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0 나무날 날씨: 비가 온 뒤 쨍쨍 해가 난다. 텃밭 일 할 때는 햇살이 따갑고 땀이 주르르 흐른다.
아침열기(노래, 말놀이, 책 읽어주기)-민요(1,2학년)-수학(대나무자 만들기, 글쓰기, 머리셈)-점심-청소-텃밭(풀매기)-6학년 영어-교사마침회
[손이 뜨거워요.]
승민이가 몸이 안 좋은지 피곤해하고 편안한 얼굴이 아니다. 벼룩처럼 통통에 있는 형들과 누나, 언니가 쓴 시를 찾아 읽는데 주로 텃밭과 대나무자 시를 골랐다. 아침열기 마치고 2학년과 1학년이 민요를 부르는데 오늘 부를 노래는 ‘동그랑 땡땡’ 민요다. 2학년은 이미 알고 있는 노래라고 해서 불러보라니 처음 조금 부르다 웅얼웅얼하다가 조용하다. 형들이 ‘네모난 꽝꽝’으로 바꿔 부르는 재미있는 노래라 박자가 귀에 익어 그렇다. 다시 처음부터 부르는데 역시 네모난 꽝꽝으로 부르는 걸 좋아한다. 아주 빠르게 보통으로 섞어서 짧은 시간에 하니 아이들이 지루할 틈이 없다.
수학 시간에는 대나무자를 만든다. 마당 평상에 모여 지리산초록배움터에서 잘라온 대나무를 톱으로 자른 다음 낫으로 짝 쪼개는데 아이들이 깜짝 놀란다. 낫을 올려놓고 평상에 톡 내려치는데 쩍하고 대나무 갈라지는 소리가 크기 때문이다. 톱질하는 것만 어린이들이 하도록 돕고 낫은 선생만 쓴다. 여섯 개로 갈라 저마다 하나씩 나눠주고 모래종이를 나눠준 다음 부드럽게 만들도록 사포질 하는 방법을 가르쳐주니 정말 열심히 한다. 내 거를 좋아하는 마음이 강할 때라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 거칠한 옆면을 먼저 모래종이로 다듬고 넓은 면도 문질러서 예쁘게 만드는데 모래종이로 문지르다 보니 손이 뜨거워진다.
“선생님 손이 뜨거워요.”
“맞아. 선생님도 손이 뜨거워. 모래종이로 대나무를 문지르다 보면 마찰이 생겨서 뜨거운 열이 나는 거야.”
푸른 대나무 색깔이 엷어지며 속살을 내민다. 맨질 맨질 매끈한 게 만져도 좋고 냄새도 좋다. 한참을 사포질하니 저마다 대나무 색깔이 곱게 부드럽게 됐다. 대나무 끝에 구멍을 뚫고 끈을 넣어 마무리를 하니 멋진 대나무자가 됐다. 나중에 cm 표시만 하면 제법 쓸모가 있겠다.
“대나무자로 뭐를 재고 싶어?”
“음 마당 바닥에 있는 거요.”
“아 택견할 때 쓰려고 깔아놓은 바닥 깔개. 또?“
“집에 있는 내 장난감 잴 거예요.”
“애들아 그런데 관악산까지 잴 수 있을까?”
“네. 잴 수 있어요.”
“우리 대나무자가 약 40-50cm쯤 될 거 같은데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시간도 많이 걸리고. 다른 방법이 없을까?”
“...”
“줄로 시작하는 말.”
“줄자요.”
“맞아 줄자가 더 편할 것 같아. 그리고 다른 방법도 있는지 찾아보자.”
“참 오늘 만든 대나무자를 집에 갖고 가서 사포질도 더해서 멋있게 만들어 오세요.“
저마다 만든 대나무자를 글감으로 글쓰기를 하는데 조금씩 다르다. 시처럼 쓰는 아이도 있고 대나무 만든 과정을 겪은 일처럼 풀어쓰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에게 쓸 게 많도록, 쓰고 싶도록 선생이 준비해야 할 게 많다. 그냥 머리로 생각해서 쓰는 것보다 되도록 일과 놀이를 하고 쓸 것을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것도 필요하다. 겪은 일을 바탕으로 줄곧 쓰다 보면 저절로 머리로 생각해서 쓸 수 있는 힘도 나오는 법이다.
