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1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11월 설교 시리즈 –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감사>1. 모리야산, 준비하신 대속의 은혜!
본문 : 창세기 22장 13절(1~14절, 새번역)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새번역>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거라. 내가 너에게 일러주는 산에서 그를 번제물로 바쳐라”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때, 90세 아내 사라로부터 얻은 아들, 그 외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아주 쉽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도 설명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그렇게 함으로 인하여 주어지는 은혜는 무엇인지 조금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다짜고짜 찾아오셔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을 말씀하십니다.
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한 번 대입해 보시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는 그 것을 번제물로 바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돈입니까?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자녀입니까? 꿈입니까? 어떤 물건입니까? 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 그것을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유는 따로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다짜고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 그냥 못 들은 걸로 할 분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을 명령할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당한 명령을 내리는 하나님은 믿을 수 없다고, 황당한 일을 행하실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당연히 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신앙인이 된 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을 닮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아브라함의 이 태도를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그 음성을, 그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듣고 밤새도록 고민했습니다. 우리처럼 그냥 모른 체하고 잠들고 모른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의 복잡한 2가지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이 구절일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다음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창세기 22장 3절A, 새번역>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없을 만큼 고민스러웠기에 밤을 꼬박 세웠을 가능성!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던 그의 깨어있음! 아니면 빠르게 결정하고 최대한 미련 없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려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복잡한 마음 가운데에도 분명히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큼은 존재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바쳤습니다. 더구나 약속을 받은 그가 그의 외아들을 기꺼이 바치려 했던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이삭에게서 네 자손이라 불릴 자손들이 태어날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되살리실 수 있다고 아브라함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7~19절A, 새번역>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발현될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께 번제물로 드리더라도 하나님은 약속하셨기에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다시 이삭과 같은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명확한 신뢰! 하지만 그래도 다시 아들을 주신다고 해도 벌써 10년이 넘게 함께 한 이삭을 대하는 마음과 같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상황에서 믿음이 발현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아침 일찍 아들 이삭을 데리고 모리야 산으로 갑니다. 아브라함에게는 모리야산이 죽음의 산이었습니다. 아들 이삭을 자신의 손으로 죽여야 하는 산! 절대 가고 싶지 않은 산! 아마 이삭을 죽이고 나면 영원히 쳐다보기도 싫은 저주하고 싶은 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그 죽음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종들이 아닌 오직 아들과 단이 걷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종들에게는 아주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자기 종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아이와 저리로 가서, 예배를 드리고 너희에게로 함께 돌아올 터이니, 그 동안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거라." <창세기 22장 5절, 새번역>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니 분명히 예배가 맞습니다! 그런데 함께 돌아온다는 것은 분명히 무엇인가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방법을 마련해 두셨으리라 믿습니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더라도 분명히 혼자 내려가게 하지 않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의 산으로 예배를 드리러 올라갑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말씀하신 장소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에 제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제단 위에 장작을 벌려 놓았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삭에게로 갑니다. 이삭을 잡아 묶기 시작합니다. 이삭은 발버둥 치지도 않습니다. 두 사람 모두 너무 담대해 보입니다. 바로 이전에 이런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다. 그가 "아버지!" 하고 부르자, 아브라함이 "얘야, 왜 그러느냐?" 하고 대답하였다. 이삭이 물었다. "불과 장작은 여기에 있습니다마는,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얘야, 번제로 바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손수 마련하여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 함께 걸었다. <창세기 22장 7~8절, 새번역>
