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 초 아내와 함께 강원도 태백 예수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예수원 목장에서 처음으로 양고기를 먹어 봤는데,
질기고 그다지 맛이 없었다.
사육하는 돼지, 닭 등은 먹기 좋지만,
야생에서 방목하는 것은 질기다.
이집트 장자의 죽음과 이스라엘 유월절 규례가
장례식장 육개장처럼 오버럽 된다.
삶과 죽음의 문턱이 ‘입’의 들숨과 날숨의 차이처럼 말이다.
생명이 죽을 때
사는 순간이라면 대충은 안 된다.
그것이 한 개인을, 가족, 국가, 인류를 구원하는 것이라면
창조 전부터 준비되어야 하고,
치밀하고 정확하게 한 치의 오차 없이
목숨을 끊어야 한다.
그것이 예수의 대속이다.
식탁에 올릴 음식은 몇 가지이다.
오늘날 건강한 식단처럼 보이는 ‘고기, 나물, 밥(떡)’
‘양고기, 쓴 나물, 누룩을 넣지 않는 떡!’
먼저 양은 흠 없는 일 년 된 숫양을 미리 사흘 정도 구별해서
지켜보고 정한 날에 가장이 죽여 피는 따로 담아 둔다.
고기는 전체를 구워 먹을 때,
이때 쓴 나물, 누룩 없는 떡을 함께 곁들어 먹는다.
복장은 오분 대기조처럼 완전군장하고 빨리 먹어야 한다.
물론 집 안 청소는 첫날 빡세게 누룩, 곰팡이 등 완전 제거하고,
일주일 내내 효소 없는 빵을 먹으며
“아~ 옛날에 이렇게 노예로 살았지, 다시는 죄짓고 살지 말아야지”
무교병을 지킨다.
양의 피는 문을 둘러싼 네 개의 기둥 가운데 사람들이 밟을 수 있는 문지방을 제외한 세 개에 발라야 한다.
죽음의 사자가 그 피를 볼 때 넘어가는 유월절이 여기서 나왔다.
누가 봐도 예수님을 상징하는데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안타깝다.
십자가를 지기 전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나를 기념하라’ 했을 때,
‘여호와의 기념일로 지켜라.’ 하나님의 신적 명령과 같다.
이것은 내 몸이요
이것은 내 피라 말씀하신 예수께서
일 년 된 흠 없는 숫양을 전부를 태우듯,
십자가에서 자신의 전부를 드렸고,
문선줄에 피를 바르듯, 십자가에서 그 피를 바르셨다.
‘쓴 나물, 누룩 없는 빵’을 잘근잘근 씹어 먹을 때
다시는 세상으로,
다시는 죄악의 길로 돌아가지 않기를
다짐하고 다짐해야 한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선교지 가기 전 인천 공항에서
마지막 자장면을 먹는 심정으로
400년 노예 생활, 타락을 청산하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삶,
새로운 사명을 품고 살아가 보자!
할렐루야!
(출애굽기 12: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