털은 모양낼 것이 부족하여 박박 밀어버렸으니 혹시 흉악한 테러리스트나 못된 땡초처럼
보이지는 않을까,그점이 걸리기는 한데 생뚱맞게 지문을 찍으라, 주머니에 돈이 얼마들었냐,
손가락에 굳은살 안박혔으니 지문도장 잘 찍힐 것이요, 막내아들이 개용돈하시라
삼사만엔 바꿔줬으니 네 나라에서 치사하게 유개짓 않을 테니 걱정일랑 묶어 두어라 했다.
얼추 열시가 다 되어서야 시모노세끼를 출발하여 오늘 오르기로 예정되어있는
구주산(久住山)을 향한다. 빨간색 바탕의 관광버스, 운전기사의 나이는 육십세가 훨씬
웃돌아 보이고 머리는 나처럼 흰머리가 더 많은데 숯이 많은 머리칼에 깍두기머리를
해서인지 강인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그래도 맘씨좋은 시골 농부를 닮았다.
구주산은 해발1,787m로 쿠마모토현과 오이타현에 걸쳐있는 아소국립공원내에 두 개의
분화산(噴火山)인 해발1,592m의 아소산(阿蘇山)과 구주산을 포함,10여개가 넘는
산중 제일 높은 산이다. 입국 첫째 날은 구주산을 오를 예정이고 이튿 날은 아소산을
오르고 난 후 여분의 시간에 유후인과 온천관광도시 벳부로 이동하여 관광과 쇼핑등을
할 예정이다. 시모노세끼를 벗어난 버스는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구주산을 향한다.
고속도로를 전세낸 것처럼 질주하던 차량은 난데없이 고속도로를 빠져나오더니
이리구불 저리구불대는 일반도로를 허우적대며 달리기 시작한다. 그 이유인 즉슨
달리던 고속도로 전방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한다. 사고의 대소가 어떠하든 교통에
방해가 되는 사건이 발생할 경우에는 전면적인 차량의 진행을 막는 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현지 도착시간의 차질이 불가피하게 되었다.어쨋든 그건 그것이고
이건 이것인데 어찌된 영문인지 감(感)이 안 잡히는 것은 도로에서 교통의 흐름을 방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면 교통순찰차나 교통순경이라도 나타나서 교통의 흐름을 지도할 역할이
있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보는 시각인데, 이 동네는 원래 경찰의 숫자가 적은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교통경찰 자체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사고를 방치하고 마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하다. 좌우지간 그 탓에 한 시간 정도는 도로에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 버렸다.
나중에서야 가이드에게 줏어들은 얘기지만 세계에서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치안체계는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으로 수행하기때문에 대부분의 경찰병력을 민생치안 유지에
투입을 하도록 되어있지 도로에서의 계도나 관리감독하는 곳에는 최소한의 병력만을
투입하기 때문에 도로상에서 우리처럼 교통순찰차나 교통경찰을 흔히보기 힘들다고 한다.
이리구불 저리구불 오래 전 부터 나 있는 옛길에 아스콘을 덮어씌워 도로를 정비한
지방도로를 따라 햇볕을 가리운 한아름이 넘는 굵기의 편백나무가 빼곡하고,
성인 견대팔굵기의 대나무들이 솟구쳐 이루워 놓은 숲과 거대한 층층나무들이
오뉴월 따가운 볕을 막아주는 일본 남쪽의 섬 규슈의 작으마한 지방도로는
한반도에서 상륙한 이국인의 눈매를 마냥 부러운 시선으로 바뀌게 만든다.
시모노세끼를 출발한 버스는 휴게소에 한번 들른 후 내쳐 목적지를 향하여 줄달음질을 친다.
휴게소에서 나눠준 도시락은 등산중에 이용할 참이었는데 도로사정으로 시간이
지체되었으니 버스 운행중에 차안에서 각자 알아서 해결할 수 밖에 없으렸다.
한국인이나 이곳사람들도 찰진 밥을 좋아하기는 일반, 역시 쌀밥은 찰진 것이 씹는 맛이
제법이다. 돼지고기를 고추장에 버무려 볶은 맛도 입성에 맞고 짠 음식 싫어하는
이사람 입에도 잘 맞는다. 오찬정식이야 기대도 않했건만 입국첫날 도시락치고는
별서너개가 부족한 듯하다. 희뿌연 구름이 산등성이를 넘나들고 남쪽나라 온기를 품은
마파람도 설렁대는 구주산 들머리 마키노토고개, 주말이 아니고 평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똥방개만한 자가용 대여섯대가 주인을 기다리고 체수작은 노인들이
작은 배낭들러메고 종종걸음에 헤쭉헤쭉 웃음끼 머금으며 산길을 드나든다.
