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해전 승리의 길 탐사 기행록(10) (예당- 보성군청 18km)
- 박실마을 거쳐 명량해전의 기틀을 마련한 보성에 들어서다
3월 10일(목), 초박빙의 각축을 벌인 대통령 선거의 개표결과 윤석열 후보가 득표율 48.6%로 47.8%의 득표율을 기록한 이재명 후보를 누르고 승리의 영광을 안았다. 승자에게는 축하를, 패자에게는 위로를 보내며 더 나은 미래를 여는 역사적 책무를 잘 감당하기를 비는 마음이다.
아침 7시에 숙소를 나서 가까운 곳의 식당에서 아침을 들고 7시 반에 득량면소재지로 향하였다. 예당마을에서 곧바로 고갯길, 2km쯤 걸으니 고개마루에 이른다. 고개를 휘돌아 득량면 소재지에 이르니 한촌의 모습이 아기자기하다. 초입의 득량역을 지나 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는 길가의 담벼락이 다양한 벽화로 화려하다. 여러 해 지나서도 아름다운 모습일까?
득량면 소재지 담벼락의 벽화
면사무소 앞에 조선수군 재건로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그 내용, 충무공은 보성에 9일간 머물며 조양창의 군량미를 득량역이 자리한 오봉삼거리 거쳐 보성 선소로 옮기고자 고심하였다.
9시경에 득량면사무소를 출발하여 농로를 가로질러 이른 곳은 도로변에 '박실'이라 크게 새긴 마을 입구, 마을 안의 조선수군재건로 입간판에는 충무공이 득량면 송곡리 박곡 양산항의 집에 4일간 머물면서 일곱 통의 장계를 올리고 군관들을 소집하여 전략을 숙의하였다고 적혀 있다. 박실마을은 옛날 200여호의 큰 마을로 제주 양씨 등 여러 성씨의 집성촌이었다는 마을입구 기록을 살피다가 같은 학과의 동료교수 고향이 보성이었던 생각이 떠올라 전화를 하니 바로 이곳이 선대들의 본향으로 충무공이 문중에서 유숙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10시 경에 박실마을을 출발하여 보성읍 방향의 2번 국도를 따라 걸으니 질주하는 차량들로 안전이 염려되기도. 마침 큰 도로 옆의 구 도로가 있어 이 길 따라 한참을 걸어 기러기재라 적힌 고개마루에서 2번 국도 4차선과 합류한다. 고개마루 아치에 크게 새긴 문구, '차와 소리의 고장 보성'을 바라보노라니 보성이 한국의 대표적인 녹차의 고장인 것을 일깬다.
고개 넘어서 2번 국도 벗어나 옛길 따라 잠시 걸으니 미력면 경계 지나 보성읍에 들어선다. 읍내를 열심히 걸어 목적지인 보성군청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8km를 걸었다.
인근의 식당에서 점심을 들고 오후에는 문화탐방, 보성군 소속 소영심 문화해설사의 안내로 읍내에 있는 충무공 관련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첫번째 들른 곳은 충무공의 장인이자 보성군수였던 방진을 조명한 방진관, 충무공이 무장인 방진으로부터 궁술훈련을 전수받으며 탁월한 무장으로서의 자질과 역량을 그로부터 영향받은 바 큰 것을 현장에서 깨친다. 충무공의 부인 방씨의 인품과 덕성의 연원도 확인하면서.
보성군수의 관사였던 곳에 세운 방진관에서
이어서 들른 곳은 옛 보성읍성 터에 설치한 충무공의 보성에서의 9박 10일 행적과 '아직 신에게는 12척의 배가 있나이다'는 장계를 이곳의 유명한 누각 열선루에서 올렸다는 조각상 등이 볼만하다. 이어서 촉석루, 영남루 등에 버금가는 누각 열선루를 새로 지어 주변을 공원처럼 조성하는 공사현장까지 둘러보고 나니 오후 5시가 가깝다. 문화탐방을 마친 소감, 보성은 명량해전 승리의 기틀을 마련한 병참기지이자 충무공이 무장으로서의 소양을 갖추게 한 장인과 부인의 연고지로구나.
웅장한 규모의 열선루를 바라보며
숙소는 전날 예당에서 상면한 박원재 씨의 주선으로 인근 웅치면 일림산 숲 속의 다목적 쉼터, 오리고기 요리로 저녁을 들며 10일째 일과를 마친다.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있나이다'고 적힌 글과 함께 포즈를 취한 충무공의 자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