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12 경천 화암사 불명산 등산
자유인 조동화는 이리중학 동창생 최성림친구가 기아k8을 아들이 선물로 사주어 운전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시승식하기로 약속하여 경천의 작지만 단청도 하지 않은 안도현시인이 잘 늙은절로 표현한 화암사를 정귀열친구와 세명이서 답사하고 480m 불명산을 등산하였다.
기아k8은 계기판과 네비게이션이 혁신적으로 변모하였다.
운전석 뒤좌석에도 휴대폰 충전용 usb가 2개 설치되였다.
기아k8은 현대의 그랜져급과 동급정도로 느껴졌다.
완주군 경천면에 있는 화암사는 “잘 늙은 절 한 채” 라는 표현이 잘 어울릴 성 싶도록 인적이 드물고 자연이 살아 숨쉬는 불명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허름한 사찰이지만 세월의 강을 건너오며 천년고찰로 보존상태가 괜찮아 보였다.
화암사를 답사하고 그리높지 않은 불명산(480m) 정상까지 올라 사방을 구경하니 대둔산 자락의 봉우리들이 풍광이 아름다워 감탄하였다.
친구 세명이서 허름한 사찰 화암사의 망중한(忙中閑)은 지난시절을 회고하고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누가 인생은 나그네라 말했던가?
덧없는 세월의 흐름속에 한세기를 풍미했던 사람들도 떠나가고 인생무상 아니던가?
그누가 속세를 가리켜 잠깐의 꿈속세상이라 했던가?
인생은 한조각 뜬구름 같은것이며 자연에 순응하며, 오직 한번의 인생 소중한 시간을 즐겁게 살자.
☛익산출발 9:00 화암사 10:00 불명산정상11:30 중식 12:30 귀착 14:30
화암사극락전 보물316호를 사진촬영하다.
화암사극락전은 일반사찰의 본당 대웅전(불상이 모셔져 있다)에 해당하는 것으로 극락전이라 현판이 달려있었다.
이리중학 동창생 정귀열친구는 대선암 불교신도회회장이며 독실한 불교신자로서 화암사 답사하던중 극락전에 들어가 3배를 하고 시주도 하는 것을 보았다.
자유인 조동화는 극락전 안으로 들어가 실내촬영금지의 표찰을 무시한 채 불상과 동종등을 휴태폰으로 촬영후 밖으로 나오니 주지스님께서 야단을 치는데 하시는 말씀이 “CCTV로 확인하였다 하면서 한번만 찍으면 되었지 몇 번을 사진을 찍었다”고 한소리 들었소이다.
화암사극락전은 보물316호로 지정되었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에 맞배지붕 형태이며 국내에서 유일한 하앙식(下昻式) 구조로서 건축물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앙(下昻)이란 대들보와 서까래에 걸친 목재가 지렛대 역할을 해 처마의 하중을 버텨주는 공법으로, 하앙식 건축물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흔하지만 우리나라에선 화암사 극락전이 유일하게 남아있는 구조다.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극락전은 1981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조선 선조 38년(1605)에 세운 것으로 되어 있다.
화암사(花巖寺)
전라북도 완주군 경천면(庚川面) 가천리(佳川里) 불명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
694년(신라 진성여왕 3) 일교국사가 창건하였으며, 부분적인 중건 중수를 거쳐 1425년(세종 7) 해총(海聰)이 중창하였다. 불명산의 원시림이 병풍처럼 둘러 있으며, 이곳에서 원효, 의상대사가 수도하였고, 설총이 공부하였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많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국내 유일의 하앙식 건축양식인 화암사극락전(보물 제663호), 한국 고대 건축양식을 대표하는 화암사 우화루(보물 제662호)를 비롯해 화암사동종(전북유형문화재 제40호), 화암사 중창비(전북유형문화재 제94호) 등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화암사 우화루(花巖寺 雨花樓)
보물 제662호
우화루는 이 사찰의 강당인데 주불전인 극락전(極樂殿) 앞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사진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반누각식(半樓閣式) 건물로 바깥쪽에서 보면 중층으로 되어 있으나 안마당 쪽에서 보면 단층이다.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이 갖춰진 겹처마이고 지붕은 팔작 형식이다. 처마 아래에는 바깥쪽에 '불명산화암사(佛明山花巖寺)', 안쪽에 '우화루'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화암사(花巖寺), 내 사랑
안도현
人間世(인간세) 바깥에 있는 줄 알았습니다
처음에는 나를 미워하는지 턱 돌아앉아
곁눈질 한번 보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 화암사를 찾아가기로 하였습니다
세상한테 쫓기어 산속으로 도망가는게 아니라
마음이 이끄는 길로 가고 싶었습니다
계곡이 나오면 외나무다리가 되고
벼랑이 막아서면 허리를 낮추었습니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
구름한테 들키지 않으려고
아예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
그 절집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순간
그 절집 형체도 이름도 없어지고,
구름의 어깨를 치고 가는 불명산 능선 한자락 같은
참회가 가슴을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마을에서 온 햇볕이
화암사 안마당에 먼저 와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뒤를 그저 쫓아다니기만 하였습니다
화암사, 내 사랑
찾아가는 길을 굳이 열려주지는 않으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