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를 보면 거문고는 중국에서 보내 온 일골 줄 악기(칠현금)을 왕산악이 고쳐서 우리 음악에 알맞도록 만든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 악기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거문고는 외래 악기인 셈이다. 의아한 것은 중국에는 거문고와 비슷한 악기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중국에 전해져 일시적으로 유행하다가 정착하지 못하고 사라진 악기일까? 그것이 사실이라면 거문고의 원형은 무엇일까? 1930년대 국학자 안확은 다음과 같은 견해를 내놓았다.
현금은 고구려 제상 왕산악이 진의 칠현금을 변작한 것이라 하는지라, 연이나 여의 사고로 미루어 보면, 인도의 부이(비나)라는 것이 유입되어 그것을 변작한 듯하다. - [조선음악사] (안확, 1931)
인도에 비나(veena)는 긴 판에 울림통을 단 것으로 한눈에 보기에는 거문고와 아주 다르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비나는 '거문고의 할아버지'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둘은 음의 높이를 조정하는 방법이 같다. 비나는 나무판을 세워 붙박이로 만든 기타의 지판 같은 것으로 음 높이를 조정한다. 이것은 프렛(fret)이라고 한다. 거문고에도 음 높이를 조정하는 프렛 역할을 하는 괘가 있다. 다른 현악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다.
또한 거문고는 줄이 여섯이다. 그런데 선율을 연주할 때는 여섯 줄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유현(둘째 줄)과 대현(셋째 줄)을 주로 사용한다. 나머지 네 줄은 '두르릉 두르릉' 하는 울림을 지속하는 데만 사용한다. 인도의 비나는 일곱 줄이지만 제 1, 2현 두 줄만 선율을 연주하는 데 사용한다. 나머지 다섯 줄은 역시 '두르릉 두르릉' 하는 저속음 연주에 사용한다. 이 지속음을 '드론(drone)' 이라고 한다. 이와같이 거문고와 비나는 여러 줄 중에 단 두 줄만 선율 연주에 사용하고 나머지 줄은 지속음 연주에 사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주로 연주하는 두 줄의 조율이 완전 5도로 같다. 즉 한 줄이 도면 다른 한 줄은 솔로 조율한다.
악기의 상징동물을 살펴보면, 거문고는 검은 학과 연관이 있다. 왕산악이 처음 칠현금을 고쳐 연주했을 때 검은 학이 날아와서 너울너울 춤을 추었고, 악기의 이름도 이 일화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비나는 상징동물이 봉황이다. 중국 진양 [악서]에는 비나를 '봉수공후'라고 하였는데, 악기의 머리에 봉황 머리가 새겨져 있어서다. 인도의 나라 새는 공작이다. 봉황은 상상 속의 새였으니 아마 비나에 새겨져 있는 공작을 중국 사람들이 봉황으로 받아들인 듯하다. 비나와 유사한 타이의 악기인 자케의 이름은 '마유리 비나' 이다. 마유리는 공작을 뜻하는 말이므로 같은 악기를 타이에서는 공작 비나로, 중국에서는 봉황 비나로 받아들인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사기]의 검은 학은 인도의 공작, 중국의 봉황처럼 새라는 점에서 연관이 있다.
자케와 거문고는 세 줄이 괘 위에 얹혀 있으며 비나는 괘 위에 네 줄이 얹혀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중국 길림성 무용총 고구려 벽화의 거문고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무용총 거문고는 4현 거문고인데 4현 모두가 괘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연주할 때 두 악기 모두 도구를 이용한다는 점도 같다. 거문고는 20cm 정도의 술대로, 비나는 쇠로 된 삼각형 모양의 고리를 검지에 끼고 현을 튕긴다.
대강의 비교이긴 하지만 이 같은 사실들로 미루어 봤을 때, 우리나라 거문고는 인도에서 기원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즉 인도의 비나가 타이의 자케로, 중국의 봉수공후로, 다시 우리 나라에와서 거문고가 된 것이다. 거문고의 전래와 정착 과정이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 조상이 외래 음악을 수용하는데 적극적이었으며, 그것을 한국적으로 변용하는 데도 뛰어난 능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출처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악 - 전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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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도 궁금한데.. 아직 들어보질 못했네요.
비나.자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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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ㅁ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