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9.水. 서울은 흐림, 남부지방에서는 비가 온다고
08월02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일요법회 앵커맨 벨라거사입니다.
밤에는 차실에서 방충망이 씌워진 속 미닫이문만 닫혀놓고 잠을 자기 때문에 새벽녘에는 선선하거나 살짝 한기가 드는 것이 정상이고 그러면 이불을 덮거나 바깥 여닫이문까지 닫히고 잠은 잔다고 했습니다. 본래는 언제라도 차실 안에 계곡바람이 슬슬 돌아다녀서 하룻밤이라도 지내본 분들은 모두들 극락에서 보낸 여름이라고 입을 모았다는데 올 여름에는 지난 주에 회장님이 창고에 들어박혀있던 선풍기를 내놓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차실에도 잘 생긴 신일 선풍기 한 대가 놓여있었습니다. 차실 안에 있을 때면 나는 선풍기를 켜놓았습니다. 그러면 이 절이 생긴 이래 처음 있는 일이라면서 스님께서는 이상 날씨에게인지 이상 자연현상에게인지 하여튼 하늘 쪽을 가리키면서 불평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여러 차례에 걸쳐 모후산 목탁암에 와서 기도도 하고, 독서도 하고, 하늘과 별과 바람을 통해 자연을 탐貪하고, 스님과의 대화를 통해 템플스테이를 즐겼지만 복伏이 끼어있는 여름철에 와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예년 같지 않게 계곡의 물이 풍부하지 않아 계곡수가 시원하지 않은데다가 대낮에도 덤벼드는 모기는 독하고, 한 밤중이면 여닫이 방문을 닫고 자야할 만큼 시원하지도 않고, 장마철이 지났는데도 끈끈한 습도가 유난히도 높아 훨씬 무덥게 느껴지는 올해의 날씨는 장했던 지난해 여름보다 오히려 무더워서 힘들다고도 말했습니다. 나도 목탁암에서 지낸 8일 동안 두세 번은 바깥 여닫이문까지 닫고 잤으나 나머지는 여닫이문은 열어놓은 채 방충망이 씌워진 속 미닫이문만 닫고 선풍기는 켜놓은 채로 잠을 잤습니다. 덥기도 했으나 모기 때문에라도 선풍기를 켜놓아야 했습니다. 모기향을 피워 문 옆에 놓아두었으나 차실이 하도 길고 넓어서 모기 박멸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은 듯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방충망 미닫이문을 통해 바깥 풍경들이 벽걸이 화면처럼 들여다보였습니다. 누운 채로 머리를 돌려 잘 쳐다보면 마당으로 향한 앞문 밖의 풍경은 마당 끝에서 시작하는 계곡과 계곡 너머의 앞산 등성이 위로 푸른 하늘까지 보이기 때문에 입체감이 살아있는데다가 오전이 무르익을수록 툇마루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시루떡 햇살이 장관이었습니다. 뒤께로 트여있는 뒷문 밖의 풍경은 좁은 뒷마당에 이어서 바로 급경사의 산비탈이 시작하기 때문에 무성한 풀에 덮여있는 산비탈 풍경이 밋밋한 평면처럼 보여서 마치 TV 화면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해주고 있었습니다. 앞문 쪽이나 뒷문 쪽이나 대세는 초록인지라 온통 푸르름이 융창隆昌하고 있는데, 앞 풍경에는 백일홍 꽃이, 뒤 풍경에는 원추리 꽃이 풍광風光에 빨갛고 노란 한 점 향기香氣를 불어넣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시원한 아침시간을 이용해서 밭에 나가셨나봅니다. 나는 세면장으로 달려가 우선 끈끈한 몸을 개운하게 씻은 다음에 도량 입구 왼편에 누워있는 고구마바위에 가부좌로 앉거나 벌렁 누워서 따끈따끈 일광욕을 하고 차실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은 다음 독서를 했습니다. 대략 10시쯤 되면 밭에서 돌아온 스님이 뒤쪽 문을 톡톡 두드리면서 커피 한 잔 하시오. 라고 말을 건네주었습니다. 뒤쪽 미닫이문을 열고 쪽마루에 나 앉으면 커다란 머그잔에 스님의 수제 커피가 김을 모락모락 올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부드럽게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스님표 수제 커피는 알갱이 커피에 설탕과 분유를 넣어 특별히 만든 것이라 어떻게 보면 꽃다방 커피 맛도 나고 또 어찌 보면 인도식 밀크 티인 짜이 맛도 나는 아침을 달래주는 좋은 음료였습니다. 그런데다 머그잔이 크고 양도 무척이나 많이 들어있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잔을 비우려면 다양한 화제와 깊이 있는 주제를 몇 개쯤은 섭렵을 해야 했습니다. 