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차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논제1>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장에 따른 의견 충돌의 예를 하나 제시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가), (나)를 바탕으로 진술하시오.
[유의 사항]
① 의견 충돌의 예가 구체적이고, 확실한 입장의 차이가 있어야 함.
② 1400(±100)자 분량으로 할 것
③ 시간은 120분임.
부감(俯瞰), 즉 높은 곳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는 것은 추락, 혹은 하강과 같은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반면,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앙각(仰角)은 통상 도약과 상승, 분출 혹은 확산 등 보다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받는다. 똑같은 각도, 똑같은 사물을 보더라도 바라보는 사람마다 시각과 관점의 차이에 따라 상반된 의미와 결과를 표출하기도 한다.
가)
선아, 오늘 내 꽃밭이 엄청난 화를 당했다. 장마에 쓸려 내려가거나 가뭄에 바짝 말라 버리는 등 천재지변을 당한 게 아니라 인재를 만난 거야.
아침에 운동장에 나가 보니, 세상에! 화단에 심어 있던 풀들이 마구 뽑혀져 땅바닥에 뒹굴고 있는 게 아니겠어? 한 3분의 1 정도는 되는 것 같더라. 알아보니 교도소 구내 청소하는 사람들이 잡초 제거를 하다가 화단에 나 있는 풀을 멋도 모르고 그만 뽑아 버린 거야.
멍청한 양반들 같으니라구! 둔덕을 만들어서 화단으로 꾸며 놓은 걸 보면 몰라? 일부러 키우고 있는 걸 그렇게 무자비하게 뽑아 버릴 수가 있는가 말이야. 아무리 잡초라 해도 그렇지. 하루 종일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우울하게 지냈다. 특히 애지중지 키운 ‘왕고들빼기’가 처참하게 나동그라진 모습을 보고는 분에 못 이겨 허공에 대고 온갖 욕을 쏟아 부었지.
어쩌겠니? 나는 갇힌 사람이고 저 사람들은 ‘지저분한’ 교도소를 단정하게 만든다고 한 일인데. 간신히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화단을 보듬기 시작했다. 풀들은 이미 뽑혀 땡볕 아래 나뒹군 지 몇 시간이 지나 소생 가능성은 없었다. 아무래도 화단을 재정비하려면 도구가 필요할 것 같아 담당을 앞세워 원예부로 삽을 빌리러 갔다.
삽을 빌려서 오는 길이었다. 이웃 사동 앞에 있는 좁은 풀밭에 못 보던 풀이 나 있는 게야. 가까이 가서 보니 털이 보슬보슬 덮여 있는 게 할미꽃이야. 꽃은 이미 지고 없지만 틀림없는 거야.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게 이런 선물을 주시다니!’ 손에 삽도 들었겠다, 바로 파 들어갔지. 그런데 이놈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파내는 데 엄청 고생을 했다. 할미꽃이라고 비실비실한 할미를 연상했다가 큰코다치고 만 거지.- 황대권 ‘야생초 편지’
나)
이 두 번째 원정 시합에 대해서는 때마침 그 기이한 축구팀과 건강인과의 경기 모습을 취재한 기자가 있어, 뒷날 다시 그의 글을 대할 수가 있었으므로 섬사람들은 누구나 그날의 시합 광경을 오래 오래 마음 속에 간직할 수 있었다. 그 기자의 기사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 그건 참으로 묘한 축구 경기였다. 빨간 유니폼에 손가락이 몇 개 잘린 그런 깜장 마크가 흡사 나치 독일의 국기만 같은 그 낯선 원정팀의 선수들은 볼 다룸새가 매우 서툴렀다.
(중 략)
이 게임이 시작되자 빨간 유니폼의 홈 사이드에 널려 서 있던 관중들은 거의 돌아갔거나 멀찌감치 물러서서 구경을 했다. 선수들이 볼을 따라 몰려가면 라인 근처에 서 있던 관중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야유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만 군복 입은 한 고급장교가 라인 밖을 쳇바퀴 돌 듯 맴돌며 발악에 가까운 응원을 했다. 군의관 대령인 이 장교는 지칠 줄을 몰랐다. 팀이 몰려 머뭇거리면 권총을 빼들고 힘을 내도록 협박까지 했다.
― 임마 똑같은 사람이야! 똑같은 축구 선수들이란 말야! 다른 게 아무것도 없단 말이닷!
장교는 고함치며 꺼져 들려는 투지에 불을 붙이며 뛰어다녔다. 팀의 마크처럼 손가락이 없는 선수들은 솜으로 축구화의 코를 메우고 공을 찼다.
― 눈썹이 없다는 것과 문둥이라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해 오지 않았나 말이닷! 눈썹들이 없었다. 하지만 장교의 말대로 이전에 문둥이었다는 것과 지금도 문둥이라는 것과는 달랐다. 선수교대가 잦은 것은 발가락이 없거나 발신경의 어느 일부분이 마비되었거나, 어딘가가 성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보결 선수가 다 나간 후였다. 한 선수가 공을 차고 뒹굴더니 일어서질 않았다.
