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도 서해안 일대만큼 겨울 여행이 다양하고 낭만적인 곳도 드물 것이다. 크고 작은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만리포, 천리포, 십리포 등 로맨틱한 겨울 바다가 끝없이 펼쳐지고, 안면도의 방포, 꽃지, 샛별 등 올망졸망한 해변에선 눈이 시릴 만큼 아름다운 낙조가 영화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에서 두 주인공이 낙조를 배경으로 왈츠를 추던 곳도 바로 서해안의 갈음리 해안이다. 또한 일몰 때면 수만 마리의 철새가 호수 위로 날아오르는 대장관을 연출하는 천수만, 간월도를 비롯해 홍성과 보령을 잇는 서해안 일대는 빨갛게 익어가는 대하구이며 굴밥, 조개 샤브샤브 등 갖가지 향토 미각이 줄을 잇는다. 무엇보다 당진의 왜목마을은 해돋이와 해넘이를 하루에 다 볼 수 있어 일석이조의 여정을 짤 수가 있다. 더욱이 왜목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거치는 서해대교는 그 자체만으로도 큰 볼거리다. 서해대교는 경기도 평택에서 바다를 가로질러 당진군 송악리까지 직선으로 이어지는 7.3km의 다리로, 바다 위로 끝없이 이어지는 대역사를 마주하면 서해안의 드높은 맥박소리가 절로 들려오는 듯하다. 밤이면 더욱 장관을 이루는데, 제주도 성산일출봉과 서울 63빌딩 높이의 H자 모양 주탑 아래에 조명등이 밝혀져 더없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삽교천제방을 지나 당진군 기지시리에서 방향을 북쪽으로 틀면 한진나루, 장고항마을, 왜목마을 등 자그마한 포구들이 순서대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여정 중간에 있는 석문호방파제 도로는 ‘한국의 아우토반’이라 불릴 만큼 명 드라이브 코스이다.
당진(唐津)이라는 지명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중국과 교섭이 잦아지고 당나라 사람들이 귀화하거나 정착한 데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최근 대대적인 간척사업으로 인해 당진은 제 모습을 잃어버렸다. 삽교방조제, 석문방조제, 대호방조제 등으로 인해 구불구불했던 해안선의 대다수가 일직선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아직 곡선미가 남은 지역에는 한진나루 등의 작은 해변 마을이 살아 숨쉬고 있다. 당진군 기지시리에서 619번 도로를 타고 북동쪽으로 달리면 한진나루터에서 길이 끝나는데, 이 즈음에서 ‘필경사’라는 이정표를 만나게 된다. 당진군 송악면 부곡리가 자랑하는 유적지로, 소설 <상록수>의 작가 심훈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심훈이 글을 쓰던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내부에 있는 문화관 뜰에 서면 아산만의 물결과 서해대교가 한눈에 보인다. 필경사는 1934년 봄 심훈이 낙향해서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인데, 건물 옆 시비에는 심훈의 <그날이 오면>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기지시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거대한 호수와 방조제 도로를 만나게 된다. 석문호는 석문지구 간척농지 종합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 인공호수로, 송산면 가곡리와 석문면 장고항리 사이의 개펄이 방조제로 이어지면서 거대한 호수가 되었다. 그 길이가 자그마치 10.6km에 달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석문호방파제까지 이어지는 직선도로가 바로 ‘환상의 아우토반’이다. 방파제가 끝나는 즈음에는 바다로까지 나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도 하는데, 바다로 뻗은 선착장에 서면 화성군과 당진군 사이의 바다에서 어로 작업을 벌이는 어선들의 풍광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전개된다.
석문방조제를 벗어나면 곧바로 장고항 해변 마을이 펼쳐진다. 하늘에서 보면 마을의 지형이 장고처럼 생겼다고 해서 ‘장고항’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다. 왜목마을에 비해 덜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서해의 조용한 포구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일출과 넉넉한 인심을 느낄 수 있어 점차 여행자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 다른 해변 마을에 비해 장고항은 갈매기가 많은 것으로 유명한데, 이른 아침 찬란하게 솟아오르는 일출과 한가로이 노니는 갈매기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어 내곤 한다. 장고항은 또한 ‘실치회’의 본고장이다. 실치는 몸체가 실처럼 가늘고 작다 해서 이름 붙여진 물고기로, 물 위로 나오면 곧바로 죽어버리는 특성이 있다. 오래 가야 한 시간이고 한나절이 지나면 썩어버린다. 그래서 실치회는 장고항에서만 먹을 수 있는 특미가 되었다.
당진을 대표하는 왜목마을은 장고항의 서쪽에 있다. 석문면 교로리의 왜목마을은 서해 바닷가의 올망졸망한 포구들 중의 하나일 뿐이지만, 유일하게 해돋이가 있는 바다를 품은 곳이기도 하다. 동해 일출이 장엄하고 화려하다면 왜목마을 일출은 소박하고 서정적이다. 더욱이 바다가 잔잔하기 때문에 일출을 볼 수 있는 날이 동해보다 훨씬 많은 것도 왜목마을의 매력이다. 웬만큼 맑은 날이면 붉게 떠오르면서도 눈부시지 않은 해돋이를 만날 수 있다. 왜목포구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것은 독특한 지형구조 때문. 해변이 남북으로 길게 뻗은 서해의 땅끝 마을인 데다가, 길게 돌아나간 해안이 동쪽을 향해 튀어나와 있는 까닭이다. 바다 너머로 경기도 화성군까지는 육지가 멀고 수평선이 동해안과 같은 방향이어서 ‘서해 일출’의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다. 정확히 동해에서 해가 뜬 뒤 5분 만에 일어나는 일출이다.
또한 왜목마을은 마을 양쪽에 바다를 품고 있어 일몰까지도 볼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당진화력발전소 내 석문각에서 바라본 일몰을 으뜸으로 친다. 석문각은 해안가 언덕 위에 세운 8각 정자로 이곳에 서면 난지도와 비경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몰의 장관을 고스란히 감상할 수 있다. 석문각이 아니라도 마을의 해변 어느 곳에서나 아산만을 점점이 수놓은 국화도와 매박섬, 입화도를 차례로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왜목’이라는 지명이다. 대호방조제 공사로 인해 매립지가 생기기 이전에 이곳은 난지도를 향해 반도처럼 뻗어 있었다. 왜목마을 부근에서 육지의 폭이 고작 20~30m로 좁디좁았던 것. 그래서 ‘왜목’이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외목’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왜목마을 앞을 지나는 615번 지방도로는 대호방조제로 이어진다. 이 방조제는 당진과 서산을 하나로 이어주는데, 방조제 중간의 도비도나 방조제 끝의 삼길포에서 난지도로 가는 배를 탈 수 있다. 도비도는 그 이름과 달리 ‘농어촌휴양단지’로 조성된 작은 마을로, 그 앞엔 크고 작은 섬과 갯벌이 펼쳐져 있어 생태·환경 체험을 하기에 그만이다. 왜목포구에서 20분이면 닿는 국화도와 매박섬은 천혜의 낚시터이자 자연 캠핑장. 호젓한 해변에는 갈매기와 가마우지가 장관을 이룬다. 행정구역상으로는 화성군이지만 여객선이 없고 왜목포구와 장고항에서 낚싯배를 빌려 타고 들어갈 수 있다. 당진의 관문인 삽교호는 1983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는데, 구축함과 상륙함 두 척의 군함을 해군으로부터 무상으로 받아서 만든 이색적인 테마공원인 함상공원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