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째 이야기
보누스 주교의 선한 삶
동정녀들의 여왕이신 성모 마리아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도 여러분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릴까 한다.
성모 마리아님, 이 이야기를 통해 당신이 찬미받을 수 있도록 저에게 합당한 능력을 내려주십시오. 당신의 도움 없이 이 죄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모님의 도구로 쓰이길 원하는 제 마음 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그러니 당신을 찬미하는 제 혀에 힘을 주시고, 제 목소리로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십시오.
성모님께서는 몸과 마음을 당신께 봉헌한 한 남자를 부르시어 주님의 은총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는 당신께서 전해주신 은총으로 사람들과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성경을 읽는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사람, 참으로 하느님의 말씀 그대로 따라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천사들의 모후이신 성모님, 그는 진실로 당신께 모든 것을 봉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주교로서 봉사하는 동안 그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의 길을 알게 된 이들이 모두 그 증인이 됩니다. 그는 주님께서 내려주신 은총을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만 사용했으며, 평생 사람들에게 참생명을 전하는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보누스이다. 보누스라는 이름은 그 자신에게 일생 동안 경고문과도 같은 이름이었다. (보누스는 691년부터 710년까지 프랑스 클레르몽페랑Clermont-Ferrand의 교구장이었던 성 보니투스Bonitus 주교를 말한다. 보니투스 주교 생전에 있었던 기적 사화를 전하는 라틴어 저서《Rhythmus de casula sancti Boni》에서 원래 이름 보니투스 대신 ‘선하다’는 뜻의 ‘보누스Bonus’라는 별명을 사용하고 있어서 보누스 주교라고도 한다.)
클레르몽페랑의 보누스 주교
그는 선한 이름을 받았고, 언제나 선한 것만을 실천하며 살고자 하였다. 모든 고아를 친자식처럼 돌보았고, 과부들은 어머니처럼 공경하고 섬겼다. 그렇다. “보누스”는 “선하다”는 뜻인데, 보누스는 정말 자기 이름대로 살았던 것이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의 아버지였다. 남에게서 무언가를 받았는데 자기에게 꼭 필요하지 않으면, 그것을 이틀 이상 지니고 있는 법이 없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이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렇게 해서 죽음 후에 제 영혼이 구원될 수 있기 위해 온 힘과 마음을 다하였다. 또한 밤기도를 한 번도 거른 적이 없고, 자주 정기적으로 단식을 했으며, 미사를 드리지 않거나 속죄하지 않고 넘어가는 날도 없었다. 그의 생각은 온통 자비의 어머니에게만 향해 있었기 때문에, 성모님의 은총이 그와 항상 함께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보누스 주교는 특히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 밤을 거룩하게 보냈다. 그중 한 번은 하느님의 은혜로 거룩한 환시를 보게 되었는데, 지금 말하려는 것이 바로 그 환시 내용이다.
그날 보누스 주교는 환시 중에 천사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들었다. 우리 믿는 이들 중에도 그토록 아름다운 성가를 들어본 이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처음에는 드릴락말락 할 정도로 작았는데, 점점 커져서 나중에는 분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천사들의 노랫소리가 어찌나 고운지, 우리가 부르는 시편 노래가 밋밋하게 생각될 것 같았다.
이어서 보누스는 하늘에 어떤 큰길 하나가 뻗어있는 것을 보았다. 그 거리는 온통 금과 진주와 보석들로 휘황찬란하게 꾸며져 있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 태양도 달도 별도 없지만 밝기는 그보다 더했다. 그 광경은 성경에 묘사된 천상 예루살렘을 연상케 하였다.
보누스가 하늘 위를 올려다보니 성인들의 무리가 보였다. 성인들은 모두 보누스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보누스는 성당에서 양팔을 벌리고 십자가 형상으로 바닥에 엎드려 있는 상태였다. 그토록 많은 성인들이 자기에게 온화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니, 성인들의 은총이 전부 다 자기에게 내리는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늘의 합창단은 어린 소녀와 소년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어린이 성가대가 선창을 하니, 다른 성인들의 합창대가 화합하여 노래를 불렀다. 이 땅에서는 들을 수 없는 아름다운 노래가 울려 퍼지고, 이어서 위엄을 갖춘 사도들의 무리와 머리에 금관을 쓴 하늘 여왕의 모습이 보였다. 하늘 여왕 마리아께서 제대 앞에 자리를 잡고 손짓을 하자, 사도들이 따라와 하늘 여왕의 한쪽 옆에 줄지어 앉았다.
보누스는 이 장면을 보며 크게 놀란 나머지, 성당의 한쪽 구석으로 몸을 숨겼다.
