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종시에 살다보니 그간 활동이 모두 서울지역이라 자주 서울 행차를 하게 된다.
혼자 가는데 차를 갖고 가기에는 너무 비 경제적이고 해서 기차를 이용한다.
제일 저렴한게 통일호 그 다음이 새마을호 제일 비싼게 KTX 이다.
열차들의 운임은 모두 경노할인이 30 % 나 되니 통일호는 조치원에서 서울역까지
5,600원, 새마을호는 8천원선, KTX는 오송에서 서울역까지 만2 천원선이다.
시간으로는 통일호가 1시간 반, 새마을호는 겨우 15분여 정도 빠르고, KTX는 45분이 걸린다.
가성비가 통일호와 KTX는 일리가 있다.
너무 오랜만에 기차여행을 하니 꼭 소풍가는 기분이다.
시간을 활용하느라 책 한권을 갖고 가면서 보게 된다.
어느때는 보지 못한 신문을 갖고 타서 정독을 다 해버린다.
이용하는 역의 건물이 신규 건물이라 옛날 이 서울 역 건물을
가 볼 기회가 없던차에 시간을 내서 한번 가 보았다.
지금은 역사 문화공간으로만 사용 된다고 한다. 전시회 화랑으로 사용한다고.
나는 이 서울역과의 인연이 고등학교 3학년 때 역무 실습을 나온것이 인연이다.
용산공업고등학교 기계과 3회 졸업생인데 우리 이전의 학교가 바로
국립고등학교였던 교통고등학교이다. 철도관련 학교로서 철도원을 양성하던
고등학교였다. 그 국립학교가 공립학교로 바뀌면서 이름도 용산공업고등학교로 되 버렸다.
모든 교육커리큘럼은 교통고등학교의 커리큘럼 그대로였고 가르치던 교사들도
그때의 교통고등학교 교사들이 그대로였다. 우리 기계과에서는 기관차 운전하는 기관사로서
또는 기관차 객차 제작 수리하는 공작창이란 공장으로 들어가기도 하는 학과였다.
기관차 운전법규까지도 배웠으니까. 학교 모표와 배찌도 그대로 사용하였다가 우리가 3학년때
모표는 그대로 하고 배찌만 바꿨었다. 서울역에 실습와서 역장님이 하던 첫마디가 내게는
평생 기억되는 서비스란 무엇인가였다. 아침에 역으로 나올 때 집에다가 내 안에있는 모든
부정적인 자존심은 두고 오라는 말씀. 고객을 상대함에 있어서 그것이 있으면 고객만족을 못 시킨다고
하신 이 말씀이 나에게 평생 대 고객업무의 기본으로 자리하였다.
차표를 판매하는 창구에서부터 플래트홈에서의 안내. 개찰구인 입구에서 차표 검침 천공 작업과
나가는 사람들에게서 차표 회수와 폐기 도장찍기. 수화물 입고확인과 화물 선적 요령 등등을 배웠다.
1966년도 봄 일학기였으니. 벌써 50년이 흘렀다. 반세기 전의 일인데 바로 엇그제 일 같은 생각이 든다.
일요일인 오늘 9월25일 현대전자 옛 동료의 아들 결혼식때문에 올라와서 시간이 있어 시청 앞까지 걸어서
이리저리 그간 변화를 볼겸해서 걸었다. 서울역 앞에는 왠 노숙자들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다.
이들에게 일 할수있는 게 많을터인데. 불구자는 하나도 었다. 공공취로사업이란게 있을터인데 그런데서
일을 하면 되지 않을까. 왜 저리 그냥 방치해 두는지 이게 민주화인가?
커다란 빌딩 앞에는 어김없이 이런 조각품들이 있다.
이게 건물 지을 때 필수조건일 때가 있었다.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다민.
이 남대문은 어느 미친놈때문에 전소가 되어 다시 지은 건물이다.
그러니 역사적 가치는 없어진 건물이 되 버렸다. 참으로 안타까운 문화재 관리 소홀로
우리의 커다란 자긍심이 날라가 버린 것이다. 아름다운 남대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