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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눅 6:43-49절
제 목 :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안다
일 시 : 2021. 1. 10.
누가복음 6:43-49/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45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46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성경을 보면 사람과 나무는 서로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서로 닮은 점이 있고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나무를 통해서 사람의 됨됨이를 보고 알 수 있도록 사람을 나무로 예로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만약 나 자신을 나무로 비유한다면 나는 어떤 나무에 속할까요? 나는 좋은 나무입니까? 나쁜 나무입니까? 이 시간에는 말씀을 들으면서 그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고, 또한 포도원에 심겨진 열매 맺지 못하는 3년 된 감람나무를 찍어 버리겠다고 하셨고, 열매 맺지 않는 포도나무 가지를 농부인 아버지께서 제거해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나무와 같은 존재인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만약 열매가 없다면 그 나무는 저주를 받거나 베어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을 들어보겠습니다.
1. 먼저 과일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좋고 나쁨을 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44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은 모든 나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관상용 나무나 일반나무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으며, 사람을 상징하는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감람나무와 같은 과일나무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일나무가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열매를 맺는 시기가 되었을 때 그 나무에 달린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좋은 열매를 많이 맺었다면 그 나무는 반드시 좋은 나무입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거나 나쁜 열매를 맺는다면 그 나무가 아무리 크고 아름답게 보여도 분명히 나쁜 나무입니다. 그래서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가 없고,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와 열매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열매를 통해서 알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원 농부이신 하나님 아버지와 과일 농사를 짓는 농부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2. 그렇다면 과일나무처럼 사람의 좋고 나쁨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는 것처럼 사람이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 그리고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본문 말씀에 따르면 두 가지로 사람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습니다.
1) 그 사람이 하는 말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45절에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람을 쉽게 알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그가 하는 말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즉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에서 선한 것(말)을 내기 때문이며,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말)을 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든지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병든 사람인지 건강한 사람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을 들어보고 사람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직접 만나서 살아 보지 않는 상태에서 인터넷이나 방송을 통해서 그가 하는 말을 듣고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절반의 평가에 불과합니다. 직접 살아 보아야 하고 만나서 교제해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사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삶을 모른 채 말만 들어보아서는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46절에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 특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순종하고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즉 언행이 일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마태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7:21-23/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을 향하여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 날에(심판의 날)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말을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 노릇 하는 것과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많은 권능을 행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를 보시면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예언 기도를 해 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귀신을 쫓아내는 축사사역을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또한 권능을 행하는 분들, 즉 죽은 자를 살리고 병을 고치는 등의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은사를 가진 분들이 큰 교회를 담임하고 있고 또한 돈이 많은 부자로 사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선지자나 귀신을 쫓아내는 것과 권능을 행하는 것은 모두가 성령의 아홉 가지 은사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즉 예언의 은사와 믿음의 은사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있는 은사를 보고 그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따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 우리 나라에 큰 교회들은 대부분은 은사를 통해서 만들어진 교회들입니다. 능력을 행하고, 병을 고치고, 예언의 은사가 있으면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 들기 때문입니다. 그렇죠?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은사는 전도하면서 사용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전도자를 전도의 현장으로 보내시면서 권능을 주시고 병을 고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마10:1/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제자들에게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왜 주셨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바로 뒤에 가서 보면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마10:5-8/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6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12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라고 말하고, 그리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마10:1절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권능은 그냥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아니라 천국복음을 전파하면서 전도의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고쳐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은사자들은 전도하면서 은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소문을 듣고 자신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예언기도를 해 주고 병을 고쳐 주는 일을 행합니다. 물론 그런 일을 통해서 불신자가 예수님을 믿는 경우도 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믿는 자들이 은사자를 추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주여 주여 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고 책망한 사람들이 바로 은사만 사용하고 전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23절에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 때에 란 모든 사람들을 심판하시는 바로 그 순간에 주님은 그들에게 밝히 말씀하신다고 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지금까지 은사와 능력이 있어서 큰 권능을 행하여 큰 교회로 성장하면 대단한 성공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큰 교회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예외가 있습니다. 부산세계로교회, 안산동산교회, 세계로금란교회 등과 같은 대부분의 교회들은 목사님이 직접 전도하면서 세워진 교회입니다. 목사님이 직접 전도해서 세워진 교회는 주님의 뜻을 행한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들은 또한 힘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직접 전도해서 세우지 않고 이미 세워진 큰 교회로 청빙을 받아 간 교회의 목사님들은 성도들을 관리만했지 자신이 직접 전도하고 훈련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이 없습니다. 주님은 몰려 드는 성도들을 관리하는 목회가 아니라 직접 불신자들에게 가서 전도해서 그들을 제자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입니까?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까? 마지막 날에 주님의 심판 대 앞에서 버림받는 사람이 아니라 칭찬 듣고 상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칭찬을 듣고 상받는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으로 돌아갑니다. 본문 47절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은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인데 바로 그런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48-49절까지를 보시겠습니다.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비유와 함께 비유에 대한 해석까지 동시에 주어집니다. 먼저 48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은 집을 짓는 것을 비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어떤 사람인지 비유로 설명합니다. 그런 사람은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49절에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어떤 사람과 같습니까? 그런 사람은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습니다. 탁류가 부딪치매 탁류란 홍수가 났을 때 붉은 흙탕물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바로 그 때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집을 짓는 것과 같은 데 어떤 사람은 흙 위에 집을 짓고 어떤 사람은 주추위에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의 결과는 홍수가 났을 때 무너지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알 수 있다고 말씀했습니다. 인생집을 흙 위에 짓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고 인생 집을 주추위에 짓는 사람은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경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계명이 있는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이 두 가지를 실천하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지상명령입니다. 전도해서 사람들을 제자로 삶는 것입니다.
