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라]
오늘 우리도 성장하려면, 틀을 벗어 버려야 할 것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나를 형성한 그 틀... 그 틀을 한 번쯤 바꿔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고추 모종도 더 크게 자라기 위해 포트에서 밭으로 옮겨 심지 않는가? 오늘 우리의 믿음도 더 크게 자라기 위해서는 더 넓은 분량으로 옮겨져야 하지 않겠는가?
틀을 벗어나 크게 성장하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이 또 있을까? 매일 줄에 묶여 있는 개를 생각해 보라. 우리에 갇혀 있는 소를 보라. 닭장에 갇혀 있는 닭을 생각해 보라.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운가? 그런데 우리도 갇혀 있을 때가 많다. 우리도 틀 안에 갇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식물처럼 살아갈 때가 얼마나 많은가?
일에 갇히고, 환경에 갇히고, 습관에 갇히고, 좁은 생각과 굳어진 틀에 갇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지 못한 채, 더 큰 세계로 자라나지 못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아갈 때가 있다.
한번은 주님께서 당신께서 자라나신 고향 나사렛에 가셨다(눅 4:16~30). 나사렛 주민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잘 알고 있었다. 주님께서도 이 땅에서의 사역에 앞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그 마을에서 보내셨기에, 그곳에 남다른 애착이 있으셨을 것이다. 그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 먼저 고향 나사렛으로 가셔서 복음을 전하셨다.
회당에 들어가셔서 안식일에 이사야서의 말씀을 읽으시고 선포하셨다. 주님의 말씀은 참으로 은혜로웠다. 그러나 나사렛 주민들은 결국 이렇게 말한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22절)
나사렛 주민들은 자기들이 만든 틀 안에 갇혀 있었다. 자기들이 보았던 것, 알았던 것, 경험했던 것에만 갇혀 예수님을 판단했다. 그리고 그들의 결론은 너무도 짧았다.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참으로 안타깝다. 껍질과 틀에 싸여 진실을 보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인류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눈앞에 모시고도 믿지 못한다. 틀 안에 갇혀, "말씀은 은혜롭게 전하기는 하지만 요셉의 아들인데..." 하고 판단하는 것이다. 그렇게 틀에 갇혀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껍질을 깨야 한다. 평생 껍질 안에 갇혀 살면 나 하나로 끝난다. 그러나 그 껍질과 틀을 깨면 많은 열매를 맺고 많은 이들에게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 수 있다. 늙어 가는 사람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 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란다.
성장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의 틀을 깨는 것 아니겠는가?
이제껏 내가 붙들고 살아온 내 틀이 언제나 옳았던 것은 아니었음을 오늘 말씀 앞에서 돌아보고 뉘우치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 내 성격, 말씨, 언행심사, 가치관, 판단... 내 틀을 내려놓길 바란다. 내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질 때 우리는 더욱 높이 천국을 향해 자라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도 나사렛 주민들처럼 오랫동안 주님과 함께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끝내 내 틀을 깨지 못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주님께서 허락하시는 더 큰 믿음의 세계를 경험하기 어려울 것이다.
더 큰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는 틀, 그 틀을 깨고 벗어나 주님께서 예비하신 더 넓은 믿음의 세계로 나아가는 모두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