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학문 제12절
강령주문에 대한 말씀이시니 충분한 이해가 되시도록 공부하옵소서!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曰降靈之文 何爲其然也 曰至者 極焉之爲至 氣者虛靈蒼蒼 無事不涉 無事不命 然而如形而難狀 如聞而難見 是亦渾元之一氣也 今至者 於斯入道 知其氣接者也 願爲者 請祝之意也 大降者 氣化之願也
왈강령지문 하위기연야 왈지자 극언지위지 기자허령창창 무사불섭 무사불명 연이여형이난상 여문이난견 시역혼원지일기야 금지자 어사입도 지기기접자야 원위자 청축지의야 대강자 기화지원야
--------------------
曰降靈之文 (왈 강령지문)은何爲其然也(하위기연야)니까 曰至者(왈 지자)는 極焉之爲至(극언지위지)요 氣者(기자)는 虛靈蒼蒼(허령창창)하니 無事不涉(무사불섭)하고 無事不命(무사불명)이나 然而如形而難狀(연이 여형이난상)이요 如聞而難見(여문이난견)이니 是亦渾元之一氣也(시역 혼원지 일기야)요 今至者(금지자)는 於斯入道(어사입도)하여 知其氣接者也(지기기접자야)요 願爲者(원위자)는 請祝之意也(청축지의야)요 大降者(대강자)는 氣化之願也(기화지원야)니라.
(해의)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 대답하기를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라는 물음에
대답하기를
「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기」라는 것은 허령이 창창하여 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 함이 없으나, 그러나 모양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 들리는 듯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이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먼저 강령주문에 대한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을 하셨다.
묻기를 주문의 뜻은 무엇입니까. 대답하시기를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이라 주문이라 한다. 지금의 글에도 있고 옛 글에도 있다.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 그러합니까.
지(至)는 극한의 경지에 이른다는 지(至)요
기(氣)란 것은 허령(虛靈)으로서 창창(蒼蒼)하며 사물에 섭리하지 않음이 없고(무사불섭無事 不涉) 사물에 명하지 않음이 없다(무사불명無事不命). 그러나 형상이 있는 듯하나 말로 그 려내기 어렵고 생동하는 소리를 들은 듯하나 볼 수는 없다. 그것은 만물의바탕이 되는 하 나의 기운이다.
금지(今至)는 이에 입도하여 지기(至氣)에 접했음을 알았다는 뜻이다.
원위(願爲)는 청원의 뜻이요
대강(大降)은 한울님 기에 화하기를 원한다는 뜻이다.
왈 강령지 문(曰 降靈之文)은 하위기연 야(何爲其然也)니까
묻기를 강령의 글은 어찌하여 그렇게 됩니까?..어떤 뜻으로 그렇게 지은 것입니까?
*강령지 문(降靈之文)..강령이 되게 하는 글. 강령주문
*하위기연 야(何爲其然 也)..어찌하여 그러한 것입니까? 그 뜻이 어떠한 것입니까?
강령이 되게 하는 글이란 강령주문을 말하는 것으로서 ‘지기금지 원위대강’의 8자를 강령주문이라고 한다. 이 주문은 강령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지은 주문으로서 이 주문을 외우면 강령이 되는 것이다. 이 강령주문은 어찌해서 그렇게 지으셨으며 그 뜻이 무엇입니까하고 물은 것이다.
왈(曰)지자(至者)는 극언지 위지(極焉之 爲至)요..지라는 것은 지극한 것이요
[지]라는 것은 극, 즉 끝을 [지]라고 한다. 더 갈 수 없는 기운의 끝을 지라고 하는 것이요.
*지자(至者) 극언지 위지(極焉之 爲至) ....어조사 언(焉) 극언....말로나 글로써 설명할 수 없이 지극하다는 말.
지(至)라는 것은 극, 즉 끝을 ‘지’라고 한다. 기운은 쉬지 않고 계속해서 약동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이 기운의 약동이 어디에서부터 온 것일까? 그 근본을 자꾸 캐어 올라가면 맨 끝에 가서는 기운의 끝 즉 기운작용이 나와지기 전의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옛날 유교에서는 이 자리를 리(理)라고 했으며 불교에서는 성(性)이라고 했다.대신사님께서 이 자리를 깨닫고 보시니 이 자리는 유교에서 말하는 理만도 아니요 불교에서 말하는 性만도 아니므로 이 자리를 至라고 하신 것이다. 성사님께서는 이 자리를 원리원소(원리원소)라고 하시어 무체법경,후경,각세진경, 천도태원경에 밝혀 놓으셨다.
