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과 부의 재분배
부의 폭력적 재분배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미국과 서구 금융세력들이 그들이 만든 암호화폐인 비트코인 체계를 이용해서 전세계적 차원에서 부의 판도를 그들에게 유리한 지형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지 못한 채, 이 미증유의 사태에 대해 어리둥절해할 뿐이다.
이차세계대전 이후 미국 주도로 수립된 자유무역에 기초한 세계경제체제가 전면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중국을 비롯한 이른바 브릭스 국가의 성장이 미국과 서구의 경제패권을 위협할 수준에 이르자, 미국이 앞장서 자유무역체제를 파괴하고 그들의 지배권을 보장하는 새로운 체제로의 재편을 모색하는 중이다.
200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후 점증하는 대중 무역제재와 중국 고립화 정책, 미국의 기축통화국의 지위를 이용한 통화남발과 전세계적 차원의 인플레이션 확산, 제삼세계 부채 위기의 심화와 파산의 공포, 신냉전 이데올르기의 전파와 새로운 대리전쟁의 발발 등은 한결같이 미국주도로 발생한, 세계경제를 그들의 목적에 따라 재편하기 위한 경제외적 폭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2009년 서구 금융세력이 창안하고 오랜 실험 끝에 2024 초 정식으로 제도화되기 시작한 비트코인 가상화폐 체계 또한 그러한 경제외적 강제의 연장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은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야기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집권화된 금융시스템의 위험을 인지하고 중앙기관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로 개발되었다고 한다. 비트코인 개발자로 알려진 사토시 나까모토란 가명의 인물은 비트코인 백서를 통해 비트코인은 "중앙은행이 없이 세계적 범위에서 P2P 방식으로 개인들 간에 자유롭게 송금 등의 금융 거래를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고, 중앙은행을 거치지 않아 수수료 부담이 적고, 거래 장부는 블록체인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범위에서 여러 사용자들의 서버에 분산하여 저장하기 때문에 해킹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https://namu.wiki/w/%EB%B9%84%ED%8A%B8%EC%BD%94%EC%9D%B8/%EB%B0%B1%EC%84%9C
이 백서만 놓고 본다면, 비트코인은 외부의 권력이나 중앙은행과 같은 제삼자의 간섭을 배재한 완전한 시장 자율적 화폐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비트코인의 기술적 측면에 불과하다. 현실 시장에서 비트코인이 화폐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정치경제학적 이해관계의 개입과 조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미국의 무제한 달러 남발로 촉발된 인플레이션과 고금리정책으로 전세계 경제가 불황을 겪고 있지만, 현재 미국 경제만 지표상 호황을 누리고 있다. 코로나 기간 동안 미국정부가 시장에 푼 천문학적 금액의 상당액이 여전히 금융권에 쌓여 있다고 한다. 미국은 돈이 넘치고 있다. 반면 돈맥 경화 현상이 악화되면서 자금이 빠져나가고 부채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것이 개발도상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트코인 ETF가 미국정부에 의해 승인되어 합법적 금융 상품으로 제도화되고, 비트코인 가격이 등귀하고, 암호화폐 시장이 폭발적으로 확장되는 현상의 수혜자는 과연 누구일까? 개발도상국의 손발을 부채위기와 고금리로 결박한 사이, 미국을 비롯한 서구의 금융세력들은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잉여자본을 이용하여 새롭게 문을 연 가상화폐 시장을 사실상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민간의 자율적 화폐를 출현 가능하게 한 블록체인 기술이 갖고 있는 민주주의적 가능성은 급속히 퇴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 편승하여 미국정부는 암호화폐의 거래를 위해 통용되는 모든 스테이블 코인을 오르지 달러와 연동되게 함으로써 비트코인을 달러의 무한 발행을 담보하고 수용하는 저수지로 활용하고 있다. 달러에 페깅(pegging)된 비트코인체제가 확고하게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세계적 차원에서 부의 재편을 의미하고, 그 주역은 서구의 거대 금융세력과 다국적 기업들이다. 국경에 의해 유통의 제약을 받는 법정화폐로는 국경간 부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는 다국적기업의 이해관계를 충족시킬 수 없다. 국경 넘어서는 전세계적 단일 통화의 출현은 거대 다국적기업과 금융 세력의 오랜 소망이었고, 그 꿈은 비로소 비트코인을 통해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자유무역 질서에서의 각국의 GDP는 해당 국가 법정통화 가치의 기준이 된다. 그러므로 단일 기업의 가용 자산규모가 어지간한 국가의 GDP를 초월하는 거대 금융세력과 기업들이 연합하여 만들어낸 비트코인의 가치가 현수준의 각국 법정 통화가치를 훨씬 상회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더구나 비트코인은 그 발행량이 2천 100만개로 제한되어 있는 유한 통화라는 점은 가격 상승을 더욱 부채질할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있다. 비트코인 전도사로 불리는 마이클 세일러가 먼 훗날 비트코인의 개당 가격이 100억에 달할 수 있다는 호언이 근거 없는 뻥이 아닐 수도 있다.
'돈이 돈을 낳는' 돈이 치부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사회에서, 화폐단위가 크지고 화폐유통량이 많을 수록 빈부격차는 확대될 수 밖에 없다. 비트코인의 출현은 인류역사상 최고조로 경제적 부에 의해 분화된 사회가 도래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비트코인 등 금융 상품 가격의 상승이 지속되는 동안, 동아시아 특히 중국이나 한국에서의 부의 중심을 차지하는 부동산의 상대적 가격은 장기하락 국면으로 진입할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이대로 간다면, 비트코인은 어쩌면 이들 국가의 국부를 해체시키는 무기로도 기능할 수 있다고 본다. 거대한 콘크리트 아파트로 구축한 부의 환상에 사로잡혀, 그 부가 밑바닥부터 균열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한국의 맹목적 분위기가 한탄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