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1월 12일(16박 17일) 일정으로 7명(박선봉 양해택 이대수 이지원 이춘도 조명희 최태임) 이 코스타리카 쿠바 멕시코를 돌아보는 평화여행을 했다.
첫 날(12월 27일 금)
12월 27일 오후 3시 인천공항에 도착해 함께 짐을 붙이고 좌석을 배정받은 채 출국수속을 완료했다. 5시 50분 AA편으로 달라스에 도착한 것은 오후 3시 45분 환승절차를 마치고 난후 5시 10분 출발예정인 비행기가 늦어져 오후 7시 40분이 되어서야 출발하게 되었다. 4시간을 날아 산호세공항에 도착하니 정세훈 박선하 목사부부께서 마중을 나와 주셨다. 장고가 한쪽 가죽이 찢어졌고 라면박스는 미도착상태라 시간이 걸렸다. 마중나온 마이크로 버스에 짐을 싣고 시온교회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하니 새벽 1시가 되었다. 김도겸목사는 이민 1.5세라고 소개해 주셨고 미국과 베네수엘라에서 사업과 거주하셨다고 했다. 늦은 시간이지만 라면과 햇반으로 야식과 술한잔으로 무사히 도착했음을 자축하고 잠이 들었다.
둘째날(12월 28일 토)
아침 6시 간단한 식사를 하고 정세훈목사의 안내로 7시에 농산물 직거래장터를 찾았다. 경기장 옆 도로변에 좌판을 펼쳐주고 각종 농산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매주 토요일오전 6시-오후 1시(지역별로 조금 차이 난다) 정도 열리는데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장을 본다고 한다. 녹색 티셔츠을 통일적으로 착용하고 있는 것이 상당히 조직적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무척 깨끗하게 운영되고 있고 대부분 가격이 표시되어 있었다. 한국의 채소와 과일과 비슷한 것도 많았고 전혀 다른 모습의 과일도 있었고 평소 음료 형태로만 마시던 과일이고 유기농제품이라 4일치 먹을 것을 생각해 푸짐하게 구입하였다. 환전을 못해 지체하다 사모님의 도움도 받았고 나중에는 달러도 사용할 수있게 되었다. 8시를 조금 지나 코스타리카 한인교회로 이동해 잠시 인사를 나누고 준비해간 ‘군대를 버린 나라 코스타리카’ 책을 정목사께 선물로 드렸다. 시온교회를 포함해 두 곳의 한인교회가 있다고 했다. 기사는 교회에서 준비해준 아침식사를 하고 난 후 출발했다. 인권적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황민상선생께서 동행하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알로에 음료 등을 수입하는 사업을 하는 중이라고 하셨다. 교회에서 10대 청소년들을 반갑게 만나면서 영어 스페인어를 하고 공부도 잘 하기 때문에 좋은 직장에 취직이 잘 된다고 소개해 주셨다. 한인은 4-5백명 정도 거주하고 있고 경기가 좋지 않아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작년에 남미여행 중에 들은 설명과 비슷했다. 8시 반이 조금 지나 출발해서 약 4시간을 달리면서 중간에 쉬기도 하고 궁굼한 점을 많이 설명해 주었다. 사회 전반 경제현황 정치상황까지 궁굼했던 점을 들을 수 있었다. 미국의 한 주에 해당할 정도로 친미적인 분위기이고 몇 가문이 정치를 주도하고 있으며 자유당이 집권해 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사회주의 성향의 젊은 정치가가 관심을 끌면서 2월 선거에서 좌파 정부의 집권 가능성도 이야기되는 정도라고 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확인하면서 선거에 관해 참 재미있게 이루어지고 인권의식이 매우 높다고 한다. 직원에 대해서도 존중해야 하고 가정내에서도 그렇게 존중하는 분위기가 되어 있다고 한다. 고용주는 급여의 23%를 보험과 국민연금으로 부담하고 피고용인은 9% 부담한다고 한다. 의료와 교육은 무상인데 질이 낮은 것이 문제라고 했다. 그래서 사립학교와 사보험이 부유층 사이에 확산되어 있다고 한다. 일반 시민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다고 한다. 외국인 특히 미국과 유럽의 은퇴자들이 정착해 살고 있고 여러 가지 우대 정책을 쓴다고 한다. 중간에 도착한 성당 앞에 내려 보니 작은 광장도 있고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마을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먼저 성당이 들어오고 광장이 조성된다고 한다. 오후 1시가 되어서 아레날 화산 온천에 따바콩이라는 리조트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을 정도였고 화산온천으로 작은 계곡을 따라 다양하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었다. 뷔페식 점심으로 식사를 마치고 2시간여를 보내고 나니 모두 만족해 하는 분위기였다. 가족단위로 많이 이용하는 모습이었다. 대형 찜질방과 비교되는 것 같다. 오가는 시간을 생각하면 하루 숙박을 하면서 쉬는 방법이 좋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았다.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 들러 맥주도 사서 마시고 산호세 시내에서 24시간 운영하는 기사식당 DOSA(식사만 가능)에 들러 현지인들의 식사로 저녁을 먹었다. 붉은팥(남미에서는 콩이라 한다)에 생선 또는 육류가 포함된 식사였는데 5불 정도였고 파인애플 음료도 맛있었다. 마치 식당 맞은 편에 큰 규모의 슈퍼마켓이 있어 들어가 보니 식료품과 생활잡화가 많았다. 레스토랑은 식사와 주류 그리고 바는 주류를 위주로 하는 영업기준이 있다고 한다. 9시를 넘어 숙소에 도착해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남은 일행들은 간단한 뒷정리를 하고 마무리했다.