기자(氣者)는 허령(虛靈)이 창창(蒼蒼)하여 무사불섭(無事不涉)하고
무사불명(無事不命)이나
[기]라는 것은 허령(빈 영)의 기운이 창창하여(우주안에 꽉차서)일에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일에 명령하지 아니함이 없으나
...기라는 것은 빈영의 기운이 우주 안에 꽉 차서 무슨 일이든지 간섭하지 아니함이 없고 무슨 일이든지 명령하지 않는 것이 없으나
*기자(氣者) 허령(虛靈) 창창(蒼蒼)
여기서 말하는 기(氣)라는 것은 곧 허령의 기운작용을 말하는 것이니
허령이란 내유신령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내 몸밖에 있는 영의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이 기운작용은 형체는 없으나 자취가 나타나 작용하는 것이므로 허령(빈 영)이라고 하는 것이며
창창이라는 말은 초목이 무성한 모양이라고도 하며 맑게 개인 하늘 빛을 말하는 것으로서 허령창창이라는 말은 한울님 영의 기운이 형상은 없지만 이 우주 안에 꽉 차 있다는 것이다.
*무사불섭(無事不涉)무사불명(無事不命)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명하지 않는 것이 없다. 모두 다 간섭하고 명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다. 한울님 영의 기운은 이 우주 안에 꽉 차서 통하지 않는 곳이 없으며 물질을 이루어 놓고 그 물질 속에까지 들어가서 작용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우주 안에서 생겨지는 일은 어느 곳에서 생겼던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어떠한 일이든 모두가 다 한울님기운의 간섭과 명으로 인하여 생겨지는 것이고 되어지는 것이다.
연이 여형이난상(然而如形而難狀)이요 여문이난견(如聞而難見)이니 시역 혼원지 일기 야(是亦渾元之 一氣 也)요
그러나 모양(형상)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하기 어렵고(형상이 있다고 하기 어렵고) 소리가 들리는 듯 하나 보기는 어려우니 이것은 또한 혼원한 한 기운(한 덩어리의 기운)이요
*여형이난상(然而如形而難狀)여문이난견(如聞而難見)
형상이 있는 것 같으나 형상이 있다고 하기 어렵고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나 보기 어렵다. 한울님 영의 기운 작용은 자취로 나타나 모든 것을 이루어 놓으며 많은 변화작용을 나타내므로 형상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소리를 들을 것 같기도 하나 그러나 무형이므로 형상이 있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이며 보려고 해도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시역 혼원지 일기 야(是亦渾元之 一氣 也)
이 기운(영의 기운)도 또한 혼원한 한 덩어리의 기운이다. 기운에는 여러 가지 기운이 있다. 미는 힘, 당기는 힘, 중력, 전파, 음양의 기운, 오행의 기운 등 여러 가지 기운작용이 있다. 그 가운데 지기라고 하신 기(기운)는 한울님 영의 기운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 기운이 많은 변화작용을 내지만 이 기운이 다른 기운과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기운 역시 다른 기운과 같이 하나로 존재해 있으니 오직 하나의 혼원한 하나의 기운이라고 하신 것이다.
금지자(今至者)는 어사입도(於斯入道)하여 지 기기접자 야(知其氣接者 也)요
[금지]라는 것은 도에 들어 처음으로 지기에 접함을 안다는 것이요.
→금지라는 것은 이제 처음으로 우리 도에 들어와서 한울님의 기운이 접하는 것을 아는 것이요.
*기접(氣接)...기운이 접한다. 강령이 된다.
금지라는 것은 천도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알지 못했다가 천도교에 입도해서 한울님 영의 기운이 내 몸에 접하여 강령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원위자(願爲者)는 청축지의 야(請祝之意也)요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비는 뜻이요
청축(請祝):원하고 빈다. 원위라는 것은 강령이 되기를 빌고 청하고 원하고 바라는 뜻이다.
대강자(大降者)는 기화지원 야(氣化之願也)니라
[대강]이라는 것은 기화를 원하는 것이니라
기화지원 야(氣化之願也)
기운이 화해서 대강령이 되기를 원한다.
풀이
주문은 무엇이냐고 주문의 뜻을 물었다. 대신사님께서는 주문이란 지극히 한울님을 위하는 글이며 옛날 종교에도 주문이 있고 오늘날 우리 도에도 주문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주문은 한울님이 좋아하시는 글이며 한울님을 지극하게 위하는 글인 동시에 우리가 한울님께 지극히 원하는 기도문과 같은 것이다. 옛날부터 어떤 신앙을 하는 사람들이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우리 도의 주문은 경신년 4월5일에 한울님께서 대신사님에게 내려 주신 것을 대신사님께서 글로 지으신 것이요, 대신사님의 사사로운 생각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다.