이어서 사도들이 누가 미사를 집전하는지 묻자, 하느님의 여종 마리아께서 대답하셨다.
“보누스가 올 것입니다. 그는 나의 모임에 들기에 합당한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고 보누스는 다시금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는 너무 두려워서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는 하느님께 급히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제가 어떻게 마리아와 사도들이 자리한 앞에서 미사를 거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보누스 주교가 몸을 숨긴 대성당 기둥이 갑자기 뒤쪽으로 서른 걸음이나 물러나는 게 아닌가! 그러한 기적은 지금껏 본 적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보누스를 발견하고 그를 마리아 앞으로 데려왔다. 하늘 여왕께서 축복하자 그는 조금 힘을 얻어서 두려운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러자 천사들이 다가와 그에게 제의를 입혀주었다.
제대에 올라갔을 때 보누스 주교는 눈물을 그칠 수가 없었다. 마리아께 받은 이 직무를 수행하기에 자기가 조금도 자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놀라운 일이 아직 더 있었다. 보누스 주교가 미사 주례를 마치자 사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에게 전대사를 베풀었던 것이다. 이것이 보누스 주교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다. 더욱이 하늘 여왕이 참석한 이 미사에는 대천사들이 복사를 섰다.
대체 이런 어마어마한 축복을 받은 사제가 어디 또 있을까?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미사를 거행한 사제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천사들은 미사가 끝나고 보누스 주교가 내려와서 사도들에게 절을 할 때까지도 그 자리에 계속 있었다. 또한 사도들은 보누스 주교가 사제로서 축복할 수 있도록 허락한 다음 그에게 경의를 표했다.
이어서 하늘 여왕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종 보누스, 그대가 입고 있는 그 제의는 내가 주는 선물이니 잘 간직하시오.”
이 말을 남기고 마리아께서는 하늘 위로 올라가 보누스 주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환시는 거기서 끝났다. 하지만 보누스 주교는 그 자리에서 다음 날 아침 미사가 시작될 때까지 기도를 계속했다. 아침에 주교관에서 일하는 보좌신부들이 와서 일으켜 세울 때까지 성당 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그날 아침 성당에 들어왔을 때, 사제들은 사방에서 발삼 향유 내음을 맡을 수 있었다. 향기만으로는 그곳이 성당이 아니라 당연히 꽃밭인 줄 알았을 정도였다. 그 향기는 사제들의 몸과 영혼을 모두 기쁘게 해주었다. 사제들은 혹시 하느님께서 정말 이곳에 와 계신 것은 아닌지 의아해했는데, 그 생각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사제들이 제대 앞에 엎드려 있는 주교님을 발견했을 때, 보누스 주교가 입고 있는 제의가 바로 그 감미로운 향기의 근원지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보누스 주교는 젊은 사제들에게 전날 밤 자기에게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들려주었다. 그가 입고 있는 제의는 눈보다도 희고 솔기 없이 통으로 짠 옷이었다. 그리고 자기가 숨어있던 성당 기둥이 저만치 밀려나 있는 것도 보여 주었다.
이를 보고 사제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성모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크게 불렀다. 이 사건을 전해 듣는 이들 모두는 우리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를 마음으로 공경해야 할 것이다.
보누스 주교가 세상을 떠난 다음, 사람들은 심사숙고하여 후임자를 찾아 세웠지만 그 어느 주교도 밤마다 드렸던 기도에 있어서는 보누스 주교의 열정과 신심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런데 이 후임 주교에게는 이런 일이 있었다. 그도 보누스 주교처럼 커다란 은총을 받기를 바라며, 어느 해 성모 승천 대축일 전날 밤에 성당 안을 거닐며 묵상기도를 드렸다. 그 주교도 겸손하게 기도를 드렸다. 그런데 그렇게 하느님을 찾아 부르다가 그만 제대 앞 계단에서 쓰러져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났다! 잠든 그대로 순식간에 그의 침실로 들려 옮겨졌던 것이다.
아침미사 준비를 알리는 종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을 때, 그는 자기가 성당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당장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다. 대체 누가 밤중에 나를 성당에서 주교관으로 데리고 왔을까 골똘히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성모님께 모든 것을 봉헌했던 보누스 주교님과 감히 대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것을. 그는 자기가 어린아이처럼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음을 알고 잘못을 뉘우쳤다. 그 후로 그 주교는 경건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다윗의 자손이신 주님, 당신 어머니 마리아를 공경하고 여왕으로 모신 이들은 아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여주소서!
박규희 옮김
마리아 2023년 5·6월 통권 2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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