꼼꼼히 행장은 꾸렸지만 그래도 못미더운지 재차 살피는 빈처가 있어 미덥긴한데
산행을 게다 맞추어야 하는 불편은 감수 할 수 밖에 없다. 두어사람이 교행할 수 있을 만 한
등산로에는 울룩불룩하게 세멘트 콘크리트를 덧입혀서 그 위에 흙칠을 해놓으면
콘크리트 포장길인줄 모르겠다. 그 길도 잠시, 곧이어 본격적인 산길이 시작된다.
들머리 마키노토고개가 해발1,000m를 웃도는 지역이니 정상 멧부리가 1,787m이니
787m의 고도차이만 줄이면 될 일이다. 까짓것 물 한바가지만 마셔도 금새 올랐다
내려 올 하찮은 멧부리지만, 하잘것 없는 산봉우리라도 방심은 금물, 산행의 안전수칙
제일조는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방심은 화를 부르고 그런 이유로 닥친 화는 치명적인
위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고산답게 키작은 사철푸른 관목들이 오이속 처럼
빼곡히 들어차있고 그 사이사이로 산길은 고도를 차츰 높여 나간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오월의 여왕꽃같은 철쭉의 무수리축에나 낄 법한 쥐알만한 꽃송이의 철쭉이 키조차
쫌팽이를 닮았고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서 흰새털처럼 피어오르는 가스가 구주산 식솔을
어루 만진다. 한 식경쯤 올랐을까, 조망이 열리며 주위의 여러 산군(山群)들이 모습을
보이고 대충 아소산국립공원의 산세를 살필 수 있는 전망바위들이 모여있는 봉우리에
오른다. 파란 잔디를 입혀놓은 듯이 키작은 관목숲으로 뒤덮힌 산군이 이색적이다.
분화산지역이라 어찌보면 황폐하게도 보이는 사태지역도 가혹한 환경을 보여주고
그런 가혹한 환경을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켜놓은 얘들이 부럽고 얄밉고
영악스럽다. 남는 것은 추억뿐이니 어서 사진 한방 찍어 달란다.요리조리 바윗길을
내려서면 이웃한 구추가케산의 돌봉우리산을 오른다. 빗바랜 각목 명패에는 검은색의
글씨조차 바래있다.한자로 표기해둔걸 보면 답괘산(沓掛山)이라 되어있고 그아래
키높이가 씌어있다 .해발1,503m. 우리나라 한라산의 영실지구에서 윗새오름을 오르는
코스가 연상되는 지금까지의 산길은 다시 구츠가케산을 내려서면서 분화산의 한계인
자연스럽게 훼손된 산길을 이어갈 수 밖에 없다. 구츠가케산까지의 절경과는 품격이
떨어지는 산길은 차라리 너덜겅이라고 표현하면 실례일까?
고도차이가 없이 들쑥날쑥한 산길이 차츰 고도를 높히며 삼거리를 내놓고 우리에게
심사를 묻는다. 맞은편의 평지나 다름없는 길이나 좌측의 오름길이나 내내 구주산
대피소를 향하는 것은 똑같지만 좌측의 오름길은 해발1,762m의 홋쇼오산을 경유하는
산길이다.정상 멧부리 언저리 능선이 거뭇한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성생산(星生山),
바로 홋쇼오산, 우리의 설악산과 견주면 중청쯤에 위치하여 중청 멧부리에 오르지 못하고
중허리 길을 따라 중청대피소로 향하는 길이나 진배가 없는 산길이다.
허름한 양회벽돌로 쌓아올린 슬라브 건물이 을씨년 스럽다. 을씨년 스러운 건물을
지나고 부터는 본격적인 정상 멧부리에 오르는 일이 기다린다. 삼지사방의 골진 계곡에서
엷은 가스를 동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더운 열기를 식혀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
지만 사위를 분간 못할 정도의 운무라면 도리어 심술궂은 악동이라 혼좀 내줄텐데
그럴 수는 없는 일 아닌가,하늘이 하는 일, 천지의 법도가 그리 하다면 어찌 인간이
신(神)에게 대들겠는가? 신(神)이 되려 했던 인간, 33세에 요절한 알렉산더가 그러했고
얘네들이 신처럼 떠받드는 난세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도 신이되려다 한사람은
열병(熱病)에 (알렉산더의 죽음은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독살설도 있음 ),
또 한사람은 아끼던 부관에게 죽음을 강요 당한 것이다.
신(神)에 이르는 길이 지근에 다가왔는데 턱밑에서 이렇게 주저앉을 수 는 없는 일,
그 성대한 입신식의 현장 알렉산드리아를 턱앞에 두고 그는 허우적대다가 힘없이
쓰러졌고 이곳사람들이 우러러 받드는 똥광(糞光) 오다 노부나가는 아끼고 신임하는
부관 아께치 미쓰히데 앞에서 스스로를 탓하며 할복을 강요 당한다.
그렇다. 신(神)은 우리인간이 손쉽게 넘을 수 있는 산이 아니다. 다만 숭배하고 따르고
보호해야할 자연과 같은 대상인 것이니 천지만물의 모든 자연을 그 이치에따라 보호하고
숭상해야 할 책임이 그 안에 거주하는 인간에게는 분명히 존재한다.
