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증거 부족, 방어권 보장 필요"…검찰 완패 판정
기각 사유 이례적 상세…수사 정당성 및 동력 상실
이재명, 당내 영향력 강화…반윤석열 투쟁 드라이브
"사법부, 인권 최후 보루 증명…희망 주는 정치 돼야"
민주 "무도한 왜곡·조작 수사, 검찰독재 정권에 경종"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마중 나온 국회의원, 당원,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2023.9.27. 이호 사진작가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윤석열 정치 검찰의 하명 수사, 정치 보복성 수사에 철퇴가 내려졌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구속 시도가 증명된 만큼 이 대표의 대정부·여당 투쟁 선명성이 강화되고, 당내 장악력도 더욱 공고해질 전망이다.
서울중앙지법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6일 오전 10시 7분부터 오후 7시 24분쯤까지 총 9시간 17분 동안 이 대표 대해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27일 오전 2시 25분 쯤 영장을 기각했다.
법원 "증거 부족, 방어권 보장 필요"…검찰 완패 판정
유 부장판사는 먼저 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성남도시개발공사의 사업 참여 배제 부분은 피의자(이재명 대표)의 지위, 관련 결재 문건,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이에 관한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한 현 시점에서 사실관계 내지 법리적 측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고 지적했다.
대북송금과 관련해서도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진술을 비롯한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피의자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고 했다.
검찰의 증거인멸 우려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부장판사는 "위증교사 및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 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대북송금의 경우,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해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다"면서도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점, 이화영의 기존 수사기관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진술의 변화는 결국 진술 신빙성 여부의 판단 영역인 점, 별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피의자의 상황 및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하여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6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리는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심사)을 받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2023.9.26 연합뉴스
기각 사유 이례적으로 상세…수사 정당성 및 동력 상실
유 부장판사는 일반 사건의 구속영장 기각 사유와 달리 이례적으로 긴 분량으로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사안의 중대성 등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백현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직접증거 자체가 부족하다"고 한 점, 대북송금과 관련해 "피의자(이재명 대표)가 직접적으로 개입했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하다"고 한 점 등은 특정 인물의 일방 진술에만 의존하고 직접적인 물증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검찰에 대해 법원이 '완패' 판정을 내린 것으로 해석된다.
검찰은 이날 이 대표의 구속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해 1600쪽에 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고 500쪽 분량의 프레젠테이션(PPT)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럼에도 영장이 기각된 것은 검찰이 그동안 구체적인 물증도 없는 무리한 수사를 해왔다는 점을 방증하기도 한다. 전무후무한 300회 이상의 압수수색을 하고도 구속영장을 청구한 데 대해서도 법원은 과도하다고 '철퇴'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올해 두 차례나 구속영장 청구를 하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제1야당 대표를 영장심사대에 세웠음에도, 법원에 구속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는 완벽하게 실패했다. 법원이 검찰의 수사에 제동을 걸면서, 검찰의 이 대표 관련 수사 동력이 완전하게 상실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재명 당내 영향력 강화…반윤석열 투쟁 드라이브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이 대표의 당내 영향력은 더욱 강화될 전망이다. 이미 지난 21일 민주당 내 '반란표'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비명계 의원에 대해 역풍이 불면서 당 안팎에선 이재명 대표 중심으로 결집하는 양상이 뚜렷해졌다.
이 대표가 체포동의안 표결 하루 전 페이스북에 사실상 부결 요구를 했음에도 가결이라는 결과가 나오자 지지자들은 의원들을 성토하고 이 대표를 중심으로 더욱 결집했다. 가결표를 던진 의원들이 이를 공개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고,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기각 탄원서에 민주당 의원 161명이 서명하는 등 의원들도 '이재명 지키기'에 동참하는 양상이 됐다.
이 대표는 당무에 완벽하게 복귀하며 윤석열 정권에 대한 투쟁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1차 관문은 다음 달 11일 예정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가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날 영장심사를 받으며 지팡이를 짚은 채 휘청이는 등 24일간의 단식으로 인한 후유증이 일부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강서구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 지지자들을 결집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투기 중단 국민행진'을 시작하기 전 결의발언을 하고 있다. 2023.8.25. 연합뉴스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지만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남은 정기국회 기간 노란봉투법, 방송법 등 개혁 입법 드라이브를 걸고 동시에 반윤석열 정권 투쟁을 본격화하는 등 반격에 나설 전망이다. 이 대표 스스로 '국민항쟁'을 선언한 만큼 퇴로가 없는 상황이다. 연말 쌍 특검(50억 클럽 특검, 김건희 특검)을 공세적으로 추진함과 동시에 기존에 추진하던 양평 고속도로, 오송 참사, 잼버리 사태, 방송 장악 등 4대 국정조사에도 속도감있게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현역 비명계 의원 등의 미온적 태도로 추진력을 상실했던 '김은경 혁신안'도 재추진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현역의원들이 체포동의안 가결 사태로 지지층의 맹비난을 받는 상황이어서 혁신안을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대의원제 폐지와 정치 신인에게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는 혁신안의 관철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 인권의 최후 보루 증명…정치가 국민에 희망 줘야"
이 대표는 오전 3시 50분쯤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던 민주당 의원, 지지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지지자들은 "이재명, 이재명"이라고 연호했다. 이 대표는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떠나기 전 취재진과 만나 "늦은 시간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아직 잠 못 이루고 이 장면을 지켜보신 국민들에게 먼저 감사드린다"며 "인권의 최후의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정치는 언제나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야, 정부 모두 잊지 말고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그런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길 바란다"고 했다. 그러면서 "즐거워해 마땅한 추석이 있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우리의 경제, 민생의 상황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 없다"며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이 나라 미래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를 정부·여당에도, 정치권 모두에도 부탁드린다"고 했다.
서울중앙지법이 27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 뒤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대표가 27일 경기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며 발언하고 있다. 2023.9.27. 연합뉴스
민주 "무도한 왜곡·조작 수사, 검찰독재 정권에 경종"
민주당 권칠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은 야당 탄압과 정적 제거에 혈안이 된 윤석열 검찰독재 정권에 경종을 울린 것"이라며 "사필귀정"이라고 밝혔다.
권 수석대변인은 "윤석열 정권과 정치검찰의 무도한 왜곡·조작 수사는 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다"며 "이제 이 대표를 겨냥한 비열한 검찰권 행사를 멈춰야 할 시간"이라고 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야당 탄압에만 몰두하며 민생과 경제를 내팽개친 무능하고 무책임한 정권이었음이 명명백백해졌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의 본분으로, 검찰은 검찰의 본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권 수석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불통의 폭정을 멈추고 국민 앞에 나와 머리 숙여 사죄하라. 내각 총사퇴를 통한 인적 쇄신 및 국정 기조의 대전환에 나서라"며 "있지도 않은 사법 리스크를 들먹이며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 '방탄'의 딱지를 붙이기에 여념 없었던 국민의힘도 사죄하라"라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무능과 실정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파수꾼으로 국민의 삶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더욱 힘쓰겠다"고 덧붙였다.
대통령실은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