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漢語〕
*출전: 박제가 지음/안대회 옮김(2003). 북학의-조선의 근대를 꿈꾼 사상가 박제가의 개혁 개방론. 돌베개. 107-109쪽.
*연구용 자료 구축: 또물또 세종식국어교육연구소 고전 분과.
중국어〔漢語〕는 문자(文字)의 근본이다. 예를 들면, 천(天)을 그대로 티엔〔天〕이라고 부르거니와, 우리처럼 언문(諺文)으로 풀어서 ‘하늘 천’이라고 하는 겹겹의 장벽이 전혀 없다. 따라서 사물의 이름을 분간하기가 특히 용이하다. 비록 글을 모르는 부인이나 어린아이라 해도 일상적으로 쓰는 말이 모두 제대로 문구(文句)를 이루고, 경전이나 역사, 제자서(諸子書) 문집에 있는 글월이 입에서 줄줄 쏟아져 나온다. 어째서 그러한가? 중국은 말로 인하여 문자가 생성되며, 문자를 탐구해서 그 말을 풀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이 문학을 숭상하고 독서하기를 좋아하여 그 수준이 거의 중국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중국과 차별이 발생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언어라고 하는 하나의 커다란 눈꺼풀이 가로놓인 것을 결코 벗어버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가깝게 접경하고 있고 글자의 소리가 중국의 그것과 대략 같다. 그러므로 온 나라 사람이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다고 해도 불가(不可)할 이치는 없다. 이렇게 본래 사용하는 말을 버린 다음에야 (東夷의) 오랑캐라는 모욕적인 글자로 불리는 신세를 면할 수가 있다. 그리고 수천 리 동국(東國)이 저절로 주(周)·한(漢)·당(唐)·송(宋)의 풍기(風氣)가 있는 나라가 될 것이다. 이 어찌 크게 상쾌한 일이 아닌가?
이 말에 어떤 자는 이렇게 반박하기도 한다.
“중국은 말(구어)이 문자와 동일하다. 따라서 말이 변하면 문자의 소리도 그에 따라서 변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말은 말대로 사용하고, 글은 글대로 사용한다. 따라서 맨 처음 받아들여 배운 한자의 소리를 그대로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다. 중국의 경우 침운(侵韻)이 진운(眞韻)과 혼동되어 쓰이는 형편이지만, 우리나라는 입성(入聲)에 여전히 종성(終聲)이 남아있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는 것을 취해야 할지 누가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으랴?”
그 말에 나는 이렇게 답하겠다.
내가 앞에서와 같이 말한 것은 반드시 그와 같이 하여야만 중국과 대등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중국과 대등해지지 않는다고 할 것 같으면 한자의 소리가 옛날의 소리와 같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글에 쓰이는) 문자와 구어(口語)를 하나로 통일시키기만 하면 된다. 옛 한자 소리가 변화한 것에 대한 문제는 운학(韻學)에 정통한 학자 한 사람에게 맡겨 고증을 하게 하면 충분하다.
옛날 기자(箕子)가 5천 명의 백성을 이끌고 평양에 와서 도읍을 정하였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기자가 쓴 (중국의) 말을 배웠을 것이 분명하다. 한(漢)나라 때에는 조선이 한나라 영역으로 편입되어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되기도 했다. (이때에도 중국말이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용되던 중국말이 전해지지 않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혹시 발해(渤海)의 땅이 완전히 요동(遼東)으로 편입되면서 한사군의 백성들이 중국으로 들어가고 우리 조선으로 귀속하지 않은 결과는 아닐까?
현재 토착 말에는 신라말이 많은데 서울(徐菀), 니사금(尼斯今 : 임금) 같은 말이 그 실례다. 고려의 왕씨(王氏)가 원나라와 교역하면서 조선말에 몽고어가 섞이었는데 복아(卜兒), 불화(不花 : 몽고어로 소의 별명), 수라(水刺 : 몽고어로 임금의 식사)같은 말이 그 실례다. 임진년(1592)에는 명나라의 원군이 조선의 사방에 출정(出征)하였다. 그로 인해 중국말을 배우는 백성들이 많았다. 그래서 현재에도 그때 익힌 중국말이 남아 있다.
역대의 임금님께서는 중국어를 익히도록 명을 내리셔서 조회(朝會)를 하는 자리에서 우리말의 사용을 금하는 팻말을 설치하기도 하셨고, 백성들에게는 중국말로 소송에 임하도록 하기도 하셨다. 이러한 시책이 단순히 외교사절 사이의 통역에 필요해서 그런 것이겠는가? 나의 생각으로는 장차 큰 일을 하고자 해서 그러한 것이었다. 그러나 말을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다. 오호라! 현재에는 중국어를 오랑캐가 지껄이는 조잡한 말로 간주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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