구주산 정수리를 향하는 산길에는 어지러이 바윗돌들이 너덜길을 이루며 고도를 차츰
높여 나간다. 나의 속마음을 엿보았는가? 한차례 방향 감지하기 힘든 바람이 지나가면서
잠시 잠깐 문을 열어보인다.해발1,700m대의 여러 산군들이 주군인 구주산을 호위하는 듯
우뚝우뚝하고 수많은 골짜기에서 희끄무레한 가스가 피어 오른다.
울퉁불퉁하고 날카롭기도한 나무 한뿌리 풀한포기없는 정냄이 떨어지는 멧부리에는
이곳이 구주산의 정기를 한곳에 모은 곳이라는 표시목이 처연(?)하게 서있다.
구주산의 정수리에서 오사카와 도쿄등 일본의 핵심 도시가 있는 본토는 이곳 정수리에서
북동쪽이 틀림없으렸다! 이곳주변 언저리에서, 너희들이 숭상하는 팔광(八光)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인질생활의 어린시절 후지산 정상을 향하여 바지춤을 내리고
힘차게 물대포를 뿜어내며 와신상담의 세월을 극복한 것처럼, 우리의 땅 독도를 가지고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며 꽃놀이패를 즐기는데 복장이 상해있는 이사람도 이곳에서 너희들
본토를 향해서 후련하게 물대포 한사발을 안겨 줌으로써 상한 심사를 달랠 참이다.
짐짓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살펴본다. 우리 팀을 제외하고 다른 등산객은 없어보인다.
그러나 여자분들 때문에 의식을 진행하기가 딴은 어렵게 되었다.
그렇다면 기다림의 달인(達人)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올방자 틀고 오랜 기다림 끝에 천하를
챙긴 지혜를 빌릴 필요가 있다.두꺼비의 비릿한 콧김냄새에 취한 똥파리는 결국
꾸준히 기다리고 있는 두꺼비의 사정거리에 날아들게 마련인 것을.....
여자분들은 물론 다른 등산객들도 뜸해진 시각, 사위는 짙은 운무로 가시거리는 밝지않고
물대포의 화력도 넉넉하니 사정거리와 낙하지점 그리고 타켓을 향한 조준만 정밀하다면
명중률은 예상치를 밑돌지는 않으리! 발사 스텐바이! 곧이어 발사명령이 떨어지고
탄알은 본토를 향하여 포물선을 그린다. 그러나 발사체의 유영이 정확한 포물선을
그리며 목표지점에 닿아야 하는데 중간지점에서 바람의 저항으로 원래의 궤적을 나르지
못하고 발사체의 파괴로 중도에서 추락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고 말은 것이다.
오호통제라! 풍백(風伯)님과 운사(雲師)님의 노여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리 고하고
고두삼배에 신선주 한잔받쳐 올리고 최소한의 예(禮)를 간과한 벌칙을 준열하게
물은 것이다. 내 오늘은 이곳에서 비록 실패하였지만 내일 아소산에선 멋지게 승전고를
울릴 것이다. 볼썽사납게 실패를 맛 본 후 계면쩍게 바지춤을 추스린다.
사위는 아무 일 도 없었던 듯 조용하고 풍백님도 운사님도 무어그리 바쁜지 몸놀림이
분주하시다. 약간은 다리에 통증이 느껴질 빈처가 저 앞에서 서방을 찿는다.
얼마전 청도의 남산에서 우중의 하산길 도중 넘어져 넙적다리에 타박상을 입고도
그 핑게로 제외 될 것을 염려해 아픔을 조금은 감춘 마누라의 감투정신이 기특하다.
서둘러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을 서두른다. 하산길은 대피소 직전삼거리까지 되짚어
내려가서 우측의 계곡길을 이어가야 한다. 1,791m의 나카다케(중악)에서 북쪽으로
크고작은 봉우리를 솟구쳤다가 다데하라 습원으로 능선꼬리를 내린 산줄기와
홋쇼오산 줄기 사이 계곡으로 난 하산길인데 경사는 급박하기가 곤두박질을 칠 듯하고
길바닥은 말이 산길이지 너덜겅의 험로가 짖궂은 표정으로 동료들을 기다린다.
산길을 이어가는 등산길이 평이하고 안락하고 한가한 산길만 이어나간다면 등산이
아니고 산책이라고 해야 옳겠지? 운무 가스층이 고도를 낮추어 감에따라 점차 호전되는
기미가 보인다. 화산과 지진의 여파일 듯, 사태의 퇴적물로 폐허가 되어버린 것 조차
이색적으로 보이는 것은 생경한 모습이기 때문일 것이다.계곡을 모두 내려 선 듯한데
다시 산길은 크고작은 바위로 뒤덮힌 너덜겅 오름길로 꼬리를 끌며 이어진다.
갖은 공력을 쏟아 부으며 오른 마루턱에는 대피소로 이용됨직한 거적대기하나없는
건축물이 운무속에 귀신 두억시니처럼 홀연히 모습을 들어낸다.
