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 시민의 숲
드라마 ‘패션70’s’와 ‘겨울연가’의 촬영지로도 유명한 양재 시민의 숲은 나무로 가득 차 있다. 단풍나무와 메타세쿼이아, 소나무는 이곳을 찾는 이들의 몸과 마음에 여유를 선물한다. 공원 내에는 약 10만 6,600여 그루의 나무가 심어져 있고 바로 옆에는 양재천이 흐르고 있어 산책에 나선 이들을 여러모로 만족시킨다. 생각보다 꽤 넓은 공원 안에는 맨발로 걸을 수 있는 맨발공원과 배드민턴장 등이 있고 윤봉길 의사의 유물과 발자취를 엿볼 수 있는 매헌기념관도 있다. 1908년 6월 21일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난 윤봉길 의사는 19세 때 고향에 야학을 세워 농촌계몽운동을 시작했다. 23세에는 ‘사내대장부는 집을 나가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서 돌아오지 않는다’는 뜻인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이라는 글을 써놓고 중국으로 망명, 청도를 거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에 도착하였다. 1932년 4월 29일 홍구공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에 일본군 수뇌들이 참석한다는 소식을 들은 윤봉길 의사는 백범 김구 선생이 지휘하는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특공작전을 감행할 것을 자원하였다. 그러고는 마침내 결전의 날, 홍구공원에서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등 군정 수뇌부 7명에게 폭탄을 투척하여 일본의 전의를 상실케 하는 데 성공하였다. 윤의사는 현장에서 일본 헌병에게 체포되어 현지의 군법 재판에서 단심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에 일본으로 이송되어 그 해 12월 19일 25세를 일기로 순국하였다. 매헌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윤봉길 의사의 일기 ‘서언(序言)’ 에서는 윤의사의 번민이 느껴진다.
서언(序言)
가도 만류치 못하는 것이 세월이다.
보라, 60초가 1분, 60분으로 1시간, 24시가 1주야.
자전을 마치고 사정없이 핑핑 돌아가는 지구가
어느덧 3만 6,000의 자전을 마친다.
이것이 한 사람의 일생이다.
아, 그러면 무정한 저 광음이 인생을 얼마나
희생하였는고, 생각이 여기에 도달하였도다.
묻노니 이러한 단촉(短促)한 기간에
겪어보내는 것이 무엇인가?
참, 붓으로 기록할 수 없는 고통, 번민, 노력,
백도망시일도한(百渡忙時一渡閒)으로 희락(喜樂)
그것으로 일생을 보내는 이 인생이다.
유차논지(由此論之)컨대 이 인간은 눈물로 되었구나!
눈물로 된 인간이여, 나의 심회 억제할 수 없구나!
전제(前題) 인생론은 청천(靑天)일장지(一張紙)를
득(得)이라도 미가진기(未可盡記)일이다.
금년의 행사나 기록하여 보자.
윤봉길
2026-10-12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