아브라함도 이삭도 하나님이 손수 마련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죽음의 땅, 절망의 땅, 눈물의 땅인 모리야에서 아브라함도 이삭도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묶을 수 있었고, 이삭도 아무런 반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삭은 제단 장작 위에 올려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칼을 들었습니다. 진짜 이삭을 죽으려고 했습니다. 액션을 취한 것이 아니라 정말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두 사람 모두 죽어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였습니다. 하늘로부터 다급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아브라함이 대답하였다. "예, 여기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 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세기 22장 11~12절, 새번역>
오히려 하나님 입장에서 더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마치 굳이 테스트하지 않아도 될 사람을 내가 테스트했다는 실수를 인정하시는 듯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맞습니다. 아브라함은 여전히 하나님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이번 사건을 통해 더욱더 명확해졌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더 확실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소리를 들은 아브라함은 칼을 내려놓고 주위를 돌아보았습니다. 분명 이삭을 대신해서 번제를 드려야 할 제물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고개를 들고 살펴보니, 수풀 속에 숫양 한 마리가 있는데, 그 뿔이 수풀에 걸려 있었다. 가서 그 숫양을 잡아다가, 아들 대신에 그것으로 번제를 드렸다. <창세기 22장 13절, 새번역>
할렐루야! 이삭 대신에! 아들 대신에! 숫양 한 마리를 잡아 번제를 드렸습니다. 대체 그 숫양이 어떻게 거기로 왔는지 그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있었으므로, 아브라함이 그 곳 이름을 여호와이레라고 하였다.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은 '주님의 산에서 준비될 것이다'는 말을 한다. <창세기 22장 14절, 새번역>
죽음의 땅! 죽음의 산이 여호와이레의 산! 주님의 산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말대로 둘은 함께 예배를 드리고 종들에게로 돌아왔고, 집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그리고 질투하심마저 느낄 수 있는, 우선 순위를 확실히 정할 수 있는 감사의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의 땅인 줄 알았던 모리야산! 생각지도 못했던 그 뜻밖의 장소에서 만난 감사였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이삭을 대신해서 죽은 숫양! 이건 단순히 창세기 22장에서 끝날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감사가, 그 모리야라는 뜻밖의 장소가, 우리의 모두에게 엄청난
기쁜 소식, 복음을 전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모리야산이 바로 신약에서 가장 뜻밖의 장소! 골고다이기 때문입니다. 골고다 언덕과 같은 위치에 놓여 있는 산이 바로 모리야산이기 때문입니다. 골고다! 해골! 죽음의 언덕! 언덕의 모양이 해골 같았는지, 참수형이 하도 많이 일어나 사형집행 장소로 유명해서 그런지 이름마저 섬뜩한 장소 골고다가 바로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을 바친 모리야산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골고다 언덕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게 허락하신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 해골에서 죽음의 언덕에서 우리를 살려내셨습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장소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어린양을 죽이셨습니다.
그러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혀 뜻밖의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그 모리야산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침으로 앞으로 십자가 사건을 예표한 곳이었으며, 역대상에서 다윗의 범죄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전염병을 멈추게 해 주었던 ‘아라우나의 타작마당’이었으며, 솔로몬이 바로 그 곳에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세우게 된 장소입니다. 그리고 그 장소는 신약의 골고다 언덕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종에서 자녀로, 고아에서 아들로, 거절에서 용납으로, 죄인에서 의인으로, 저주에서 축복으로, 십자가에서 우리 모두의 이름을 바꾸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우리가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찌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에게 주신 시험의 시간이 이토록 은혜와 감사인 것을!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내 가장 소중한 것을 다 바쳐도 얻지 못할 수많은 것들을, 그 구원을! 오히려 선물처럼 허락하신 하나님께 진심의 감사를 올려 드립니다.
우리와 아무 상관도 없는 장소! 모리야산! 골고다언덕! 그 뜻밖의 장소에서 하나님께 드릴 감사를 만납니다. 이제는 나와 너무도 상관이 있는 장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모리야산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어린양이 죽었으며, 골고다 언덕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나와 여러분,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럼 이제 우리가 드려야 할 것은 감사와 찬양입니다. 그 뜻밖의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감사를 만났으니 이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삶에서 이 뜻밖의 장소들이 더욱더 많아지시길 축복해 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모리야산이 더 많아지시고, 골고다 언덕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11월 시작하고, 11월 한 달이 이 감사를 기초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신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하고 축복합니다!
결단 찬양 – 십자가 십자가 + 만 왕의 왕 내 주께서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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