점심공양이나 저녁공양 뒤에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대화와 쪽마루에 앉아 수제 커피를 마시면서 주고받는 대화는 자연스럽게 내용이나 깊이가 구분이 되었습니다. 수제 커피로 입술을 축이는 쪽마루 대화에는 사적인 이야기나 일상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거론이 된 것이지요. 커피를 마시고 나서는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서 주로 독서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각부터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 밖에서 하는 일이나 밭일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도 아침에 일을 하고 오후에는 쉬었다가 해가 질 무렵부터 다시 나가 밭일을 하시는 모양이었습니다. 오늘 점심공양으로는 김치비지찌개를 끓이고 보리를 섞은 잡곡밥에 콩자반과 회장님이 만들어 오셨다는 고추오징어멸치 볶음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점심공양 후에는 차를 마시고 그 다음에는 스님 서재와 공양간과 차실에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읽고 싶은 책을 열 권 가량, 그리고 시사지를 열 권정도 골라서 우측 벽에 가지런히 봐야할 순서대로 쌓아놓았습니다. 절에 머무는 동안 이십 여 권의 책들을 다 읽을 바는 아니지만 이렇게 곁에 책을 풍성하게 놓아두면 책 목차라도 훑어볼 수 있기 때문에 여러모로 편리한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오후 시간동안을 차실 앞뒷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여름을 충실하게 즐기고 있는데 스님께서 뒤쪽 문을 통통 두드리시더니 얼굴을 쓱 내보이시면서 허어, 손님 왔네, 손님 왔어. 하고는 앞마당 쪽으로 돌아나갔습니다. 잠시 내가 어떤 생각에 깊숙이 빠져 도량 마당으로 차가 굴러들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던 모양이었습니다.
당연히 모르는 분들이 더 많겠지만 스님은 헌병 출신이라 군복무를 강원도 어느 도시 군부대에서 빡세게 했답니다. 그때 함께 근무를 했던 동기 분들이 아직까지 서로 왕래를 하면서 모임을 갖고 있고 그중에는 스님 절에 다니면서 불자가 된 분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또 그중에서 광주권에 생활기반을 갖고 사는 동기가 몇몇 있어서 가끔 스님을 초대하거나 절로 찾아뵙는 모양인데 오늘은 부부모임을 겸해서 산속으로 바람도 쐴 겸 절에 스님을 만나러 왔다고 합니다. 물론 나도 대부분 알고 있는 분들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스님과 교류하면서 한 분 한 분 소개를 받았던 것입니다. 모후산母后山 목탁암木鐸菴은 말은 암자이고 건물은 두 채밖에 되지 않지만 본채와 현판은 본사 급으로 큰데다가 울타리 없는 도량이 계곡 분지 전체를 차지할 만큼 넓어서 차가 한두 대 들어와 사람들을 내려놓은 다해도 그다지 북적임이 없었습니다. 보살님들은 공양간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고 남자 분들은 식당방을 중심으로 짐을 풀고 선풍기 앞에 가만 앉아있으니 차실에 들어앉아있으면 사실 누가 왔는지도 모를 판이었습니다. 스님께서 다시 차실로 돌아와 동기 분들이 차를 마시러 이리로 올 거라면서 눈을 찡긋하시더니 거사님, 오늘 저녁공양은 잘 드시게 될 것 같아. 하셨습니다. 손님 몇 분이 차실로 와서 차를 한 잔씩 하고 식당방으로 돌아갔고 나는 차실에 앉아서 책을 마저 읽었습니다. 도량 마당으로 찰랑 찰랑 햇살이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차실에 들어앉아 책을 보고 있으면 시간이 빨리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빨리 지나가는 정도가 어떤 때는 비정상이라고 느낄 만큼 시간들이 스흐읔~ 귓가에 여운을 남기면서 지나가버렸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스님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스님도 동감同感을 표했습니다. 그렇지요?