돌과 양회를 이용하여 간신히 자연재해를 피할 수 있도록 한 대피소, 스가모리 대피소다.
입구에는 놋종이 매달려 있는 걸보면 유사시 이용하여 위기에 대처하라는 배려인 모양이다.
대피소 맞은 편으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대피소 맞은편의 오름길은 해발1,745m의
미마타야마를 오르는 산길이다. 우리의 남은 산행일정은 대피소를 뒤로하면 날머리인
다데하라 습원으로 완만하고 굴곡이 크지않은 하산길만 이어가면 된다.
엷어가던 운무속을 빠져나오니 다데하라 습원 너머 센스이산이 진초록의 너울을
뒤집어 쓴듯 짙푸르고, 구불구불 미키노토고개를 넘나드는 고갯길로 똥방개들이
분주하다. 아직도 해발1,700m를 웃도는 구주산 식솔들의 이마빡 언저리에는 희뿌연
운무가 요사스러운 표정을 짓고 떠날 줄을 모른다.
오후6시가 넘은 시간이 되어서야 오늘저녁 잠자리가 기다리는 아소시로 떠난다.
작으마한 농촌마을 작지만 약하지않고 낡았지만 허술하지 않고 오래되었지만 더럽지
않은 마을 변두리에 대단위 온천관광휴양시설단지를 조성해놓았다.
에스키모의 가옥구조인 이글루를 연상하는 반원형의 흰색 구조물들이 밋밋한 산기슭에
광범위하게 들어차 있다. 삼사백채는 실히 되는 모양인데 모양도 모양이지만 규모면에서
엄청나다. 특히 이런 풍경에 익숙치 않은 우리로서는 진풍경임에 틀림없다.
외관은 영락없는 에스키모인들의 가옥구조인 흰바탕의 이글루를 닮았다.
그리고 이글루의 정중앙 정수리에는 볼록하게 유리창을 설치하여 실내의 채광을
도왔고, 아치형의 창문이 빙둘러 서너개를 달았으며 출입구도 아치형으로 아담하게
만들어 운치를 더했다.
그리고 실내에는 네개의 제법 커다란 침대를 욕실과 화장실이 딸린 쪽으로 발을 빙둘러
뻗게하여 편리함에 신경을 더한 구조다. 식당을 비롯한 온천과 위락시설은 단지 맨위에
모여있다. 단지가 워낙 넓다보니 단지내를 도는 전용무료버스를 운행하기도 한다.
좌우지간 돈 버는 일에는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니 무얼 더 할 말이 있겠는가?
그나저나 뱃속이 출출하니 뭘좀 먹어야 할 텐데, 얘들이 자랑하는 생선초밥맛이나
봐야 할 텐데 뷔페식 식당이니 눈치 안보고 식탐좀 부려야 겠다.
이것저것 잔뜩 식판위에 수북하게 쌓아놓고 게걸스럽게 먹어도 무어라 말할 사람은 없는데
어디서 며칠굶고 허구한날 음식구경 처음 한 떠돌이 유개라고 제네들이 쑤근거릴까봐
다소 점잖은 체 했지만 식판으로 두어개 넘게 해치웠으니 제네들이 무언 말을 하긴 했을 터,
게다가 도드람이 주머니에 넣어온 소주까지 기울였으니 이제는 뜨거운 온천물에
몸 담굴 일 만 남았다.
[둘쨋 날 6월6일,토요일].
어젯 저녁은 어떻게 잠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잠에 푹 떨어졌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아치형의 창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욕실문 드나드는 소리 물내리는 소리가 잠을 깨운다.
빗소리가 제법 창밖에서 나는 걸 보면 제대로 오는 비다. 어느틈에 일아나서 바깥사정을
알았는지 두런두런 동료들이 수군덕댄다. 창밖을 내다보니 정말 비가 장맛비 오듯이
주룩주룩 소리를 내고 쏟아진다. 이런 상태가 아소산일정이 시작될때까지 이어진다면
일정의 상황은 어떻게 펼쳐질 것인가? 지청구처럼 비는 주룩주룩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며 고집통머리 달구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그렇다고 비가 그칠 때까지 시간을 붙잡아
묶어 둘 수 는 없는 일, 어제 저녁 포식은 어젯 일 댓가로 네활개에게 떠바쳤으니
오늘아침녁은 오늘 수고를 위하여 넉넉하게 실탄을 챙겨 바쳐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은 어제의 실패를 만회하여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조불가허(朝不可虛)라 했거늘, 내 비록 어젯녁에
모불가실(暮不可實)의 가르침에 어깃장을 놓았지만 오늘 만큼은 심기일전 낙승의
전과를 올리기 위해서라도 속을 단단히 채우고 행장도 꼼꼼히 여며서 비렴급제자
삼현육각 울리며 삼일유가에 거들먹거리듯 기세좀 세워보리라.
아침식탁 게으른 머슴 들녁나서듯 물리치고 아소산으로 이동하려니 그새 비는 그쳐있다.
