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기는 성질이 차갑고 돼지고기는 성질이 따뜻하다
출처: https://blog.naver.com/wun12342005/221299859072
소의 원산지는 열대지방이다.
우리나라의 소는 열대지방에서 온 것이다.
중국의 남방지방이나 인도, 베트남, 같은 더운 지방이 소의 본래 고향이다.
더운 지방에서 사는 소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물속에 들어가서 놀기를 좋아한다.
소고기로 국을 끓여 보면 여름철에도 기름이 위로 떠서 엉긴다.
그러므로 소는 늘 더운 지방에서 살던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고기를 먹으면 소기름이 몸속으로 들어가서 엉긴다.
엉긴 기름이 동맥경화, 혈관염, 심장병, 고지혈증의 원인이 된다.
혈액 속에 기름이 30퍼센트 가량 들어 있는데 소기름이 섞여서 피가 엉기면
말초혈관으로 피가 잘 통하지 않게 되고 심하면 죽을 수밖에 없다.
소고기는 성질이 차갑고 소고기를 먹으면 몸이 차가워진다.
여러 의학책에 소고기는 성질이 따뜻하다고 써 놓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물론 성질이 따뜻한 소고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겨울철에 미국의 옐로스톤 국립공원에 갔더니 야생 들소들이 영하 30도나 되는 눈밭에서
얼어붙은 풀뿌리를 발굽으로 파서 먹는 것을 보았다.
이 야생 들소의 고기는 성질이 따뜻하다.
히말라야의 고산지대에 사는 야크라는 종류의 소의 고기도 성질이 따뜻하다고 할 수 있다.
돼지고기는 성질이 따뜻하다.
돼지고기로 국을 끓여서 밖에 두어 보면 겨울철에도 잘 굳어져서 엉기지 않는다.
기온이 0도 가까이 되어야 굳어진다.
돼지기름은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잘 엉기지 않는다.
돼지는 추운 지방이 원산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있는 토종 돼지는 본디 추운 만주 지방에서 들여 온 것이다.
여러 의학책에 돼지고기를 성질이 차다고 써 놓았는데 이것은 잘못이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추운 곳에 자라던 것인지 따뜻한 지방에서 자라던 것인지를 알면 그 성질을 짐작할 수 있다.
소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은 추위를 많이 탄다.
소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겨울철에 산에 갔다가는 동상에 걸리거나 심장마비가 와서 죽을 수 있다.
소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손발이나 코끝, 귀 같은 것에 동상이 걸리기 쉽다.
귀나 볼 같은 말초혈관이 모여 있는 곳에 동상을 잘 입는 사람은 소고기를 많이 먹는 사람이다.
반대로 추위를 이기려면 돼지고기를 먹어야 한다.
돼지기름은 사람의 체온으로는 굳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추위를 적게 타고 겨울철에 산에 가서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소고기를 먹으면 죽은 다음에도 소기름이 내 몸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닭고기를 먹으면 닭기름이 내 몸 속에 남아 있게 된다.
어떤 동물이든지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그 동물의 기름이 몸속에 남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식물성 기름은 동물의 기름과는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
그러므로 식물성 기름을 먹으면 내 몸 속에서 완전히 분해해서 내 몸에 맞는 기름으로 새로 만들어 쓴다.
모든 동물성 기름은 사람의 몸에 있는 기름과 성질이 비슷하다.
그러므로 사람의 몸속에서 사람의 몸에 맞게 바꿀 필요가 없으므로 그대로 활용한다.
그렇게 되면 내 몸에 동물의 성질과 기능이 그대로 잔류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목화솜으로 무명천을 만드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미나 중동, 티베트, 이집트 같은 곳에서 미라가 많이 출토된다.
미라에 대해서 영국이나 유럽 같은 곳에서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
미라를 다시 보존 처리를 해서 유리관 속에 넣어 전시하고 있는 곳도 많다.
미라를 조사해 보면 그들이 살았을 때 무엇을 먹었는지를 알 수 있다.
미라가 살았을 때 소고기를 먹었으면 소고기의 기름이 그대로 미라의 몸속에 남아 있다.
또 닭고기를 먹었으면 닭기름도 남아 있으므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그러나 식물성 기름을 먹은 것은 사람의 기름으로 완전하게 바뀌었으므로 찾아낼 수 없다.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옷이 넝마일 것이다.
낡고 헤어져서 입을 수 없는 옷을 넝마라고 한다.
