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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이 불거진 것은 2015년이었다. 설립 이후 4년 동안 계속해서 적자를 내던 기업이 그 해에 갑자기 1조 9,000억 원의 흑자를 낸 것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뭔가 잘 해서 흑자가 난 것 아닐까? 아니다. 2015년 로직스의 영업 손실은 2,036억 원으로 전년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런데도 엄청난 흑자가 난 것이다. 웬일일까? 로직스의 일방적인 주장 때문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2015년, 로직스는 대뜸 자기의 종속회사였던 에피스가 더 이상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가 되었다고 주장했다.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져서 에피스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력이 상실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제회계기준에 따르면 모회사의 지배력이 약해진 경우에 종속회사를 관계회사로 바꿀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종속회사일 경우 회사 가치를 장부에 적힌 가격인 ‘장부가격’으로 계산하지만, 관계회사일 경우 주식시장에 따른 ‘시장가격’으로 계산하게 되어 있다. 당시 로직스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회계법인으로부터 가치 평가를 받았는데, 삼정과 안진 두 회계법인은 에피스가 무려 4조 8,000억 원의 가치가 있는 회사라고 평가해주었다. 에피스는 장부가격 3,300억 원인 회사에서 순식간에 시장가격 4조 8,000억 원의 회사가 되었다.
이후 로직스는 2016년에 증권거래소에 상장된다. 이상한 점은 여기에도 있다. 당시에 적자 기업은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수 없었다. 하지만 불현듯 증권거래소가 기준을 바꾸는 바람에 로직스는 얼른 상장할 수 있었다. 적자 회사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경우는 지금까지도 로직스가 유일하다! 상장된 로직스는 투자를 받아 시가 총액이 11조 원인 회사가 됐다.
이 일련의 과정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아무런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금융감독원이 지금은 왜 로직스가 분식회계를 했다고 판단했을까? 바이오젠이 에피스에 대해 콜옵션을 행사할 의사가 없었다는 것이 결정적인 이유다. 이번 특별감리를 통해, 오히려 로직스가 먼저 바이오젠에 콜옵션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결과적으로 거절당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게다가 2015년 당시 로직스는 에픽스에 대한 지분율을 85%에서 91%까지 끌어올려 오히려 지배력을 강화한 상태였다. 에픽스가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가 되었다고 주장한 로직스의 주장은 처음부터 거짓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분식회계, 삼성의 경영권 승계 일환?
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금융위원회에서 최종 판단을 하게 되는데, 분식회계로 확정되면 이는 시장의 공정한 거래를 뒤흔든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다. 벌써부터 로직스의 상장 폐지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고, 로직스는 행정소송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그게 끝이 아니다. 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은 이재용이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받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그러려면 또다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을 들여다봐야 한다. 지겨워하면 지는 거다.
2014년 이건희가 쓰러지자 삼성그룹은 이재용에게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한 작업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경영권 승계의 핵심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문제는 이재용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이 너무 적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삼성전자 지분이 많은 삼성물산을 이용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재용이 삼성물산 지분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또 문제였다. 그래서 이재용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치자는 황당한 아이디어가 나왔다.
삼성물산은 제일모직보다 3배 이상 큰 회사였는데, 합병 비율은 오히려 제일모직에 약 3배 정도 유리하게 책정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삼성물산 가치는 최대한 내리고, 제일모직 가치는 최대한 높여야 했는데, 마침 이즈음 제일모직이 소유한 용인의 땅값이 급등했다. 지난 글에서 언급한 SBS의 집중 보도 내용이 그것이다. 그리고 역시 이즈음 로직스의 기업 가치가 급등했다. 로직스의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의 기업 가치도 그만큼 커졌다. 그 시작은 위에서 살펴본대로 로직스의 일방적인 주장, 즉 에피스가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하는데 키를 쥐고 있던 국민연금은 로직스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합병에 찬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로직스 측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일은 2015년 9월 1일이고, 로직스의 회계기준을 변경한 시기는 2015년 말이기 때문에 시기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6년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공개한 국민연금 투자 회의록을 보면 국민연금이 로직스의 성장 가능성을 근거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안에 찬성표를 던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국민연금의 찬성에 힘입어 이재용은 안정적으로 삼성물산을 합병하고,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했다.
경영권 승계 작업 없다던 2심 재판, 뒤집힐까?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재판에서 이재용은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구속됐지만, 2심에서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곧장 풀려났다. 1심 재판부는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부도덕하게 밀착했다고 꼬집으며 경영권 승계 작업이 있었음을 인정했지만, 2심 재판부는 최고 권력자였던 박근혜가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한 사건일 뿐, 이재용을 위한 경영권 승계 작업은 존재하지 않고 이재용이 도와달라는 청탁을 했다는 증거도 없다고 한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3심 판결은 법리재판으로써 법률이 적절하게 적용됐는지를 따지기 때문에 새로운 증거를 추가할 수 없다. 하지만 대법원이 판결을 파기환송할 경우에는 추가적인 사실 관계를 따져볼 수 있게 된다. 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근거로 작용했다면 이재용을 위한 삼성 경영권 승계 작업이 없다던 2심 재판부의 결정은 뒤집힐 수 있다.
‘어떤 언론’들(지난 글을 읽어보시길)은 정부가 삼성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한다. 물론 정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눈 하나 깜짝 하겠냐만, 나는 삼성을 타깃으로 연이어 글을 쓴다. 불의와 부정이 지겹고, 공평과 정의가 그립기 때문이다.
삼성의 분식회계… 어렵고 복잡하다. 최대한 쉽게 써서 널리 알리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슬픈 마음에 옛 시인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가 마구 떠오른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박제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