우리를 위한 빗물잔치 였던가,산기슭이나 여기저기 잠시잠깐 쏟아지는 산돌림이었던가,
어쨋든 일정진행에는 하등의 지장을 초래 할 것 같지도 않으니 우백(雨伯)님의 처사에
그저 감읍할 따름이다. 숙소를 출발한 버스는 사십여분만에 분화산인 아소산의
너른 주차장에 도착한다.비가 다시 내릴 것도 같아보이고 그다지 걱정을 할 정도는
아닐 것같은 얄궂은 상태, 아소산 분화구까지의 진입로는 자가용차량의 진입이
허용된 아스팔트도로가 죽 뻗어있고 대형버스의 입산객들은 차도옆으로 나있는
인도를 이용하면 분화구까지의 등산을 할 수 있다.
비를 또 한차례 뿌리려 하던 비구름이 벗겨지고 파란 하늘이 열리며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는 뜻, 바람은 비를 부르는 구름을 몰고
오기도 하지만 멀리 쫓아 버리기도 한다.
방개만한 자가용차량들이 드문드문 분화구 정상으로 향하는 도로를 짤짤거리며 오간다.
흰색깔의 가스가 삼지사방에서 피어 오른다.피어오르는 희디 흰가스는 불어오는
바람이 시키는 대로 물결치듯 아소산 분화구 상공에서 한바탕 춤사위를 벌인다.
관리사무소 건물을 지나서 잠시 걷다보면 바로 꾸역꾸역 흰가스를 뿜어내는
분화구 턱밑에 닿는다. 찐계란 냄새가 폴폴 콧끝을 파고든다. 불어오는 바람이 만약
이곳으로 몰아 친다면 바로 대피를 서둘러야 한다.
농도짙은 유황가스로 자칫 호흡기에 치명적인 위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언제 어느때 용암이 분출 될 줄을 감지 못하는 입산객들에게는 항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셈이다. 분화구 주변아래로 급작스러운 용암분출에 대비한
긴급대피소가 콘크리트 구조물로 마치 이글루처럼 이곳저곳에 납작 업드려 있다.
분화구에서 연신 피어 오르는 가스와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이 수시로 방향을
이리저리 바뀐다. 가스가 심하게 몰려들적에는 잠시 바람을 피하고 바람이
방향을 딴 곳으로 향하면 분화구 관람을 부지런하게 둘러 보아야 한다.
분화구에서 흰가스는 연신 피어 오르는데 그옆에서 노릇노릇한 유황덩어리를
두부모처럼 잘라서 파는 장사치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멀뚱하게 서있다. 묻는 사람도
없고 사려는 관광객도 없다보니 자연스레 표정이 굳은 모양이다.
장사치란 육신은 고달프고 피곤해도 물건의 판매량에 따라 고달픔이 기쁨으로
피곤함이 활기참으로 오락가락 하는 속에서 하루를 보내는 법인데 오늘 분화구에 오른
관광객들은 유황덩어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게 틀림없다.
분화구 골짜기 이곳저곳으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는데 오늘은 바람의 방향이
갈피를 못잡아서 인지 몇몇 곳을 빼고는 진입이 제한이 되고있다.
이색적인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내려 분주한 입산객들,유황이 가득한 흰가스를 내뿜으며
은밀하고 치열한 화구의 심연을 감추려는 분화산과 입산객들의 승강이가 계속이어진다.
흰가스로 뒤덮혀있던 주위의 분화산의 새끼봉들이 거뭇한 화산재에 물들어 있다.
풀한포기 나무 한그루없는 황량한 산등성이, 아무런 동식물도 살아 갈 수 없는 척박하고
황량한 환경,골골이 지열(地熱)의 영향으로 뜨거운 김이 지층을 뚫고 간헐적으로
솟구치는 뜨거운 나라, 이러한 열악한 환경을 천혜의 자원으로 뒤바꾸어 놓은 그들이
부럽고 얄밉고 영악스럽게 보이는 것은 이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못난 질투심은 아닐까.
찐계란냄새를 연상시키는 유황냄새와 비 온 뒤끝의 아소산 새끼봉들의 전송을 받으며
분화구 정수리를 벗어난다. 여전히 분화구 상공으로는 희뿌연 유황가스가 그칠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푸른 초원처럼 펼쳐진 고산의 키작은 관목들이 펼쳐진 비 온 뒤의
창공으로 우리들의 새 인줄 알았던 날렵하고 말쑥하고 기름이 잘잘흐르는 지지배배
제비 한쌍이 날렵한 날갯 짓을 한다. 쫑알쫑알 종달인가? 분명 우리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진 종달새의 목청이 틀림없을터, 두리번 두리번 고갯 짓을 해보아도 종달이의
쫑알거리는 노랫 소리뿐 귀한 몸 값싸게 내 보이기가 싫었던가 수줍었던가.