나도 넝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해 전에 서울 인사동에 멀쩡한 새 옷을 잘라서 수십 조각을 누덕누덕 기워 붙여
누더기를 만들어 입고 다니는 승려가 있었다.
이것은 가짜 승려이고 가짜 넝마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입던 옷을 입는 것을 싫어한다.
남대문 시장에서 만 원이면 세 개를 살 수 있는 바지를 사서 입을지언정
5천 만 원 짜리 옷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이 입던 것을 선뜻 입으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고기는 동물들이 여러 가지 식물성 음식들을 먹고 그것을 원료로 하여 만들어낸 것이므로
옷으로 치면 바로 넝마와 같은 것이다.
고기는 여러 가지 풀, 열매, 곡식, 뿌리 같은 것을 동물들이 먹고 재활용하여 만든 것이므로 넝마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삼베나 모시로 옷감을 짜서 옷을 지어 입는 것은 원사(原絲)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식물성 음식을 먹는 것은 원사 자체를 먹는 것이 되고
고기를 먹는 것은 덕지덕지 깁고 낡은 넝마를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이 고기를 먹는 것은 빌딩을 헐어서 오막살이집을 짓는 것과 같고,
트럭을 헐어서 승용차를 만드는 것과 같으며 새 옷을 갈기갈기 찢어서 누더기를 만들어 입는 것과 같은 것이다.
동물이 한 번 만들어서 입은 것을 사람이 재활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넝마를 입는 것은 누군가한테서 물려받아서 입는 것이다.
다른 누군가가 입고 있다가 버린 것을 입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소고기를 먹으면 그 사람은 소한테 물려받은 것이다.
소고기를 먹은 사람은 소 밑에서 소한테 딸린 소의 권속이 되고 소의 종이 된다.
권속(眷屬)이란 밑에 딸린 식구나 하인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슨 고기든지 고기를 많이 먹으면 병이 온다.
소고기, 개고기, 닭고기를 많이 먹어서 병이 난 사람이 병을 고치려면
먼저 소나 개나 닭한테 가서 그들의 고기를 먹은 잘못을 뉘우쳐야 한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회개(悔改)라고 한다.
회개(悔改)는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아서 다시는 잘못을 하지 않는 것이다.
고기를 먹고 병이 난 사람은 먼저 소, 개, 닭한테 가서 다시는 그들의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고
그들의 권속이 되지 않게 해 달라고 용서를 구하고 나서 병을 고쳐야 한다.
나는 그렇게 하고 오는 사람의 병을 고쳐 줄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의 병을 고쳐 줄 수 없다.
어떤 물건이든지 윗사람이 아랫사람한테 물려주는 법이다.
형이 입던 옷을 동생한테 물려주는 법이고 부모가 쓰던 물건을 자식들이 물려받는 법이다.
형이 신던 신발을 동생이 물려받아서 신는 것이지 동생이 신던 신발을 형이 신는 법은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서열(序列)이다.
부인은 남편한테 딸린 것이므로 남편의 권속(眷屬)이다.
본디 아내를 낮춤말로 권속이라고도 한다. 남편은 부인의 옷을 입지 않는다.
그러나 부인은 남편이 입던 잠바 같은 것을 걸치고 외출했다가 돌아오곤 할 수 있다.
사람이 소고기를 먹으면 서열이 소 밑에 있게 된다.
소의 권속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자연의 질서(秩序)다.
그 질서는 하늘도 깨트릴 수 없다.
사람이 살아서 소고기를 먹고 소의 종이 되었다면 죽어서도 소의 종이 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나는 소의 권속이 되지 않기 위해서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
개의 권속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개고기를 먹지 않는다.
돼지의 권속(眷屬)이 되지 않기 위해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다.
나는 닭, 오리, 물고기의 권속이 될 수 없다.
그래서 닭고기, 오리고기, 물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다.
사람의 동물의 고기를 먹으면 동물보다 하등(下等)해진다.
그래서 여러 가지 병이 오는 것이다.
나는 가장 상등(上等)한 사람이 되고 싶지 하등해지고 싶지 않다.
물론 고기를 많이 먹어서 생긴 병을 고칠 수는 있다.
그러나 고기를 먹고 병에 걸려서 고치기보다는 처음부터 고기를 먹지 않고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옷은 새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먹는 것은 넝마를 좋아하고 동물의 권속이 되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