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호 ]
천생연분
박동남
투박한 항아리 속에도 귀한 술이 들어있다
누구든지 그를 보면 뒤로 나가 자빠진다
발바닥으로 비벼 끈 듯한 코 감았는지 떴는지 분간하기 어려운 눈
썰어서 세 근 입술 멍게 같은 얼굴과 피부 배불뚝이 항아리 같은 그가
덤프트럭을 운전 한다
이슬 내린 이른 아침 낡은 시골풍경이 뒤로 달아난다
저 멀리 둔덕에 무언가 보인다
누워있는 물체가 사람 같다 가까이 갈수록 뚜렷해 진다
빨간 원피스를 입은 긴 머리 여자가 모로 누워있다
옷이 젖은 상태로 봐선 간밤 일로 추정된다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 하얀 천정 형광등 불빛이 먼저
반긴다
주위를 본다 팔에 꽂힌 주삿바늘 호스를 따라 투명 비닐봉지의 링거 주사액과
자신의 침대 옆에 엎드려있는 사내의 더벅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어느 구름이 달을 데려갔을까 칠흑이 내리는 시골 길에 무언가 뒤를 쫓아오는 느낌이 든다. 겁이 난다
짐승 같은 검은 물체가 꽥 덤벼들듯이 마구 쫓아오고 있다 그녀는 정신없이 달리다 무엇에 발이 걸려
아래로 구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보은
빼어난 미모의 그녀는 그의 소원을 묻는다
그이 직장을 따라 방을 얻었다
그이가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장거리 운전을 하는 동안
그녀는 동네 아낙네들을 사귄다
입바른 아낙네의 말 기울어도 너무 기운다
새댁처럼 아름다운 여자가 어떻게 그런 남자를 만났어?
그녀가 폭발 한다
내가 내 신랑하고 살면서 당신한테 밥을 달래? 떡을 달래?
남의 말이라고 함부로 막 해도 되는 거야?
당신들이 흉보는 내 남편 얼굴엔 복이 꿀처럼 들었고
투박한 항아리 속엔 보물이 가득해
당신들한테 부탁할 일 전혀 없을 테니 걱정하지 마
화의 파편이 아낙네들에게 떨어진다
속사람의 아름다움을 겉 사람이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죽었다 깨어나도 그들은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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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남/ 2008년 《다시올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