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이 정확하고 아름답고 시적 울림이 풍부한 문학에세이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 도정일 作, 문학동네, 2016/ 2026년 10쇄,338쪽>
1. 필자 추천의 서
요즘은 도정일의 《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정독에 빠져 재독으로 들어갔다. 이 고마운 책을 일찌기 맞나지 못했음을 후회했다. 딱딱한 시론책은 체질상 정독이 안맞는데 다행이도 에세이식 시론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읽기에 편하다. 도정일은 이 책을 쓰기 전 ‘소리 없이 엎드려’ 있었다고 한다. 그는 쉰 살이 넘어서야 대외적 글쓰기를 시작했고, 스스로 ‘게으른 뼈다귀’라 일컫지만 사유의 깊이는 뼈저리게 사무친다. 드디어 주어가 '문학’인 문장을 만났다. 또 다른 전파를 위해 한 줄씩 마음에 새기고 있다. 문학은 소위 문학적 진실(reality)을 통하여 타인의 고통을 핍진하게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 울타리 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빗장을 열어 타자와 공감하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 그중 껍질을 깨고 가슴을 여는 시문학은 가장 위대한 인문학적 경험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진정 시문학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취하고자 하는 문우선후배들께 통독이 아니라 정독을 권할만큼 이 책은 출판사(문학동네)평대로 혜성처럼 등장해 전설이 된 비평의 부활이요 교과서격(2016년 10쇄.1만부 판매)이기 때문이며 금상첨화로 문학평론의 몸체지만 '엣세이(essey)적인 ' 친숙한 옷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읽어내기에 부담이 없다. 특히 글쓰기를 고민하는 분들께 일독을 권해드린다. -태실골 작은 서재에서 여명을 감지하며..... < 悳泉>
2. 저자 소개
문학평론가, 문화운동가, 전 경희대 영문과 교수, 인간·사회·역사·문명에 대한 인문학의 책임을 강조하고 인문학적 가치의 사회적 실천에 주력해온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을 역임했다. 2001년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을 일으켜 어린이 전문도서관 ‘기적의 도서관’을 전국 14개 도시에 건립했고 2006년 이후 70개 농산어촌 초등학교에 도서관을 설치했으며 영유아를 위한 ‘북스타트’ 운동, 교사를 위한 독서교육연수 프로그램도 주도해오고 있다. 저서로 『시대로부터, 시대에 맞서서, 시대를 위하여』 『쓰잘데없이 고귀한 것들의 목록』 『별들 사이에 길을 놓다』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 『대담 -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공저)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공저) 『불량사회와 그 적들』(공저) 등이 있고 역서로 『순교자』 『동물농장』 등이 있다. 소천비평문학상, 현대문학비평상, 일맥문화대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했다.
3. 저자의 말
문학비평은 문학이라는 형태의 예술적 창조행위와 수용행위에 대한 성찰행위이다. 그러나 문학에 대한 비평의 성찰은 불가피하게 사회적 성찰을 포함한다. 이것은 문학 생산과 유통의 사회적 차원 때문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한 사회가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근본적 가치’들을 비평이 부단히 정의하고 확인하고 옹호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평이 옹호해야 하는 사회적 가치들은 공동체적 삶의 토대이다. 그 가치들 중에서 비평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보다도 인간성 파괴에 맞서서 인간의 품위와 자유를 지켜낼 ‘인문문화적 가치들’이다. 그 가치들을 옹호하는 비평적 작업을 나는 ‘비평의 인문학’이라 부르고 싶다.
세계적으로나 국지적으로, 현대의 시장유일주의 사회는 특징적으로 반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작동 원리에 지배되고 있다. “이것이 인간인가”라는 것은 나치 절멸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왔던 프리모 레비가 나치 수용소라는 야만의 체제를 향해 던졌던 질문이다. 레비의 시대보다도 더 엄혹하게, 지금은 사람들이 “이것이 인간의 세계인가”라고 묻는 상황에 빠져 있다.
