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있는 풍경 정선 재래시장 & 아우라지
산굽이 물길을 따라 마을이 이어지니 사람 사는 내력이 옛 장터에 모여 흥을 이룬다. 들썩거리는 어깨춤에 정선아리랑 자진 가락이 더 신나고 장터 음식 냄새가 장거리에 가득하다. 출출한 배 달래고 돌아보는 정선 유람길에 아우라지 나룻배도 타보고 동면 계곡 푸른 물줄기에 탁족도 좋다.
‘난장’ 펼친 장터에 흥이 살고 정이 흐른다. 정선 산골짜기 흙냄새 물냄새 품은 나물이며 약초들이 시장 거리를 가득 채우고 골목마다 넘쳐나는 감자떡·감자부꾸미·올창묵·콧등치기국수·옥수수막걸리가 난전에 모인 사람들 손에서 손으로 옮겨가고 여기저기서 왁자지껄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드는 소리에 흥이 산다.
거기에다 주말이?장날이면 장터 공연장 아래에서 ‘정선아리랑’, ‘마술’ 등의 공연이 열리는데 구경꾼이 일이백 명은 족히 넘는다. 그런데 그런 뺐貶?말고 가끔 열리는 난장 중 난장이 있는데, 백호아저씨의 흥겨운 한판 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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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호아저씨의 본업은 장터 엿장수다. ‘채챙채채챙’거리며 놀리는 가위질 소리를 듣자 하니 그 이력이 족히 십 년은 넘었을 것 같은데, 엿장수가 엿 팔다 말고 장구채를 잡는다. 가위장단에 이은 장구장단으로 장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장르의 음악을 들었다 놨다, 이끌었다 뒤쫓았다 하는데, 가락과 가락 사이 리듬과 리듬 사이로 치고 빠지는 장구소리를 듣고 있으면 소나기가 왔다 천둥이 치다 벼락도 한 번 치다가 이내 이슬비 가랑비 부슬비 소리로 잦아들었다가 풀숲으로 ‘스르륵’ 사라지는 뱀 꼬리 같기도 하다가 어느 샌가 또 다시 정선 동강물 가탄마을 섶다리 집어 삼키듯 꿈틀거리고 부딪히며 흐른다.
낮술에 흥겨운 경상도 아줌마 서넛이 백호아저씨 장구 난장판을 에둘러 싸고 어깨를 들썩이는데, 신이 난 백호아저씨는 바람개비처럼 두 팔을 놀려 ‘통 토로로롱 퉁 퉁 퉁 따따닥딱’ 날아가는 가락 하나 뽑아내고 아줌마들 춤사위가 난장을 달군다.
박수 소리에 벌써부터 천막은 들썩거리고 자지러지는 아줌마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백호아저씨의 난장판. ‘쭈쭈바’ 달콤시원한 국물을 쪽쪽 빨아 먹는 시골 아이 볼에는 요즘 보기 힘든 ‘때구정물’이 한두 가닥 말라 있다. 휠체어를 타고 앉은 하얀 머리 할머니는 아직도 엇박자로 박수를 치고 휠체어 뒤에서 그렇게 노는 할머니를 바라보는 주름 깊은 아저씨는 농사지으며 어머니 모시고 사는 착한 농사꾼 효자 아들일 것이 분명하다.
절정의 고비를 넘기고 우아하게 끝을 알리는 식의 계산된 음표와 박자는 소용없는 게 난장판 공연. 난장판을 달구던 백호아저씨의 얼굴에 땀이 소나기고 젖은 옷 밖으로 물기가 흥건하다. 공연은 그렇게 흥의 절정을 넘어 신명으로 이어진다. 백호아저씨도 구경꾼들도 한마당에 섞여 사진을 찍고 시원한 캔맥주가 머리 위로 오가며 ‘잘하데’, ‘허허’ 웃음 섞인 소리 한마디에 백호아저씨 주섬주섬 장구를 들고 생업으로 돌아와 한소리 외친다. “엿 먹어”
정선 관광의 1번지 ‘아우라지’
장터 공연을 뒤로 하고 정선에 가면 꼭 가봐야 할 ‘아우라지’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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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어름치 한 마리가 아우라지 역 앞에 있다. 여행자들을 반기는 어름치 모양의 카페인데 외관이 독특해서 유명세를 타고 있다. 2. 아우라지 처녀상 옆 팔각정자. 예전에는 저 다리가 없었다. 새로 놓은 다리가 자연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 3. 아우라지에 쌓은 돌탑. 강가에 텐트를 치고 오토캠핑도 할 수 있다.
‘송천에 물이 불어나면 홍수가 나고 골지천 강물이 불어나면 장마는 멈춘다’고 아우라지 강을 건너는 뱃사공은 말했다. 평창군 도암면에서 시작된 송천과 삼척군 하장면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만나는 곳이 ‘아우라지’다. 두 물줄기가 어울려 하나가 되어 흐른다고 해서 ‘아우라지’라 불렀다.
