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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살요목 중에서 보살계
~~~불자여, 아낌없이 베풀어 주고 결코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말지니, 널리 보시를 행하여 복덕을 지으라. 이것이 우바새 우바이의 계이니, 신명이 다하도록 지킬지니라. (나무 석가모니불) ~~~
금주의 법어--반야바라밀이 진귀한 보배를 베푼다
금주의 법사--불광법회 선덕 혜담스님
성장과 신록의 계절인 6월이 왔습니다. 6월을 맞이해서 존경하고 사랑하는 불광법회 형제 여러분에게 큰 기쁨과 성취가 있는 6월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 오늘의 법회를 함께 하고 계시는 전국의 사부대중 여러분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성장과 신록의 계절 기쁨이 항상 함께 해서 집안이 평안하고 모든 일을 성취하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드릴 말씀은 반야바라밀이 진귀한 보배를 베푼다로 정했습니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중국으로 건너오는 데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법사님은 구마라집 삼장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외에도 현장스님이나 삼장법사님이 많이 있습니다만 불교를 중국화 시키는 데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은 구마라집 삼장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됨으로 해서 불교에 큰 획을 긋게 됩니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중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중화주의가 있어서 즉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서 중국이야말로 세계 일등국가라는 사고방식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랑캐인 인도에서 일어난 불교를 사실은 중국에서 일어난 것이라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불교를 중국화시켰습니다. 혹시 롯데월드를 중국사람들은 뭐라 부르는지 아십니까? 놀랍게도 중국사람들은 락천세계라 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중국중심으로 생각해서 외래문물이 들어오면 자기화시킵니다. 심지어 김치까지 중국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불교는 철저하게 중국화되었습니다. 중국화된 불교 가운데 제일 획기적인 공헌을 하신 분이 혜능조사입니다. 혜능조사에 의한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와 판이 다릅니다. 만약에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지 않고 동남아에 전달되었다면 오늘의 불교가 있었을까 생각해볼 때 저는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불교가 중국화되었기 때문에 동북아 삼국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적인 불교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중국화된 불교에 가장 획기적인 공헌을 하신 분이 혜능조사이고 혜능조사의 뒤를 이어서 중국불교로 자리매김한 가장 큰 어른이 마조스님입니다. 마조스님에 이어서 뒤에 나오는 조주스님이나 남전스님에 의해 중국불교는 완전히 인도불교와 천양지차이가 나는 불교로 변질이 되고 오늘날의 선불교가 되었습니다. 사실 동남아에서 수행되고 있는 불교는 중국불교와 판이합니다. 우리는 현재 간화선을 수행하고 있고 간화선을 수행하는 데에 안거 결재도 겨울과 여름철에 하는데 어제가 하안거의 결재날이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여름 50일 바라밀기도를 입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인도불교와 다르게 중국불교로 자리매김했다는 말씀입니다.
중국불교의 제일 중심적인 테마가 뭐냐 하면 소위 말해서 마음, 평상심이 도라는 겁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매일 경험하고 수행하는 그 모든 것이 도여서 도라는 것이 달리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인도불교의 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로서 중국사람들이 만들어낸 말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말이 평상심시도입니다. 조사어록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어느 날 남전스님에게 조주스님이 묻습니다. ‘무엇이 도입니까?’ 남전스님은 ‘마치 기와가 깨지듯이, 얼음이 녹아버리듯이, 모든 것이 놓아져서 자취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도란 바로 불도(佛道)입니다. 우리는 현재 불교라는 말을 쓰고 부디즘이란 말이 세계적인 흐름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불교란 말을 쓰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거의 불법 또는 불도라고 말했습니다. 조주스님이 도란 무엇인가 할 때 도란 바로 불법의 도리가 뭐냐 하는 말입니다. 남전스님은 평상심시도, 하루하루 일어나서 일하고 자며 생활하는 모든 것이 도여서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이 평상심시도라는 말은 인도불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입니다.
그럼 불도에서 부처님은 또 어떤 분이냐 하는 질문이 나오는데 이 질문은 한 마디로 말할 수 없습니다. 『금강경』에서는 '만약 모양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들으려 한다면 그것은 삿된 길이라 참다운 부처를 볼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부처님입니다. 절에서 부처님 존상을 모셔놓고 예불하고 공양도 하지만 그런 부처는 사실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닙니다. 다만 형상적인 부처는 실다운 부처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반야경』에서는 반야바라밀이 부처라고 합니다. 『반야심경』을 모든 불교 행사에서 독송하는데 대승불교에서는 어느 종단이든 근본경전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야심경은 정토종, 밀교와 현교인 조계종에서도 하기 때문에 근본경전입니다. 반야심경의 근본은 반야바라밀이고, 반야바라밀이 부처님이기 때문에 반야바라밀을 믿고 형상을 취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반야바라밀은 형상이 없어서 공, 공성이 부처님이라 합니다.
