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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5월 5일 월요일
[(백)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은 그의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 없게 되자, 그를 최고 의회로 끌고 가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모함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그들은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6,8-15
그 무렵 8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
9 그때에 이른바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 몇이 나서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다.
10 그러나 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에 대항할 수가 없었다.
11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하였다.
12 또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 학자들을 부추기고 나서,
느닷없이 그를 붙잡아 최고 의회로 끌고 갔다.
13 거기에서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이런 말을 하게 하였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14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15 그러자 최고 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22-29
예수님께서 오천 명을 먹이신 뒤,
제자들은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았다.
22 이튿날, 호수 건너편에 남아 있던 군중은, 그곳에 배가 한 척밖에 없었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고 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배 몇 척이,
주님께서 감사를 드리신 다음 빵을 나누어 먹이신 곳에 가까이 와 닿았다.
24 군중은 거기에 예수님도 계시지 않고 제자들도 없는 것을 알고서,
그 배들에 나누어 타고 예수님을 찾아 카파르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고,
“라삐, 언제 이곳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27 너희는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그 양식은 사람의 아들이 너희에게 줄 것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람의 아들을 인정하셨기 때문이다.”
28 그들이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묻자,
2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오늘부터 한 주간 동안 독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며 제자들이 변해 가는 이야기를, 복음은 ‘생명의 빵’에 관한 예수님의 긴 가르침(요한 6장 참조)을 전합니다. 그 가르침의 시작이 되는 오늘 복음에서는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신 기적 뒤의 사람들 반응이 전해집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체험한 군중은 이튿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보이지 않자 배들에 나누어 타고 찾아 나섭니다. 마침내 호수 건너편에서 예수님을 찾아내 반가이 다가가지만 예수님께서는 조금은 매몰차게 그들을 맞이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6,26). 요한 복음서는 “무엇을 찾느냐?”(1,38)라는 물음으로 시작해서 “누구를 찾느냐?”(20,15)라는 물음으로 끝난다고 말씀드렸습니다(1월 4일 ‘오늘의 묵상’ 참고).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당신께 다가오는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신 기적만 바라보느라 그 표징이 가리키는 ‘사랑이 지극하신 예수님’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많은 이가 하느님께 무엇인가를 바라며 다가가고 기도합니다. 이는 흔들리고 허기진 우리 삶에 자연스럽고 또한 꼭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만 매달리고 멈춘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6,29). 주님이신 예수님을 제대로 알고 믿으며 사랑하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김동희 모세 신부)
어린이들은 마치 세공을 기다리는 진귀한 보석 같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어린이들을 만나기 힘든 시골인데, 가끔 부모와 함께 저희 피정센터를 찾는 어린이들을 만나면 얼마나 반갑고 귀하고 소중한지 모릅니다. 저도 모르게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자세를 낮추고, 다정하게 이름을 묻고, 축복해주게 됩니다.
나이가 들었지만 제 핏속에 살레시안의 푸른 피가 돌고 있기에 어쩔수 없는가 봅니다. 아직도 아이들이 그렇게 좋고, 그래서 기회 닿는 데로 아이들을 초대합니다.
한 본당에 사순특강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좀 놀랐습니다. 주임 신부님의 강요였는지, 정확히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중고생들뿐만 아니라 많은 어린이들이 제일 앞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한 시간 남짓 특강 시간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초집중하며 강의를 듣는 것이었습니다. 강의를 마친 후에 너무 기특해 어린이들에게 가서 고생했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는데, 한 친구는 또 말을 어떻게 그렇게 예쁘게 하는지! “신부님 감사해요. 지금까지 들은 특강 중에 제일 감동적이고 좋았어요.”
저는 그 뒤로 어린이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들도 다들 나름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나름 주관이 있고, 선호하는 바가 있고, 그들 특유의 살아가는 방식이 있고, 무엇보다도 그들 안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시고, 선을 향한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은 마치 세공을 기다리는 진귀한 보석 같습니다. 이미 존재 자체로 존귀하고 가치가 있습니다. 세공사들인 부모와 교사, 기성세대들이 어떻게 동반하느냐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입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을 각별히 사랑하셨고, 만날때마다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오늘 어린이 날을 맞아 꼭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느님이 맺어주신 동반자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어린이들은 그들이 지닌 순수함과 천진무구함, 무죄함과 티없음으로 인해 존재 자체로 사랑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진리를 말입니다.
물론 어린이들은 아직 성장 중인 여린 묘목 같기에, 약하고 흔들리지만, 그들 안에 반드시 그들을 선으로 인도하는 주님의 영께서 자리하시고, 그들을 성장시키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신앙 여정은 한곳에 정체되어 있지 않고, 성장하고 움직여야 마땅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어린이로 시작해서 무럭무럭 성장한 이후, 어느 순간 어른이 됩니다.