두 물길이 만나는 곳은 여울이다. 강폭이 50미터는 넘어 보인다. 제법 큰 돌과 자갈돌이 강바닥에 깔려 있고 그 사이로 물이 흐르며 ‘아우라지, 아우라지’ 노래를 한다. 쉰 목소리가 차라리 구성지게 들리는 아우라지의 아리랑 타령을 들으며 강가로 다가섰다.
강물과 강가 돌멩이, 모래밭, 강둑에서 흔들거리는 키 큰 풀들, 저 멀리 강을 호위하고 있는 산줄기가 어릴 때 물장구치며 놀았던 개울 같았다.
강가의 밤은 쉽게 오지 않았다. 해는 졌지만 아직도 빛이 사방에 남아 있었다. 빛이 스러지면서 어둠이 깔리는 그 순간, 강은 아주 잠깐 동안 부풀어 오르고 진공의 적막이 사위에 퍼진다. 시간은 흐르되 모든 것이 정지된 그 찰나를 지나면 다시 ‘돌돌돌’거리는 여울목 소리가 천둥처럼 들리고, 강 저 아래 물은 낮게 흐른다.
밤이 깊어 모닥불이 닿지 않는 곳에는 어둠이 짙다. 물소리가 낮보다 더 크게 더 가까이에서 들린다. 다 먹은 옥수숫대를 불에 던졌다.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없다가 소주 한 잔에 툭툭 내뱉는 말이 오히려 더 정겹다. 모닥불 속에서 달아오른 옥수숫대가 ‘퍽퍽’거리며 불똥을 튀긴다.
불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여울목 소리는 더 크게 울린다. 강 건너 임 그리는 아우라지 처녀의 노래자락인가, 밤 강은 더 외로워 ‘아우라지 아우라지’ 목을 놓았다.
아우라지 뱃사공아 배 좀 건네주게 싸리골 올동박이 다 떨어진다 떨어진 동박은 낙엽에나 싸이지. 사시장철 임 그리워서 나는 못 살겠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나를 넘겨~~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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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00년이 넘은 백전리 물레방아 2. 정선 재래시장에서 파는 시장 길거리 음식 3. 정선 재래시장 공연장에서 열리는 장터공연. 정선아리랑 가락은 사람을 울리고 웃긴다. 4. 정선 재래시장에서는 정선아리랑 공연 이외에도 그때마다 마술공연 등이 다채롭게 펼쳐진다. 사진은 장터에서 엿을 파는 아저씨가 즉석에서 펼치는 ‘난장’ 5. 한양 천리 뗏목 물길의 시작지점인 아우라지에 당시를 재현한 뗏목이 떠있다.
100년 전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강원도 정선군 동면 백전리는 100년 전 물레방아가 남아 있는 마을이다. 마을 사람들이 하는 말로는 그 전부터 사람은 살고 있었는데 골짜기 따라 네댓 집이 전부였고 화전밭 일구고 살았다고 한다. 시작이야 어찌 됐든 본격적으로 마을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지는 한 백 년.
사람들은 산자락을 일구기 시작했다. 곡괭이로 찍고 쟁기로 갈아엎는 땅에서 바위와 돌멩이가 한 걸음마다 하나씩 뽑혀나갔다. 처음에는 길을 냈고, 길 옆 산자락에 그렇게 밭을 일궜다. 한 해 두 해 농사일이 끝나는 가을마다 사람들은 산자락 위로 밭을 넓혀갔다. 산을 밭으로 만들어 나가는 가운데 나온 바위와 돌로 쌓은 돌담이 산자락을 휘두르고도 남을 정도였다. 옥수수며 감자는 물론이고, 밭에서 할 수 있는 농사는 다 지었다.
백 년 전 사람들은 용소골에 물레방아를 만들기로 하고 계를 조직했다. 용소골 골짜기 상류 끝없이 물이 솟아나는 용소에서 물을 끌어 나무로 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바꿨다. 그렇게 만들어진 물레방아가 그 골짜기에 여섯 개나 됐다. 물레방아가 하나둘씩 늘면서 마을 또한 번성했고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들어 한때는 이 골짜기에 육십여 가구나 살았다.
곡식을 찧고 빻았던 ‘쿵더쿵’ 물레방아는 백 년 세월 동안 그렇게 끊이지 않고 돌고 있다. 큰비가 오고 태풍이 몰아쳤던 몇몇 해는 물레방아가 고장 나 새로 손질했다. 할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았던 것이다. ‘콸콸콸’ 흐르는 용소의 물길도, 그 물의 힘으로 하루도 쉬지 않고 돌고 있는 물레방아도, 그 물레방아 주변에 집을 짓고 밭을 일구며 살았던 사람들도 모두 희망의 씨앗을 보았던 것이다.
