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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섯째 날 : 8월 2일(목)
오늘 아침 메뉴는 다른 어느 때보다도 풍부해 보였다. 어제 가이드가 알려준 대로 반으로 잘려진 자몽 위에다 꿀을 쏟아 붇고는 스며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다른 것부터 먹었다. 빵과 치즈로 배를 채운 후 다른 과일과 함께 미리 요리(?)해 놓은 자몽을 맛있게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가방을 챙겨서 내려오니 오늘도 내가 마지막으로 체크아웃을 하는 것 같다. 혜당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서 부르는 정화백님의 가곡이 울려 퍼지자, 호텔 로비에 있던 모든 투숙객들의 눈이 그 쪽으로 쏠린다. 참으로 독특한 여행팀 중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8시 30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는 모차르트의 도시 “짤쯔부르크(Salzburg)”를 향해서 고속도로에 진입하였다. 버스에 타자마자 가이드가 몇 마디 현지어를 알려준다. 큰길은 “Strase", 작은 길은 "Gase". 그리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날씨이고 파트너십(룸메이트)도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말이 기억된다. 오늘은 63빌딩님의 ‘그리운 금강산’을 시작으로 노래 부르기가 이어졌다. 두 번째 가수로 등장한 이공희샘께서는 뜻밖에도 잔잔한 노래를 힘들이지 않고 두 곡이나 부르신다. 아! 역시 선생님은 다르구나.... 그 다음 차례는 파랭이님. 이번에도 여러 사람들의 간곡한 청을 받아들여 ”빤쮸“노래를 씩씩하게 부르셨다. 신부철샘 다음으로는 이재익 & 안경순님께서 각각 ‘가고파’와 ‘찔레꽃’을 열창하셨는데, 이 때쯤 고속도로 이정표에는 Salzbrug와 Linz라는 글씨가 반복해서 보이기 시작한다.
비엔나를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우측으로 계속해서 도나우강이 따라오고 있고, 목가적인 시골풍경이 이어진다. 와인으로 유명하다는 말 그대로 강가에는 포도밭이 줄지어 있다. 그리고 갑자기 멀지 않은 곳에 붉은 색 지붕들이 모여 있는 제법 큰 동네가 보이더니 이곳이 바로 멜크 수도원(Stift Melk = 베네딕트 수도원)이 있는 멜크(Melk)라고 한다. 유럽 최대의 바로크 양식 건축물로 손꼽히는 멜크 수도원은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가 쓴 추리소설 ‘장미의 이름(The Name of the Rose)’의 배경이 된 곳이란다. 오기 전에 미리 알았으면 이 소설을 한번 읽어 보고 왔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0시 반 쯤 되었을 때 윤여선샘과 함영숙샘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를 끝으로 1부가 막을 내리고, 버스는 Linz로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자마자 첫 번째로 나타난 휴게소로 미끄러져 들어간다. 멀리 보이는 농촌 풍경이 너무나 한가롭다. 바람결에 묻어오는 진한 농촌냄새가 코를 자극하는데도, 일산의 조음회 멤버들은 또 노래를 한다. 식물분류에 식견이 깊으신 이공희샘께서는 이제 막 붉은 색으로 변하기 시작한 산수유 열매를 보시고 이곳의 기후와 토질이 산수유 생장에 아주 적합한 모양이라고 진단을 내리신다.