공이란 형상이나 모양이 없지만 그 안에서 삼라만상이 현현되는 것입니다. 제가 물리학자는 아니지만 양자물리학에 심취해서 여러 번 말씀드렸습니다. 양자물리학에서 양자라는 존재는 보이지 않는데 사람이 볼 때는 그 모양을 나타냅니다. 양자물리학이야말로 과학이 규명하지 못했던 공이라는 개념을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양자물리학에 제시하는 공의 의미, 퀀텀필드라는 양자장을 우리가 잘 이해했을 때 실답게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다. 즉 양자라고 하는 것은 보이지 않다가 사람이 관찰하면 나타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하면 바로 내 마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있다는 겁니다. 이 말은 『화엄경』 사구게에 나오는 일체유심조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든다는 이 말은 양자가 어디 있는지 모르지만 사람이 의식으로 관찰할 때 그것이 모양을 나타낸다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행 생활할 때 제일 중심에 둬야 할 것은 이 마음의 문제입니다.
마음이란 어떻게 생겼느냐 하면 마음이란 광활해서 굉장히 넓은 의미가 있습니다. 다행히 유식불교에서는 마음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친과 무착이라는 형제가 유식불교의 근본을 세웠는데 사람의 마음이란 전오식으로 감각적인 의식도 있고, 생각하고 사고하여 따지고 분별하는 모든 것을 담당하는 의식으로 제7말나식이라 말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것은 제8아뢰야식이 아니라 업력의 지배를 받지만 현실적으로는 제7말나식의 지배를 받습니다. 말나식에는 우리의 모든 것이 함장되어 있어서 이것을 어떻게 꺼내 쓰느냐 하는 것이 유식불교의 수행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제7식에서 꺼내 쓰는 것이 우리 생활을 잘 가꾸는 비결입니다. 삼라만상 모두는 제7말나식이 창조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이렇게 봤을 때 평상심시도에서 도란 닦아서 얻는 것이 아니고 사량으로 따지고 알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이므로 오히려 도를 얻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도와 멀어진다는 것이 남전스님의 설명입니다. 그럼 이것을 어떻게 내 것으로 할 것인가 할 때 나오는 것으로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무문관19칙」에 나오는 말입니다. 남전선사의 평상심시도라는 말에 무문관의 저자인 무문 혜개스님은 이렇게 주석을 붙입니다. 春有百花秋有月 夏有涼風冬有雪 若無閑事?心頭 更是人間好時節이로다. 봄에는 백 가지 꽃이 만발하고 가을에는 달빛이 아름답더라.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겨울에는 하얀 눈이 천지를 덮더라. 만약에 사람 마음 가운데 근심 걱정이 다 없으면 그때가 인간이 가장 좋은 시절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다 아는 겁니다.
무문관이나 벽암록에 나오는 조사스님의 말씀은 경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말로 철저하게 중국화된 불교입니다. 오늘 50일 바라밀 기도를 입재하면서 이번 기회에 시간을 내어서 벽암록이나 무문관 같은 책을 관심 있게 보고 거기에서 말하는 불교란 무엇인가도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교리적으로 알고 있는 사성제, 팔정도, 12연기, 6바라밀의 근본불교를 넘어선 것이 바로 이런 선불교입니다. 일체유심조의 마음 그대로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을 우리가 내어 쓸 때 우리가 삶을 잘 살고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대품반야경』 「조명품」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반야바라밀은 생기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니 사물의 고유형태가 공(自性空)이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생사를 멀리 여의니 항상함도 아니고 단멸함도 아니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은 도와주는 이가 없는 사람의 보호자가 되니, 온갖 진귀한 보배를 베풀기 때문이다.
6년 만에 각화사 올라가서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보니 가족을 위해서 등 켜겠다고 계속 전화가 왔습니다. 참 부처님의 힘이란 대단하고 공덕이란 얼마나 큰가를 정말 오랜만에 실감했습니다. 물론 옛말에 ‘부처님의 공덕은 얼마나 큰지 불도를 수행하는 출가자나 선남자 선여인들은 세상이 가물어서 산의 개미들이 먹을 것이 없을 때 비로소 절에 쌀이 떨어진다’고 할 만큼 공덕이 크다고 했습니다. 누구라도 부처님을 모시고 있으면 돈과 음식을 갖다 올리는데 여기에서 스님들이 잘못된 생각에 빠지면 전법에 관심 없이 오직 돈만 바라고 있게 됩니다.
