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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님의 산상설교는“천국의 대헌장”이다.
예수님의 산상설교는 축복의 말씀이 담겨있는 천국의 대헌장이다. *1-2절에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라 하였다. 예수님께서 “산(山)”에서 說敎하셨다 하여 “산상수훈(山上垂訓), 산상설교(山上說敎)”라 한다.
(1). 산상설교는“천국의 대헌장”이다.
*마 5:1-12의 “山上說敎”를 예수님의 敎訓을 壓軸하고 集約한 說敎라 하여 “성경 중의 성경”이라 하고, 우리 人間에게 憲法과 같은 귀중하고 값진 祝福의 말씀이라 하여 “천국의 대헌장”이라 한다. 예수님께서 天國 市民으로 부름받은 弟子들과 聖徒들에게 祝福을 받는 신비한 말씀을 주시는 것이니 귀를 기울여 말씀을 듣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시기를 바란다.
산상설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제자들”에게 들려주시는 복음이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弟子요 使徒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祝福받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시기 위해 이 “천국의 대헌장- 산상설교”을 들려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祝福을 받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경청하여 들으시기를 바란다.
(2). 산상설교는“축복의 말씀”이다.
산상설교는 행복론에 대한 말씀이다. *마 5:1-12은 “~하면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이 8번이나 강조된다. 山上說敎는 우리로 하여금 幸福한 靈性, 幸福한 信仰, 행복한 恩惠生活에 대한 보석과 같은 敎訓이다.
산상설교는 축복론이다. 예수님께서 “~하면 복이 있나니”는 말씀을 통해 “복받는 비결”을 가르치셨다. 그래서 산상설교를 “축복론”이라 할 수 있다. 예수님의 山上垂訓을 따라 사는 사람에게 幸福을 받게 된다.
산상설교를 따라 사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 *계 1:3에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과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산상설교의 말씀대로 살면 幸福한 信仰生活을 할 수가 있고, 福받는 人生이 될 수가 있다.
(3). 산상설교는 행복과 축복을 약속한다.
“~하면 복이 있나니”는 말씀에서 “복이 있다”라는 말은 헬라어로 “마카리오스”라 한다. 하나님은 人生들에게 福을 주시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축복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 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祝福이 담겨 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헬라어 “마카리오스”는 라틴어로 “베아투스(baatus)”라하는데 “더없는 행복(supreme happiness)”의 뜻을 가지고 있다. “축복”이라는 말과 “행복”이라는 말은 다르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祝福은 곧 幸福이 된다.
행복은 마음에서 시작된다. 예수님께서 ‘8복(八福)’을 말씀하실 때에 幸福은 마음에서 始作한다는 것을 강조하셨다.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사람”, *4절에 “애통하는 마음자”, *5절의 “온유한 마음”을 강조하신 것도 행복은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物質的으로 넉넉하지 않은데도 幸福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고, 障碍가 있어도 건강한 사람 이상으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행복은 외적인 요소와 내적인 요소가 병행되어야 한다. *財物이 있어야 하지만 마음이 平安해야 행복하고, *肉身이 健康해야하지만 靈魂도 건강해야 참 행복이고, *事業도 잘 되어야 하지만 子女가 잘 되어야 행복한 것이다. *요삼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는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福은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는 복”이다.
✔ 행복을 잃어버린 부자 교인 vs 행복하게 사는 가난한 교인
신앙생활은 祝福이기에 행복해야 한다. 財産도 많고 收入도 많고 동네에서 里長으로 活動도 많이 하고, 敎會에서도 長老의 직분을 가졌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나 그의 삶의 모습에서는 행복한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들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데 몸도 약하고 아픈 곳도 있고 직장일도 힘들다. 수입도 적다. 그는 교회에서 권사이다. 그러나 그 권사의 얼굴은 밝은 미소에 은혜를 충만히 받은 모습이 가득해 天使와 같은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 권사와 있으면 웃음을 찾는다.
교인들은 “장로랑 있으면 은혜를 까먹는다” 말하지만 “권사랑 있으면 행복하다” 말한다. 똑같이 신앙생활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행복한 신앙을 보여주지만, 어떤 사람은 신앙모습에서 행복을 찾아볼 수가 없다.
*제1복.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하였다.
(1). 경제적 가난 vs 마음의 가난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과 심령이 가난한 것은 다르다. 가난한 심령은 물질적 가난을 뜻하지 않는다.物質的 가난과 마음의 가난은 다르다. 마음의 가난은 물질의 상태와는 상관이 없다. 예수님은 물질적으로 가난할 것을 가르치지 않으셨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살아가기가 힘들고,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 많다.
물질적으로 가난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가 있다. 그래서 *경건한 사람 아굴은 “주여,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합니다.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잠 30:7-9).
자기 비하는 가난한 마음이 아니다. 자기 劣等感에 빠진 사람과 가난한 마음은 다르다. 自己를 卑下하는 것과 謙遜은 다르다. 열등감에 빠진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 앞에서 굽신거리거나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자기 사랑’이 부족한 사람이고, 自尊感이 不足한 사람이다.
자기를 사랑하고 아끼는 자존감을 갖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이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自尊感을 갖고 살아야 한다. 가난해도 자기를 아끼고, 배운 것이 없어도 자기를 존중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부족한 것이 있어도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하라.