약 20분간의 알찬 휴식을 즐긴 후 11시 정각에 짤쯔부르크(Salzbrug)를 향해 나머지 구간을 달리기 시작하였다. 다시 상큼이님(사랑~~~), 서승녀샘(꼬마인형), 희하이님(메들리...), 최일순샘(초우)의 노래가 이어졌다. 움직이는 공간에서 노래가 불가능하다는 엄지공주 송예순샘께서는 노래 대신에 감자 이야기로 위기를 모면하시고, 이재익선생님께서는 ‘빤쮸’노래의 긍정적인 측면과 노인들도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 힘주어 강의를 해 주셨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휴가철에 흔히 볼 수 있는 캬라밴과 소금광산이라는 의미의 짤쯔부르크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버스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바로 짤쯔캄머굿 지역을 지나쳤다. 그리고 잠시 후 짤쯔부르크에 도착하였는데, 비엔나를 출발한지 정확히 네 시간 걸렸다. 참고로 기차로는 3시간 30분 걸린다고 한다. '짤쯔(Salz)'는 소금(salt)이라는 의미인데,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짤쯔부르크는 1816년 이후 오스트리아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비엔나와 함께 음악의 도시로 불리는 짤쯔부르크에서는 매년 여름 모짜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를 기념하는 음악회가 열리고 있다.
버스가 멈춘 곳은 식당 앞이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먹는 것과 자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20대 때의 배낭여행이 아니라면.... 아무리 훌륭한 볼거리도 잠자리와 음식이 불편하면 그 즐거움은 반감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오늘 점심식사도 중국식이다. 그다지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혜당님께서 준비해 오신 밑반찬이 있어서 여행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배를 채울 수 있었다.
점심 식사를 끝내고 5분 쯤 차를 타고 가다가 내리니 양윤경씨의 말대로 한국말로는 의사소통이 불가능한 50대 초반의 대만계 여자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를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가니 바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 여주인공 마리아(줄리 앤드류스)가 일곱 명의 아이들과 함께 ‘도레미송’을 부르던 ‘미라벨 정원(Mirabell Gardens)’이다. 미라벨 정원은 전형적인 바로크(baroque) 양식의 특징이 잘 나타난 곳으로서 분수와 연못, 대리석 조각물과 많은 꽃들로 좌우대칭으로 잘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정원 동쪽 끝에 있는 미라벨 궁전(Mirabell Palace)은 1606년 볼프 디트리히(Wolf Dietrich) 대주교가 사랑하는 여인 살로메 알트(Salome Alt)와 자녀들을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하는데, 우리 가 방문했을 때는 건물 전체에서 오후 햇살을 강렬하게 반사하고 있었다. 이곳은 또한 세계에서 가장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결혼식이 열리는 식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결혼식이 끝나면 꽃 장식 마차를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돈다고 한다.
사진을 찍기 위해 30분 정도의 자유 시간을 갖은 후에 미라벨 정원의 서쪽 끝에서 다시 모였다. 모퉁이를 돌아서니 길 건너편 흰색 건물 2층에 도플러효과(Doppler Effect)로 잘 알려진 짤즈부르크 태생의 물리학자 도플러(Christian Johann Doppler) 기념관이 보인다. 잠시 도플러 효과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가이드가 도플러효과에 대해서는 나한테 물어보라고 하며 지나친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설명을 할 수도 없고, 다행히(?)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다.
도플러 기념관을 지나치자 작은 유람선들이 떠 있는 잘자흐강(Salzach River)이 나타나고, 그 위에 놓여진 현수교 형태의 아담한 슈타츠(Staats) 다리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길은 곧바로 구시가지 쇼핑골목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이 바로 보석가게, 꽃집, 옷가게 등 갖가지 상점과 레스토랑, 오래된 카페 들이 있는 “게트라이데 거리(Getreide Gasse)"이다. 이곳의 상점들은 모두 현란한 네온사인이나 무질서한 크기의 간판 대신에 철제로 만든 작은 돌출 간판에 글자 대신 예쁜 형상으로만 판매 물품의 종류를 알리고 있다. 예를 들면 우산가게는 간판에 우산그림만 그려져 있고, 안경점은 안경 모양의 조형물이 걸려있다. 그 이유는 문맹이 많은 중세시대에 누구나 쉽게 상점의 종류를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는데, 200년 이상이나 된 것도 있다고 한다. 아무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쇼핑거리라는 가이드의 말이 사실인 것 같다.