비평은 사회가 유지해야 하는 인문문화적 가치들 모두에 고르게 민감하며 가치의 위기 국면을 가장 잘 감지한다. 가치에 대한 이 균형 있는 민감성이야말로 문학비평의 가장 큰 힘이며, 이 힘은 사회적으로 사용될 필요가 있다. 비평의 인문문화적 가치의 옹호에 대한 나의 관심이 90년대 초부터 나의 평론들에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이 평론집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은 그 관심이 더 확장되고 심화되어야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 도정일, 《시인은 숲으로가지못한다. 》.문학동네,2016
4. 목차속으로
1부 시대의 시
▷사람아, 사람아! / - 균열, 피해 면적, 그리고 환생
▷풀잎, 갱생, 역사/- 순환의 노래와 역사적 상상력
▷「우울한 거울」의 화자에게/ 시와 역사, 또는 맹목에 대해 실언하기
▷여신의 가위 소리 /- 시와 테러리즘
▷나오너라 봉구야, 부끄러워 말고/- 심호택의 유년에 대한 명상의 시들
▷낙동강 물난리, 국제화, 지상의 아름다움/- 신경림 시집 『쓰러진 자의 꿈』을 읽으며
▷내 노래의 붓을 꺾을 것인가/- 데릭 월컷, 강은교, 이진명: 시 또는 구슬에 대한 믿음
2부 기억을 위하여
▷문학적 신비주의의 두 형태 /- 역설의 신비주의와 은유의 신비주의
▷다시 우화의 길에 선 시인을 위하여 /- 최승호 시인의 10년
▷에로스의 독법과 포용의 시학 /- 시의 이야기와 시의 수사성
▷망각의 시학, 기억의 시학/- 후기 산업사회에 대한 시적 대응
▷정신대, 역사, 문학
3부 혼돈 시대의 소설
▷90년대 소설의 영화적 관심과 형식 문제
▷시뮬레이션 미학, 또는 조립문학의 문제와 전망/- 이인화의 ‘혼성 기법’이 제기하는 문제들
▷형식, 패러디, 영상 기법/- 지상 토론 4제
▷이 시대에 전위예술은 가능한가
▷한국문학의 국제 위상/- 경쟁을 위한 조건의 점검
▷다섯 가지 오해
4부 왜 문학인가
▷압구정의 유토피아/디스토피아
▷문화의 몰락과 비평의 위기/- 이 시대의 문학비평은 무엇인가
▷문화, 이데올로기, 일상의 삶/- 비판적 문화론의 현대적 전개: 루이 알튀세와 앙리 르페브르
▷고슴도치와 여우, 그리고 두더지 /- 비평적 문학교육의 필요성에 대하여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
5. 책속으로
사실 시인에게는 ‘생태계의 시’라는 것이 따로 있지 않다. 그는 자연 속에 있는 것들의 존재방식으로부터 한시도 눈을 떼지 않기 때문에 시인인 것이다. 이처럼 시인들의 시선이 자연으로 쏠리고 있는 이유는 그들이 그동안 딴 데서 노닐다가 갑자기 자연으로 돌아왔기 때문이 아니라 자연의 신음 소리,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들의 아픈 신음이 시인들의 귀를 밤낮으로 쟁쟁 울리기 때문이다. _「사람아, 사람아!」(19~20쪽)
문학은 근원적으로 역설 위에 성립한다. 왜냐하면 문학 자체가 ‘거짓말쟁이의 패러독스liar’s paradox’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라는 거짓말쟁이의 진술은 그가 진실을 말하고 있다라는 진리의 역설적 표현이다. 문학은 스스로 허구이고 거짓말임을 시인함으로써 진리를 말하는 담론양식이며 이는 근원적으로 역설의 양식이다. _「문학적 신비주의의 두 형태」(107쪽)
시인에게 허/무의 유혹은 마약과도 같다. 일단 허/무의 아편 맛을 들인 사람은 욕망의 구렁에 빠진 사람 이상으로 허/무에 집착하며, 군화가 군화의 습성으로 천하를 통일하려 들듯 허/무의 아편쟁이는 무 하나로 천하를 통일한다. 그는 무를 부풀려 역사 시간 속에서의 삶의 모든 경험, 색깔, 고통, 아름다움을 백지화한다. 시인의 일은 하나의 화두로 천하통일하자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의 제각각의 소리, 색깔, 모양새에 끊임없이 놀라운 눈 코 귀를 갖다대어 자신과 이웃들의 마비를 막자는 것이다. 시는 마비에 대한 방어이다. _「다시 우화의 길에 선 시인을 위하여」(136
비유의 영역은 거의 전적으로 문자매체의 것이다. “수술대 위의 마취된 환자 같은 저녁놀”(엘리엇)이라든가 “간장이 시어지고 소금에 곰팡이 슬 때까지”(조태일)의 표현 효과를 영상이 무슨 재주로 성취할 것인가? 문자예술은 일상화된 표현의 상투성을 깨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_「형식, 패러디, 영상 기법」(236쪽)