4. 주님은 예수님께 나아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와 그렇지 않는 자를 집을 짓는 비유로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입니다. 무너지지 않는 인생집을 지으려고 하면 다음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1) 예수님은 가장 먼저 내게 나아와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 합니다. 특히 예수님이 육체를 가지고 계실 때에는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가야했습니다. 자신의 집에서 아무리 기도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 사람이 걸을 수 없는 불구자인 경우나, 수족을 쓸 수 없는 경우에는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예수님이 직접 그 사람을 찾아갔습니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가 바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 외에는 모두가 직접 예수님께로 찾아가야 했습니다. 심지어 친구들의 도움으로 들것에 실려서라고 예수님을 찾아가야 예수님을 만나고 은혜와 복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고 하는데 정말 잘못된 것입니다. 영상예배를 드리는 것은 정상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서 어쩔 수 없이 교회에 못 나가는 경우는 영상예배를 드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멀쩡한 사람에게 무조건 비대면 예배를 드리라는 것은 죄악입니다. 반드시 예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배당에만 계시냐고? 예수님은 어디든지 다 계시는데 왜 예배당으로 가야 하느냐고? 말입니다. 물론 그렇게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고, 또한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두 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은 교회이며 예배당입니다.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는 장소가 곧 예배당인데 바로 그곳으로 가야 합니다. 집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잘못되었습니다. 빨리 대면예배로 돌아가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내 말을 듣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는 목적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이 교회 오는 목적은 친교를 하거나 기도만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예배를 통해서 설교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께서 목사님을 통해서 여러 분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 예배당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설교말씀을 듣습니다. 설교말씀에는 항상 분명한 주님의 메세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그 날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어떻게 믿고 어떻게 살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기 때문에 인생집을 모래나 흙 위에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홍수가 나면 무너집니다.
3) 세 번째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설교를 듣기만 하는 것은 절반의 성공도 못됩니다. 설교 말씀을 들었으면 그대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 47절에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말씀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고 깨달은 것으로 끝나면 그것은 잘못된 신앙생활입니다. 반드시 들었으면 그것을 직접 실천을 해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설교를 통해서 기도하라고 했으면 기도를 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암송하라고 했으면 말씀을 암송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해서 전도하라고 했으면 직접 나가서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 외에도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움직여서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기 때문에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예언과 권능과 기적과 표적을 행하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반드시 필요합니다.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은사를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면 정말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 사용하면 받지 않는 것보다 못합니다. 그런 은사는 마귀에게도 있습니다. 절에 승려들도 이단들에게도 그런 능력이 있어서 예언도 하고 표적도 행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를 받았으면 사람들이 몰려 오도록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누구한테요? 불신자들에게 말입니다. 그들에게 전도해서 제자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은사를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기도해야 하고 날마다 전도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행5:42/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이 그렇게 살았으면 성도들도 당연히 사도들을 따라서 그렇게 살았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사도행전에 나오는 빌립 집사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명확한 뜻입니다. 살전5:16-18/항상 기뻐하라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날마다 하루도 쉬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응답이 있든지 없든지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문제가 있을 때만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이며 작정기도 때만 기도하는 것도 잘못된 기도입니다. 기도는 주님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서 대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지? 저는 전도하면서 이것이 가능해졌습니다. 매일 전도의 현장에 나아가면서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고, 모든 일에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슬픔과 우울함이나 낙심과 좌절을 가지고 또는 원망과 불평의 마음을 가지고 전도의 현장에 나아가서는 영혼들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반드시 내가 먼저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고,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하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전도의 현장에서 사람을 만날 때 항상 기뻐하고 모든 일에 감사해야 합니다. 또한 전도자로서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살전5:16-18절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하면 반드시 전도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전도자의 삶을 살았던 사도들은 항상 기뻐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행5:41/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고 했습니다. 전도하면서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그 뒤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행5:41-42/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42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능욕을 받고 핍박을 받으면서도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전도자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결론입니다. 나무는 무엇으로 좋고 나쁜지를 안다고 했습니까? 그 열매로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은 무엇으로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안다고 했습니까? 두 가지를 통해서 안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말을 통해서 알 수 있고, 두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말은 성경말씀과 일치하는 믿음의 말과 긍정적인 말을 합니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입니까? 듣기만 하는 사람이거나 말만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예수님께 나아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이야 말로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아멘
● 홀로 앉으십시오.
1. 눅6:43-49절을 읽고 나의 인생집은 어떠한지 생각해봅시다.
■ 함께 나누십시오.
1.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딸 수가 없고, 찔레에서 포도를 딸 수가 없는 이유는?
2. 사람의 좋고 나쁨을 알 수 있는 두 가지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3.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4. 은사자로 사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어떤 관계입니까?
5. 흙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주추위에 집을 짓는 사람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6. 무너지지 않는 인생집을 짓는 세 가지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7.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떻게 사는 것입니까?
1.나무와 열매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있기때문입니다
2.그사람이 하는 말로 알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3.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자가 들어갑니다
4.은사를 주신목적도 전도하는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것도 전도이기에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5.말씀을 듣고도 행하지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자는흙위에 집을짓는 사람과 같고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자는 주추위에 짓는 사람입니다
6.예수님께 나가야합니다,예수님의 말씀을 들어야합니다,들은말씀대로 행해야합니다
7.항상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것입니다
아멘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