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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남 콤플렉스
나느 한 번도 가족에게 나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장남으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나를 맏고 의지하는 가족의 기대를 꺾는 것이 두려웠다. 어깨가 무겁고 힘들지만 장남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묵묵히 살아갈 수밖에...
장남 콤플렉스란 무엇인가
"나는 장남이니까 결혼해서 부모를 모셔야만 한다."
"그 청년은 다 좋은데 장남인 것이 마음에 걸려요. 아무래도 책임이 막중할 텐데... 우리 딸은 맏며느리로 보내고 싶지 않아서..."
"넌 우리 집안의 장남이니 다른 생각 말고 열심히 공부나 해라"
"형만한 아우 없다"
"장형 부모라는데 형님 말씀에 따라라"
우리 사회에서 장남은 자타가 공인하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는다. 형제 가운데 맨 먼저 태어난 맏아들은 부계 가족의 계승자일 뿐 아니라 가부장제 사회가 지속되는 원동력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뿐 아니라 한 남성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도 하는데, 가령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인가를 아는 데에 장남이라는 형제 서열상의 명칭은 중요하다. 그래서 장남인가 아닌가는 연애나 결혼을 할 때 상대 여성이나 처가의 큰 관심거리가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장남을 결혼시키는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맏며느리는 좀 특별하다.
장남에 대한 특별한 관심은 때로 한없는 신뢰와 기대로 나타나기도 하고 무겁고 힘겨운 부담을 안겨 주기도 한다. 딸은 결혼하면 호적을 달리 해 나가지만 아들은 죽을 때까지 한 식구로 지낼 수 있고 그 중에서도 장남은 부모의 희망이요 기대이다.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에서 장남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집안의 후계자이자 예비 가장이기 때문이다.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장남은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부모는 자신들을 희생해서라도 똑똑한 아들 하나 잘 키워서 못 다 이룬 꿈을 아들이 이뤄 주고 노후에 편히 지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부잣집의 장남은 가업이나 재산을 상속받는 대가로 부모의 명을 쉽게 거역하지 못하고 되도록 집안의 기대에 걸맞게 살려고 노력한다. 다른 형제보다 공부도 더 열심히 해야 하고 직업이나 결혼 상대를 고를 때에도 부모의 의견을 쉽사리 뿌리칠 수 없다.
어려서부터 가족에게 인정받고 특별한 관심을 받아 온 장남은 대부분 자기 역할에 충실하면서 한편으로는 희생한 만큼 가족이 보상해 주길 바란다.
동생들에게 무조건 복종하기를 요구하는 보스 기질을 내비치기 일쑤고, 집안의 독보적 존재로 여겨 주길 원한다. 행여나 이러한 자의식이 충족되지 않으면 무시당한 듯싶은 피해 의식을 갖기 쉽다.
다행히 부모의 기대대로 그야말로 믿음직하게 장남 노릇을 잘 하고 있어도 가족에게 실망을 주지 않으려고 자신의 욕구를 버리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는 이름 붙일 수 없는 불만이 쌓이기도 한다. '장남이니까', '집안의 계승자이니까', '동생에게 본이 되어야 하므로', '부모를 모셔야 하니까'라는 책임감과 강박 관념이 장남의 삶을 따라 다녀, 함부로 살 수도 없다. 그렇다고 일찌감치 부모의 바람을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아도 장남 노릇을 못한다는 자책감을 끝내 떨쳐 버릴 수 없다. 그래서 '부모를 모시지 않는 불효자', '동생을 돌보지 않는 장남', '욕심 많은 장남'이라는 비난을 들을 때 죄책감이나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장남의 삶은 전통적인 부계 가족 제도에 얽혀서 그를 바라보는 가족의 감정이나 이해와 이어져 있다.
위의 표에서 보는 것처럼 장남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가문의 기둥이자 계승자로서, 시집살이를 감내한 어머니의 한을 풀어 줄 자궁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기대와 신뢰를 한몸에 받는 동생들의 본보기로서의 역할과 함께 단란한 핵가족을 꿈꾸는 아내의 남편이자 아이들의 보호자라는 여러 가지 역할을 해야 한다.
이처럼 장남은 대가족과 핵가족이 엇갈리는 과도기적인 가족 제도속에서 훌륭한 계승자와 능력있는 생계 부양자라는 두 역할을 맡아야하는 고된 위치를 지키고 있다.
가족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자질과 욕구대로 자율적인 삶을 찾아나서든, 가족에 둘러싸여 힘겨운 장남 노릇을 하든, 장남은 대부분
"모든 면에서 장남 노릇을 잘 해야 한다"
거나
"장남 노릇을 잘 못 한다"
는 장남 콤플렉스에 빠져 있다.
