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계시제?
2024년 풀과의 전쟁, 하계 전투 이야기를 전해드린다.
비닐멀칭 잡초매트 등 신문물의 등장으로 농부와 풀과의 전쟁은 점차 풀들의 완패로 기우는데, 궁지에 몰린 풀들은 호시탐탐 역전의 기회를 노린다.
지난 주 제법 내린 비와 여름 날씨는 풀들에겐 최상의 기회다. 농부들이 무더위로 전쟁터로 나가기 힘드니 풀들은 오랜만에 전의를 다진다.
여기서 농부는 진짜농부가 아니고 짜가농부를 말한다. 착오 없으시기 바란다. '잡초'라는 낱말은 풀을 비하하는 거라고 누가 그러기에 그 말씀도 옳다 싶어 '풀'이라고 한다.
이번 초여름 전투, 풀 군단의 전투원은 바랭이, 쇠비름, 비름, 강아지풀, 명아주, 방동사니, 여뀌 등이다.
봄철 전투원은 내년 봄을 위해 물러가고 여름 전투원이 투입된다. 가을에는 또 다른 녀석들이 나타나겠지.
그중 주 전투원은 '바랭이'다. 아주 지독하다. 어리다고 사정 봐주었다가는 어느 새 자라 손으로는 뽑지도 못할 정도로 강력해진다. 땅 위로 빧어가면서 마디마다 뿌리를 내린다.
유소년 시절, 쇠꼴 베러 갈 때 무성한 바랭이 풀밭을 만나면 '앗싸, 심봤다'.
금방 꼴망테 가득 채울 수 있었다. 우리집 소가 잘 먹었던 것 같다.
낫으로 벨 때 풍기는 그 풀냄새는 향긋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쟁 중이라 냄새 맡을 겨를이 없다. 베는 게 아니라 뿌리째 뽑아 멀찌감치 던져버린다.
쇠비름은 아직 힘을 발휘하지 않는데 날 더 더워지면 쇠비름도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한다. 쇠비름도 생명력이 대단하다. 뿌리째 뽑아 던져놓아도 잘 죽지도 않는다. 어린 쇠비름은 나물로 먹기도 한다는데 아직 나물로 먹어보지 못했다. 어릴 때 먹어보지 않은 건 어른이 되어도 용기내기가 힘든다.
쇠비름 효소! 효소에 관심이 조금 있는 분은 많이 들어보셨을 거다. 지난 해 여름, 쇠비름 효소를 담아 올봄에 걸러 발효시켰는데 제법 맛이 괜찮았다. 밭에 나가면 흔해빠진 것이 쇠비름이니 효소 만들기 한번 해 보시길 추천한다.
비름은 쇠비름과 달리 모질지는 않다. 전투력이 다소 약하다. 어릴 때 나물로 많이 먹었다. 비름나물! 시장에도 나온다. 그 때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맛이 나지 않는다. 입맛이 변한 건지...
연 이틀 풀과의 전쟁을 치루고 있으니 이웃밭 아재가 한 마디 하신다.
"날도 더운데 그리 힘들게 하지 말고 풀약 치거라."
화학무기를 권한다. 제가 그런다.
"시간도 많고 해서 운동 삼아 합니다."
제초제를 치면 풀도 죽이지만 작물에 해를 끼치는 벌레도 죽이는 좋은 점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재 밭에는 개미 한 마리 없는데 내 밭에는 개미가 곳곳에서 집을 짓고 산다.
풀과의 전쟁에 화학무기 사용이 솔깃해진다.
지나가던 동네 아지매가 거든다.
천척 아지매이면서 한 동네에서 나고 자란 초등 동기 친구 어머니다.
"아가, 남들 하는대로 하거라. 그래야 편하다."
그말 들을 때는 아무 이상 없이 들었는데 이 글 적으면서 생각하니
세상에 70 다된 늙은이보고 '아가' 라니... ㅎㅎ 일흔이 되어도 조카이면서 아들 친구에게는 아직도 '아가'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그리고 나는 그 '아가"라는 말을 아무런 의식도 않고 그냥 받아들인다.
내겐 고모님이 세 분 계셨는데 한 분만 살아계신다. 찾아뵐 때마다 "아가, 아가" 하면서 눈물을 흘리신다. 고모님한테 머리 허연 친정 조카가 아직도 아기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가, 아가" 입에 익었던 그 호칭이 날 보는 순간에 나오는 거라 믿는다. 오늘은 만사 제치고 고모님 뵈러 가야겠다.
풀과의 전쟁 이야기 하다 다른 곳으로 빠졌다. 2024년 풀과의 전쟁, 하계 전투는 겉보기에는 짜가 농부 완승 같다. 장마지면 또 상황이 어떻게 바뀔 지 모르지만 지금은 말끔해진 전쟁터, 밭을 보면 기분이 시원해진다.
이야기가 길어져 여름 풀 군단 전투원
강아지풀, 명아주, 방동사니, 여뀌와의 전투 모습은 다음에 전해드려야겠다.
몸도 마음도 맑은 나날 되시게.
2024년 6월 12일 삼천포에서
상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