아소산 멧부리에서의 발사강행 시도는 주변상황을 미리 인지 못한 무모한 계획임이
드러났으니 속내만 천상에 내보인 꼴이 되버렸다. 공연히 화풀이를 얼굴 감춘 종달이에게
퍼부으며 카메라만 들들 볶는다.
몸에 배인 유황냄새를 털어주려는가, 산아래 춤에서 마파람이 앞가슴을 헤치는가 하면
어느틈에 멧부리 윗쪽에서 재넘이가 등짝을 밀어댄다.
정오를 훌쩍 넘긴 시각, 조불가허(朝不可虛)의 가르침대로 조반은 실팍하고 야무지게
들였지만 뱃구레는 이미 헛구레로 변해 버렸다.
점심은 온천관광지로 유명짜한 벳부(別府)의 한인 식당으로 이미 예약이 되어 있는 모양이다.
한식인 비빔밥을 주문해 놓았다고도 했다.관광도시 벳부의 항구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밋밋한 시가지 중턱에 자리한 밥집, 이몽룡이 오매불망 사랑했던 여인, 퇴기 월매의 딸,
영원토록 사랑하고 싶고 아끼고 떠받들고 싶은 지고지순의 여인 우리의 영원한 누님
성춘향의 함자가 밥집이름으로 내걸렸다. 좌우지간 이국에서 그 이름을 대하니
그저 반갑고, 아마 이곳 식당 주인도 제일교포이기 때문에 그양반도 그 분에 대한
감정이 우리와 별반 다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다미방 교자상에 미리 준비되어
있는 비빔밥이 약간은 들척지근하다. 나는 그냥저냥 먹을 만 한데 마누라 식성에는
맞지않는 모양인지 준비해간 고추장을 섞어 비벼댄다.
식후의 일정은 유후인으로 이동하여 우리의 인사동과 미니 민속촌규모의 관광이
준비되어있고 벳부의 "카미도 지옥"이라고 하는 온천지역의 용출하는 온천수 주변관광과
일본 관광공사 면세점의 쇼핑시간이 예정되어있다.
작으마한 촌락 미네촌 한복판을 흐르는 작은 개울에는 바닥이 들어 날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수초며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반갑다. 한폭의 그림같은 길린코 호수와 사고자 하는
손님없어도 잔잔한 미소 잃지않는 정갈한 할머니 얼굴이 따스하고 허연수건 둘둘말아
머리에 질끈매고 먹거리 판매하는 상인 얼굴에 신명이 들어 보인다.
울컥울컥 용출하는 뜨꺼운 흙물이 신기하고 섭씨 팔구십도를 상회하는 수온의 용출수는
차라리 펄펄 끓는 물과 다름없다. 손님들이 온천수를 이용하려면 차거운 물을 섞어야
세면이고 목욕을 해야 하니 어쨋든 온천수로는 우리의 온천수와 비교하면 불구덩이와
진배가 없다.이곳저곳에서는 땅속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가스가 분출하여 온동네가
떡시루위에 앉아있는 꼴이다. 좌우지간 사람이 안락하고 평안하게 살아가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부적당한 지역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불리함을 하늘이 준 특혜로
바꿔나가는 슬기가 부럽다. 면세점에 들어가 보았자 흔히 주변 대형마트나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제품과 다름이 없으니 굳이 이곳에서 사들고 번잡을 피울 필요는
없지싶다. 가격이 헐하다고 수북하게 사고 비싸다고 고개를 돌릴 필요는 없다.
필요하고 귀한 물건이라면 가격이 비싸고 싸고를 따지지 밀고 주머니 사정대로 취하면
될 것이고 긴히 필요도 없는 물건 견물생심 발동으로 싼맛에 탐심을 부린다면
그런 물건은 대개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쓰레기 신세를 못 면하는 꼴을 흔히 보아오지
않았는가? 일제와 국산품 제품의 질도 이제 어상반해졌으니 구태어 이곳까지 와서
짐보따리 늘려 지고 낑낑 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내에서 시판중인 일제와 이곳에서
판매하는 같은 종류의 제품가격 차이를 들먹이며 주머니 지갑 톡톡 털어 사들인 다면
할 말은 없지 싶다.세계가 한마당 한시장으로 글로벌화 되가는 판국에 좀 가격이
헐해서 산다는데 굳이 애국심을 들먹이는 행동이 너무 초라하고 작아 보이지는 않는지.
이제는 얼추 일본에서의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으니 출국 수속을 밟아야 한다.
해안선을 따라 들어차있는 산업시설과 시모노세끼의 시가지가 화장끼 없는 작은 소도시의
모습으로 비춰지지만 작아보이지 않고, 고집스럽게 보일 정도로 주택지를 메우고있는
그들의 전통적인 가옥구조가 자신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의 표징이고
우리가 흔하게 대하는 종교에 관련된 시설물이 눈을 씻고 찿아보아도 눈에 띠지
않는 걸보면 전래되어오는 그들만의 종교관을 엿볼 수가 있겠다.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것이라면 물불을 안가리고 받아 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놓는 합리적인 실용주의
정신이 오늘날 그들을 세계의 경제대국으로 만든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여행기간내내 속이 상하고 심통이 솟고 부러웠던 것은 이렇게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자신들의 문화를 고집스럽게 가꾸고 닦아내고 유지해 나가는 그들의 고집이다.