그렇다면 장남 콤플렉스는 장남의 삶에서 풀 수 없는 숙명인가? 장남은 어떤 위치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며 살고 있으며 우리 나라 가족 제도가 어떻게 장남의 삶을 힘겹게 하는지 설문 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살펴보았다.
장남 노릇, 권리와 희생의 이중주
권리와 보상을 누리는 장남
장남은 그 역할이 어렵고 힘들어서 장남 콤플렉스에 걸린다고 하면 많은 차남이나 딸들은 동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장남은 언제나 가장 좋고 귀한 것만 먹고 가지며, 부모한테 사랑과 인정을 받고 자라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아 왔기 때문이다.
구약 성경에는 동생 야곱이 형인 에서의 장자권을 가로채기 위해 눈 먼 아버지를 속이는 이야기가 나온다. 동생이 부러워하리만큼 장남의 권리는 좋은 것이고 당연히 장남은 천부적으로 주어진 권리에 보답하듯 그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통념이다.
장남은 실제로 어떤 권리와 보상을 누릴가? 재산을 물려받은 장남은 부모를 모시고 더러는 재산을 동생에게 나누어 주어야 너그럽고 훌륭한 장남이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다. 장형 부모라 하여 가족에게 특별히 존경받고 부모가 없으면 가족을 통솔하는 권리가 있지만. 동시에 부모 노릇을 할 만한 책임감과 능력을 갖추고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족의 기대에 따라야 한다.
"흥부전"
에서 원래 심술꾸러기요 마음씨 나쁜 형 놀부는 장남으로서 부모의 유산을 독차지하려고 흥부와 그 식속들을 내쫓는다. 게다가
"세간 전답을 모두 차지하고 저 혼자 호의호식하며 제 부모 제사를 지내어도 제물은 아니 장만하고 돈을 대신 놓고 지내는..."
기득권만 누리고 책임을 저버린 '욕심 많고 못된 장남'의 상징이다. 물론 놀부는 전통적인 농업 사회가 화폐 중심적인 상업 사회로 변하면서 유교적인 덕목이 흔들리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장남의 모습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 인륜적인 도리보다는 돈이나 현실적인 이해 관계가 더 크게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흥부는 못된 형이나마 의지하고 따르는 착한 동생이다. 먹을 것이 없어 형 집에 찾아갔다 형수에게 맞고 돌아왔지만 부자가 된 후에 놀부가 찾아와 비아냥거릴 때에도 제비 덕에 부자가 되었노라고 알려 준다. 또 패가한 놀부가 이웃에게 매질을 당할 때에도 급히 가서
"이 동생의 말을 듣고 그리한 것이고 부모 같은 장형이오니 형 대신 소인을 먼저 죽여 주오"
하고 말할 정도로 지극한 우애가 있다.
장남은 어려서부터 동생들에게는 특별한 존재이다. 공자도 최고의 도덕으로 효제를 들었다. 효는 부모에 대한 효도이고 제는 형에 대한 우애로, 우리의 전통 가족 속에서 장남의 지위나 권한은 감히 다른 형제들이 넘볼 수 없는 신성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부모가 장남에게 쏟는 사랑과 관심을 지켜보면서 다른 형제는 장남을 아버지와 같은 권한을 지닌 존재로 알았다. 장남은 다른 형제보다 배울 기회도 더 많고 좋은 옷이나 물건도 먼저 가질 수 있다. 형이 입던 옷을 안 입으려는 동생들의 투정이나, 형이 쓰던 물건이 아닌 새 것을 가져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차남의 푸념이나, 일등만 하여 좋은 대학에 들어간 모범적인 형과 속만 썩이는 골칫거리 둘째 아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애와 갈등은 우리가 흔히 겪는 삶의 주제이기도 하다.
희생과 의무를 다하는 장남
(나는 막일을 하던 부모에게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집안의 기둥이었다.
영리하고 공부를 잘 하던 나는 못 배워서 가난했던 아버지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 어려운 집안 형편을 뒤로 하고 일류 대학에 진학했다.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고 장학금으로 공부하는 어려움을 견뎠다. 동생이나 부모님은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하자 이제는 살았다며, 생활비를 대고 그간의 빚을 청산해 주기를 바랐다. 융자를 받아 빚을 갚고 저축할 겨를도 없이 꼬박꼬박 월급을 집에다 들여놓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혼도 했지만 아내와 집안 사이에서 겪는 갈등으로 행복하지 않다. 전세 사는 집이 좁아 부모님을 모시지 못하는 괴로움도 크지만 번번이 일이 있을 적마다 손을 내미는 가족들을 부담스러워하고 불평하는 아내가 원망스럽다가도 이해가 가는 순간이면 내 신세가 서글퍼졌다. 어쩌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이 고생을 하는지, 변변한 취미 생활 하나도 못 하고 그저 가족과 돈에 매여 살아야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고 불쌍하다.
