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하늘이 열렸건만 아직도 겨울 바람은 서성이며 개나리 가지에 봄 햇살이 내려 앉는걸 훼방하고 있었다. 노을길을 예정한 오늘 일기예보는 심술궂은 겨울 바람을 잔뜩 품었는지 변화무쌍한 날씨를 예고하였다.
지난 1월 13일, 평택섶길이 생기고 12년 만에 처음 노을길을 저녁노을 시간에 맞추어 인상적으로 걸었었다. 그리고 달이 두 번 바뀌고 3월 2일 오늘 2번째 걷는 길이다. 동지가 지나고 점차 낮의 길이가 길어지면서, 오늘 평택의 일몰시간은 어느덧 18시 28분이다. 해가 많이 길어졌다. 지난번처럼 평택대교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감상할 수 있을까. 기대는 일주일 전부터 일기예보에 관심을 기울게 했다.
노을길을 예보한 일기는 시샘이라도 하는걸까. 새벽 영하 9도의 동장군은 밤새 고드름을 벼리었고, 아침부터 부채를 단단히 들고 있었다. 낮 기온은 영상으로 회복하지만 오후 늦게에도 동장군의 부채질이 심해질지 모르니, 복장에 유의해야 한다는 사전 당부가 있었다.
노을길의 노을의 하이라이트는 평택대교이다. 웅장한 위용을 자랑하는 평택대교가 조명을 밝히면 노을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일몰시간 전후 30분이 노을의 골든타임이므로 30분 전에 먼발치에서 평택대교가 보이면 노을을 맞는 적당한 시간이다.
이 정도 시샘이야! 노을에 대한 기대와 걷기에 진심인 35명의 길벗들은 노을길의 출발점인 k6 정문 앞에서 준비체조로 예열을 마치고 안정리 쇼핑몰 거리를 지난다. 삼국시대일까 고려시대일까 아니면 임진왜란 때일까 바람처럼 그 기원과 용도의 추측만 무성한 농성에서 시샘의 맛을 보기 시작한다.
내리 문화공원에 당도하자 드넓은 평택호 수면을 거침없이 달려온 바람은 섶길해설사의 해설이 모두의 귀에 닿기도 전에 가로챈다. 걷지 않으면 추워지니 걸으라는 바람의 재촉이 얼마나 심했을까. 어느새 평택대교를 먼발치에서 5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일몰시간 30분 전을 앞둔 6시 부근에 있어야 했다. k6 정문에서 좀 이르게 출발한 이유도 있었지만, 평상시 걸음의 속도보다는 적어도 30분은 빨랐다.
변화무쌍한 일기를 예고한 날씨답게 저녁시간이 되어 가면서 서녘 하늘에 구름을 층층이 쌓기 시작한다. 힘겹게 구름을 헤치고 태양이 얼굴을 내민다. 구름이 적당히 가리어지면 노을은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하지만, 오늘은 지평선 부근에 구름이 많아 골든타임 때 노을을 살짝만 보이고 멋진 연출의 노을은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평택대교 부근 휴게소에서 노을을 기다리겠다는 앞장서 걸어갔던 선두의 호기는 어디로 갔는지, 몸속 깊게 스며든 찬바람 앞에 모두 Dust in the wind였다. 노을길 어디서나 비가 오거나 흐리지만 않는다면 어느 노을이나 볼 수 있겠지만, 멋진 노을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오늘 보여주었다. 계절과 태양의 고도와 특히 그날의 날씨와 시간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지난 1월 13일은 행운의 날이었다.
신대2리 노을길의 종점으로 무거운 걸음을 옮기자 아쉬움인지 예정에 없던 저녁 식사 제안이 있었다. 그런데 오늘 노을길에서 못 보았던 뜻밖의 아름다운 노을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보았다. 그 노을은 옆 테이블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80대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우정의 노을이었다. 어디서 오셨나 했더니, 모두 파주 서울 성남 수원의 원거리에서 오셨다 한다. 다른 둘레길에서 인연이 되어 우리 평택섶길을 완주하기로 언약한 길벗이었다. 또 인천에서 오신 다섯 분이 그러하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특히나 오늘 홀로 용기 내어 처음 오셨다는 몇 분들이 서로 길벗이 되어 다음 섶길을 약속하는 걸 보았다. 섶길이 널리 알려지는 것 같았다. 지난 첫 시내길과 두 번째 대추리길에서도 오육십 명이 길을 함께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평택섶길 위원이 더 증원이 되고 안전을 더욱 도모하는 것 같았다. 끝으로 오늘 노을길의 여정 중에서 농성은 매번 걸을 때마다 제주의 오름을 걷는듯 설렘을 갖게 한다. 전체 둘레가 약 300m여서 길지도 않은 길이니 전체를 다 걸었으면 하는 바램을 적으며, 늘 평택섶길을 위해 애써주시는 자원봉사자와 섶길의 여러 위원분들께 감사드리며 글을 마친다.
첫댓글 고드름이 얼었지만 단단히 보이지 않는게 보이는게 봄이 오고 있다는 뜻이겠죠? 개나리도 벌써 방긋하네요
걸어가시면서 포인트를 잡아 정성스럽게 사진을 찍어 주시는 님께 항상 감사드립니다
그런것 같지요^^
서슬 퍼렇던 칼이 무뎌가고...
동장군이 아마 서러웠던 모양입니다.
며칠을 겨울비가 내리고
매섭게 찬바람이 몸을 옹송크리게 했지만
개나리 한송이가
시린 바람결에서도 봄을 느끼게 합니다.
조붓한 오솔길 봄이 찾아온다는 노래처럼
오솔길과 논밭길이 있는
다음 섶길이 또 기대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