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편 조사어록
제6장 상단 법어(上壇法語)
8. 최상서(崔尙書) 우(瑀)에게 보낸 글 [眞覺·語錄]
주신 글에 법어를 청했으므로 몇 가지 인연을 적어 청에 답할까 합니다.
부처님의 경 밖에 따로 전한 것으로서 바로 근원을 끊는 그 하나는,
기틀[機]을 마주 대면하고 말을 마치자 당장 마음이 확 트이는 일입니다.
이때에는 대장경도 그 주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마디 말에 알아듣지 못하고, 다시 머리를 돌리고 골수를 굴리며,
눈을 들고 눈썹을 치켜 올리고, 속으로 헤아리고 생각하며,
입을 열고 혀를 움직인다면 그것은 생사의 근본입니다.
정승 배휴(裵休)가 어느 절에 들어가 벽화를 보고 그 절 원주(院主)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원주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고승입니다.'
'얼굴은 그럴듯하군. 이 고승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원주가 대답이 없자 배휴는 '이 절에 선승(禪僧)은 없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황벽희운(黃檗希運) 선사가 있었으므로
원주는 황벽스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배휴는 황벽스님에게 조금 전 이야기를 들어 물었습니다.
황벽스님은 아까처럼 다시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배휴는 '얼굴은 그럴 듯한데 그 고승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이때 황벽스님은 큰 소리로 '배 정승!'하고 불렀습니다.
배휴는 깜짝 놀라 '예'하고 대답했습니다.
황벽스님이 '어디 있는고?'하고 물었을 때
배휴는 당장 그 뜻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이 산승(山僧)은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가 고승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배휴를 불러 그가 대답하자마자 '악!' 하겠습니다.
또 우적(于迪)정승이 자옥(紫玉)화상에게 불도의 지극한 이치를 묻고
그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자옥스님은 '불도의 지극한 이치는
인정과 예의를 버리는 데 있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우적이 '스님은 인정과 예의를 버리셨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우적 정승!' '예.' '다시 따로 구하지 마십시오.'하고 스님은 말했습니다.
그 후 약산(藥山)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
'애석하구나, 우적. 자옥산 밑에서 생매장을 당했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우적은 이 말을 듣고 약산 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우적 정승!' '예.'
'이것이 무엇이오?'라고 물었을 때 우적은 깨달은 바가 있었습니다.
초경(招慶)은 이 화두(話頭)를 들어 말했습니다.
'이 답은 매우 뛰어나 천지의 차가 있다. 한결같은 것이 도(道)다.'
그러나 이 산승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대답을 기다려 '머리를 돌려라'라고 하겠습니다.
수능엄경(首楞嚴經)에 말했습니다.
'수행자들이 최상의 보리를 이루지 못하고 따로 성문(聲聞)이나
연각(緣覺)을 이루고, 외도와 마군의 괴수나 그 권속이 되는 것은
두 가지 근본을 알지 못하고 어지럽게 닦아 익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모래를 삶아 음식을 만들려는 것과 같아
무량겁을 지나더라도 되지 않을 것이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첫째는 본래부터 있는 생사의 근본이니, 즉 네가 지금
중생들과 관계하고 있는 그 마음을 제 성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둘째는 본래부터 있는 보리 열반의 청정한 실체이니,
즉 지금의 네 알음알이가 원래 밝아
모든 인연을 지어 그 인연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중생들이 이 본래의 밝음을 버리기 때문에 종일 움직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온갖 세계로 드나든다.'
그러나 산승은 그렇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누가 어떤 것이 생사의 근본이냐고 묻는다면,
'네가 이미 드러내 보였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또 어떤 것이 보리열반의 본래 청정한 실체인가고 묻는다면,
한 번 할[喝]을 하겠습니다.
이상에서 들어 보인 몇 개의 화두가 결국 어디로 돌아가는지
자세히 참구해 보십시오.
무릇 남의 지시를 받거나 혹은 스스로 공부하여
재미있고 자신 있는 곳을 얻더라도,
문으로 들어온 것은 집안의 보배라 생각지 말고,
한꺼번에 놓아버리되 놓아버릴 것이 없는데서 다시 놓아버려야 합니다.
통 밑이 빠져 한 방울의 물도 없이 말라 터진 뒤에야
깨침이 있고 들어갈 곳이 있습니다.
이때 비로소 마음과 뜻과 알음알이가 끊어져,
자기 집안의 재산을 꺼내어 이리저리 마음대로 쓸지라도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자취를 남기지도 않고 어느 한 끝에 떨어지지도 않아
꼭대기에서 바닥까지 확 트여 걸림이 없어야
생사의 바다에 마음대로 드나들면서 중생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힘쓰고 힘쓰십시오.
불교성전(동국역경원 편찬)
출처: 다음카페 염화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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