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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escent of Man
▶ 8. Sexual Selection in animals
동물의 성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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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장의 소제목은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변이의 원인
습성의 영향
성장에 있어서의 상호작용
유전
사육재배 변종의 형질
변종과 종의 구별
집비둘기의 품종과 기원
선택의 원리와 그 결과
세심한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
사육재배 품종의 기원이 불분명한 이유
선택에 유리한 조건
다윈은
어떤 열정으로 이런 지난한 작업을 평생 해낼 수 있었을까?
단지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기 위해서일까? 친구들의 찬탄을 받기 위해서일까? 그런 저런 면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뭔가 더 근본적인 다른 원인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계속 해오고 있는 중이다. 왜인지 몰라도 혹세무민한 기독이 미워서 몰두하지는 않았지 싶다. 그냥 자신의 잣대에서 벗어나 있는 걸 제대로 한번 바로잡고 싶었던 심정은 차라리 부차적인 것이 아닐지..그런 거창한 것 외에 좀 더 일반적인 이유가 있을거라는..너도 나도 가지고 있는 그런 보편적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심정이 든다.
감히
나를 빗대어 예를 드는 것이 외람되긴 하지만, 보편적인 이유를 생각해내려 하다보니 뭐 그래도 되겠다 싶기는 하다. 내가 번역 연습을 다윈의 글로 시작하게 된 것도 뭐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또한 내 하는 일이 나중에 대단한 성과를 낼 것을 기대해서도 물론 아니다. 그냥, 다락방에서 또는 어느 허름한 작업실에서 마냥 하염없이 이것 저것 두들겨 맞추기도 하고 망치질이나 톱질을 하거나 하면서 혼자 작업하는 시간을 가지는 전형적인 수컷들의 행위...이런 보편적인 수컷들의 행위를 나도 하고 있었을 뿐이고 마침 다윈에게는 망치질이니 번역질이니 하는 것 대신 저런 엄청난 주제에 필이 꽂혀 일생을 바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혼자 생각해 보곤한다.
무조건
위대한 인물에 대해서는 일단 존경하고 보는 사람들의 심리로 판단컨데, 내가 지금 하는 멘트가 너무 어이가 없을 지도 모르겠다만, 조금만 곰곰히 따져보면 뭐 그렇게 어이없어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더라.
설마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라는 그 목적으로 평생을 살아간 것도 아닐거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자신이 그걸로 유명세를 얻으려고 그토록 집착하지는 않았을거라. 그냥 내면의 욕구에 휘둘려 어쩌지 못해 계속했을 뿐이지 않을까...
영화 '오버브룩 브라더즈'를 보면,
형제간의 경쟁에 대한 집착이 주제로 나온다. 못말릴 지경까지 두 형제는 경쟁을 벌리는데 어느 한 장면은 웃다가 포복절도하기도 했었다.
동생이 자기 애인과 함께 형의 자동차를 타고 가는데, 형은 동생이 저렇게 예쁜 여자를 동생이 가졌다는 게 배가 아프다. 그래서 어릴 적부터 해온 대로 동생을 꼬드긴다. 사내다움의 내기랄까...겨울날 달리는 자동차에 히트를 끄고 창문을 열고 오래참기를 하는 거다. 그래도 쉬 승부가 나지 않으니까, 이제 윗옷을 벗고 버티다가 마지막에는 생수를 각자 한 병씩 머리에 붓고 덜덜 떨면서 버틴다. 그 동안 뒷자리의 동생 애인은 추워서 미칠 지경이지만 두 사내의 경쟁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정말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이게 정상적인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지만 두 당사자는 그 순간만은 그 경쟁에 목숨을 건다...
지금 당장 보기에
우리는 자신이 무슨 엄청난 목적의식에, 엄청난 성취욕 때문에 자신의 일에 매진하는 걸로 비춰질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점에 딴지를 거는 건 참지 못할 만큼 자신의 각오나 노력이 확고함을 과시할 지도 모르겠지만...글쎄...진정 그럴까...위의 예에서도 그런 점이 느껴질까?
