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서평
잔혹한 역사 속에 무참히 스러져간, 피폭 한국인들의 처절한 생과 사랑!
한수산 30년 문학의 힘이 꿈틀대는 비극의 대서사시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싯어내는 휴머니즘 문학의 진수
빼어난 문체와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빛나는 작품들로 격찬받아 온 작가 한수산. 『까마귀』는 한수산 작가가 1990년 첫 취재를 시작으로 15여 년의 고투 끝에 발표하는 본격 장편소설로서, 일본 나가사키에 끌려간 한국인 징용공들의 비극적인 삶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인간 개인을 투시하던 작가의 섬세한 눈은 이제, 가려진 역사의 현장으로 시선을 넓혀 그 처절함과 비극성을 일깨운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44년부터 1945년 8월은 태평양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하며, 원폭투하라는 비극적 결말로 이어지는 반인륜적인 역사의 시간이다. 주요 무대가 되는 지옥섬 하시마는 전시의 야만성과 그로 인한 한국인들의 고난을, 주인공들이 새로운 미래를 위해 탈출해 간 나가사키는 일본 군수공업체의 집결지로서 원폭투하란 비극적 운명을 잉태한 채,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상징한다.
피를 토하게 하는 ‘지옥’에서도 사랑이 피어나고, 우정은 뜨거웠으며, 분노는 살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기에 가슴에 품었던 주인공들의 희망도, 필사의 탈출도 다시금 원폭이라는 불가항력적인 무기 앞에 무참히 스러진다. 특히 주인공들의 고난과 함께 세밀하게 묘사되는 전시 일본인들의 처절한 실상은 한일관계의 편협한 도식을 뛰어넘어 가열한 전쟁과 역사의 광기가 모든 인간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바로 뜨거운 휴머니즘에 입각한 작가의 시선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이다.
20세기 말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이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 그 희생자 중에는 조선의 수많은 젊은이들도 있었음을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이 작품은 처연하리만치 서글펐던 그들의 생을 통해 다시금 원폭의 망령을, 전쟁의 광기를 불러내려는 이들에게, 전쟁과 폭력으로는 그 어떤 인간도 구원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또한 역사의 상처를 겪어보지 않은 젊은 세대들에게, 오늘의 우리가 있기까지 무고한 젊은 생명들의 안타까운 희생이 있었음을 일깨운다.
『까마귀』는, 문학의 진정성을 통해 가려진 역사를 올바르게 복원하여 억울하게 잊혀져간 이들을 기억하고, 역사의 아픔과 상처를 씻어내고자 하는 작가 한수산의 오랜 집념이 담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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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소개
잔인한 역사 속에 스러져간 이 땅의 이름 없는 청춘들!
지옥 같은 세월 속에도 사랑은 피어나고, 우정은 뜨거웠으며, 분노는 살아 있었다!
지상
나가사키를 뒤로하고, 솟아오르는 아침 햇살을 등지고 지상은 걸었다. 조선으로 돌아간다. 나의 조국, 미움 속에서도 사랑해야 하는 나의 조국. 잃어버린 우리들의 나라로 나는 돌아간다. 내 아내, 내 아이 그들과 함께 살기 위해 간다. 나를 기다리는 그들을 내가 껴안으러 찾아간다. 나는 이제 떠나올 때의 내가 아니다. 사요나라, 나
가사키.
친일파 윤두영의 둘째아들로 형을 대신해 징용을 간다. 지상은 인간 존엄성이 말살되는 하시마에서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최악의 순간에도 결코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며, 진정 옳은 것이 무엇인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깨달아간다.
우석
잊지 마라. 너 이렇게 살아야 한다. 많은 걸 미워해라. 분노가 있어야 산다. 차마 눈을 못 감게 미워해야 할 게 많아야 한다. 그러면 우린 다시 만난다. 그래, 그러자면 독하게 마음먹고 많은 걸 미워해야 한다. 그것도 목숨 부지하는 길이라는 걸 난 이 섬에 와서야 알았다. 사람이기에, 사람이기 위해서 싸우며 살 거다. 사람이기에.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태도로 하시마 징용공들의 구심점이 되는 우석. 투사적인 일면 뒤에, 금화를 만나 비극적인 첫사랑에 빠지는 뜨거운 순정을 품은 사내. 사람으로서 무엇에 눈 감지 말고, 무엇에 타협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다.
서형
서형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뒤뜰을 둘러본다. 옻칠한 상 하나 꺼내서, 밤이면 맑은 물 한 그릇 떠놓고 빌면 되겠지. 일본땅이 아무리 험악해도 그렇겠지요. 별은 뜨지 않겠어요. 그래요. 우리 저 별을 봐요. 당신 있는 곳에 뜨는 별이나 여기 이 뒤뜰에서 바라보는 별이나, 별은 하나일 거예요.
훈장댁 막내딸로, 징용으로 끌려간 자신의 남자를 기다리는 조선의 여자. 남편을 보내고 홀로 아이를 낳아 키우지만, 남편에 대한 순정한 사랑으로 기다림의 고통을 견딘다.