(1).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가난한다”는 말은 헬라어로 “πτωχος(ptochos)”라 한다. 이 단어는 “철저하게 가난한 상태”를 의미한다.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가난하다. 너무 가난하여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 누군가를 의지하는데 그 의지하는 대상은 하나님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산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지한다. 가난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없기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한다. 하나님을 의지하니깐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역사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知慧를 주시고, 恩惠를 주시고, 慰勞를 주시고, 福을 주시고, 天國을 주신다.
마음이 세상의 것으로 가득한 사람은 하나님을 생각하지 못한다. 富者는 마음에 財物이 가득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생각하지를 못하고, 많이 배운 사람은 마음에 잘난 것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지 못하고, 잘난 사람은 마음에 자랑이 가득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찾지 못한다. 이처럼 하나님이 들어가지 못하는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도 들어갈 수가 없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한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절실하게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사람을 만나주시고, 당신을 의지하는 사람을 도와주고, 당신께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를 가납하여 주시고, 당신에게 매달리는 사람을 일으켜 주신다.
(2). 순결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말은 “단순한 마음, 순수한 마음, 순진한 마음, 순결한 마음, 온유한 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不純한 마음보다는 純水한 마음의 소유자를 기뻐하시고, 不潔한 마음보다는 淸潔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더러운 마음보다는 淨潔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墮落의 마음보다는 순결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罪가 가득한 마음보다는 懺悔하는 마음을 기뻐하신다.
심령을 병들게 하는 요소들을 제거해야 순결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마음에서 불결한 것들을 끄집어 내야 한다. 우리 마음에 있는 미움, 慾心, 질투, 劣等感, 추한 생각, 자랑, 이중적 성품, 모난 마음, 날카로운 마음, 욕심을 담은 마음, 열등한 마음, 상처입은 마음을 벗어내야 순결하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마 10:16에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말씀하셨고, *벧전 1:16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허룩할지어다!” 하였고, *빌 4:8에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라!” 하였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답게 거룩한 흔적을 지니며 살라.
(3). 참회하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찢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욜 2:13에“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하였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은 참회하는 것을 거부하지 않는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며 자신의 허물을 하나님 앞에 자백하였다(사 6:5). *Paur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라 고백하며 참회하는 마음을 가졌다(딤전 1:15). *Peter도 주님 앞에서 “나는 죄인이니 나를 떠나시오소서!”라 고백하며 참회하는 마음을 가졌다.
순결한 사람은 자신의 허물에 대해 부끄러워한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것에 대해 안타까와한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罪惡을 발견하고, 傲慢을 발견하고, 無能力을 발견한다. 그래서 “회개(悔改)”하고 “참회(懺悔)”하는 마음을 품는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받아주신다. *행 8:22에 “너의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였다. 하나님은 참회하는 마음에 긍휼과 자비와 용서와 은혜를 내려주신다.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고, 참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을 수가 있다.
(4). 겸손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가난한 마음’은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니깐 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謙遜해지지 않을 수 없다. 머리를 숙인다. 겸손한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줄 것이 있고 베풀 수 있을 때는 自身滿滿해진다. 우월한 마음을 갖고, 우쭐거린다. 이런 사람은 가난한 마음이 없다. 그런데 줄 것이 없으면 미안하고, 주장할 것도 없고, 충고할 것도 없고, 남을 가르칠 것도 없다. 다만 줄 것이 없어 미안해 할 뿐이다. 이 마음이 謙遜이다.
예수님처럼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빌 2:5-8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였다. 예수님의 마음은 자기를 낮추는 마음, 자기 를 내세우지 않는 마음, 죽기까지 순종하는 마음 곧 희생하는 마음이다.
겸손한 사람이 은혜를 받는다. *벧전 5:5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하였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멀리하시나 겸손한 사람은 가까이 하신다. 겸손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공급된다. 그러나 교만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차단된다. 優越感을 버리라.
(5).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가난한 마음은 자기를 내세우지는 않는 사람이다.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지 않는다. 자기를 强調하지 않는다.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다. 그러나 무언가를 가진 사람은 당당하고, 힘을 주고, 자기를 주장하고, 큰소리를 치고, 자기의 의를 자랑한다. 財物이 있다고, 知識이 있다고, 名譽가 있다고, 勸力이 있다고 자기를 강조한다.
가난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자기가 전부인 사람은 좀처럼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그 사람의 공과를 부정하려 하고, 좋게 말하기보다는 나쁘게 말한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잘 한 것에 대해 인정하고 박수를 쳐준다. 가난한 마음은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지 않는다.
자기를 강조하는 사람은 높은 자리와 앞자리를 욕심낸다. 그러나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은 자리보다 낮은 자리에 앉고, 자기를 뒷자리에 앉으면서 다른 사람을 앞자리로 내보낸다. 세상에서는 자기 이름을 날려야 출세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이름도 빛도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실제로, 富貴榮華를 가진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을 믿는 이유만으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謙遜하고 조용하게 자기를 낮추는 그리스도인도 많음을 알라.
(6).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이 가난한 마음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자기에게 아무 것도 없다고 인정하기 때문에 무릎을 끓는다. 자신의 약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 기도한다. 자신이 부족한 것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한다. 그러나 자신감이 있거나 가진 것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무릎을 꿇는다. 어려운 일을 만나는 순간에 자신의 부족함을 알기 때문에 무릎을 꿇는다. 자신이 약함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무릎을 끓는다. 하나님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기에 기도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한다. *마 6:6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리시라”하였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다고 믿는다면 기도하라.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고, 도와주시고, 지혜를 주시고, 역사하시고, 돕는 은혜를 내려주신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은 일하신다. *시 37:5에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리라” 하였다”하였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역사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