엊그제 재판 판결을 전해 들으면서 예전 꿈에 큰스님께서 저에게 큰 망치를 준 것은 불광법회를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곳으로 만들라는 계시로 들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스님이 오더라도 불광법회는 없앨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큰스님께서 불광법회를 만든 이유는 스님들이 잘 살고 잘 먹으라고 만든 것이 아닙니다. 정말 불법을 전하기 위해서 구마라집 삼장 만큼 온갖 고난을 겪은 스님은 없습니다. 강제로 결혼도 하고 그야말로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오직 중국에 불교를 전하겠다는 일념으로 오신 분입니다. 큰스님께서 새로운 불교를 일으키기 위해서 노력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로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고 어떤 사람은 큰스님이 외도 짓을 한다고까지 했습니다. 저에게 큰 망치를 주신 것은 불광법회를 없애려고 하는 온갖 것을 다 부숴버리고 완벽하게 불광법회를 정상화시키라는 계시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마음이 있는데 유식에서는 따지고 사량하는 것을 제7말나식이라고 합니다. 지금 현재도 7식을 사용하지만 과거에 했던 7식의 작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이것을 서양의 심리학자들은 무의식, 혹은 잠재의식이라고 말합니다. 제7말나식에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모든 가치관, 능력 이런 것들이 전부 내장되어 있는데 그것을 내어 쓰면 됩니다. 내어 쓰는 방법이 기도입니다. 저는 기도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살았는데 뇌출혈이 왔을 때 뭐가 잘못되어서 한 달 동안 입원했는지를 생각하다가 내가 기도에 대해 너무 등한시하고 신경을 안 썼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기도에 대해 집중 연구하여 최근에 쓴 글이 얼마 전에 나눠드린 ‘기도는 과학이다’는 내용입니다. 이것이 100만 리뷰를 해서 인기가 있다고 불교방송에서도 방송하겠다고 해서 몸은 아프지만 하기로 했습니다.
큰스님께서 특이하게 하안거와 동안거 50일 기도를 만들어서 하루에 마하반야바라밀을 천 번, 만 번 염송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염송하면서 나의 제7말나식에 있는 모든 공덕이 나에게 나타나는 것이 진귀한 보배입니다. 전문적인 수행자에게는 깨달음이라는 보배를 주고 재가불자에게는 진귀한 보배를 주는 겁니다. 이것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이미 내게 축적되어 있는 겁니다. 제8아뢰야식에서는 이것이 다음 생으로 가게 되지만 제7말나식에서는 현실세계에서 내어 쓸 수 있는 창고입니다. 이 창고에서 내어 쓰는 방법은 바로 내 생명이 부처님 한량없는 공덕생명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노력할 때 그런 삶이 오는 겁니다. 그럴 때 우리는 부처님 감사합니다란 말을 하고 이웃에게 불광법회에 가자는 말을 하게 됩니다. 모든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일 때, 내 생명이 밝아지는 것에 눈을 떴을 때 가족과 친구에게 불광법회에 가자는 말이 나오게 됩니다.
큰스님께서는 스님들의 호구책으로 불광법회를 만들었는데 그 제자들은 호구책에 대해서 법회는 필요없다고 없애려 하지만 법회를 없애면 운영이 안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불광의 소임 보는 스님들이 불광법회만 없어지면 돈이 들어올 거라고 망상을 피우고 있습니다. 하루 빨리 소임 보는 스님들이 정신을 차려서 빚도 갚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체유심조를 내 것으로 하기 위해서 하안거 50일 기도 동안에 마하반야바라밀을 염송해서 내 생명이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이란 것을 체득하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 삶은 하루하루가 좋은 일일시호일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불광인의 선서>
우리는 횃불이다. 스스로 타오르며 역사를 밝힌다.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 용맹정진하여 바라밀 국토 성취한다.
우리는 불광법등입니다. 전법으로 바른 믿음을 삼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 이루리!!!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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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라밀님, 오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불광은 큰 스님께서 일러주신 '내 생명 부처님 무량공덕 생명'을 믿고 행하는 반야바라밀 행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제7말나식을 잘 내어 쓰고 있다고 미루어 짐작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