(40세, 회사원))
장남이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고 경제적 책임을 지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설문 조사에서
" 부모님이 무능력할 때 가족들에 대한 경제적인 책임은 장남이 지는 것이 마땅하다"
고 응답한 사람은 69.2%(751명 중 520명)로 높게 나타났다. 장남이 가족의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통념보다 장남 스스로 느끼는 책임감이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사례의 주인공인 40세 회사원은 다시 태어난다면 여자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여자는 최소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아도 되니까 지금의 자기 신세보다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난한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님과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하느라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아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장남의 신화는 아버지가 돌아가셨거나 무능력할 때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매사에 모범적인 장남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경우 집안을 위해 자신의 개성과 욕구와 이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역시 장남이라 다르다"
는 칭찬은 그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만드는 채찍이 되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차츰 자신의 삶에서 기쁨이나 희망을 잃어 간다.
(나는 한 번도 가족에게 나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장남으로서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었고 나를 믿고 의지하는 가족의 기대를 꺾는 것이 두려웠다. 어깨가 무겁고 힘들지만 장남이니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묵묵히 살아갈 수 밖에... (41세, 공무원))
핵가족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회적으로 노후 복지가 빈약한 우리 사회에서 장남은 당연히 부모를 봉양해야 하는 책임자로 여긴다. 요즘 우리 주변에서
"부모를 누가 모시는가"
하는 문제로 형제 사이에 입담이 오가는 경우는 흔하다. 장남을 굳게 믿고 살아 온 부모는
"장남이 있는데 왜 차남에게 얹혀 사느냐"
고 생각하고, 차남이나 딸은
"맏아들이 있는데 왜 내가 부모를 모시느냐"
고 주장하곤 한다. 핵가족이 일반화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맏며느리 여성들은
"요즘 세상에 꼭 장남만 부모 모시라는 법이라도 있느냐"
며 책임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 속에서 장남은 스스로 장남의 책임이라는 굴레에 매여, 또는 주변에서 부여한 장남의 의무를 지고 도리 없이 희생의 길을 간다.
장남 콤플렉스를 낳는 가족 제도
앞에서도 보았듯이 장남은 그 권리와 보상을 누리기도 하고 그에 따르는 의무와 책임에 허덕이는 가운데 다른 형제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삶을 산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장남 콤플렉스라는 내면적인 갈등과 고민을 갖게 된다.
장남의 탯줄은 아버지로 대표되는 집안과 가문을 지키는 부계 직계 가족의 계승자요, 그를 낳은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에 보답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에 이어져 있다. 형제 중 맏이로 동생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동생을 잘 보살펴 주어야 하며, 자신의 욕심이나 의지를 잘못 펴다가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 일쑤다.
장남은 어떻게 가족과 집안의 테두리 안에 묶여 있는가? 권리와 보상을 누리면서 그와 상반된 희생 의식이나 책임감으로 깊어 가는 장남 콤플렉스는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 속에서 생겨난 것인지 알아보았다.
순종하는 아들-부계 가족의 계승자
설문 조사에서
"장남은 자신의 욕구를 앞세우기보다 집안을 더 우선시해야 한다"
고 생각하는 남성은 85.3%로 641명이나 되며, 이는 장남만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92.2%가 긍정하여 훨씬 높았다. 특히
"장남은 집안에서 반대하는 결혼, 진학, 직업을 피해야 한다"
라고 답한 장남은 절반이 넘는 56.2%였다.
(나는 나 혼자라고 느낄 때가 거의 없었다. 내 등 뒤에는 휘장처럼 집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내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날 따라 다녔다. 행여 집안의 기대를 어길까 봐 다른 친구들처럼 데모에 앞장서지도 못했고, 취하는 것이 두려워 술도 마음껏 마시지 않았다. 나는 장남이요 종손이므로 언제나 자신을 잘 보존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자유롭게 사는 친구들이 사실 부러웠다. (35세, 교수))
우리 나라 사람은 가족 의식이 유별나게 강하다. 전통적인 가족 의식을 지배하는 효 사상은 모든 인간 관계에 우선하는 절대적인 가치이자 생활 규범이었다. 곧, 자식은 부모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되며 비록 부모의 구실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부모를 극진히 섬겨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이러한 가족주의적인 가치관은 혈연, 학연, 지연을 중요시하는 사고와 연결되는데 이는 개인의 개성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가족 속에 매몰시켜 버리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현대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농경 사회도 아닌데 아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여전하다. 가족 계획으로 한두 자녀를 낳는 추세지만
"적어도 아들은 있어야 한다"
는 생각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은 많을수록 좋더라"
,
"아들 낳아 야구팀을 만든다"
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심각하다.