기술주의의 함정은 늘 신기술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전위의 기술주의는 상품 형식의 회로를 벗어날 길이 없다. 현대의 소비문화에서는 ‘충격’만큼 빨리 소비되는 것이 없으므로 충격적 신기술은 매번 그 충격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목이 부러질 때까지 ‘스턴트’를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지금의 소비문화는 더이상 소비자를 가리켜 ‘당신은 소비자이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소비문화의 새로운 어법은 소비 대중을 향해 ‘당신은 시인이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광고의 시’ 또는 시적 광고의 어법이며 무의식을 파고드는 이 식민화의 기법에 관한 한 오늘날 진정한 전위는 예술이 아니라 광고이다. _「이 시대에 전위예술은 가능한가」(253쪽)
자연이 노예화될 경우, 그 자연의 불가피한 일부인 인간 자신도 노예화의 운명을 피하지 못한다. 인간에게 착취 대상으로만 파악되는 한 자연은 그 인간에 대한 모든 호의를 회수한다. 근대적 생산/소비 방식은 인간의 삶과 가치 체계로부터 자연을 제외하고 그 품위를 조롱했다는 점에서 그 이전의 삶의 양식들과 가장 현저하게 구분된다. 인간에게서 배제당한 자연은 역으로 인간을 배제한다. 시인은 눈 내리는 숲으로 가지 못하고 아이들은 비를 겁내고 농사꾼은 땅을 믿지 못한다. _「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377쪽)
우리가 문명을 비난할 수는 있어도 인간이 현재 이룩해놓은 삶의 단계는 그 문명 없이는 동서양 어디서건 단 하루도 지탱되지 않는다. 동구 밖 개천에 구태여 ‘다리를 놓을 필요가 없었던’ 그 노자의 시대로 인간은 되돌아갈 수 없다. 그 시대로 되돌아가려면 우선 지구상의 현재 인구 가운데 4분의 3은 사라져야 한다. 그러므로 ‘과거로의 회귀’라는 불가능한 프로그램을 가지고 문명에 대한 전면적 거부를 제의하는 일은 문학과 문학교육이 취택할 만한 사색 내용이 되기 어렵다. 우리의 시인, 작가들 중에는 이 방향으로의 모색을 자연 파괴의 문명에 대한 문학의 대안적 사색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_「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378쪽) / 출처: 교보문고
6. 출판사<문학동네> 서평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는 1999년 ‘전문가 100인이 선정한 1990년대의 책 100선’(교보문고)으로 선정되었고, 2007년에는 ‘우리시대의 명저 50’(한국일보)으로 손꼽힌 책입니다. 오늘의 인문학자 도정일을 있게 한 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도정일의 첫 문학에세이를 22년 만에 다시 펴냅니다.
“그의 문장은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시적인 울림이 풍부한데다 때로는 해학적이기조차 하다.”(한겨레 1994년 12월 28일자) “문학비평 같기도 하고, 시민운동을 위한 굳건한 지지대 같기도 하고, 개성 넘치는 사유에 빚지고 있는 수상록 같기도 한 이 책은 이 강퍅한 시대에 인문학은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를 예시한다.”(한국일보 2007년 2월 8일자)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를 ‘평론집’이라 부르지 않고 ‘문학에세이’라고 이름 붙인 까닭은 그가 기존 평론의 문체와 형식 대신 ‘에세이/문학저널리즘’의 문체와 ‘대중의 삶에 접착된’ 형식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글이 독자에게 “정신 에너지, 집중, 수준을 요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형식이 독자에게 친숙해야 하고 또 읽기에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도정일 글쓰기의 첫째 철학인 셈이다.
첫댓글 끊임없이 책을읽고 평론과 해설을 풀어내신 부회장님,
감사 합니다. 제대로 이해하고 공부한다면 많은 문학적 지식을 얻을 수 있지요.^^
금년에는 풀꽃 부부老시인의 의미있는 시집 순산을 기대합니다.
온글문학을 위해 獻身하시는 열정의
자장에 빨려들어 발길을 돌리게 하시니 참으로 닮고싶은 文人선배이십니다...文香으로 가득한 풀꽃정원 올해도 에쁘게 가꾸시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