낡은 가옥을 헐고 고층건물로 바꾸는 작업을 할 줄 몰라서도 아니고 자금이 없어서도
아닐 진데, 결론은 그들만의 전통적인 주거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앞섰던 것이 틀림없다.
우리들 같으면 고층아파트의 숲으로 변해 버렸을 대단위 주거지역에 다닥다닥 건재한
전통가옥을 바라보며 그들의 감춰진 또다른 실력이 엿보인다.
보잘 것 없는 무사의 나라, 선비의 문도보다는 무사의 검이 중시되었던 무사의 나라가
어느사이 선비의 문도, 문화지국을 지향하고 있다. 거기에 비해 우리는 선비의 나라에서
비장의 전통적인 문도를 버리고 그렇다고 무도도 아닌 국적불명의 문화속에서 갈피를
못잡고 허둥대고 있는 모습이다. 최근에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문화사업도 방향을
못잡고 허둥대는 대표적인 모습은 아닌지 모른다.
"한강 르네상스"라는 타이틀이야 그럴싸 하지만 이름에 걸맞는 문화를 일구려면
다리주변에 네온싸인이나 유람선을 띄우고 자전거 도로,산책로 설치 정도로는 국적불명의
문화만 양산하는 낭비에 불과하다. 우선 한강 르네상스를 지향하는 첫삽질은 한강변을
따라 우후죽순처럼 늘어서 있는 고층아파트 먼저 허무는 작업이 선행이 되고나서
한강르네상스의 프로젝트 스케줄을 세울 일이다. 그런 연후 한강변을 따라 일반시민의
접근을 용이하게 열어놓고 마포나루, 한명회의 압구정을 비롯한 수많은 한강을 둘러
싸고 면면히 이어왔던 우리고유의 문화유적을 복원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저지르고 있는 우리전래의 문화파괴행위는 시급히 중단되어야 한다.
최근의 숭례문 화재사건은 차라리 조족지혈에 불과한 해프닝에 불과 한 것일게다.
우리의 오천년 문화단절행위는 관(官)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니 정책적으로
입법을 서둘러 시급히 시행해야 하지 않을까.
해외관광객들이 한강을 방문하여 고층아파트와 산책로,자전거 도로 그리고 야간의
네온싸인 조명등보러 몰려 오겠는가. 우리들이 파리의 세느강을 무슨 목적으로 찿아
갔었고 런던의 템즈강을 왜 찿았었나를 기억 할 필요가 있다.
무사의 나라로서 내세울 만 한 문화다운 문화도 없던 무사의 나라가 어느새 그렇게
작은 문화유산조차 아끼고 닦아서 관광상품화해 나가는지 그들의 자부심이 부럽고
신사유적지 조차 문화관광화 하려는 기세에는 입을 벌릴 판이다.
지형적인 특수성으로 높다란 고층건물에 대한 공포감도 무시 할 수 없는 이유 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고집하는 전통적인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의심 할 수 는 없다.
시모노세끼 항구가 점점 멀어지고 시퍼런 현해탄 바닷물의 희번덕이는 물살도 차츰
어둠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한다. 불편한 심기를 눈치챘는가, 마음이 상한 여행객 처럼
현해탄의 파도가 요동을 치는 모양이다. 아무 감정도 없어 보이는 무색 무표정의
소주가 들어있는 연초록의 술병마개를 따서 다모토리로 훌쩍 넘긴다.
크루즈여객선이 현해탄의 요동치는 파도를 뚫고 밤을 지새우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부산항을 향하여 굉음을 토해낸다. 선창(船窓)밖 망망대해는 칠흙같은 어둠속으로
빠져들어간지 오래, 다모토리로 냅다마신 소주 두어잔이 눈꺼풀을 자꾸만 끌어내린다.
[세째 날,일요일 6월6일].
희뿌옇게 엷은 안개는 파도위를 휩쓸며 흐르고 아침햇살도 엷은 구름속을 더듬고
있는지 희붐하게 사위만 틔어놓고있다. 밤새 어둠과 풍랑을 뚫고 달려온 범강장달의
크루즈여객선도 가뿐숨을 돌리려나 서서히 굉음을 줄여나간다.
오륙도 바위섬의 외로운 등대, 검푸른 녹음에 뒤덮힌 영도 태종대, 엄광산 허리춤까지
올라붙은 각진 석고막대기같은 우후죽순의 고층아파트, 안전모 작업복차림의 산업전사
들의 모습이 분주한 조선소, 수출의 전진기지 신선대 그리고 수북하게 쌓여있는
콘테이너들, 두팔걷어붙힌 크레인들이 작업을 서두르는 분주하고 활기 찬 부산항에
들어선다. 부산시가지를 둘러싼 엄광산,구덕산중턱까지 올라서 있는 고층아파트가
빼곡하고 시가지 여기저기까지도 고층아파트가 즐비한 부산, 비단 부산뿐 이겠는가.