남자들의 로망..지하실
여자들은
우스개로 남자들에게는 톱하고 망치만 쥐어주면 혼자서도 며칠이고 잘 논다고들 한다더만..
우리 모두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지작거려야 한다. 삶을 윤기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한다. 그런 심리의 근원에 대해 진화학자들은 그럴 듯한 논리를 제시하기도 하더라만 그 어떤 논리도 완전히 틀리거나 완전히 맞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 자신이 그런 것처럼, 또는 누군가가 망치와 톱을 들고 나무조각을 다듬거나 나팔이니 트럼본이니를 만지작 거리는 일을 하는 따위 들도 그 근본적인 심리 기저에는 아주 평범한 보편적인 그 무엇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윈도 뭐 이 세상에 빛을 던지기 위해 이런 진화론 작업을 시작한 것이 아님은 분명할테니.
그렇게 보면
세종대왕이 한글 자모를 가지고 짜맞추기를 했다거나 최무선이 화약놀이를 했다거나 이 순신이 철갑 배를 만지작거린 그런 모든 행위들은 우리가 헛간 한켠에서 무언가를 쪼개고 톱질하고, 또 아니면 우리가 컴퓨터를 켜놓고 하염없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타이핑하는 등의 이런 의미없는 행위와 그 근본에 있어서는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 그런 수컷들의 행위 이면에는 유달리 수컷들에게 더 많이 존재하는 그 보편적인 무슨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으려나...의미없는 세상살이를 어찌하지 못하는 몸부림같은 그런 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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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원리와 그 결과
이 단락의 글은 정말 요약하기가 힘이 들더라. 다윈이 이러면 안되는데 왜 이런 식으로 어린 백성들이 알아묵기 힘들게 글의 구조를 짰을까 몰라.
사육재배 품종의 특징은
동식물 그네들의 이익을 위해서 선택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인간들의 목적을 위해 이루어지는 특질일 것이다. 이건 가설이 아니라 실제하는 현실이다.
그러면
선택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가령, 동물 가운데
개를 한 마리 선택한다. 그 개는 속칭 똥개...그 넘의 계보를 계속해서 기르고 또 기른다. 그 계보 가운데서 형제자매 끼리조차 생길 수밖에 없는 미세한 차이를 살펴서 선택을 계속해 나간다. 설마 내가 이 똥개를 소나 돼지가 되도록 만들 수야 없겠지만, 전혀 다른 내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선택은 이루어질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지금 먹고있는 시금치를 한 번 손을 보고 싶다면, 그 시금치를 재배하면서 매번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이를 보이는 넘들의 씨앗을 받아 길러가면서 선택을 계속한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원하는 방향은 아닐지라도 처음의 시금치와는 전혀 다른 시금치로의 선택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설마
내가 하는 선택이 그 미래를 예측한 가운데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개의 품종을 최초로 개량하기 시작한 사람이 그 개를 지금의 진도개를 목표로 해서 선택을 계속해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조금 다른 변이를 알아채고 그 변이들 중에서 선택하고 또 그 다음 변이들 중에 선택하고 그런 과정을 겪었을 것이다.
결론은?
결론은 이렇다. 마지막 종착지를 결정짓고 개량을 계속할 수는 없다. 그냥 그때 그때 나타나는 변이들 중에서 하나를 골라 그 선택을 이어갈 뿐이지...즉, 선택의 누적이 있을 뿐이라는 거지
이 예는
조금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가령 어느 인물을 개량해보기로 작정한다고 치자. 선택하는 당사자는 죽지않는 삶을 살면서 그 인물의 개량을 조금씩 유도하고..그리고 수십 세대를 지내고 난다면 그 인물은 우리가 원래 그려둔 그런 인물은 아닐테지만 하여튼 선택의 집적이 이루어 놓은 결실은 보게 되지 않을까?