우리 도의 주문은 한울님을 지극히 위하는 글이며 한울님의 감응을 비는 기도문과 같은 것이므로 누구든지 지극한 정성으로 주문을 많이 외우게 되면 반드시 한울님이 감응하시어 모든 일이 뜻대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주문이 뜻이 어떠한 것이냐고 물으니 대신사님께서 주문의 주요한 뜻을 설명해 주셨다.
지기라는 것은 곧 무형한 한울님을 뜻하는 것이다. 한울님은 무형이 하나의 이치기운으로 존재해 계시니 [기]라고 하는 것은 한울님의 기운작용을 말하는 것이며 [지]라고 하는 것은 한울님의 기운이 작용하기 전, 기운을 약동시킬 수 있는 원리원소를 말하는 것이다.
기운은 어디에서부터 약동되기 시작했는가?
그 근본을 자꾸 캐어 올라가면 맨 처음에 가서는 기운의 맨 끝 즉 기운이 작용하기 이전 상태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자리는 기운 작용은 없으면서 장차 기운작용을 낼 수 있는 원리원소뿐이다. 원리원소가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아니하여 고요한 상태를 [지(至)]라고 하신 것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나와지기 전 자리를 성(性)이라고 했으며 유교에서는 기운이 나와지기 전 자리를 리(理)라고 했다.
대신사님께서 깨닫고 보니 이 자리는 불교에서 말한 성(性)만이 아니고 유교에서 말한 리(理)만도 아니므로 이 자리를 지(至)라고 하신 것이다.
[지]라고 하는 것은 성리(性理)로서 기운의 작용이 나와지기 전 고요한 상태 즉 원리원소가 작용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를 말씀하신 것이다. 이 고요한 상태에서 원리에 의하여 원소가 작용을 시작하면 이것을 기운이라고 하는 것이다. 기운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쉬지 않고 움직이고 약동하는 것이다. 기운에는 원리가 정해진 그대로 약동하는 자연의 이치기운이 있고 마음으로 생각한 그대로 나타나는 영의 기운 작용이 있으니 우주의 모든 것은 이 기운이 이루어 놓은 것이다.
한울님의 기운은 이 우주 속에 꽉 차서 모든 것을 이루어 놓았으니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간섭하지 않는 것이 없고 모든 일을 명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모든 일은 한울님의 기운이 이루어 놓은 것이고 한울님의 명대로 이루어 진 것이다. 그러나 기운은 형체가 없으므로 그 형체가 어떻다고 하기도 어렵고 소리를 들을 것 같으나 보기도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기운은 분명히 존재해 있고 그 작용은 여러 가지 작용이 있으나 그 근본은 오직 하나의 기운 한 덩어리의 기운으로서 이 우주 속에 꽉 차있는 것이다.
[금지]라는 것은 이제 천도교에 입교해서 한울님의 영의 기운 작용이 내 몸에 접한다는 것을 안다. 즉 강령이 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며
[원위]라는 것은 청하여 원하고 빈다는 뜻이며
[대강]이라는 것은 크게 내린다는 뜻이니 즉 대강령이 되기를 원하고 청하고 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이 강령주문은 한울님 영의 기운이 몸에 내려달라고 원하고 비는 글이므로 강령주문을 외우게 되면 누구나 강령이 되는 것이다.
과정중에 내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확실하게 투득하고 나아가 가르침을 받아 자기 자신을 통하여 세상을 살려나가는, 보듬어 나가는 과정임을 아셔샤 합니다. 강령위주의 공부에만 집중하시면 허령에 빠져 옳은 공부를 못하실 수도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강령주문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되도록 새겨보시길 권합니다. 강령이 된다. 강령을 모신다는 것은 천도 공부를 해 가는 과정중에 내가 한울님을 모시고 있음을 확실하게 투득하고 나아가 가르침을 받아 자기 자신을 통하여 세상을 살려나가는, 보듬어 나가는 과정임을 아셔샤 합니다. 강령위주의 공부에만 집중하시면 허령에 빠져 옳은 공부를 못하실 수도 있음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강령주문만을 송주(주문을 외움)하셔도 강령이 되시니 입도를 하시지 않은 분은 가능한 한 도가 높으신 동덕들과 함께 공부하시길 권합니다.
본격적으로 여름이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도체 강건히 보중하시며 코로나19등 괴질을 예방하는 수칙을 지켜 나가시며 뜻하시는 바 이룰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시기 심고드립니다.
포덕161년 6월 8일
부암 정덕재 심고 010.2664.2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