전국 방방곡곡 도시와 시골을 불문하고 고층아파트는 우리가 오천년동안 닦고 쓸고
가꾸어온 우리들의 집을 허망하게 허물어 버린 우리 문화의 공동묘지일지 모른다.
우리 어머니 버선 코 같은 자존심과 저고리 적삼의 여유로움을 간직한 선(線),
용머리의 기상 그리고 추녀아래 풍경의 정취와 품위를 그 속에 묻어 버렸다.
그러한 파괴의 선두에서 정복자처럼 진두지휘했던 당사자가 나라살림을 책임진
관(官)의 주도로 이루어 졌다는 것이 안타깝다. 올바른 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대다수의
백성들을 이끌고 계도해야 할 위치에서 유구한 문화를 훼손하는데 팔을 걷고 나서니
오호애제라! 그러나 우리에게 철학과 정열이 살아있는 한 만회의 시간은 충분하다.
그러한 시행착오를 조금이라도 만회하려면 먼저 공공건물이나 관공소 건물부터라도
우리고유의 문양과 문화와 정서가 담긴 건축물을 만들어 나가야 할 일이다.
어느 곳 어느 장소에서 공공건물을 바라보았을때 외관만 보아도 공공건물인 것을
인지 할 수 있으면 그 또한 대중들에게 편리함과 함께 문화의 자부심도 줄 수 있지
않겠는가. 웬 일인지 청와대 한채만 번듯하게 지어놓고 손을 놓았는지 모르겠다.
일찌감치 선내에서 조반을 마친 일행들이 입국수속을 마치고 오늘일정이
기다리는 태종대를 향한다. 태종대 관람이 끝나면 자갈치시장에서 자유롭게 오찬을
즐길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터이다. 여객선 터미날을 벗어난 버스는 남포동삼거리에서
태종대가 위치한 영도를 향해 좌회전을 한다. 삼거리 우측 모서리에는 100층이
넘는다고 하는 제2롯데월드건설이 한창이고 뭍에서 영도를 드나드는 신 영도대교인
부산대교에는 수많은 차량들이 분주하게 들락거린다.
싱그럽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물비릿내를 풍기며 태종대 넓은 주차장을 훑는다.
주일이라 나들이에 나선 분들이 분주하게 오고간다. 일정상 할당된 한 시간으로는
태종대 관광을 마치고 예정된 시간에 대려면 바쁘게 서둘러야 주위를 돌아 볼 수 있겠다.
사철푸른 상록수나무들이 시원함과 싱그러움을 더하고 교목숲가지 사이로 불어오는
영도 앞바다의 바람이 상큼하다.
바다를 접하고 들쭉날쭉한 해안절벽의 기암이며 망망대해의 푸르름에 흠뻑빠져들 수
있는 전망대와 자살바위 그리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태종대 주변해역을 일주 할 수 있는
유람선에 올라 음풍농월도 즐겨 볼텐데 무정한 시간이 모르쇠로 일관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수박 겉핥 듯 하고 비맞은 땡초처럼 잰걸음으로 서둘러 걸터듬만 하다 입맛만 쩍 다신
모습으로 주차장에 들어서려니 왜 이리 늦느냐고 휴대폰을 들볶던 처자가 풀방구리
쥐 나들듯 버스를 들락날락거리며 서방을 기다린다. 시간은 정오를 넘긴 시각, 이제
한참 태종대 관광을 시작하려고 주차장으로 들어서는 차량들이 줄을 잇는 사이로 우리
버스는 영도다리를 건너서 비릿내 진동하는 자갈치를 향한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코스,
자갈치 시장의 신축건물상가가 우뚝하고 그 뒷편으로는 예전의 장 풍경이 그대로다.
수많은 종류의 어류는 차치하고 많은 시장손님들과 상인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는 자갈치,
삶의 생생한 현장이 수족관의 활어 만큼이나 활기차다. 태종대에서의 타이트했던 순간은
한순간에 풀어지고 희끗희끗 허연 비늘을 희번덕거리는 놈들이 구미를 잡아 당긴다.
싱싱한 활어맛도 보았고 자갈치의 진미 꼼장어 맛도 보았으니 일정은 거둘 때가 되었다.
태종대에서의 일정은 비교적 짧은 시간을 할당해서 여유가 없었는데 자갈치에서의
시간은 2차를 시도 할 만큼 여유가 있어서 휘날레시간을 한껏 즐긴 것 같다.
3박4일의 일정이 피곤했던가? 피곤을 느낄 정도의 여정은 아닌 것 같은데
자꾸만 눈꺼풀이 내려 앉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3박4일 함께 했던 여동생 내외
그리고 마누라와 외동딸도 어느 틈에 눈을 감았는지 버스에 몸을 맡긴 채 고른 숨을 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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