금화
금화가 나자빠져 있는 됫병 술을 집어들었다. 그녀는 병을 들어 술을 목구멍에 쏟아부었다. 나는 여기 남아 있지만 내 마음은 그에게 안겨서 저 원한의 바다를 건넜다. 무엇에 빌 수만 있어도 좋으련만, 나는 어쩌다가 그런 것도 없이 살았나 모르겠다. 세상 살면서 어느 천년에 내가 어떤 남자를 위해 빌 일이 있을 줄 꿈이나 꾸었던가. 그래. 당신은 저 벌판, 흙이라고 합시다. 나는 그 위에 뜬 무지개로 살렵니다.
어린 나이에 집을 뛰쳐나와 몸을 버리고, 곡절 끝에 하시마의 유곽까지 흘러들어와, 독한 술에 의지해 살아가는 거친 들풀 같은 여자. 우석을 만나 생애 처음으로 사람대접을 받으며, 사랑을 느끼고 삶의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나 우석을 떠나보낸 뒤, 노무계에 잡혀가 끔찍한 고문을 겪고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다.
동진
동진은 수감생활을 마치고 세상으로 나가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가 점점 뚜렷해지는 것을 느낀다. 나에게는 꿈꾸는 내일이 있다. 노동자들을 깨우쳐야 한다.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나아가야 한다. 무릎꿇고 살기 보다는 일어서서 싸워야 한다.
속 깊고 사리판단이 분명하며 신학문에도 밝은 그는 우석과 하시마의 폭압적 노동환경에 대항하는 의지적인 인물. 탄광 소요사건의 주범으로 나가사키 형무소에 수감된 뒤 자신의 삶을 노동자를 위해 바치리라 결심하지만, 원폭은 그의 내일을 잔인하게 짓밟는다.
명국
혼자라도 떠나라고 해야겠지. 여기 남아선 안 된다. 내 꼴을 보아라. 바로 내 꼴이 여기 남아 있다가 우리가 만날 끝이다. 눈물로 흐려오는 눈으로 명국은 벽 위로 나 있는 창을 올려다보았다. 언제, 저 밖으로 나갈 것인가. 나가면…… 다리병신, 절뚝거리며 하늘을 보면 무엇 하며, 땅을 밟으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시마의 징용공들이 믿고 따르는 큰형님 같은 사람으로, 사기를 당해 지옥섬으로 흘러들어온 기구한 남자. 현실에 순응하지만, 점차 하시마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며 탈출을 결심한다. 그러나 낙반사고로 다리가 절단된 채 잔류하고, 나가사키로 와 귀향의 그날을 기다린다.
길남
아버지. 전 여기서, 이 일본에서 뭔가 할 겁니다. 여기가 조선보다는 큰물이에요. 아버지도 늘 그러셨잖아요. 사람이 놀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그리고 전 말입니다. 봉황 꼬리를 할 바에야 닭대가리로 살 겁니다. 아시겠어요?
명국의 친구 장태복의 아들로 징용을 피해, 아버지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한바집 오야붕 육손이의 눈에 들어 부하가 된다. 자신의 출세를 위해 끝까지 조선인의 편에 서지 않으며 혼란한 세상에 영악하게 처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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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소개
제1부 조국의 딸
지옥섬 하시마, 우리의 젊음과 피와 눈물을 묻었다!
태평양전쟁의 광기가 극에 달한 1944년. 친일파 윤두영의 둘째아들 윤지상은 친일파란 후광도 소용없이, 장남 하상을 대신해 징용을 결심하고, 아내 서형과 뱃속의 아이를 남겨둔 채 죽음의 길을 떠난다. 한편 서울의 일본인 상회에서 일하던 길남은 징용을 피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출세를 꿈꾸며, 아버지 태복을 찾는다.한 번 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지옥섬 하시마. 일본 최대의 군수공업체 미쓰비시가 개발한 하시마는 가혹한 노동착취로 악명 높던 최악의 탄광지역. 그 무렵 하시마에 있던 태복, 삼식, 경학의 탈출은 실패로 끝나고, 태복은 맞아서 초죽음이 된 채, 삼식은 주검이 되어 하시마로 붙잡혀온다. 태복은 심문 중 노무계 사이토를 젓가락으로 찔러 중상을 입힌 뒤 종적을 감춘다.하시마로 끌려온 지상은 우석, 동진, 명국과 함께 일하게 된다. 급식에서 쥐가 나오는 등 징용공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지는데, 창수와 병철이 가혹한 노동을 못 견디고 의문사를 당하면서 그들의 절망은 깊어만 간다.그러던 어느 날, 우석은 방파제를 산책하다가, 하시마의 유곽에서 일하는 하나코라는 이름의 조선 작부 금화를 만난다. 우석과 금화는 마주침이 잦아질수록 차츰 애틋한 정을 느끼게 되고, 둘은 생에 다시 없을 사랑을 나누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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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소개
한수산(韓水山)
1946년생으로 강원도 춘천에서 자랐고, 경희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사월의 끝」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인간 삶의 근원적인 문제와 다양한 삶의 형태에 천착한 『해빙기의 아침』 『모래 위의 집』 『마지막 찻잔』 『먼 그날 같은 오늘』 『욕망의 거리』 『거리의 악사』 『사랑의 이름으로』 『말 탄 자는 지나가다』 『4백년의 약속』 등을 발표하며, 유려한 문체가 빛나는 특유의 소설미학을 구축해 왔다.
또한 『단순하게 조금 느리게』 『내 삶을 떨리게 하는 것들』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와 같은, 현대인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빛나는 에세이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1977년 『부초』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했고, 1991년 「타인의 얼굴」로 제 36회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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