설문 조사에서도
"장남은 집안의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아야 한다"
고 생각하는 남성이 69.6%(523명)이었다. 장남을 집안이나 가문과 연결지어 가문의 대를 이어야 할 계승자로 생각하는 사고는 여전히 강한 편이다.
(옛날 인도의 사밧티에 큰 부자가 살았다. 그는 딸만 다섯이고 아들이 없었다. 당시 그 나라에는 아들이 없이 가장이 죽으면 모든 재산을 나라에 바쳐야 하므로 아들 없는 것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아내가 마침 임신을 하였을 때 그는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부자의 재산은 아이가 태어난 후 처리하기로 하였다. 아기가 태어났지만 아기의 몸은 눈과 귀가 없고, 입에는 혀가 없으며 손도 발도 없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남근이 제대로 달린 아들이어서 아버지의 재산을 이어받을 수 있었다. 얼마 후 큰딸이 결혼하여 남편을 상전처럼 극진히 섬기자 이웃 사람이 그녀에게 어찌 그리 남편을 극진히 섬기냐고 물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그 많은 재산이 모두 나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딸이 다섯이나 되었지만 자식 구실을 못한 거지요. 그러나 남동생은 눈도 귀도 혀도 손발도 없는 두루뭉수리였지만 아들이기에 우리 재산을 지킬 수 있었지요. 많은 딸이 한 사내만 못하다는 걸 알고서 바깥 어른을 받드는 것이랍니다"
하고 대답했다고 한다. )
인도의 설화에 나오는 이 얘기에서 우리는 아들에게 얼마나 절대적인 권리를 부여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아들 중에서도 특히 장남은 가문을 대표하는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 가문이란 남자 어른으로 대표되는 가부장제 직계 가족을 말하는데, 이는 가장이 가족을 대표할뿐만 아니라 가족을 감독하고 관리하는 체제이다. 가족 내의 남성들 사이에도 저절로 위계가 세워지는데, 전통적으로 직계 가족 중 차남이하는 따로 나가 새로운 가정을 형성하였지만 장남은 본가에 남아 가문을 계승하였다. 조상의 제사를 지내고 가문을 이끌며 재산을 물려받아 관리하는 일은 장남에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였다.
전통 사회에서 장남은 책임감 못지 않게 권리와 권위가 확고했다. 한나라 때 허무라는 사람은 자신은 벼슬에 올랐으나 동생들이 아직 세상에 이름이 나지 않았음을 걱정하였다. 그는 동생들을 분가시키면서 집과 재산을 나누어 주는데, 일부러 자신이 제일 좋은 집, 기름진 전답, 힘세고 일 잘하는 종들만을 가려서 차지해 탐욕스럽다는 말을 들었다. 형에게 순종하는 미덕을 보인 동생들은 벼슬에 오르게 되었고, 그 후 형은 자신의 재산을 동생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어 이들의 우애는 세상 사람의 칭찬을 들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오륜행실도"
에 나오는 형제간의 도리와 우애를 강조하는 미담이다. 장남이 형제를 돌보고 모범을 보이는 이면에 동생들의 분가나 재산에 대한 결정권을 가졌고, 동생들은 장남의 권위에 순종하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 후기에 장자 상속이 확고해진 후부터는 장남이 제사를 지내고 그에 상응하는 재산을 물려받았다. 오늘날에도 '있는 집 장남'이라는 말도 있듯이 가문의 부와 권위는 흔히 장남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가족 제도가 변하고 남녀 평등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장남의 권위와 권리는 불안해졌다.
의식적으로는 여전히 부계 직계 가족 관념을 가지고 있어서, 장남에게 상속이나 우선적인 지원을 하려 하지만 법적으로는 호적상 호주 상속권이 남아 있을 뿐이며, 상속 제도는 장남 우대 상속에서 아들 딸이 똑같이 받는 균분 상속으로 변하였다.
가족 형태도 직장이나 교육 문제 등으로 사실상 부모와 떨어져 핵가족으로 살아 가는 경우가 많으며, 딸과 함께 사는 부모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장남은 분가라 생각지 않고 분거라 생각하므로 불안함을 씻지 못한다.
