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브루투스의 패러다임
박근혜와 브루투스의 패러다임
동교동 가신들 이라던 4인방의 노추(老醜)에 이어 이재오가 박근혜를 지지한다는 성명이 발표된 신문을 읽으면서 참으로 심난 하였다. 이재오가 독재정권 시절 민주투사라면 흡사 민주개혁 진영에 등을 돌린 마지막 인물이 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대선전은 아직 초반에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재오의 기사를 읽으며 역설적으로 시저에게 칼을 들이 댄 브루투스의 일화가 생각 났다.
“브루투스, 너 마저?”
지금으로부터 2천년전의 로마 이야기를 아는 척 할 수는 없다. 그저 역사책이나 소설, 영화 등에서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시저는 독재자의 소질이 다분한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로마가 세위를 떨치는데 그가 크게 기여한 공은 있었으나 그렇다고 시저의 독단을 묵과할 원로원이 아니었다.
브루투스는 정치적으로 개인적으로 시저의 무한한 총애를 받았었다. 다 배신해도 부루투스는 끝까지 시저의 곁을 지켜야 할 정도 였다. 하지만 부루투스는 자신이 시저의 암살에 동참한 이유를 이렇게 변명 하였다.
“나는 시저를 사랑 했다. 하지만 로마를 더 사랑한다.”
시저를 해 치우고 나서 부루투스는 로마인들이 모여 있는 광장에서 자신의 애국심을 호소하였다.
“나의 사랑하는 로마 시민 여러분!
잠시 조용히 나의 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인격을 믿고 나의 명예를 생각하여 이 브루투스의 말을 의심치 마십시오. 여러분은 잘 분별하는 마음으로 냉정하게 내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시저을 사랑하는 분이 계신다면, 나는 그에게 이 브루투스의 시저에 대한 사랑이 결코 여러분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씀 드립니다. 이렇게 말씀 드리면 여러분은 그렇다면 무슨 까닭으로 시저를 죽였냐고 나에게 물을 것입니다. 내가 시저를 사랑하는 마음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로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욱 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의 대답입니다.“
한 인간의 말과 글은 그 인간의 모든 것을 말해 준다는 것이 나의 소신이다. 오지랖 넓게 개나 소나 다 교제하지 말라고 충고한 것은 인류문화의 유산이라고 하는 셰익스피어였다. 한 인간의 말과 글에는 그의 지성, 사상, 인격, 가치관, 인간관, 세계관등 모든 것이 드러난다. 결코 숨길 수 없다.
새누리당 박근혜의 어록은 인터넷, 철지난 신문, 잡지등 도처에 널려 있다. 그가 아무리 말을 절제하는 인물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말함으로서 존재하는 인간인 이상 그 긴 세월 동안 입 닫고 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는 젊은 20대 초반부터 국정에 참여한 인물이고 나이 60이 넘은 오늘날까지 정치인의 입장이 아닌가.
유신정권이 패망하고 수년간 은인자중하던 박씨는 1980년 대 후반, 선친을 기리는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치적인 발언을 하기 시작 하였다.
“5.16은 구국의 혁명 이었고, 또 (3선 개헌은) 아버지가 한 번 더 하시길 원하신 거고 그 판단은 국민이 하는 거죠. 또 자립경제와 자주국방을 이루기 위해서 아버지가 유신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유신의 불가피성에 대해서 많은 국민이 동의 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왜곡된 역사를 바로 잡고 싶은 겁니다. 이런 것이 정치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일 했던 사람들 이라면, 5.16에 대해서, 나는 이러저러한 소신으로 참여하고 일 해 왔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돼요. 어떤 비난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래서 참, 그걸 잘 몰랐던 사람들에게 이해를 시켜야 하고, 설득 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런 게 정치죠.”
“나는 아버지에 대해서 그리움으로 꽉 차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참, 억울하게 당하셨는데, 이걸 어떻게 벗겨 드려야 하나......... 유신에 대하여 정말, 그렇게 나쁘게 생각 했다면 그 때 얘기 했어야지..... 부귀영화는 다 누리고 나서 .....