‘음악의 신동(神童)’ 모차르트의 생가를 지나면서 노점에서 15유로를 주고 젊은 화가의 수채화 그림을 하나 샀다. 게트라이데 거리 끝자락에 이르니 15세기에 건축되었다는 구시청 청사, 모차르트가 세례를 받았다는 고딕양식의 대성당, 그리고 미카엘 교회와 박물관이 나타난다. 이곳에서도 그림을 파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고, 머리 위로는 호엔짤즈부르크성(Hohensalzburg Fortress)이 병풍처럼 서있다. 호엔짤즈부르크성은 1077년 게브하르트 대주교가 창건한 중세 고성(古城)으로 높이는 120m이며, 중부 유럽에서 그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한다. 또한 구시가지 남쪽의 언덕에 우뚝 서 있어서 시내 어디에서나 잘 보이는데, 이곳에 오르기 위해서는 수많은 계단을 걸어 올라가거나 급경사면을 직선으로 오르내리는 트램을 이용해야 한다. 우리는 설악산 권금성에 오르는 케이블카처럼 생긴 트램을 타고 성에 올랐다. 트램에서 내려 동굴 입구를 빠져 나오니 짤쯔부르크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알프스산맥이 보인다. 이곳에서 보이는 경치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주니 다시 내려가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화백님의 노래를 듣고 나서 성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시내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서는 맥주를 팔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저 맥주 맛을 안보고 갈 수는 없다. 눈치를 보니 아그네스님도 같은 생각을 하고 계신다. 혼자 남기는 그렇고 의향을 여쭤보니 내 추측이 정확하다. 4시에 모차르트 생가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아그네스님, 이순화샘, 신부철샘, 이공희샘 그리고 세린이를 포함하여 여섯 명은 잔류하고 나머지 일행은 먼저 내려갔다. 이번에도 이순화샘께서 한 턱 쏘셨다. 취향에 따라 각자 맥주와 콜라를 마시고 짤쯔부르크에서의 추억을 만드는 사이에 갑자기 바람이 세게 불기 시작하니 점원들이 재빨리 파라솔을 접는다. 아마도 그 동안의 경험상 곧 비가 내릴 것을 아는 것 같다. 우리도 서둘러서 자리를 떴다. 약속 장소로 내려가는 길에 꽃으로 장식된 카페 앞 노점상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들에게 선물하면 좋아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오스트리아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The Kiss"라는 제목의 그림이 그려진 티셔츠를 하나 샀다.
약속 장소인 모차르트 생가에 정확히 4시에 도착하였다. 1756년 1월 27일 태어난 모차르트가 17세까지 살았었다는 모차르트 생가는 창문 사이의 외벽 전체가 노란 색으로 칠해져 있어서 밖에서는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집처럼 보였다. 바닥은 나무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모짜르트가 사용했던 침대, 피아노, 바이올린, 자필 악보, 서신 등이 있고, 2층에는 유명한 오페라 [마술피리]를 초연할 당시 사용했던 것과 같은 소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3층과 4층에서는 모짜르트의 가족들과 잘츠부르크에서 생활하던 당시의 모습을 각각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이 다소 빈약해서 전체를 둘러보는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이드가 사전에 그렇게 말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밖으로 나오려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내린다. 미처 우산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입구 쪽에 서 있거나 계단에 줄지어 앉아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다. 20분이 지나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질 않고, 현지 가이드와 다시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지났다. 하염없이 기다릴 수가 없어서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재주껏 비 사이로 걷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리 빨리 걸어도 내리는 비를 피하기는 불가능한가 보다. 정신없이 뛰다시피 하면서 걸어오니 처음에 내렸던 그곳에서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버스에 도착하니 거짓말처럼 비가 그친다! 세상 일이 다 그런 거지 뭐.... 제 아무리 빨리 걸었어도 내리는 비를 피할 수는 없는 법. 젖은 옷을 벗고 가방에서 마른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짤쯔캄머구트(Salzkammergut)를 향해서 버스가 천천히 움직이자 슬금슬금 졸음이 몰려온다. 짤쯔캄머구트는 선사시대부터 암염을 생산한 곳이며, 이 일대는 해발고도 2,000m 이상의 산과 76개에 이르는 호수가 어우러져 있다고 한다.
