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연정사 賓淵精舍
강북을 바라 보고 있는 이 곳 빈연정사(賓淵精舍)는 겸암(謙巖)이 1583년에 건립하여 서재(書齋)로 사용하던 정면 3칸, 측면 2칸의 작고 소박한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원래는 원지정사(遠志精舍) 서쪽에 있었으나, 약150m 정도 떨어진 서쪽으로 옮겨 부용대를 마주보고 있다.







겸암(謙巖)이 심었다는 소나무숲인 만송정(萬松亭)이 내려다보이는 화천(花川)가 언덕 위에 위치한 이 곳은 화천 건너의 부용대(芙蓉臺)가 보이고, 한쪽의 옥연정사도 눈에 띌 정도로 뛰어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서애가 34세에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이름은 화천(花川) 건너 보이는 하회마을의 안산(案山)인 원지산(遠志山)에서 따다 붙였다고 한다.


서애 류성룡이 34세에 잠시 조정에서 물러나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 세운 것으로, 화천(花川)이 건너 보이는 원지산을 바라보고 있다고 하여 원지정사(遠志精舍)라고 부른다. 오른쪽에 누각을 두고 있는 2채의 건물로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대청 1칸에 방 2칸을 배치하고 앞쪽으로 반 칸의 툇마루를 달았다. 모기둥을 사용하였으나 정면에는 두리기둥을 세우고 홑처마에 맞배지붕을 얹었다.

서애 유성룡이 노후(老後)에 병이 들었을 때 약을 먹으며 정양(靜養)한 뒤 완쾌되기도 하였고, 독서도 했으며, 자제들을 훈도하기도 했던 당시 건물은 자취를 감춘 대신, 지금의 건물은 그 후에 중건한 것인데, 동편 정사(精舍)와 서편의 연좌루(燕坐樓)가 한 경내에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정사(精舍)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 통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으로 동편 1칸이 마루이고 나머지가 구들인 온돌방인데, 마루와 방 앞으로 반 칸의 앞 퇴가 달렸고, 그 외 다른 시설은 없으며 목재에는 채색하지 않았다.


누각(樓閣)은 2층으로 1층에는 기둥만 세우고 계단을 만들어 2층에 오르게 하였다. 2층은 정면 2칸, 측면 2칸의 대청으로 문을 달지 않아 사방을 두루 바라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을 가설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우물천장을 조성하였다. 장대석을 기단부로 하여 막돌 초석을 놓고 1층은 다각기둥, 2층은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홑처마에 팔작지붕을 얹었다.팔작지붕과 추녀 끝의 곡선이 제비를 연상하게 하여 연좌루(燕坐樓)라고 부른다. 이 곳에서는 부용대와 화천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또 하회마을을 둘러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