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학교폭력 관련 검색어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이에 학교폭력과 관련된 이전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던 중 2006년께 필자가 언급된 언론 보도를 접하면서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당시 필자가 중학교 교사 시절로 어느덧 20여 년 전의 일이다. 제자 두 명의 사소한 장난이 주먹다짐까지 야기 시킨 일화다. 장난으로 작은 돌멩이를 던진 것이 다툼의 발단이 됐다. 교장 선생님이 훈화 말씀 도중에 뒷줄에 있던 A학생이 아주 작은 돌멩이로 B학생을 맞췄다. 그런데 평소 둘은 친한 친구 사이였는데, 이날 B학생이 엄마한테 꾸중을 듣고 등교한 터라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B학생이 “하지 마라”는 강력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A학생의 장난은 멈추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둘의 다툼은 교실로 들어가는 도중에 시작됐고, 급기야 교실 유리창이 깨지는 사태까지 불러오면서 담임 선생님을 거쳐 체육 선생인 필자 앞에 서게 됐다.
필자는 평소에 학생들에게 벌을 줄 때는 웃음박수를 유도하고 있어 그날도 어김없이 둘이 마주 보고 박수를 치도록 했다. 그러자 이들은 언제 다툼을 했는지 무색하게 웃기 시작했다. 서로 마주 보고 있으면 어색한 상대방의 모습에 웃음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처럼 교사의 훈계가 필요한 학생들에게는 웃음박수를 치면서 웃게 했더니 서로 감정을 상하지 않고 불편했던 상황이 원만하게 해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필자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고 난 후에 그 학교에 사소한 다툼이 학부모 싸움으로 번지고 급기야 교육부 감사까지 받았다는 해당 학교 교장 선생님의 하소연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그동안 코로나19로 학교 수업이 비대면으로 진행되면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접수가 현저하게 줄었다. 그러나 대면 수업으로 전환이 된 이후에는 학교폭력과 관련한 접수가 늘고 있다는 우울한 언론보도를 접했다.
이를 대변하듯 최근 방영돼 인기를 끌고 있는 드라마의 상당수는 학교폭력을 소재로 하고 있다. ‘더 글로리’, ‘3인칭 복수’, ‘소년심판’, ‘돼지의 왕’ 등이 그렇다. 왜 요즘 인기 있는 드라마들이 하나같이 학교폭력을 소재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상업적으로 높은 시청률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단지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가정에 웃음이 사라지면 교실에 웃음이 사라지고 교실에 웃음이 사라지면 사회에 웃음이 사라진다. 필자가 <사람을 살리는 웃음>이라는 책을 통해서 ‘웃음생명운동’을 범국민 운동으로 하자고 제안하는 이유도 이 사회를 살려내야 하는 절박감 때문이다. 웃음은 사람들이 감정을 조절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개선하는데 도움을 주는 인간관계 치료 방법이다. 웃음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며, 긍정적인 감정과 이해를 돕는데 도움을 준다. 또한 웃음은 사람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갈등과 싸움을 피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학교 환경에 좋은 기분을 일으킬 수 있다. 웃음은 문제해결과 소통 능력을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교육현장에서 학교폭력을 줄이기 위해서 첫째, 학교에서 모든 학생들의 권리를 존중하고 학교 내 학생들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교육 프로그램의 도입이 필요하다. 둘째, 학교 교육의 주체인 교사의 행복감 및 직업의 만족도를 높여줄 수 있는 법규의 재정비와 복지의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 셋째, 가정에서의 행복감을 높이기 위한 학부모의 노력 등이 필요하다. 그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지만 가정에서의 부모, 학교에서의 교사와 학생 개인의 삼각 구조가 원활하게 작동이 돼야만 학교폭력이라는 사회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실을 반드시 숙지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학교 현장에서 ‘어깨동무 웃음교육’을 강조해 왔다. 디지털화된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웃음이 사라져 가는 세상에서 살게 되고, 회색빛 도시에서 사는 우리 아이들도 ‘우울증’이라는 무서운 질병을 피할 수 없다. 내가 한 ’장난’이 누구에겐가는 ‘학폭’이 될 수 있다. 한 아이라도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은, 한 아이의 웃는 얼굴이 우리 사회 모두를 밝게 만들 수 있다는 마음과 같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