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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두번째 전투 동래읍성에서 송상현이 마지막으로 남긴 시
"고립된 성을 적은 달무리처럼 애워쌓고
이웃진은 고요히 잠들어 큰진을 구할 방법이 없어
군신간의 의를 중히 여기고
부모의 자식에 대한 은혜를 가벼이 여겼나이다.
-동래부사 송상현-
조선왕조 500년 역사길인 서울 한양을 이루는 8산을 다녀온후 부산 동래읍성을 이루는 성곽길을 다녀온다.
성곽길따라 역사를 배울 수 있는 산길이 될까 의구심을 가지고 부산으로...
이른 아침 논산에서 대전으로 다시 부산으로 향하는 깽이님이 타고 오는 ktx열차 시간에 맞춰 동대구로 나간다.
기차안에서 반갑게 인사 나누고 부산에 도착한 후 곧바로 택시로 동래구 충렬사로 향한다.
충렬사
1592년 음력 4월 15일 임진왜란때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첨사 정발 장군과 36명의 충신과 임진왜란때 순국선열 위패를 모신곳
코로나 때문에 출입 금지되어 직접 배향하지 못하고 멀리서 사진만 찍고
창원에서 오신 전국구님과 만나 충렬사 뒷편으로 이어지는 도로따라 동장대가 있는 망월산으로 오른다.
충렬사 뒤에 자리하는 군관청
동장대
임진년 이른 아침 동래성 맞은편 황령산에서 봉수를 보던 봉수군이 왜적이 침입했다는 사실을 보고 한다.
하루전 부산진을 지키던 부산첨사 정발 장군은 왜군의 숫적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전사하고
경상 우수사 원균은 낙동강 하구까지 왔다가 대규모 왜적이 침략한걸 알고 수군이 가지고 있던 70척의 판옥선을
모두 불태워 버린후 김해로 도망
그리고 경상 좌병사 육군 사령관 이각이 병사 몇백명을 데리고 동래성을 왔으나 허접한 군인 몇십명만 남기고 도주 한다
고립무원의 동래성을 구할 사람은 누구인가.
부산진 전투에서 정발 장군이 전사하고, 적장 고니시 유키나가는 왜군 1만 8천명은 곧바로 동래성 남문(현 동래시장)으로
쳐들어와 " 길좀 비키도"라며 목판에 글을 써 보낸다.
동래부사 송상현"택도 없다" 죽기는 쉬우나 길을 내주기는 어렵다"글로써 주고 받았으나 협상 결렬
왜군은 귀신 형상을 한 이상한 가면을 뒤집어 쓰고 공격하다.
2시간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동래부사 송상현과 민관군 3,000명이 죽었으나 왜군은 불과 100명 안팍만 죽었다고 한다.
고립무원의 땅인 동래성에서 전투는 이렇게 끝난다
마안산 북장대 방향으로
동네 뒷산이다 보니 등로는 아주 좋다.
동래부 동헌
북장대 방향
이곳에서 길안내 해주러 오시는 귀한님을 기다리고
마안산에 자리하는 독립운동 기념탑
1919년 부산에서 일어났던 3,1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세거리가 한눈에 보이는 이곳에 세웠다.
이곳 마안산은 일본놈들 빼면 말이 안되는 의미가 깊은 산으로 보인다.
삼국시대부터 지금까지 대소(大小) 1천회이상 한반도에서 노략질을 했으니
북장대에서
동래 부사 송상현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여산 송씨다.
1591년 동래부사로 부임하자 왜군의 침략에 대비해 읍성을 정비하고 백성들에게 선정을 배풀었으며
임진년 4월에 일어난 왜적의 침입에 맞서 민관군이 결사 항전으로 싸웠으나 중과 부적으로 성이 함락될것을 예감하고
조복(朝服)으로 갈아입고 선조가 있는 북쪽을 향해 절을하고 부모님께 마지막 시를 남긴다.
"외로운 성에 달무리지고 주변의 진은 베개를 높게하고 잠들었습니다.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무거우니 부모와 자식의 은혜는 가볍습니다."
