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
조선왕조 제15대 왕이었던 광해군이 1641 년 오늘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별세했다. 그의나이 66세 폐위된지 18 년 만이었다. 폐위된 탓에 그는
묘호 (신위를 모실 때 붙이는 호 ) 조차 받지 못했다.
그에게는 패륜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닌다. 왕권 안정화를 위해
형제들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페시킴으로써 패륜군주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다.
배은망덕이라는 이미지도 그에게 덧씨워져 있다.
은인국인 명나라가 여진족 때문에어려움을 격을 때 곧바로 도와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교국가인 데다 중국의 사대주의에 빠진 조선을 생각하면 당연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혹독하다는 지적도 . 지금은 그이게 재 평가 하기
시작했다.
재평가가 활발해 지면서 그의 공도 재삼 조명 받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 분조를 이끌며
국난을 극복하는데 앞장섰다. 평안도와 강원도등을 돌며 민심을 수습 하고 경상도와
전라도에 내려가 군량을 모으고 군기를 조달했다.
난 후에는 황폐해진 국가를 재건 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불탄 궁궐을 중수하고 민생과 재정
안정을 위해 대동법을 시행했다. 허준을 통해 동의보감 편찬도 마무리했다. 외교정책도
새롭게 조명받고있다. 명과 후금(후에 청나라) 사이에서 그가 보여준 능란한 중립외교는
또 다른 전란을 막은 대외정책이란 평가를 받고 있다.
폭군이라는 멍에를 쓰고 역사의 변두리에 남아있는 광해군이지만 그가 현실과 이상 사이에
정성을 다 해 국가를 걱정 했던 군주였다고 여긴다. 다만 선조의 아비와 자식간의 반목. 노론.소론
남인 북인간에 사색당파. 계모와정실아들 영창대군. 명나라의 공해군 불인정등은 생략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