빼들었던 권총을 버린 장교는 주섬주섬 유니폼을 주워 입고 이번에는 자신이 경기장으로 뛰어들었다. 관중들은 놀랐다. 이미 게임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음성 나환자를 두고 어떤 사람이 어느 만큼 더 성자적인 시련을 감당해내느냐를 보고 있는 관중이기 때문이었다. 이제까지 무심하던 관중은 빨간 유니폼에 환성과 박수를 보냈다. 몇몇 여학생은 돌아서서 울기까지 했다.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 장교의 염원이 저토록 간절할 수 있는가. 경기는 마침내 끝이 났다.
장교는 마이크를 빌어 관중에게 인사를 했다.
― 소록도 병원장 육군 대령 조 백헌입니다. 문둥이를 이 경기에 끌고와서 불쾌한 오후를 누리게 한 것을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느낀 불쾌감만큼만 이 약자를 위해 박애를 베풀었다고 여겨주십시오. 이제 경기는 끝났습니다. 여러분에게 이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이지만, 문둥이에겐 이제부터 시작인 것입니다.
문둥이도 축구 같은 걸 할 수 있구나 하는 조그마한 사연이 수만 나환자에게는 벅차고 갈피잡을 수 없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지며, 그것이 그렇게 받아들여진 후에 일어날 그 벅찬 일들을 여러분은 상상할 수가 없을 겁니다. 나는 기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나와 수만 나환자로부터 감사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경기를 보고 돌아가는 관중들은 그저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라 장렬한 한 편의 드라마를 보고 돌아가는 느낌들이었다. (李圭泰의 ‘小鹿島의 叛亂’《思想界》 1966. 10 일부 인용)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
관점의 차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논제분석과 출제의도
논제분석과 출제의도
관점의 다양. 상대성 인지 / 일반적 의견충돌 예 제시
개인의 입장이나 처지에 따라 어떤 현상이나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 결과 상호간 의견 충돌을 일으키게 되고, 언쟁이라는 진통을 거친 후에 비로소 상대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게 된다.
제시문 (가)와 (나)의 인물은 일반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는 정반대의 입장에서 대상을 바라보고 있다. 제시문 (가)에서는 갇힌 사람으로 대부분의 사람이 잡초 내지는 그저 풀 따위로만 생각하는 ‘왕고들빼기’를 애지중지하며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제시문 (나)의 조원장은 문둥이도 축구를 할 수 있는 똑같은 사람이라며 팀원들에게 선입견을 버릴 것을 종용하며, 환자들을 사랑이란 이름으로 평등하게 바라보려 하고 있다.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얼마든지 다양하고 상대적임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나름의 해결 방안을 요구하고 있는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제시문 (가)와 (나)를 통해 입장이나 처지에 따라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이 때문에 상호간 의견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관점의 차이에 의한 의견 충돌의 예를 제시한 후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가)와 (나)의 관점을 바탕으로 명확히 밝혀야 한다. 관점의 차이에 의한 의견 충돌의 예를 사소한 개인적인 사례보다는 누구나가 공감할 수 있는 일반적인 사례를 제시하고 이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관점의 차이,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예시 답안 및 평가
예시 답안
사람마다 경험이나 관심사, 가치관 등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현상이나 사물을 바라다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마치 햇빛이 스팩트럼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빛으로 분산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관점의 차이에 의해 우리는 수많은 의견 충돌과 갈등을 겪게 되고 심지어는 깊은 마음의 상처까지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제시문 (가)의 황대권은 자유가 박탈된 갇힌 공간에서 그 누구도 아무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그저 하찮은 잡초로만 생각하는 왕고들빼기와 할미꽃을 남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행복을 느낀다. 제시문 (나)에서도 전염될까 두려워 바라보는 것마저 두려워하는 문둥병 환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며 축구를 하고,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며 용기를 북돋으며 격려하고 있다. 이들 황대권과 조원장의 모습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예기(禮記)에 나오는 무불경(毋不敬)이라는 말처럼 세상에는 공경하지 않을 만한 것이 없다. 어떤 생각으로,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왕고들빼기와 할미꽃은 그 이상의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으며, 잡초가 아닌 야생초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문둥병 환자 마찬가지로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몸이 약간 불편한 사람 정도로 그 존재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다.
최근 들어 국제사회에서 큰 화두로 대두된 생명 공학의 한 분야인 복제 역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 인간이 복제의 대상이 되면서 갈등 양상은 더욱 첨예한 대립을 하게 되었다. 치료 목적으로 인간 복제를 허용하자는 ‘벨기에안’과 산업 생산으로의 대량 생산을 막자는 ‘코스타리카안’의 대립이 그 대적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하여 우리 나라는 각종 불치병과 유전성 질환으로 고통 받으며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치료 목적으로 복제를 허용하자는 ‘벨기에안’과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무슨 동물 복제의 성공과 이로 인해 인류의 삶에 미치는 영향 등을 앞을 다투어 경쟁적으로 보도하고 있는가 하면, 한편에서는 그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어느 한쪽만이 무조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는 없다.
상생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 같음은 공유하고 다름은 인정하면서 절충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법적인 규제가 있어야 한다. 법이 정하는 범위 안에서 인간 복제를 허용할 때, 불치병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사는 사람에게는 장미빛 미래라는 희망을 안겨 줄 수 있을 것이며, 인간 복제로 인한 생명 경시 풍조와 인간의 존엄성 파괴 등의 문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