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토석(土石) 문화의 원류를 찾아서>/구연식
<만리장성>
나의 고향은 50여 가구로 시골치고는 큰 마을이다. 400여 년 전부터 구씨(具氏) 집성촌이다. 마을 주산(主山)도 구씨 종산(宗山)이며 마을 속 재실 능성재(綾城齋)도 유일하다. 이렇게 인문환경과 자연환경이 나에게는 익숙해져서 언제나 가슴 뿌듯하게 살고 있다. 그런데 산업사회가 등장하면서 이촌향도(離村向都) 현상으로 씨족들은 객지로 나가 자연환경만 남아 고향을 지키고 있다.
나이가 들면 고향과 혈육이 그리운 것은 인지상정이다. 어느 날 객지에 있는 집안 아우들에게 모처럼 해외여행을 제안하여 혈육의 정을 되살려 보기로 했다. 동북아시아의 문화적 원류는 나라에 따라서 조금씩 다를 수 있으나, 중국 대륙문화의 전파(傳播)를 도외시할 수 없다. 대부분 중국 여행은 여러 번 갔겠지만, 비행거리가 가깝고 중국문화의 중심부인 북경(北京)으로 정했다. 의미 있게 고향 세천비(世阡碑)가 있는 광장에서 여명 무렵에 출발하여 마음속으로 조상님께 출국 인사를 드리고 설렘 속에 여행을 떠났다.
사마대장성(司馬臺長城) 기슭에 있는 중국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는 북경의 고북수진(古北水鎭)에 도착하였다. 그 옛날 술을 빚고 옷을 염색하여 공급했던 소주방과 염색방 관람을 마치고, 건설에 참여한 마지막 왕조 명나라의 만리장성 구간으로 본래 모습이 가장 잘 보존된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헉헉거리는 숨을 달래며 드디어 꿈에 그리던 만리장성에 도착했다.
수십 길 낭떠러지 성벽이 무서워서 그랬는지, 경이로운 장성의 자태에 젖어서인지 아니면, 새벽부터 여기까지 강행군으로 너무 지쳐서일까? 집안 형제들 내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은 다문 채 잡은 손 놓지 않고 사부작사부작 걷고 있다. 속뜻은 어쨌든 간에 모처럼 아우들 부부간의 흐뭇하고 사랑스러운 모습이 그리도 좋았다. 원형 보존 지역이라 관광은 불편했지만, 그 옛날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인부들의 망치와 정(釘)으로 돌을 깨고 다듬는 쨍그랑쨍그랑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귀를 닫지 못하게 한다.
만리장성(萬里長城)은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 위해 고대 중국제국들이 북쪽을 가로질러 보하이(渤海)만에서 중앙아시아까지 약 6,400㎞에 걸쳐 건설된 거대한 성곽이다. 중국을 상징하는 대표적 유적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인류의 유산이다. 기원전 7세기부터 건설되었으며, 진시황제 때 확장을 시작으로 2,000여 년이 넘는 동안 축조되었으나, 명나라 수도 베이징(北京) 근처 북방지역을 강하게 축조된 것이 대부분이다.
축조 방법은 양쪽에 판(版)을 세우고 흙을 넣어 굳히는 판축(版築) 방법이었다. 재료는 지역에 따라 흙, 벽돌, 돌 등 다양한 재료로 건설되었다. 강과 바다를 건너 장성(長城)을 연결해야 하는 경우는 거대한 바윗돌들을 실은 배들을 바닷속에 가라앉혀 그 위에 장성을 쌓았다. 이처럼 전 성곽에 사용된 돌로 피라미드를 쌓으면 30개나 만들 수 있다고 하니 어마어마한 수치이다.
이렇게 만리장성은 강과 구릉지대는 물론 바다와 험준한 바위산까지 끊기지 않고 계속되는 공사였기에 천문학적 군대와 민간이 동원되었으며, 손톱이 들어갈 정도로 부실한 돌을 쌓은 수많은 일꾼의 목을 잘랐다고 한다. 기중기도 없었던 시대에 2톤이 넘는 화강암 운반 등으로 안전사고 사망자도 부지기수였다니, 인간이 만든 가장 큰 구조물인 동시에 가장 거대한 공동묘지일지도 모른다.
비탈진 성곽 길에는 수많은 인파가 어느 돔(dome) 국제경기장에서 지정 좌석에 앉아 있듯이 구경하는지 휴식을 취하는지 꼼짝을 하지 않고 앉아 있다. 샛길을 겨우 비비고 오르려니 강풍이 불고 보조대가 없는 난간이라 몸이 순간 기우뚱거리는 느낌이 들어 왈칵 겁이 났다. 겨우 망루(望樓)에 도착하여 손으로 인증 터치만 하고, 까치발을 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천하를 내려다보니 만리장성이 온몸에 흠뻑 젖어 들며, 고북수진(古北水鎭)과 멀리 베이징은 바로 턱 아래 있다. 내려갈 때는 고르지 못한 돌부리와 급경사 계단과 오르려는 인파와 내려가려는 인파가 뒤섞여있고, 위협적인 낭떠러지 등으로 오를 때보다 다리가 더 후들거리기도 하였다. 공연히 나 때문에 아우들한테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고 다짐하면서 땀에 젖은 아내 손을 놓지 않고 조심 또 조심하면서 겨우 내려왔다.
내려와서 멀리 있는 망루 쪽을 바라보니 아까는 보이지 않았던 열사흘 달이 망루 쪽 뒤에 하얀 연처럼 떠 있다. 저 달은 만리장성 처음 축조 때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영겁 속의 사연들을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로 보여주고 있는데, 나 같은 중생(衆生)의 눈으로는 그 속뜻을 읽을 수 없어, 만리장성에 공연한 오염된 발자국만 남긴듯하여 부끄러울 따름이다.
중국은 인류 4대 문명의 발상지인 황허문명의 근원이다. 세계 토목사업에서 가장 긴 장성(長城)을 설치한 나라이다. 창어(嫦娥: 달의 여신) 4호는 세계 최초로 달 뒷면에 착륙시킨 중국의 달 탐사선이다. 정치, 경제, 문화와 종교 등이 다를지라도 인류 문화 발전에 기여도는 공감해야 한다.
어린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만리장성을 나름 정복했다고 생각하니 만족보다는 허전함과 미흡함이, 이마의 허연 소금으로 남아 있었다. 인간이 감히 자연을 정복하려 함은 조물주의 섭리를 거역하려 함이며, 모든 생명체가 공존해야 할 무위자연(無爲自然)을 파괴하려 함이다.
토석(土石) 문화의 극치 만리장성 답사에서 비록 빈 호주머니이지만, 아우들과 천년 나들이가 뿌듯함을 가득 채우고 금세기의 최신 인공별 드론 쇼가 환영하는 만리장성 아랫마을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내려가고 있다. (2024,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