겉으로는 핵가족으로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부계 직계 가족을 이어 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공동체 사회라기보다는 개별화된 개인주의적 성향이 지배적인 사회이다. 가족 구성원도 예외가 아니어서 예전처럼 동생들을 직접 다스리기가 어려워졌고, 몇 안 되는 동생도 장남에게만 잔뜩 의무를 떠넘이곤 한다. 따라서 사회와 의식의 변화는 장남에게 보상보다는 의무와 희생을 더 많이 안겨 준 셈이 되었다.
게다가 우리 나라는 효도를 중시하여 사회 관계까지도 효를 바탕으로 맺어져 왔다. 살아 계신 부모에게 구체적으로 존경하고 시중 들고 부양하고 돌아가신 후에는 정성껏 제사를 지내는 것이 효도였다. 효도 윤리 위에 아들을 낳아 가문의 핏줄을 이어 가야 한다고 믿었던 전통 사회의 가족주의 가치관은 변화한 가족 형태와 사회 구조 속에서도 면면히 이어져 와서 장남에게 의무와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어머니와 장남
아들을 낳는 일은 여성에게 단순히 대를 잇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아들은 어머니가 살아 온 삶의 열매이며 살아 가는 희망의 등불이다. 장남은 실제로 집안에서 어머니의 지위를 굳혀 주고 힘을 부여해 준다. 결혼하고서 시댁에서 무시당하고 살다가 자신을
"사람 대접 받게해 준"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애정과 집념은 자신과 아들의 삶을 동일시하고 아들을 통해 행복을 누리고 싶어하는 마음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많은 여성이 가부장제 가족 제도의 희생자이면서, 어쩔 수 없이 가부장제의 철저한 신봉자가 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어머니는 참으로 내게 극진했다. 위로 누나 셋을 낳고 3년이나 아이가 없다가 나를 낳으신 이후로 할머니나 아버지께 처음으로 식구 대접을 받았다고 하신다. 별로 잘나지도 못한 나를 자랑으로 여기시고 한 번도 내게는
"안 돼"
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는 어머니 앞에 서면 나는 그 뭣도 거역할 수 없다. (22세, 대학생))
과거에 여성은 사내 아이를 낳아야만 진정한 여자요, 어머니일 수 있었다.
여성들은 아들을 낳기 위해 살았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였던 것이다. 딸을 낳으면 딸에게 남복을 입혀서 기르거나 남자 이름을 지어 주면 사내 동생을 본다는 속설을 믿고 그것을 행하였던 것도 아들을 낳으려는 욕망이 매우 컸다는 증거이다.
전통적으로 가족에서나 사회에서 여성은 공식적인 대표나 지위를 갖지 못한 채 혼인한 날로부터 오로지 시집의 대를 이어 주는 역할만을 맡았다.
순수한 양반의 자손으로만 대를 잇기 위해 여성의 정조를 중요시하는 바람에 여성은 바깥 출입도 마음대로 못하는 등 구속을 받았다. 다행히 아들을 낳으면 며느리의 임무를 완수한 대가로 사람 대접을 받지만 그러지 못했을 때는 남편이 첩을 들여 함께 살기도 하고 시어른들의 구박과 미움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어쩌다 남편이 먼저 죽어도 재가를 할 수 없었고 한 번 시집을 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
는 출가외인 대접을 받아 친정으로 되돌아올 수도 없이 남편 없는 시집살이를 겪어야 했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삶을 살다가 여성은 노후에야 자기의 권리를 조금씩 되찾을 수 있었다. 자신이 낳은 아들들이 장성하여 어머니의 고생과 희생을 알아 주고 자식을 통해 그간의 한을 푸는 것이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자식한테 효도를 받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젊은 시절에 어려움을 잘 참으면 언젠가는 자식들에게 보상을 받고 한 집안의 당당한 조상이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아들을 낳으려는 욕망은 자연히 커질 수밖에 없었고 그럴수록 아들을 통해 자신의 고생을 보상받으려 했다. 오늘날에도 산부인과나 한의원에서 양수 검사나 체질 바꾸기 등으로 아들을 낳는 일이 흔하다고들 한다.
(임산부의 입장에서 태아가 딸인지 아들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아기가 정상적이고 건강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막달이 되어 갈수록 주위에서는 아들인지 딸인지를 점치며 궁금해했다. 두 달 차이로 임신한 여동생은 초음파 검사 결과 딸이라고 하였다. 친정 엄마는 낳아 보아야 알 수 있다며 동생을 위로하셨다. 나마저도 딸을 낳는다면
"딸 많은 집 딸들이라 둘 다 딸을 낳는구나"
하는 말을 듣게 될 엄마가 안쓰런 생각이 들면서 아들이기를 기대했다. 막상 아들을 낳자 주위에서 크게 기뻐했다.