셋째날(12월 29일 일)
7시에 기사 아스드로볼씨가 도착했다. 맑은 공기에 별로 개발되지 않은 도시와 마을의 모습이 편안한 인상을 주었고 고속도로를 달릴때는 중간중간에 많은 선전용 간판이 눈에 띄였다. 포아스 화산을 향해 가는 길에서 평야는 별로 보이지 않고 지대의 높낮이 차이가 커서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여행길이 되었다. 터널이 한 곳 밖에 건설되지 않았다고 한다. 환경파괴가 심한 터널공사 대신 산길을 따라 도로를 낸 양상이었다. 산으로 접어 들면서 중간에 나무늘보가 자리하고 있어 차를 멈춘 채 바라보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잠시 후 커피농장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언덕길인데 아래쪽에는 커피밭이 넓게 펼쳐저 있어 기념 사진도 찍고 커피도 마셨다. 화산입구에서 입장료 2중 가격제(외국인 10불 현지인 1천콜롱/2달러정도)를 실시하고 있었다. 모든 입장료가 그러했다. 분화구 입구에는 작은 안내전시관과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포아스화산 분화구에 도착하니 짙은 안개가 모든 곳을 가리고 있어 아쉽게도 간판 사진으로 기념촬영을 대신해야 했다. 아스도로볼씨의 안내로 숲길을 따라 호수가 보이는 정상으로 이동했지만 짙은 안개에 가랑비까지 내리고 있어 사진만으로 만족하고 돌아나왔다. 생태관광에 해당하는데 전문 안내자도 아닌데다 영어 설명으로는 한계가 있고 시간에 쫒겨 숲 환경 체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기념품점에서 코팅된 코스타리카지도를 하나 구입할 수 있었다. 지체하다보니 예배 끝난 시간에 겨우 도착했다. 정목사와 박사모와 함께 식사를 하고 유엔대학 유학중인 중국동포 출신 김은천학생과 외대 연계프로그램 중인 김시은학생을 만나 인사를 나눴다. 아평에 관해 소개하고 평화대학의 중요성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점심을 마치고 일정을 조정해 박물관을 먼저 방문하기로 하고 국립극장을 먼저 안내 받았다. 천정벽화가 워낙 유명하고 국립극장이 어떤 곳인지 볼 수 있는 정도였다. 자전거대회를 위해 도로를 차단한 탓인지 정체가 극심했다. 이어서 한참을 걸어 박물관을 찾았다. 원래 군대 요새였던 곳이었는데 1950년부터 박물관으로 전환한 곳으로 코스타리카의 군대없는 나라를 향한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자취(대통령이 이곳에서 햄머로 요새 벽을 부수면서 군대없는 나라를 선포했다고) 가 남겨진 곳이다. 계단식 광장을 지나 1층 입구에 들어서니 작은 식물원에 나비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고대사에서 현대역사적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옥상 층에는 작은 공원과 민주주의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7대 불가사의라고 하는 대형 석구가 옥상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박물관을 나오니 바로 기념품점 시장이 있어 구경하다 선물용으로 나무탈을 몇 개 구입했다. 의논한 결과 소놀이장으로 가기로 했으나 늦어지면서 장을 봐서 숙소로 돌아왔다. 장을 봐온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박선봉 조명희 부부의 민요를 들으며 흥겨웠고 이번 여행기간중의 공연 의욕으로 뜻을 모았다.