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나도 느지막이 저녁공양을 하고 그대로 공양간에 앉아 차를 마시거나 책을 좀 보면 그래봐야 밤10시, 11시일뿐인데 차실로 가서 차를 마시고 책을 읽다보면 아니 새벽3시, 4시가 되어버려서 나도 깜짝 놀라는 경우가 자주 있었거든요. 왜 그런지는 몰라도 차실에서는 시간이 유별나게 빨리 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는 나도 스님의 그런 느낌을 자주 받아보았기 때문에 차실 안에 시간을 빨아들이는 공간이나 소용돌이가 숨어있지는 않은가하는 마음으로 차근차근 구석구석을 잘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음이 집히는 곳을 한 군데 찾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설명을 하려면 먼저 모후산 목탁암 본채 구조를 설명해야합니다. 도량 마당에서 모후산 목탁암 본채를 정면으로 바라보면 왼쪽부터 공양간과 부속방, 식당방과 신도님방, 통으로 인법당, 통으로 차실, 침실과 서재 순서로 들어앉아있는 다섯 칸 집입니다. 그러니까 법당과 차실만 한 개의 방으로 터져있고 나머지 방들은 미닫이문을 사이에 두고 윗방 아랫방 형태로 나누어져있습니다. 법당은 맨 안쪽에 불단이 설치되어있고 불단 위에는 부처님이 모셔져있는데 불단 아래는 비어있어서 식당방과 차실 사이에 빈 통로가 하나 있습니다. 물론 식당방 쪽에도 그리고 차실 쪽에서 작은 벽장문이 하나씩 있어서 불단아래 통로로 두 방을 건너다닐 수 있지만 평상시에는 거의 사용을 하지 않을뿐더러 눈에도 잘 띄지 않는 공간이랍니다. 나도 그 공간에는 딱 한 번 들어가 본 적이 있는데 그곳에 보관 중이던 향로와 촛대를 가지러 들어갔던 것입니다. 깜깜하고, 어둡고, 으슥하지만 차분하고, 고요하고, 적정이 머무는 듯한, 그리고 실제로는 불과 몇m 안 되는 거리인데도 끝없이 길고 유장한 만장굴萬丈窟 같은 느낌을 팡팡 전해주는 어둠이 뭉쳐있는 무거운 통로였습니다. 그런데 차실 쪽에 있는 벽장문짝이 딱 아귀가 맞지 않아서 닫혀놓아도 어느 사이엔가 문이 스르르 열려있어서 항상 3cm가량 틈새가 벌어져 있는데 차실에 있다 보면 간혹 공기의 비틀리는 듯한 흐름이나 어떤 소용돌이 흐름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열려있는 문 틈 사이를 통해 무거운 통로로 시간이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언저리에 소규모 시간의 계곡이나 작은 시간의 폭포가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계곡이나 폭포에서는 흐름들이 일정하거나 균일하게 흐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여하튼 차실에서는 시간이 빨리 지나갔고 특히 밤중부터 새벽까지는 그 속도가 훨씬 입체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았습니다. 어때요, 직접 모후산 목탁암 차실에서 한번 하룻밤을 지내고 싶어지지 않나요?
오랜만에 모후산 목탁암에서 저녁공양 목탁소리가 쩡쩡 울려 퍼졌습니다. 저녁공양시간에 밥상이 세 개가 차려졌습니다. 공양간에는 보살님들의 밥상이, 식당방에는 스님 공양상이, 그리고 신도님방에는 거사님들의 밥상이 차려져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사님들의 밥상에는 모임을 위해 특별히 장만을 해온 듯한 마을에서 볼 수 있는 진수성찬이 올라와있었습니다. 물론 상추와 고추, 호박잎과 가지는 이곳 밭에서 따온 것들이지만 절에서는 구경할 수 없는 음식들은 분명 손님들이 준비를 해온 것일 것입니다. 저녁공양을 마치고 차실로 자리를 옮겨 차를 마시고 밤이 이슥해지자 각자 머무를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스님과 나는 차실에 남아 한동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참 뒤에 다기를 정리하고 잘 준비를 했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소매를 보러 밖으로 나갔더니 하늘이 살짝 구름에 덮여있는지 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조금 더 이른 시간에 밤하늘에 떠있는 음력 열하루 달을 보았으니 지금도 저 앞산 너머에서는 달이 보름달이 되고 싶어 열심히 몸집을 부풀리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밤새 달 크는 소리가 우렁우렁 귓가에 소 울음처럼 들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