비록 왜군의 손에 참수되어 죽었으나 고니시는 그의 충절에 감탄하여 송상현을 죽인 병사를 죽였고 송상현을 동문 밖에 잘 묻어 주었다고 한다
황령산과 동래읍성 남문(현 동래시장)
말 발굽 형태의 동래성은 낮은 야산에 고려때부터 왜적의 침입에 대비해 흙과 돌로 만들었으며 현,동래시장 부근이 동래성 남문이 있던 자리다.
좁은 지형속인데 이곳에서 민관군 3,000명이 왜군에 의해 도륙(킬링필드) 되었으며 기나긴 임진왜란이 서막을 열게된다.
조선시대때 동래읍성
지금은 아파트가 생겨나 남문과 서문 방향으로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성안으로 민관군 3천명 성외곽을 고니시 부대 1만8천명
6대 1의 전투
일본군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싸움에 이골난 놈들이고
조선은 양반놈들 등살에 백성들은 등이 휠 지경
그렇지만 어려울때 단결력 하나는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우리민족이다.
북장대에서 산길은 윤산으로 이어지지만 마루금에는 길이 없으며 동래 온천 교회 뒷편으로 내려서야 한다.그곳은 높은 옹벽
절개지가 기다리니
동래 문화 전시관으로 내려오는 방향으로 내려와야한다
마안산에서 윤산으로 내려서는 동래 온천 교회 옆 옹벽
서명 초등학교 옆 주차장에서 본 가야할 윤산
좌측 멀리 낙동 정맥길에 만나게 되는 계명산
앞에 보이는 부곡 뉴그린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면 등로나옴
윤산으로 가는길에
멀리 장산이 희미하게 보이고
길안내 해주러 오신 귀한님
윤산으로 가는길에
낮은 산이다 보니 길이 아주 편안하고 달리기 좋은 길이 이어진다.
마을 분들 운동 하시는 곳을 지나
동부산 교회 옆 구서 IC고속도로 굴다리를 지나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한번 더지나
경부고속도로 굴다리를 빠져나와 동래베네스트 골프장이 있어 잠시 우회하고
골프장 옆으로 길이 좋으나...
골프장 안으로 들어가면 케디분들과 가네 못가네 실갱이 할것 같아 도로따라 우회 하기로 하고
도심을 지나며 중국집에 들러 자장면 시키니 딱 한젓가락이다.
후루룩!~~ 목구멍속으로 미끄러지듯 넣고
도로따라 나와 금정산 아래 범어사로 향한다.
아침일찍 오셨어 기다리시던 희야누님과 청봉 대장님을 만나 합류하고
때는 신라 문무왕 시절 자칭 설사(원효)대사 보다 더 똘똘 하셨던 의상대사께서 창건한 절이다.
초팔일이 다가오니 꽃보다 더 화려한 연등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깊은 강이 멀리 흐르듯
스님중에서도 땡중이 아닌 진짜중 면도날 같은 기가 살아있는 중
백척간두에 홀로 서서 한발 더 나아가는 서슬퍼런 중
화려함보다 잿빛 승복이 자연처럼 어울리는 중
법문보다 그저 바람처럼 나와 세상을 보는 그런 중이 참 스님이 아닐까
대한불교 조계종 14고구 본사 절이며 해인사,통도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인 범어사
금정산 정상 부근에 가뭄이 와도 마르지 않은 금빛 우물이 있는데 하늘에서 내려온 금빛 물고기가 그곳에서 놀았다고
해서 금정산으로 짓고
이곳 사찰을 하늘에서 내려온 물고기란 뜻의 범어사(梵魚寺)라 한다.
잠시 가던길 멈추고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삼배하고 나온다.
일행분들은 금정산으로 곧바로 올라 가시고
잠시 금정산 정상 부근의 가산리 마애 여래 입상을 알현하러 가본다.
커다란 바위에 세겨진 마애여래입상 머리위에는 상투를 올린듯한 육계가 솟아 있으며 귀는 어깨위에까지 늘어져있다.