아이를 데리고 공원이라도 가게 되면 어떻게 첫아들을 낳았냐며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렇게 말한 사람은 모두 여자였고 같은 여자 입장에서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는 딸을 낳은 사람을 끊임없이 소외시키고 아들을 낳지 못한 여성들은 피해 의식 속에서 자신을 무능력하게 여기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30세, 주부))
전통적으로 아들을 낳기 바라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가 하는 점은 도처에 깔려 있는 기자속에서 알 수 있다. 달의 정기 마시기, 달밤에 바닷가에서 운모 성분이 많은 모래로 찜질하기, 돌부처 코를 가루 내어 먹기 등 아들을 낳지 못하는 이들은 산천을 찾아 제사를 올리며 초인간적인 힘을 빌리려 하였다.
양갓집에서는 아예 관상 보는 이에게 돈을 주고 점 찍어 놓은 규수집에 머물게 하여, 규수의 상이 아들을 잘 낳을 상인지 아닌지를 알아냈다고 한다. 처녀의 상이 좋아야 매파를 넣어 혼담을 건넸는데, 혼담이 오가면 거의 성혼이 되고 못 되면 두 집 모두 큰 수치로 알았으므로 미리 이런 방법을 썼다. 결국 며느릿감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들 잘 낳을 상인지 아닌지로 구분되었던 것이다. 또 여자가 심성과 덕성이 후덕하고 교양을 갖춘 사람이어야 자식 복이 많다고 하여, 남의 싸움에 끼여들지 않고, 어려워도 원망치 않고, 음식을 절제하고, 무슨 이야기나 들어도 놀라지도 기뻐하지도 않는 신중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아들을 바라고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기를 소원하는 욕구는 태몽이나 태점을 거의 절대시한 것에서도 발견된다. 해나 달을 삼키거나 안거나 치마 밑에 감추는 꿈은 큰 인물이 될 아들을 낳고 학, 용, 범, 밤, 호도, 고추, 큰 물고기, 큰 돼지, 소, 거북, 말 등 큰 짐승을 보거나 좁쌀, 입던 옷, 관대, 신주, 부처, 금 패물, 술잔을 보아도 아들 태몽이라고 했다. 그러나 꽃, 뱀, 작은 물고기, 보리 이삭, 금반지, 앵두 등 작은 과일은 여자 아이를 볼 꿈이라고 했다.
태점이라고 하여 경험에 의해 태아 성별을 점치는 것도 흔했는데, 임신부의 배가 뾰족하게 불러 오거나 입덧이 심하여 고통스러워하면 딸을 낳을 것이라고 하고 배가 펑퍼짐하고 입덧도 순하면 아들이라고 한다.
또 임신부가 특별히 고추를 즐겨 먹거나 임부의 나이를 합해서 홀수이면 아들일 것이라고 추측할 뿐만 아니라 동생 볼 아이가 끄나풀을 목에 걸고 논다든가 허리를 앞으로 굽혀 제 다리 사이로 얼굴을 넣고 서서 모친을 바라보면 남동생을 볼 것이라는 이야기가 입으로 전해진다. 태아가 여아라고 판단되면 남태로 바꾸는 묘방을 사용하는 것이
"동의보감"
,
"규합총서"
,
"조선박물지"
등에 나온다. 예를 들어
"동의보감"
에는
"임신 3월은 시태라고 하는데, 혈맥이 흐르지 않고 형이 상하며 변하나니, 이 때에 남녀가 미정한 고로 복약과 방술로서 변화하여 남을 낳을 수 있다"
는 내용이 실려 있다.
아들을 임신하거나 아들의 태로 바꾸는 방법으로 임산부가 계속 왼쪽으로만 누워 자고 고추를 많이 먹어야 한다든가 남의 아들 태몽을 사고 도기나 수탉의 긴 꼬리, 남편의 손톱과 발톱을 임부 몰래 침상 밑에 두는 풍습이 널리 알려져 있다. 심지어 몸통과 꼬리가 붉은 수탉을 죽여 매달아 터럭과 발과 내장을 땅에 묻고, 머리까지 고아서 임부 혼자 먹고 뼈를 땅에 묻으면 아들을 낳을 수 있다는 풍습도 있다.