15분쯤 달렸을까?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전원풍경으로 바뀌고 민박집들이 많이 나타난다. 나지막한 언덕을 넘자마자 달력 속에서 보던 그림 같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양쪽 능선 사이 계곡으로 옥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장크트 볼프강 호수가 보인다. 모차르트의 어머니 생가가 있는 장크트 길겐이다. 선착장 입구에서 내려 유람선에 올랐다. 안개비 사이로 보이는 예쁜 집들이 호수 가장자리를 따라서 끝없이 이어진다. 빗줄기가 제법 굵어질 무렵 창문마다 꽃 화분들이 내 결려 있는 예쁜 동네 입구에서 유람선이 멈춘다.
걸어서 아름다운 호반마을을 감상하고 다시 버스에 오르니 산 속의 여름은 해가 빨리 저문다. 오늘 묵을 호텔은 아담한 산장호텔(Hotel Post)이다. 호텔 입구에 도착하니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트라운 호수(Traunkirchen)가 있고, 뒤쪽으로는 알프스산맥의 한 줄기가 지나가고 있다. 목조 건물의 호텔은 산의 경사면을 그대로 이용한 그야말로 자연친화적 건축물이다. 호텔 로비는 우리 일행이 들어서자 꽉 차고, 하나 밖에 없는 엘리베이터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각자 받은 방 키는 도심의 호텔처럼 카드식이 아니라 큰 열쇠로 되어있고, 오늘은 처음으로 싱글룸을 배정 받았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작고 아담한 방 안에 나무로 된 1인용 침대와 오래된 책상 위에 14인치 구형 TV가 놓여있다.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아주 마음에 든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내려갔다. 착하고 어리게 보이는 두 명의 예쁜 아가씨들이 생글생글 웃으며 서빙을 한다. 야채와 고기를 함께 끓인 수프(구야슈)를 맛있게 먹고 나니, 우리나라의 소위 ‘돈까스’와 비슷한 돼지고기 커틀릿 빈 슈니첼(Wiener Schnitzel)이 나온다. 식사를 끝낸 후 경호대장님께서 준비하신 아이스와인 두 병으로 다 함께 건배를 하였다. 어느새 오늘이 이번 여행에서의 마지막 밤이다. 창문 밖으로는 아직도 보슬비가 내리고, 산장의 호텔은 서서히 어둠에 싸이고 있다. 엄지공주님의 저주파치료기로 안마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첫댓글 깊은 잠에 빠지신 박사님을 깨우기 싫어 훔쳐 갑니다.
ㅎㅎㅎ 안녕하시죠? 이경준선생님...
제가 운영하는 카페로 퍼나릅니다. 글쓴이에 대한 간략한 프로필을 소개할까 합니다. 후에 연구논문집도 내시고, 수필집도 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불어 음반도?
여섯째날이라도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 즐기고 있습니다. 햇살 쨍쨍하던 미라벨 정원, 간판이 아름다웠던 게트라이데 거리, 장크드 볼프강 호수의 유람선, 트라운 호수의 아침 산책이 생생이 떠오르네요. 모두가 박사님 덕분에 연결지어 말이 되고 있어요. ㅎㅎ 여행의 참맛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도플러 효과는 설명해주실거죠?
판쯔의노래야 말로 불후의명곡으로 단번에 다외웠고 혹시잊을까싶어 수첩에도 적었습니다. 아마 명곡중에는 학교종이땡땡도 포함되죠.ㅎㅎㅎㅎ
빤쮸노래는 저도 아직 기억하고 있고, "학교종이 땡땡땡~"은 평생 안 잊을것 같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