낙동길에 두번이나 지나가면서도 한번도 찾지 못했던 여래입상
왜 이제서야 왔냐는듯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두손모아 합장하고 돌아서니 이곳을 관리 하시는 스님 한분이 뒤에서 빙그레 웃어 보이신다.
금정상 고담봉으로 오르는 길에
금정산 인근으로 영암 알프스가 자리하지만 산의 기운으로 본다면 울산으로 들어가는 관문격인 문수산과 이곳 금정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낙동정맥길에 고헌산이 영남 알프스을 알리는 서막이라면 금정산은 대미를 장식하는 산이다.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아르다운 금정산을 국립공원으로 만들자는 이야기가 그리 허왕된 이야기는 아닐듯한데 시간이 좀더 지나면 어떻게든 결론이 날듯하다.
삼국시대때는 산신(山神)이 대부분 여자 분들이죠
남자들은 허구헌날 전쟁하러 나가다 보니 집에 남아있는 여자들이 애기를 키우거나 농사를 짓어 모계사회를 이룬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전쟁이 없어지니 남자들이 농사를 짓으면서 부계사회를 이루어 그때부터 산신 역할를 남자가 대신한다
이곳 금정산 정상은 고담할매가 지키는 곳이죠
뭔!~~~바람이 이렇게 부는지 날아갈것 같다.
우측으로 오룡산에서 흘러온 양산천이 통도사 앞을 흘러 양산시를 지나 낙동강에 합류하는 곳이고
좌측으로 동신어산과 멀리 무척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산과 물은 우리 조상들이 머물던 삶의 터전이다.
산줄기 속에 물길이 있고
산이 없으면 물길이 없다.
물길이 없으면 산이 저절로 갈라지지 않으니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인것이다.
멀리 장산이 보이고 앞으로는 가야할 금정산성길
금정산성은 정확한 년대는 확인할길 없으나 낙동강 하구, 남해안에 왜구의 침입이 심하여 신라시대때부터 성이 있었다는 설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후 숙종 (1703년)때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경상감사의 건의로 동래부사가 성을 다시 쌓았다길이 19KM에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이다.
낙동정맥길이 이어지는곳
산줄기와 산맥
1대간 9정맥 전통적인 산줄기이나 일제 강정기때 산맥이란 말이 나온다.
일본인 학자들의 눈에는 우리나라 산줄기는 보지않고 땅속에 있는 지질과 광물에 관심을 가졌다.
땅위의 산줄기 보다 지질을 연결하여 산맥이라 불렀으니 이제는 산맥이라 함부로 부르기도 힘든다
북문에서
지나온 금정산 고담봉
원효봉에서 일행분들을 만나
청봉대장님 저,희야누님. 귀한님,전국구님
깽이님은 어딜간겨
무명암 바위 릿지길이 보이고
다들 앞으로 가시고 다시 혼자 남아 한장 담고
난이도 5,10A급인 무명암 바위 릿지
티롤리안 코스도 있고 조망도 좋고
임진왜란 3대대첩 잘 아시죠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
권율의 행주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
행주대첩은 권율장군의 지휘가 뛰어났으나 잘 살펴보면
휘하 장수중 '조경"이란 장수가 있었는데 행주산성에 민관군 1만명이 있었으며 남쪽과 동쪽으로는 한강과 청룡천 있어
방어에 좋았으나 서,북쪽으로 평지형태로 방어하기가 부실하여 '조경" 장수가 권율 장군께"적이 쳐들어 온다면 서,북쪽으로 올것 같으니 목책을 2중으로
설치 하자고 건의를 합니다.
조경:장군 목책을 설치 하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권율: 이곳으로 적들이 오지 않으니 그럴필요 없다
조경:장군 적이 한양에 3만명이 있는데 조선군이 여기에 있는걸 안다면 곧 이리로 올것 같으니 목책을 만들어 설치하셔야 합니다."
권율:어허!~슬때없는 소리"라며 묵살을 해버린다.
다음날 권율 장군이 어디로 출타를 한사이에 조경 장군은 부하 1천명을 데리고 나무를 베어와 목책을 2중으로 만들어 놓았고
몇일뒤에 일본군 3만명이 행주산성으로 쳐들어 오게된다.
