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멘트>
회사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비리나 부조리는 조직 내부 사람이 아니면 좀처럼 알기가 힘듭니다.
또, 안다고 해도 불이익을 당할까봐 선뜻 나서지 못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엔 이런 부조리를 고발하고 개선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부 고발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죠.
공공의 이익을 위해 용기 있는 결정을 내렸던 사람들,
그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요?
서울의 한 사립 고등학교 앞. 학생들이 잰걸음으로 교문을 들어섭니다.
학생들 사이로 교문 한쪽에서 팻말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띕니다.
올 초까지만 해도 이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교사, 김형태씨입니다.
그는 벌써 한 달여 째 이렇게 학교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난 3월, 이 학교에서 파면됐습니다.
교육청에 학교 비리 관련 감사를 청구한 직후였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해직교사) : "제가 개인비리나 공금을 횡령했다든지, 아이들을 심하게 구타해서 물의를 빚었다면 제가 부끄럽게 일인시위나 법적인 대응도 못하겠죠."
서울시 교육청은 이사장의 실질적인 학교급식 위탁업체 운영, 학교 측의 체육복 구입 업체 지정, 있지도 않은 동창회비 모금 등을 포함해 제기된 10개 의혹에 대해 감사를 벌였습니다.
이 중 일부가 사실로 드러났고, 교장과 교감에게는 경징계 조치가 내려졌습니다.
학교 앞 1인 시위를 끝낸 김형태 선생님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교원소청심사 끝에 지난 6월 파면에서 복직했던 그를 학교 측이 지난달 말, 다시 파면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김형태(해직교사) : "교원 소청 심사위원회로 가느냐, 민사로 가느냐 문제를 최종 협의하러 온 거죠. 일단 소청 심사를 받기로 했고, 소청이 진행되는 상황을 봐서 추가로 민사를 가든지 추이를 지켜보면서 하자."
학교 측은 김 교사를 파면한 이유가 교육청 감사를 요청한 내부 고발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김 교사가 학생들의 등하교 시간을 자율적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정권에 반대하는 유인물을 나눠준 점, 시험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 점심식사 지도를 안 한 것, 또, 교내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고 -동료 교사에게 협박과 폭언을 했다는 것 등이 그를 파면한 이유였습니다.
<인터뷰> 이숭희(해당고등학교장) : "재심을 요구하면요, 그런 구제제도가 다 있습니다. 저희는 과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고, 그리고 이분은 이렇게 여러 가지를 보고, 또 학교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교육자로서 우리 학교 현장에 있어서는, 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분이라고 느낍니다."
학내 비리 의혹을 제기한 직후부터 이어진 두 번의 파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한 그에게 교사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았다는 걸 인정받는 일은 복직만큼이나 절실한 과제로 보였습니다.
<인터뷰> 김형태(해직교사) : "제가 가르치는 것하고 다르게 행동할 수 없잖아요. 다른 게 아니고 제가 직업이 선생님이니까, 제가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정직해라’그러면서 저는 부정직하게 행동하면 안 되잖아요."
늦은 점심을 차리는 권 모씨.
지난 2년간 그는 이렇게 혼자 집에서 지낸 날들이 많았습니다.
1년 단위로 재계약을 하던 시내버스 운전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후 부터입니다.
<인터뷰> 권 모씨 : "모아놓았던 것 까먹고 그랬죠. 보험든 것에서 대출 좀 받아썼죠."
그가 일하던 버스회사에서 서울시 보조금을 빼돌리고 있다고 한 언론사에 제보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회사는 서울시의 조사를 받게 되자 CCTV화면 등을 내밀면서 제보자로 권 씨를 지목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권 씨는 회사와 재계약을 하지 못했습니다.
다른 버스회사에 취업도 안됐습니다.
<인터뷰> 권 모씨 : "시청에서 투신까지 생각했었어요. 나 하나 이렇게까지 살아봐야 뭐하나. 꼭 죽어야 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욱하는 성격에 나 하나로 인해서 좋아지게..."
올 초 ‘아름다운 재단’에서 그에게 준 ‘빛과 소금’상을 내보이는 권 씨.
뒤늦게 받은 내부고발에 대한 칭찬 한 줄이 그에겐 그나마 작은 위안입니다.
<인터뷰> 권 모씨 : "(앞으로 또 그런 일을 보신다면 그때도 똑같은 선택을 하시겠어요?) 아니요. 두 번 다시 안해야죠. 하고 싶지 않아요.그게 득이 되어야죠. 해만 되니까..."
저녁 무렵, 권 씨가 집을 나섭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택시 운전을 하기 위해섭니다.