우리 인류가
짝짓기를 지금도 해오고는 있지만 얼마나 그 진척이 더딘가? 온갖 방법을 다 쓰고는 있지만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새끼를 낳아 길러본 자로서 절감하지 않는가? 그래서 하는 말들이...지 새끼도 마음대로 안되는데..가 아니든가?
그래도
굴하지 않고 우리는 선택을 계속해 나아간다. 중매를 세우든지, 나가서 짝을 찾던지..이제는 대놓고 몇 번이고 서로의 배꼽을 맞춰보면서 조금은 나은 그 무엇을 찾으려 노력하지 않는가? 그리고 드디어 오늘날의 너와 내가 되지 않았는가? 오늘날 우리들의 몰골을 두고 먼 옛날 선조들이 그토록 선택을 진지하게 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여튼 선택을 해왔고, 그래서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일 뿐이다...
어떤 품종의 식물이
훌륭하게 만들어지면, 종묘가는 가장 좋은 식물을 가려내지 않고서 정해진 표준에서 벗어난 이른바 '불량품(rogues)'을 뽑아낼 뿐이다. 동물의 경우도 실제로 이와 같은 종류의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 왜나햐면 품종 나쁜 동물이 번식하는 것을 허용할 만큼 부주의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
...
일반적인 규칙으로서는
잎이나 꽃 열매에 나타난 조그마한 변이를 계속해서 선택한다면, 그와 같은 형질이 서로 다른 품종을 낳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종의 기원 제 1장에서..
세심한 선택과 무의식적인 선택
이 단락에서는
세심한 선택의 집적이든 무의식적인 선택의 집적이든 하여튼 그 결과만 놓고보면 미세한 변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의 변이를 축적해 나간다면 그 종은 현저히 달라지더라는 앞서의 단락과 그 맥이 상통한다.
그리고
세심한 선택의 예도 얼마든지 들 수 있고 무의식적인 선택조차 그 예를 얼마든지 들 수 있다는 언급도 나온다. 그 모든 언급들의 결론은, 동식물을 사육 재배하는 경우 변종 중에서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하고 그 속에서 또 더 나은 것을 선택하는 과정을 겪으면서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동식물이 되었다는 확신으로 글이 마무리되고 있다.
사육재배 품종의 기원이 불분명한 이유
이 단락은
매우 친절하게도 알기쉽게 직접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로 옮겨오기만 해도 충분하다.
실제로
품종이라는 것은 국어의 사투리와 같은 것으로, 그기에 확실한 기원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누군가가 구조에 경미한 편차를 가진 한 개체를 기르며 자손을 번식시킨다. 또는 자신이 소유한 가장 좋은 동물들을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교배시킴으로써 개량해 간다. 그리고 개량된 동물이 점차 인근 지역으로 퍼져나간다.
그러한 동물은
거의 제대로 된 이름이 없고 또 그 가치도 아주 조금밖에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 내력은 주의를 끌지 못하고 무시된다. 이와같은 완만하고 점차적인 과정을 통해 개량이 진행되면 그 보급 범위가 넓어지고, 마침내는 가치가 있는 특별한 것으로 인정받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지방적인 이름이 붙여질 것이다....진도 개, 거창 사과, 얼음골 사과, 성주 참외...등등
위 글을 인용하다보니
갑자기 우리 인간들의 조상들, 즉 우리의 뿌리를 찾는 일도 그와 같이 그 기원을 찾는 일이 어이가 없구나 싶기도 하다.