넷째날(12월 30일 월)
아침 일찍 서둘러 교도소로 향했다. 최현덕교수가 나올 수 없어 아쉽게 되었지만 현지 안내겸 통역을 해줄 황민희씨를 교도소 정문에서 만날 수 있었다. 루이스법무부국장이 기다리고 있었고 간단한 몸 수색을 마치고 사무동으로 들어가 회의실에 자리를 잡았다. 루이스국장으로부터 기본적인 설명을 들었다. 전국적으로 폐쇄형교도소에는 1만 3천 8백명 개방형에는 2천5백명이 청소년교도소에는 5백명 정도 수용되어 있다고 했다. 80%가 교육참여를 하고 있고 60%가 노동을 한다고 한다. 소장 출신으로 평생 이 일을 해왔다고 한다. 소신도 있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한 시간 가량 설명과 질문을 계속하다가 현장을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었다. 수용자들이 머무는 숙소에 들어가니 2층 침대가 방 가득하고 책을 보거나 누워서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전임 소장 출신이라 루이스국장과는 안면이 많은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악수를 하거나 옛날이야기를 잠시 나누기도 하고 방 앞에서 공중전화를 하는 사람, 마작을 하거나 담배를 피는 모습도 보였다. 콘크리트 담장은 없고 철조망이 쳐진 상태인데도 탈출 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작업장을 돌아보니 체육관내 한쪽에서는 농구와 이런저런 놀이를 하고 있고 철망이 쳐진 작업장에서는 각종 손작업으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주말에 열리는 면회 시간 등에 물건을 직접 팔고 수입은 본인이 챙기고 현금은 800불까지 가지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다수 수용자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보이고 또 일부는 스스럼없이 자신의 사진을 찍으라고 손짓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체육관 옆의 작은 도서관 겸 학습실도 있고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주어진다. 주어진 공간내에서는 자유롭게 다니면서 활동하는 수준인데 감옥이 아니라 수용소 분위기로 느껴졌다. 식당도 돌아보고 다시 돌아와 질문을 하고 준비해 둔 특별음식을 함께 나눠 먹으며 인터뷰를 하면서 국장과 또 여성간부에게 30%의 여성직원수가 무척 많은데 어떤 효과가 있는지를 물었다. 오히려 여성이기에 더 잘 따르고 여성특유의 지혜를 발휘해 좋은 점이 많다고 자부심을 드러냈다. 대화를 나누고 작은 선물을 전달하고 사진도 찍고 마무리 지었다. 아내들이 남편과의 특별면회를 위해 음식등을 싸들고 와서 사랑의 재회(2주에 1회 4시간 허용) 시간을 가지려고 대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시 이동해 콜론에 있는 유엔평화대학을 찾아 나섰다. 세계유일의 평화교육을 위한 유엔대학으로 15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으며 영어로 강의하고 과정이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방학에다 연말연시 휴가기간이라 정문을 지나 몇장의 사진을 찍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근처의 유엔평화공원은 인상적인 얼굴부조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었고 작은 호수 주변에는 산책과 피크닉을 즐길 수 있는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짧은 시간에 10불씩 지불하고 들어오기에는 좀 아까운 생각도 들었다. 유명 커피 메이커인 브리타 커피농장으로 이동했다. 잘 짜여진 공간에 전시 판매장에 들러 각자 원하는 만큼의 커피를 구입하고 대부분 우편으로 부쳤다. 연락이 닿지 못했던 은천씨가 코스타리카인 남자친구 호세마르티와 함께 나타나 좀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고려대에서 유학을 해서 한국어를 잘 해 소통할 수 있었다. 과테말라에서 온 최남용교수와도 반가운 인사를 했다. 역사전공으로 신학교 교수이면서 30년 넘게 아메리카 여러나라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국회와 대통령궁을 방문해 보니 작은 규모에 주변에 경비원도 없는 정도였다. 숙소 근처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왔다. 모두 지친 상태라 잠시 쉬었고 8시를 넘기고서 정세훈목사와 최남용교수 시온교회의 김도겸목사와 함께 도착해 관심사에 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눌 수 잇었다. 그리고 코스타리카 국립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최현덕교수도 와 주어서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다. 라틴아메리카 초기 정착자에 해당되기 때문에 남미의 상황을 다양하게 공유할 수 있어 좋았고 앞으로도 좋은 관계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들었고 가지고 온 자료도 전달해 주고 담소를 나누다 밤 11시가 넘어서 헤어졌다.
다섯째날(12월 31일 화)
새벽에 일어나 5시에 출발해 공항에 도착하니 5시 반이 되었다. 수속을 마치고 코스가 다른 네명과 세명으로 나뉘어져 각자 마이애미와 달라스를 경유지로 출발했다. 올 때 놓친 라면박스를 찾으려고 했는데 9시에 사무실이 열린다니 출발 시간상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2층 커피라운지에서 인터넷이 가능해 잠시 이용하다가 출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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