더 이상 집에서 한숨만 쉬고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시작한 일이지만, 그나마 정식으로 취업된 게 아니라 택시 회사에 납입금을 내는 도급 택시를 모는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꿈은 내부고발자라는 낙인이 찍히기 전, 그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인터뷰> 권 모씨 : "다시 복귀해서 안전하게 버스를 몰았으면...제 바람입니다."
1990년, 업계 로비로 재벌에 대한 감사원 감사가 중단됐다는 사실을 폭로한 이문옥씨.
1992년 군 부재자 투표 부정을 세상에 알린 이지문씨.
삼성그룹에 대한 특검과 이건희 회장의 퇴진을 불러왔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비자금 폭로 사건.
그리고, 천성관 전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던 사업가와의 골프여행과 명품쇼핑이 드러난 것도 내부고발자의 힘이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권 씨 같은 내부고발자를 ‘휘슬 블로어’라고 말합니다.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이란 뜻으로, 조직 내의 비리나 문제를 고발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달 초, 불법 판촉 여부를 놓고 미국 정부와 6년여에 걸친 법정 다툼을 벌였던 제약회사 ‘화이자’가 결국 거액의 배상금을 물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인터뷰> 토마스 페렐리(미국 법무부 부장관) : "민, 형사상 합의에 따라 화이자는 벌금 23억 달러를 물기로 했습니다. 미국 법무부 역사상 최대의 의료사기 합의금입니다."
화이자 측이 패배하게 된 데는 회사의 불법 마케팅을 고발한 내부 고발자들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제보자 중 한 명은 우리 돈 6백억 원이 넘는 보상금을 받게 돼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구에 사는 여상근 씨도 국내 굴지의 통신 업체를 상대로 복직 소송을 진행 중입니다.
자신이 다녔던 통신 회사가,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고속철도 주변 전화회선의 잡음을 줄이는 공사를 하면서 하지 않아도 될 공사로 수백억 원의 예산을 낭비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뒤, 회사에서 파면당했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여상근(통신회사 전 직원) : "회사의 이익을 쫓는다고 하면 저는 입을 다물어야 하는데, 기업의 윤리를 촉구하고, 윤리경영을 촉구하면서 회사 내부의 잘못된 것은 지적을 해줘야 되는데..."
지난 2007년엔 여 씨가 제기한 문제를 조사했던 당시 국가청렴위원회가 통신 회사 측에 여 씨의 복직을 권고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회사 측은 오히려 여 씨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1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한 상탭니다.
<인터뷰> 여상근(통신회사 전 직원) : "포상금에 눈이 어두워서 제보했다는 둥, 그렇지 않으면 입막음용으로 퇴직시킨다든지, 파면 처분시킨다든지, 거기서 한 술 더떠서 명예훼손...이게 공익 제보자들이 공통적으로 겪는 어려움입니다. 이건 수법이죠."
그가 청춘과 열정을 바쳐 일했던 회사는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었지만, 그는 그 결정 덕분에 아이러니하게도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고발 후에 오는 정신적, 경제적 고통은 고스란히 그와 가족이 감내할 몫으로 남았습니다.
<인터뷰> 조선운(여상근씨 아내) : "진짜 눈 두 개인 사람이 정상인데, 아홉 명이 앉아서 눈 하나가 정상이라고 밀어붙이면 두 개 가진 사람이 병신 돼요. 그거랑 똑같아요."
공익 제보자들에게 내부고발을 했을 때 당할 수 있는 피해에 대한 법적인 보호에 대해 상담해주고, 법률 지원을 해주는 민간단쳅니다.
전화와 인터넷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상담을 해오는 사람들이 많지만, 정작 본격적인 내부고발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인터뷰> 이지문(공익제보자와 함께하는 모임 부대표) : "실질적으로 결심을 하는 경우가 힘든 게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저희가 조사를 해보면 공무원들은 조직에 대한 배신, 동료에 대한 배반, 이런 것 때문에 못하는 반면에 우리 일반 시민들은 개인적 보복, 불이익 때문에 난 힘들다, 이런 것이 크거든요."
지난 7일,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제보자에게 내부 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신분상의 불이익을 줄 경우 형사 처벌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담은 ‘공익신고자 보호법안’을 입법예고했습니다.
공직자의 부패를 고발하는 것에 한정돼 있던 보호 범위도 공공의 안전과 건강, 환경을 해치는 행위로 확대했습니다.
내부 고발자들이 겪는 불이익을 줄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가 국회에서 통과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있습니다.
그들이 낸 양심의 소리는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하고 좀 더 공정해 지도록 다져가는 작지만 큰 힘이 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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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하경 기자님 등 취재진 여러분 취재하고 편집하느라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생님 ,힘내시고 ,,정의는 항상 옳은일을 하시는 선생님 편에 계십니다,,힘이 되질 못해 죄송합니다,,하지만 반듯이 정의는 승리 하리라 믿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