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著/(주)사계절 2022년판
고향(故鄕), 대지(大地) 그리고 넉넉한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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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같이 보낸 할머니에 대해 그리움과 고마움을 담아 차곡차곡 써내려간 수필집이다. 한편으로는 독자들에게 요즘 보기 드문 특별한 ‘육아법’에 관한 소개서 역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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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랄 때 할머니의 넉넉한 품을 거치지 않은 세대는 없겠지만 작가의 할머니가 유독 주목받는 것은 그 할머니가 태어나고 살아온 시기가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격동적이고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건너오면서 어떻게 그런 특별한 사랑을 손녀에게 베풀 수 있었을까 하는 감탄이 책을 읽어 가다보면 절로 터져 나오게 된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인류는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되었다’ 라며 할머니의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언급했는데, 모성애를 바탕으로 한 여성 대부분의 삶이 한결같은 사랑으로 채워지는 것이 보편적이겠지만, 작가의 할머니는 그런 보편적인 삶 이상인 특별한 인상의 흔적을 강하게 남겼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자신의 할머니의 남들과 다른 독특한 사랑법을 조목조목 시종여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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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어가다 보면 작가의 잔잔한 서술일변도가 주는 안정감에-물론 할머니의 손녀에 대한 사랑 탓이기도 하지만-푹 파묻혀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의 생각이 주로 과거에 머문 탓에 덩달아 따라가다 보면 문득 자연스레 고향을 떠올리게 되고, 당시 현대식 개발의 문명이 몰아치기 전의 숲과 들판과 대지로 채워진 우리의 터전으로 회귀하게 되는데 당시는 모든 것이 부족했음에도 작가의 할머니와 같은 넉넉한 사랑의 베풂 속에서 모자란 것이 없던, 생애 중 가장 평화롭고 안정적인 시간이었음을 새삼 확인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필체 끝에서 할머니의 깊은 사랑을 확인하며 같이 웃고, 같이 울며 기쁨과 즐거움, 넉넉함 등의 감정을 풍요롭게 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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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나에게도 작가와 같은 할머니가 계셨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동안 할머니의 고마운 사랑을 떠올리지 못했던-유독 사랑을 많이 받았음에도-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읽는 내내 공감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기억 속 할머니를 떠올리면서 나의 할머니에게도 늦게나마 감사와 고마움을 전해드리고 싶다.
나의 어린 시절은 지극히 집안 살림이 가난했음에도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었음이 훌쩍 지나온 시간 속에서 돌이켜보아 온전히 느껴지는 것은 내 뒤에 늘 할머니가 계셔서 그랬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린 시절의 그 편안한 품과 안정된 정서는 장성한 이후 만나게 되는 많은 어려움 속에서 굳건한 버팀대가 되어주었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작가의 과거를 회상하며 써내려간 글 솜씨도 뛰어났지만 책 속의 내용이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 나의 과거와 일치한 탓에 남의 이야기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펴는 순간부터 시작해서 단숨에 읽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한 번 작가 덕에 그 시절 할머니의 넉넉한 사랑과 품을 떠올리며 오랜만에포근함에 젖어들 수 있었다.
(2024. 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