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회
습관처럼 술을 마시고 연락도 없는 날이다. 시 안에서 방황했다. 확신이 없는 작품은 내 안에 안주하지 못한다. 한 여자도 그렇다. 그래도 이제는 하나의 섬에 갇히고 싶다.
나그네도 길을 가기 싫을 때가 있다. 허무에서 허무로 왕래하는 여정, 그만하고 싶다. 나는 그녀의 카톡을 열었다. '애인 있어요?' '없어요'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아유 참이라는 이모티콘이 왔다. '우리 사랑하면서 살까요?' '얼굴이나 몇 번 보구 생각하죠.'
'지금 어디에요? 당장 갈께.'
몇 시간을 기다렸다. 늘어진 가로수 사이로 가로등 빛이 비친다. 고개 숙인 눈빛이다. 나뭇잎에 얹힌 빛은 보석같다. 쓸쓸한 새벽이 주렴처럼 흘러내렸다. 그녀는 여성적인 미소로 나를 맞았다. 수줍고 상냥하다. 누구를 향하지 않는다. 제 가슴 속에 새겨두는 웃음이다. 행복을 확인하는 방법 같았다. 늦은 시간이다. 문 연 술집이 없다. 우리는 노래방에 내려갔다. 맥주를 시켰다.
"난 딱 한 사람하고만 해요."
"뭘?"
"몰라요."
나를 때린다. 노래책을 뒤적거린다. 생각난듯 그녀가 물었다.
"그 많은 여자들은 다 정리했어요? 다 정리하고 온다 했잖아."
"내가 그런 말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왜 했지?"
"모르죠. 나 괜히 설랬나 봐."
"설랬다고?"
"그럼 그런 얘기 듣는데 안 설랠 여자 있어요? 이 순 카사노바."
꼬집는다.
"다 지워버렸어 그때 당신 번호도 지워진 거고."
"아, 그래서 날 몰랐구나. 앗 찾았다. 당신 노래 무정부르스."
"그걸 기억해?"
"그럼요. 당신 담배 말보로 실버. 당신 입었던 허름한 청바지. 꽃무늬 남방. 마른 몸매. 다 큰 아들 하나. 돌싱이고 나한테 했던 얘기 전부."
그녀가 마이크를 건넸다. 일어나서 따라 일어난 그녀를 안았다.
"안겨만 있어도 좋아요."
"내가 좋아?"
"좋아. 은근히 매력 있어."
나는 허리를 젖히고 노래를 불렀다.
"당신 처음 만나 불렀던 노래 알아?"
"몰라."
"아주 내게 관심이 없었지? 하긴 그 많은 여자 중에 나 같은 게 눈에 들어오겠어? 흥! 미워."
또 때린다
"당신 만나 처음 부른 노래 사랑님"
그녀가 노래를 부른다. 가슴에 담아볼까?
꽤나 많은 술을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