산장다방에서 커피 한잔도 추억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정선군 남면에 있는 옛 다방에 들렀다. 그 다방 이름이 ‘산장다방’이었다.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에~~~" 마담 아줌마는 15년 전 다방을 열면서 이름을 ‘산장’이라고 지었다. 가요 <산장의 여인>이 18번인 마담 아줌마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이른 더위에 냉커피를 시켰다. “먹고 모자라면 얘기하세요!”마담 아줌마는 ‘리필’을 시사하고 돌아서면서 한 마디 남긴다. “내가 얼굴은 사납게 생겼어도 마음은 곱지요? 그래서 산장의 여인이랍니다.” 15년 동안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산장’을 지키고 있는 아줌마는 외로움과 함께 늙었다. 세월이 간다는 건 몸이 늙는 게 아니라 마음이 순해진다는 말이 아줌마 얼굴에도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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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선 특산물인 옥수수. 여름만 되면 정선 옥수수 맛을 생각나게 하는 주인공이다. 2. 정선에 가면 사철 곤드레나물을 살 수 있다. 3. 정선 재래시장에서 파는 감자떡. 쫄깃하고 구수하고 맛이 좋다.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눈에 띄는 건 거울 위 조그만 제비집. 대뜸 물었다. “아줌마 제비집이 있네요?” 돌아오는 답. “뭐 물어올까 기다리는 건 아니에요. 2년 전 집을 짓기에 그냥 놔뒀어요. ‘산장에 제비집’ 어울리잖아요? 한 생명이 우리집에 둥지를 트는데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에요. 아까 얼굴은 사납게 보여도 마음은 곱다고 했잖아요.”
1970년대 식 돼지가족 그림이 액자에 걸려 푸근하고 제비 가족의 행복이 지절대는 산장다방에 앉아 시대를 잊은 공중전화 수화기를 들었다. 이 전화기로 전화를 걸면 아마도 30년 전 어느 누군가가 전화를 받을 것만 같았다. ‘뚜 뚜 뚜’ 통화중. 그도 내게 전화를 하고 있는 걸까? ‘아무도 날 찾는 이 없는 외로운’ 이 산장으로….
여|행|길|라|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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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부터) 메밀국죽 ,곤드레밥 ,올창묵과 콧등치기국수
<정선에 가면 꼭 먹어야할 음식들>
메밀국죽 메밀을 거두고 박박 씻어 삶아 냉동시킨다. 그래야 메밀철이 아니라도 메밀국죽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저장해 놓은 메밀이 메밀국죽의 주재료다. 집된장과 멸치가루로 국물 맛을 낸다. 파와 콩나물·두부·집고추장 등도 들어간다. 기호에 따라 마늘과 고추 다진 것을 넣어 먹는다. 집에서 담근 된장과 고추장과 멸치가루의 맛이 어우러져 거칠면서도 구수한 맛이 우러난다. 햇볕 좋은 가을 누렇게 익어가는 벼포기의 향기 같기도 하고, 풀 먹인 할아버지 삼베옷 향기 같기도 하고, 고향 마을 저녁 짓는 굴뚝 연기의 향기 같기도 하다.
곤드레밥 곤드레밥은 쪄서 말린 곤드레나물을 넣어 밥을 한 것이다. 말린 나물을 물에 불리고 박박 씻어서 준비한다. 밥을 할 때 나물을 쌀 위에 얹고 들기름을 두세 숟가락(4인분 밥을 할 때 기준이다) 정도 넣고 밥을 한다. 화전민들이 봄나물로 보릿고개를 넘으며 생명을 연명하던 시절에는 들기름도 넣지 않았다. 그냥 조·귀리·보리·메밀 같은 잡곡밥을 하면서 나물도 얹어서 밥을 한 것이다. 구수한 나물 맛이 좋다. 양념장을 넣어 비벼 먹는다.
감자옹심이 감자옹심이는 전분이 섞인 점액성 국물에 감자와 경단과 같은 밀가루 뭉친 것을 넣어 먹는 것인데 식사보다는 별미 혹은 간식이다. 점액성 전분국물이 열기를 머금고 있고 그 맛과 성질이 부드러워서 술 먹은 다음날 술도 깨고 속도 보호하기에 좋은 음식이다.
올창묵 올창묵은 옥수수가루와 전분 등으로 반죽을 쑤고 3~5밀리미터 정도 직경의 작은 구멍이 많이 뚫린 용기에 넣고 압착을 해서 찬물이 담긴 다라로 밀어내서 만드는데 그 모양이 올챙이 같다 해서 올창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렇게 만든 재료에 양념장을 뿌려 그냥 먹기도 하고 국물을 만들어 숟가락으로 떠먹기도 한다.
콧등치기국수 콧등치기국수는 메밀과 밀가루를 섞어서 칼국수 면발처럼 면을 넓게 뽑아낸다. 면의 길이가 길지 않은 게 원래 정선식인데 요새는 대부분 면을 길게 뽑는다. 면을 짧게 뽑는 옛 방식의 콧등치기국수를 ‘후루룩’ 입으로 흡입해서 먹다 보면 면이 입안으로 들어가면서 면 끝이 콧등을 친다. 그래서 이름도 ‘콧등치기국수’다.
<가는 길> 자가용 ·영동고속도로 새말IC - 안흥 - 평창 - 정선 ·중앙고속도로 제천IC - 제천 - 영월 - 정선
/ 이코노미플러스 글·사진 | 장태동 여행작가 jjcokr8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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