그 때(5.16 쿠데타 전 민주당 정권 때)는 심지어 초등학교 학생들까지 데모를 하고 그랬어요. 그러면 나라가 그렇게 혼란스러운데, 그 때는 북한이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우리의 우위에 있었는데, 공산당이 그 혼란을 그냥 보고 있겠어요? 그러면 공산당이 아니지요. 정말, 여차직하면(여차하면이 표준말) 우리나라가 공산화 될 수도 있는 상황 이었는데.......“
- 1989년 모 방송 인터뷰에서 -
박근혜를 추종하는 정치인들과 추종자들은 한결같이 그가 애국심으로 똘똘 뭉쳐있는 인물이라고 칭송 한다. 그리하여 세속적 결혼도 하지 않고 국가와 국민과 결혼 했다고 강변 한다. 본인 스스로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강변 해 왔다는 것이 맞는 말이다. 이것을 믿는 국민이 대략 4천만 성인 중에 40%가 넘는다는 것이 정설로 되어있다. 하지만 나는 그와 그 추종자들의 주장이 국가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근본적으로 틀려먹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니, 이 표현이 다소 거칠다면 까뮈의 철학적 사유물인 부조리(不條理)를 내 세우겠다.
브루투스는 로마의 공화정을 주창한 인물이었다. 그에 대한 그의 노력과 공로도 인정 받고 있었다. 황제 독재체제에 반하는 체제가 공화정(共和政)이다. B.C.100년 전의 일이다. 예수님이 태어나기도 전에 로마의 브루투스와 원로원은 공화정을 이루려고 독재자의 소질이 다분한 인물인 시저를 암살 하였다. 시저가 아무리 국력신장에 기여한 바가 컸다 하더라도 국가의 정체성이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이 천년 전 로마에 태동 했었다는 얘기로 되는 것이다.
박근혜가 대선을 앞두고 유신독재와 5.16 쿠데타에 대한 그의 인식이 심지어는 보수주의자들로 부터도 반감을 사는 등 부정적으로 확산 되자 그는 마지못해 쿠데타와 유신정권은 국가의 정체성에 반한 것이었으며 나라의 민주주의를 훼손한 것이었다는 성명을 발표 하였다. 그것으로 표면적으로는 여론이 무마 되었다. 그러면 그의 정치적 패러다임까지 쿠페르니쿠스적 전환으로 바뀌었을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2012년, 국가적으로 중차대한 대선을 앞두고 유력한 대선 후보 중 일인인 그는 선친인 장기집권 독재자 대통령에 대한 사랑보다 국가의 사랑이 우선이라는 주장을 한 적이 없다. 천재일우의 기회인 지난 공식 발언에서 그는 브루투스의 진정성에 버금가는 그의 애국심을 증거 할 만 한 발언을 빼 버렸거나 의도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가 나름대로 사죄문을 공식 발표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면 그의 과거사나 과거 발언을 불식 시킬 진정한 민주주의의 영웅이 됐을 수도 있다. 그랬다면 박정희 정권을 부정하는 나 같은 Anti-박근혜 유권자들 중 일부는 오히려 그의 지지자로 돌아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는 보수언론들의 전폭적인 영웅이 되었을 수도 있다. 당장 다음날 아침에 언론은 이렇게 헤드라인을 뽑고 대서 특필 하면서 여론을 유도 했을 것이다.
"박근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 그는 아버지보다 국가를 더 사랑 했다!"
현대는 영웅이 없는 시대라는 말은 이미 1960년대 미국영화에도 등장하던 말이다. 사회에 영웅이 나타나지 않으면 몸살을 한다는 미국사회에서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서민 대중 중에서 수시로 영웅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의 현실은 어떨까? 한국사회는 여전히 영웅을 기다린다는 것이 나의 판단이다. 안철수 현상이 그것을 단적으로 말해 준다. 하지만 한국의 영웅주의는 일단 현실의 벽을 타고 넘지 못하여 좌절 되었다. 하지만 이 좌절이 안철수의 영원한 좌절은 아닐 것이다. 역설적으로 안철수는 영웅이기를 포기함으로서 진정한 현실적 지도자로 거듭 날 수도 있다.
기원전의 로마는 한 사람의 영웅 보다는 로마라는 국가사회의 시스템을 위하여 영웅 시저를 암살 하였다. 박정희를 암살한 김재규가 인류 역사에 대한 견식이 조금만 있었어도 사형대의 마지막 발언에서 브루투스의 말을 차용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박대통령을 존경하고 사랑 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더 사랑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