이렇게 온갖 노력을 다해 낳은 아들이 말을 안 듣거나 기대에 어긋나게 굴거나 어머니 자신에게 무관심하면 서운해할 수밖에 없다. 딸을 여럿 낳은 후에 아들을 둔 여성 중에는
"내가 널 어떻게 낳았는데"
나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
라는 회한이 담긴 말을 하면서 아들의 효도나 애정을 강요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어머니의 이러한 태도는 아들에게 부담감과 갈등을 심어 준다.
(나의 어머니는 마치 나 때문에 살고 계신 것 같다. 내가 먹는 것, 입는 것 심지어는 속옷까지 챙기시고 어디를 가는지도 소상히 말해야만 한다.
장가 갈 나이인데 아내 될 여자가 힘들 것 같은 생각이 앞선다. 결혼하면 따로 나가 살고 싶지만 어머니는 절대 안 된다고 하실 게 분명하다.
아마 기절 초풍하실지도 모르겠다. (28세, 회사원))
매사에 어머니의 대리 성취자가 되어 자라난 아들은 어머니를 떠나는 것에 죄책감을 갖기 쉽다.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장남의 경우 특히 심한데, 결혼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결혼한 후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힘들다. 장남으로 집이나 어머니에게 신경을 쓰면 아내가 싫어하는 것 같고, 아내의 말만 듣다 보면 어머니가 마음에 걸린다. 나 때문에 고생하신 어머니에게 효도를 하는 것을 여자들은 왜 싫어할까? 남자들은 중간 역할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요즘 들어 절감하고 있다. (31세, 은행원))
어머니를 완전히 떠나지 못한 아들은 헌신적이었던 어머니를 이상적인 여성으로 삼기도 한다.
"우리 어머니가 끊인 된장찌개는 맛있었는데"
,
"우리 어머니에게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었다"
는 등 아내를 자기 어머니와 견주며 어머니의 이미지에 맞추려 한다. 그것은 때로 아내와의 사이에 심각한 갈등으로 나타나며 고부간의 갈등으로까지 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핵가족주의나 남녀 평등을 주장하는 아내가 시가와 친정을 동등하게 대하길 원하거나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 장남은 아내와 어머니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고단한 생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동생들의 본보기
장남이 모범적인 형으로서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동생보다 여러 모로 나아야 하고 동생들의 약하고 철없는 면까지도 위사람답게 감싸고 보살펴 주어야 한다는 의무를 알게 모르게 규정한다.
(동생이 어려울 때 도와 주지 않는다고 집안에서는 나를 욕하는 것 같다.
나는 어려울 때 누구에게 손 내밀지도 못하지만 가족은 나를 바라보고 내가 어떻게 해 주겠거니 믿는 것이다. 장남인 것이 무슨 죄인가?. (48세, 교사))
예로부터 장형 부모, 형우 제공이라 하여 형은 동생을 우애하고 동생은 형을 공경해야 하다고 가르쳐 왔다. 현대에 와서도 형제의 우애가 중시되는 만큼, 장남이 동생들의 본이 되어야 한다는 관념은 강하다. 설문 조사에서
"장남은 동생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
고 생각하는 사람은 93.4%나 되었다.
헐록은 아기의 성격은 유전적인 것보다 출생 서열에 따른 환경적인 면이 더 크게 좌우한다고 하였다. 즉 형제간의 서열에 대한 문화적인 인식이나 기대감, 아기를 대하는 주위 사람들의 태도나 대우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장남은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크므로 부모가 원하는 모범형을 자기와 동일시하려 노력한다. 따라서 어른스럽고 책임감이 강하고 양심적이며 성취 동기가 강하고 협조적이다. 그러나 동생들을 지배하는 위치에서 자만심이 강하고 권위적인 성격을 보이기도 한다. 부모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너무 많은 기대와 요구를 할 경우 장남은 심한 열등감을 느끼거나 도피적 행동을 하기도 한다. 때로 혜택은 누리지만 책임은 회피해 버리는 이기적인 장남이 이야기되는 것도 그 부담이 무거워서이다.
동생들이 형을 언제나 좋게만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형의 권위를 탐내고 형보다 늘 처진다고 생각하는 반감을 갖기도 하여 형이 권위적으로 대할 때 그대로 참기도 하지만 때로 삶에 또 다른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형은 모든 면에서 모범생이었고 공부도 잘하여 수재라는 말을 들어 왔다. 형제라고는 단 둘뿐인 우리 집에서 형과 나는 언제나 비교의 대상이었고 형이 결혼한 지금에도 온 식구가 모이면 어린 시절 형의 영특함을 이야기하며 듣는 내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나는 한 번이라도 형을 이기고 싶다고 생각했다. 회사에서도, 운동을 할 때에도 형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이기고 싶다는 생각에 온 힘을 쏟게 된다.