낮 공부는 텃밭이다. 본디 내일 공부지만 높은샘 4, 5, 6학년 기후학교가 잡혀있어 바뀌었다. 5, 6학년은 양재천 밭, 3, 4학년은 열리는텃밭, 1,2학년은 학교 뒤 텃밭으로 가서 풀을 매는 일을 한다. 1, 2학년 아이들과 보리와 밀이 쑥쑥 자라는 밭에 닿으니 햇볕이 따갑다. 고랑마다 일을 나눠 풀을 매는데 아이들마다 일 머리가 다르고 손놀림이 다르다. 부지런히 일하는 아이들, 슬렁슬렁 하다 벌레에 더 집중하는 아이들 모두 텃밭에서 알맞게 일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일하는 공부를 할 때는 지켜야 할 중요한 규칙이 있다. 모든 사람이 다 해야 하고, 학습하는 사람의 힘에 맞게 하며, 결과보다 과정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결코 어떤 결과를 얻기에 바빠서는 안 되고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예상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일에 지쳐 있거나 일하기가 지겨운 상태에 되면 곧 그만두는 것이 좋고,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고 이오덕 선생님은 밝혀두었다. 우리 학교 일하기는 교육의 목표요 수단이요, 교육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하기에 아이들은 텃밭에서 놀고 일하며 텃밭 식물과 스스로를 돌본다.
10분쯤 할 때 조금 더 하고 놀자는 말에 더 부지런히 일하는 아이들 호미질이 아주 힘차다. 20분쯤 됐을까 아이들이 쉴 때가 됐다. 쉬는 시간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와 하고 산 속 놀이터로 달려간다. 그렇게 한참을 아이들이 노는 동안 권진숙 선생과 나는 밭둑에 심어 놓은 옥수수 둘레 풀을 잡고 고랑마다 아이들이 뽑다 만 풀을 맨다. 또 그렇게 한참을 일하니 땀이 주루룩 주루륵 흐른다. 이때쯤 아이들을 불러 마무리를 할 때다.
그런데 아이들이 달려와,
"선생님 남민주가 울어요." 한다
"왜? 무슨 일이니?"
"송충이 때문에요."
"송충이가 몸에 떨어졌니?"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송충이가 많이 있다고요."
남민주를 멀리서 부르니 민주가 눈을 훔치며 온다. 울어서 눈 둘레가 빨갛다.
"민주야 왜그래? 송충이가 물었어?"
"송충이가 다리 위로 막 올라올 것 같아서 무서워요."
"아이고 그랬구나. 송충이가 정말 많지. 진짜 무서웠겠다."
그러자 우리 민주 참아가던 울음을 다시 터뜨리며 선생 품에 안긴다.
"괜찮아. 송충이가 많기는 해도 조심하면 돼."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는데 지난번 뒷산에서도 송충이 보면 아악 하면서 빨리 달려가던 모습이 겹친다. 송충이가 징그럽게 생겨서 싫다고 했었다.
동무들과 언니 오빠들이 빙 둘러서서 민주를 달래주는 모습이 참 예쁘다.
애들을 불러 마지막으로 풀을 한 번 더 뽑고 학교로 돌아가자 하니 금세 마무리를 짓는다. 권진숙 선생이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가 텃밭 일지를 쓰도록 돕고 나는 고구마와 호박 심을 곳을 마무리하고 내려갔다.
이제부터 밭은 풀과 싸움이다. 우리가 먹고 싶은 식물을 위해 미안하지만 곁에서 자라는 다른 풀들을 모조리 뽑아야한다. 오뉴월 땡볕에 풀매는 사람만이 그 심정을 안다. 아이들 시에 그 마음이 잘 드러난다. 더운날 밭에서 일하기는 어른이나 아이들이나 힘들고 그다지 반갑지 않다. 더운 여름에는 새벽아침이나 늦은 저녁에 일하는게 좋기는 한데 학교 시간을 그리 맞추기가 쉽지 않아서 다른 방법을 찾기는 하지만,낮에 하더라도 잠깐 땀흘려 일하고 시원하고 맛있는 걸 먹는 것도 좋겠다.
텃밭 마늘과 보리. 밀, 감자, 옥수수가 날마다 우리는 반긴다.
첫댓글 정우가 '마찰'이라는 낱말을 쓰길래~ 어려운 말인데 어디서 배웠나 했어요. 사포질을 하면서 손에 전해지는 뜨거운 느낌으로 마찰을 배웠네요. 아이들이 몸으로 배울 수 있게 바지런히 일거리 놀거리를 만들어 주시니~ 늘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