이때 조경 장군이 목책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면 행주대첩도 없었을것이다.
그리고 조선 최고의 명장이던 신립장군도 종사관 김여물 의 충언을 무시하고 백두대간의 험준한 조령을 버리고
충주 탄금대로 흐르는 남한강과 달천, 충추천이 만나는곳에서 배수진을 치고 조선군 신립과 왜놈 소서행장의 육군대 육군으로 맞짱을 뜨지만
질퍽이는 논바닥에서 말 달리는 전투를 하다가 조총 사격으로 몰살 당한다.
이 전투로 인해 선조는 비오는날 저녁 도성을 버리고 본격적인 도망을 시작한다
무명암 바위 릿지 마지막 하강 부분
낙동정맥 하시는 포천에서 오신 산꾼 분들이 사진 다 찍을 동안 기다렸다가
제 3망루 가는길에
3망루전망 바위에서 본 무명암 바위 그뒤로 의상봉 -원효봉- 장군봉-계명봉으로
제 3망루
3망루 성벽길
금정산성 동문에서
동문 내력 한번 읽어 보시죠
산성고개에서
오늘 일정은 거의 끝나가고
대륙봉
부산의 **산악회에서 만들었나
금정산성 남문에서
나라가 위급할때 도망간 몇몇 장수들 그들로 인해 동래읍성은 전투 2시간만에 함락되어 많은 사람들이 도륙을 당했으며
그로부터 1년뒤 1593년 양력 7월 20일 진주성 2차 싸움도 고립무원의 전투로 6만명이 순절한다..
좋은 코스 하나 만들어 볼까 했으나 골프장 때문에 취소...^^
오늘 함께 해주신 분들 감사 드리고 다음 길은 계룡입니다.
첫댓글 방장님 산행기 보다보면 역사공부 무지 많이 해야 것유
대단하세요.
방장님덕에 지방곳곳 알게 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늘 안산 하세요
부산에 대해 어떻게 쓰실지..
궁금했는데...
역시 방장님이시네요.
동래부사 송상현에 대해
좀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구요.
비록 충렬사는 코로나로 막혀
가보지 못했지만~
길이 없는 곳이지만
뜻을 두고 찾아다니시는
대단한 방장님.
귀한님 처음 뵙고 같이 걸어
좋았구요. 전국구님 오랜만의 반가움~
청봉대장님, 희야고문님 와 주셔서 좋았더랬습니다.
우리나라 어느곳인들
사연없는 곳 없겠지만
부산은 유독 물건너살던 사람들에게
유린 많이 당한~
지금은 아파트와 건물들 빼곡하게 들어차
그 옛날의 모습은 거의 사라졌지만
이번 부산 여행 뜻깊었습니다.
방장님 덕분에 감사요~
이번 걸음도 고생많으셨습니다.
귀한형님도 오랜많에 소식전하시네요....
전국구선배님도 입담이 엄청 좋더만요..
부산산이 다 시끄러웠겠습니다
무엇보다 깽이님 활동하시는 모습 보니 참 보기좋습니다
인고의 시간속에 많이 답답했을것인데요
다시 두분 대간길 기대하겠습니다
테마산행 참 좋습니다.
역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고,
그 속에 산이 함께하는 그런 산행 참 좋네요.
잘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
그동안
정말로 보고싶은 분
신데렐라 깽이님
청봉님
전국구님
배트맨 배방님
재대로 대접도 못해드리고 죄송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오랜만에 울동네에서 함께 볼수 있어
너무 좋았어요~~~
빠듯한 일정땜에 제대로 대접 모해서 아쉬웠었구요~~~
역사공부 잘합니다
대간길 화이팅이구요
골프장만 아니면 코스 괜찮을듯 싶습니다
동래읍성 금정산정에 대한 몰랐던 역사에
대해 배웁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금정산성실은 4~5번 다녀온것 같은데
아무 생각없이 다녀온지라
방장님의 산행기를 보면서 많은 공부가 되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