어른이 되면 자연스레 늘어나는 것이 고정관념이요 안주본능, 욕심이요 집착 등등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어른에서 어린이로 되돌아갈 순간입니다. 어린이들의 그 해맑음, 천진난만함, 순수함을 회복할 순간입니다. 어린이들 특유의 아버지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순수한 믿음을 회복할 순간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우리는 매일 살아가기 위해 ‘양식’을 구합니다. 일도 하고, 장도 보고, 밥도 먹고, 때로는 건강보조제도 챙겨 먹고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애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기 위해 일하라.” 처음엔 좀 당황스럽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사는 게 잘못이라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왜 그렇게 사느냐고 묻고 계신 겁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삽니다. “돈도 좀 벌어야 하고, 아이들 키워야 하고, 집도 필요하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요?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욕망은 채워지면 지루함이 오고, 채워지지 않으면 고통이 온다.” 결국 돈, 명예, 성공은 다 썩어 없어질 양식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삶으로 살았던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초대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 스테파노 부제입니다. 스테파노는 교회의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부제로 뽑혔습니다.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었지만, 사실 그가 나눈 진짜 양식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설교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유다 지도자들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게 되었고, 마지막 순간,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기도하며, 예수님처럼 용서하며 죽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썩지 않는 양식,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은 사람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빵을 배불리 먹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표징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찬미와 감사의 마음을 갖는다면 빵은 언제든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구원은 지금 당장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나’를 먼저 신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재물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커다란 능력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느님의 아들이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부활하셨다는 믿음을 주셨습니다. 그 믿음 위에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그 믿음이 온갖 박해와 죽음까지도 이겨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길이 남아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야 합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여러분이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뭔가를 위해 열심히 삽니다. 그런데 혹시 그 열심히 한 삶이 썩어 없어질 것에만 쏠려 있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진짜로 추구해야 할 양식은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살게 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을 믿는 삶의 태도입니다. 하느님의 일은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스테파노처럼 내가 믿는 바를 증언하는 것, 그것이 진짜 ‘영원한 양식을 얻는 길’입니다. 오늘 하루,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위해 일하고 있나?” “나는 지금 어떤 양식을 위해 살고 있나?” 스테파노처럼,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는 신앙의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진짜 양식은, 절대로 썩지 않는 생명의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밥을 먹으며>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요한6,26)
밥을 먹으며
밥을
만납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준 이를
만납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줄 나를
만납니다
밥을 먹으며
밥이
되어준 이를
만납니다
밥을 먹으며
밥이
되어줄 나를
만납니다
밥을 먹으며
밥을
만납니다
밥을 먹으며
오늘의 성인
성 힐라리오 (Hilary)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아를(Arles)
활동연도 : 400-449년
같은이름 : 힐라리우스, 힐러리
프랑스 로렌(Lorraine)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힐라리우스(Hilarius, 또는 힐라리오)는 아를의 성 호노라투스(Honoratus, 1월 16일)와 가까운 친척인 듯하다. 뛰어난 가문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그는 세속적인 성공을 꿈꾸었으나 성 호노라투스가 그를 하느님만을 섬기도록 안배하여 레랭(Lerins)에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일단 한 번 결정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는 강직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졌는데, 이는 부모의 막대한 유산에도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그것을 형제들에게 모두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도원의 엄격한 규율을 좋아했고, 공식적인 의무 외에 자발적인 노동을 즐겨하였으며, 포로들을 대속하는데 관심이 많아 늘 헌금을 거두어 그들을 석방시키는데 앞장섰다. 또 그는 아를의 주교로서 매우 뛰어난 설교가였는데, 가장 무식한 사람들조차 이해할 수 있는 쉬운 말로 강론하였다. 또 수차례에 걸쳐 교회 회의를 주재하였는데, 그의 솔직한 성격 때문에 논란의 대상이 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고 그에 대한 반대가 성좌에까지 전달되기도 하였다.
성 안젤로 (Angelu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예루살렘(Jerusalem)
활동연도 : 1145-1220년
같은이름 :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안젤로는 ’천사, 사신’이란 뜻이다.
안젤로의 양친은 성모의 환시를 보고 유대교에서 신자가 된 예루살렘의 유대인이었다.
그 당시 성모님은 너희들이 기다리는 메시아가 이미 오셨고,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셨다고 하시면서, 부부에게 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면서, 그들은 가르멜 산의 올리브 나무처럼 무럭무럭 자라리라 하셨다고 한다. 과연 그 약속대로 그 부모는 쌍둥이를 얻었는데, 둘 다 머리가 비상하고 또 영적인 선물도 받았다.
18살때 그들은 가르멜회에 들어갔는데, 둘 다 희랍어, 라틴어 그리고 히브리 말을 유창하게 했다고 전한다.
안젤로는 가르멜 산의 은수소에서 5년을 지낼 때, 주님께서 발현하시어 시실리로 가라고 하셨다.
그는 즉시 하느님의 명을 따라, 시실리로 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팔레르리에서 200명 이상의 유대인을 개종시켰다.
그가 군중들에게 설교하고 있을 때 베렌가리오에 의해 참수당한 일단의 반도들이 군중들을 혼란시킨 뒤에 그를 찔렀다.
치명상을 입은 안젤로는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살인자를 용서한다는 말을 남기고 숨졌다.
복자 눈시오 술프리지오(Nuntius Sulprizio)
활동년도 : 1817-1836년
신분 : 평신도
지역
같은 이름 : 눈시우스, 눈씨오, 눈씨우스, 눈지오, 눈치오, 눈티오, 눈티우스, 술페리지오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의 페스카라(Pescara)에서 태어난 눈티우스 술프리지오(또는 눈시오 술프리지오)는 대장장이 일을 하다가 1836년 5월 5일 19세의 젊은 나이로 나폴리(Napoli)에서 선종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아 많은 고통을 겪었지만, 늘 점잖고 자비심과 인내심이 깊은 보기 드문 신앙인으로 살았다. 그는 1963년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그는 눈지오 술페리오(Nunzio Sulperio) 또는 눈지오 술프리지오(Nunzio Sulprizio)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