변씨는
중국 주나라 문왕(文王)의 여섯째 아들 숙진(叔振)이 변읍(卞邑)의 군(君)이 되면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위의 내용으로 상고했을 때 변씨는 중국에서 시작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지요! 한반도에 처음으로 변씨가 등장한 시기는 신라 경덕왕 때입니다. 신라 경덕왕 2년에 당의 8학사 중 한 분이신 卞源이란 분이 효경이라는 책을 가지고 통일 신라에 들어오시는데 이 때가 서기 743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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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변효량의 5대손인 변수림의 따님이 우리 나라의 최대의 민족 영웅 이순신의 어머니이십니다. 이상의 경우를 종합해 볼 때 나라가 평안할 때에는 열심히 학문을 닦고 나라가 힘들 때에는 풍전의 등화를 지켰던 성이 변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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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정황으로
보았을 때 한반도 자체 발생설은 상당히 근거가 희박합니다. 따라서 중국에서 발생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오히려 우리 변씨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주나라 문왕에서 근원을 찾지 말고 요임금(BC 24C)로 소급하여 검토할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그렇다면 주나라보다 1000년 전의 일이므로 우리 변씨 성의 기원의 원대함을 짐작할 수 있어 자긍심이 더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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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와 같은
굴지의 성도 신라시대의 흐름을 잡아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으며 한 나라의 역사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가 아니면 도대체 꿰맞춰지지가 않은데 더구나 변씨의 역사는 말해서 무얼하겠습니까? 좀 전에 김씨의 예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은 서기 후의 일입니다. 그 이전의 근원은 없습니다. 그러니 알로 탄생한 설화가 등장하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 변씨는 전설의 요임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얼마나 그 연원이 심대합니까?
http://bsnmp.blog.me/120030395017
내가
이미 과거에 이 사이트에서 황가의 계보-(◀--참조)를 가지고 노략질을 한 바가 있기 때문에 이번에 변씨 성을 가지고 잠시 예를 든 것에 대해 행여 변씨 성을 가진 사람은 이런 일로 언짢아하는 그런 불상사가 없길 바란다. 요지는 족보니 일가니 하는 모든 일체가 헛되고도 헛되도다는 말을 하고싶었을 뿐이라는 걸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는다만...
선택에 유리한 조건
축사에
10 마리의 돼지를 두고 기르는 것보다야 100 마리를 두고 기르는 것이 변이를 찾아 품종개량을 이루기가 그만큼 더 쉬울 것이다. 너무 개체가 적으면, 별 수 없이 그넘들을 모두 잘 길러야 하지만 많이 사육할 수만 있다면 품종개량에는 그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런데
고양이 등은 변이성을 찾아서 축적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 넘들은 짝을 정해주기 어렵기 때문일 뿐이다. 가두어두고 개량한다면 이넘들 역시 품종개량은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이 말은 다윈이 직접 한 말이다...이런 종류로는 거위도 있고, 공작이니 당나귀도 그렇다고 한다.
특히 거위는
별 큰 가치가 없는데다가 변이를 애써 찾아 개량해도 별로 즐거운 대상이 아니어서인지 개량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 더욱이 거위는 변이량 자체도 아주 적다고 알려져있다고 한다. 별 쓸모가 없거나 개량하기 만만치 않으면 그 변이량을 키우는데 노력을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는 의미도 되지만 원래 변이량이 적은 놈들도 있다는 말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가축의 변이는 변이에 한도가 있다는 문제에 대해..
가령
달리기를 잘하는 넘을 한없이 계속 개량한다고 해도 그 속성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이것은 극복할 수 있는 마찰력이나 유지해야할 체중, 근섬유의 수축력 등의 어쩔 수 없는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참고로,
같은 속의 종 사이의 차이와 같은 종의 변이가 일으키는 차이 가운데 어느 차이가 더 클까?
예를 들어
A 라는 종의 말이 있고, B라는 종의 말이 있다면 A,B는 같은 속이다. 그런데 A라는 종이 변이를 일으킨 Aa라는 변종이 A와 B 사이의 차이보다 월등하게 더 크다는 것이다. 믿어질라나? 그런데 가만히 따져보면 정말 그렇네 하게 되더라...지금 사육재배 하에서 논의중이라는 점만 명심한다면...
다윈은
이런 점을 이클립스라는 준마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 말에 대해서는 별도로 공부를 또 하기는 싫네...이제 나이도 있고해서..
사람을 속과 종으로 나누어 보면 좀 더 선명하게 다가올려나...분류상으로 ; 속 > 종
사람 속 ;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사람 종 ;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표범 속을 예로 들면,
표범 속에 속하는 종 ; 호랑이, 사자, 표범, 재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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