(30세, 회사원))
"형보다 못하다"
든가
"형을 본받아라"
하는 말들은 동생들에게도 형을 따라가야 한다는 강박 관념을 갖게 하는 한편, 장남도 그 역할과 지위를 감당하기 위한 인내와 노력을 들여야 할 때가 많다. 장남의 역할을 다하려면 어려운 일이 생길 때는 자신의 몸을 던져서라도 수습해야 한다는 책임감과 부담으로 힘겹기만 하다.
새로운 가족 관계
최근 들어 가족은 점차로 해체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가 관념적으로 생각하는 가족의 이상형, 즉 장남이 결혼하여 부모를 모시는 부계 직계 가족과 현실과는 차이가 크다. 그런데도 부계 직계 가족을 전통적인 미풍으로 여기므로 장남의 갈등은 심각하다.
최근 여러 연구에서 부계 직계 가족이 진정한 전통이고 미풍인가를 문제삼았다. 조선 중기까지 직계 가족은 10%가 안 되었으며, 핵가족은 65% 정도를 차지하였다고 한다. 실제 전통 사회에서 직계 가족은 넓은 집과 충분한 재산, 신분을 소유한 상류 지배충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 때문에 공동체의 원리보다는 서열 의식, 지배와 복종의 원리가 훨씬 크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가족 제도는 장남과 차남을, 아들과 딸을 다르게 대접하는 차별로 이어졌고, 대가족이 아닌 다른 가족 형태를 인정하지 않아 그렇지 못한 가족을 힘들게 만들었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가족의 대안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차별이나 가족 이기주의가 아닌 평등한 공동체로서 가족이 자리 매김될 때 장남이 느끼는 부담감도 다른 형제가 느끼는 소외감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장남이 있는가 하면 장남이 아닌 다른 아들이나 딸이 부모를 모시고 살 수도 있다. 장남이기 때문에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 때문에 누구나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 가족의 안정된 삶이 가족 중 한 사람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행복이라고 할 수 없다 개인이 자신의 개성을 버리고 집안의 기대를 위해 희생하며 가족속에 매몰되어 버리는 삶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 삶의 방향을 정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
어머니와 아들의 관계도 새로워져야 한다. 어머니 자신이 삶의 주체가 되어야 하며, 아들이 더 이상 젊은 날의 고생을 보상해 주는 대상이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힘 겨루기는 아들만 힘들게 만든다.
남녀가 결혼을 할 때에도 여자만이 자신의 가족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남자도 심리적으로 그의 가족으로부터 독립을 하여 결혼함으로써, 자립적인 남성과 여성이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제 사이에서도 장남은 실수하지 않는 모범생이 아니라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 보통 사람인 것을 알려야 한다. 형의 과도한 책임감은 동생들이 자신의 삶을 책임질 능력을 기르는 기회를 가로막을 수도 있다. 형제간의 우애란 귀하고 아름다운 것이지만 책임감 강한 형이 무능한 동생을 만들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주
1) 조혜정,
"한국의 여성과 남성"
, 문학과 지성사, 1988, 79쪽.
(울프(wolfe)에 따르면 남편의 집에 편입된 가장 낮은 지위에 있는 젊은 여성은 점차 자신이 낳은 핏줄을 집안에 더해 감으로써 자신의 세력권을 구축해 간다. 자궁 가족 내에는 자신이 낳은 자녀, 특히 아들과 며느리가 포함되며, 남편은 별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다. 여성에게는 일정 기간 어려움을 이겨 나가기만 하면 자신의 권력 기반인 자궁 가족을 이룰 수 있으며, 그를 통해 응분의 보상을 누릴 수 있다.
2) 남명희,
"흥부전에 나타난 골계의 양상과 기능"
, 경북대 석사논문, 1986, 14쪽.
3) 조동일,
"흥부전의 양면성"
,
"계명논총"
제5집, 1968, 44--45쪽.
4) 설성환,
"흥부전의 필연성과 당위성"
,
"연세 국문학"
제3집, 38집.
5) 법정,
"인연 이야기"
, 불일 출판사, 1992, 149--150쪽 요약.
6) 조은,
"한국 사회 어디로 가고 있는가"
, 현대 사회 연구소 발행, 1983, 183쪽.
7) 윤태림,
"한국인"
, 현암사, 1991, 198쪽.
8) 이광규 외,
"한국 민속학 개설"
, 학연사, 1983, 74--76쪽.
9) 유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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