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묵시 3,9 참조).
주님께서는 다른 공동체들과 달리 아무 영향력도 자원도 없고 오히려 폭력에 휘둘리고 멸시를 받던 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묵시 3,8-9). 이 구절은 마리아의 노래를 떠올리게 합니다. “통치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굶주린 이들을 좋은 곳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루카 1,52-53).
⇒ 2025년 5월 8일, 콘클라베 4차 투표에서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 교황님은 본명이 로버트 프랜시스 프리보스트(Robert Francis Prevost)이며, 1955년 9월 14일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났고, 아우구스티노회 소속의 수도 사제로서, 페루 선교사로 오랫동안 활동했던 최초의 북아메리카 출신 교황입니다. “레오”라는 교황 명에서 평화와 일치, 사회 정의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한편, 저는 지난 1월 22일, 사회복음화국장으로 부임하면서 “사회복음화”를 위한 활동의 기반으로 역대 교황님들의 문헌을 읽고 묵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창조 시기’를 시작하는 오늘(9.1)부터 총 121항으로 구성된 레오 14세 교황님의 첫 번째 교황 권고인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 TE, 2025.10.4. 반포)를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자료를 공유하겠습니다. 교우들에게 널리 공유해 주세요
2. 요한 묵시록에 담긴 이 사랑의 선언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심의 인간적이고 신적인 사랑에 관한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Dilexit Nos)에서 성찰하신 그 무한한 신비를 반영합니다. 회칙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회의 최하위 계층”과 당신 자신을 동일시하셨는지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신 당신의 그 사랑으로 어떻게 모든 인간의 존엄성, 특히 사람들이 “더 약하거나 비참하거나 고통받을 때”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70항) 그들의 존엄성을 확인시켜 주시는지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관상하며 “우리 또한 다른 이들의 고통과 필요에 더욱 관심을 기울이도록 이끌리고 주님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서 해방을 가져다주시는 주님 사업에 함께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대하여 확신을 얻습니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71항)
⇒ 레오 14세 교황님이 당신의 첫 번째 교황 권고 제목으로 선택한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라는 표현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마지막 교황 회칙인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헌들의 제목을 라틴어로 살펴보면 더 쉽게 와 닿는데요. “DILEXI TE”와 “Dilexit Nos”라는 표현은 결국 성경 전체를 압축한 사랑의 새 계명인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상관관계를 잘 일깨워 줍니다.
그래서 레오 교황님은 이 권고를 통해 전임자인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의중을 파악하여 잘 계승하셨습니다. 한편, 모든 신앙인이 지켜야 할 삶의 지침인 황금률, 곧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루카 6,31)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제시합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선택”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이라고 말이죠.
3. 이러한 까닭에,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회칙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에 이어 생애 마지막 몇 달 동안 가난한 이들에 대한 교회의 돌봄에 관한 교황 권고를 준비하시고 “내가 너를 사랑하였다”(Dilexit Te)는 제목을 붙이셨습니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너는 힘이 약하다.” 그렇지만 “내가 너를 사랑한다”(묵시 3,9). 이 작업을 유산으로 이어받은 저는 몇 가지 성찰을 더하여 저 자신의 것으로 삼았고, 교황직을 시작하며 기쁜 마음으로 이 문서를 발표합니다. 사랑하는 전임 교황께서 바라신 그대로, 저도 모든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가난한 이들을 돌보라는 그분의 부르심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을 깨닫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도 성화의 이 길을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서 그분을 알아보라고 한 이 부름은 그리스도의 마음 그 자체, 곧 모든 성인이 닮고자 하는 그분의 심오한 생각과 선택을 드러〔내기〕”(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96항) 때문입니다.
⇒ 2021년 1월 사제 인사 발령에 의해 신설된 사회복음화국은 교구청사가 대전에서 세종으로 옮겨 업무를 시작하면서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당시에 성직자실과 시노드사목연구소도 함께 신설되었는데요. 지난 1월 22일에 국장으로 부임한 저는 3개 위원회, 곧 정의평화위원회와 민족화해위원회와 생태환경위원회의 활동을 총괄하지만,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터라 부서 업무가 아직 체계적이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대전교구의 사회 복음화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지 고민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습니다. 사회 복음화를 위해서는 성경 말씀과 함께 역대 교황님들이 반포한 여러 문헌을 읽고 묵상하고 성찰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레오 14세 교황님의 첫 권고를 더 많은 교구의 하느님 백성이 읽고 묵상할 수 있도록 자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1장 몇 가지 본질적인 말씀
4. 예수님의 제자들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을 비난하며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왜 저렇게 허투루 쓰는가? 저것을 비싸게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줄 수도 있을 터인데”(마태 26,8-9).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르셨습니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마태 26,11). 그 여인은 예수님 안에서 낮아지고 고통받는 메시아를 보았고, 그분께라면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쏟아부을 수 있었습니다. 며칠 뒤면 가시관에 찔리게 될 그분 머리에, 향유 부음은 얼마나 큰 위안을 주었겠습니까! 물론 이는 작은 몸짓이었지만, 고통받는 이들은 작은 애정의 몸짓 하나도 얼마나 큰 사랑이 되고 얼마나 큰 위로를 줄 수 있는지를 압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그 여인의 이 몸짓이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이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태 26,13). 그 여인의 이 단순한 몸짓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모든 애정의 표현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당시 주님께서 그러하셨듯이 특히 고통받거나 외로움에 시달리거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보여 주는 애정의 몸짓이라면 더욱더 그러합니다.
⇒ 우리 신앙의 핵심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을 통해서 완성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공생활 중에 선포한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그분의 전 생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러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은 예수님의 모범을 본받으려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입니다. 이는 최후의 심판(마태 25,31-46)을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님은 당신의 머리에 매우 값진 향유를 부은 어떤 여자의 작은 애정의 몸짓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영원히 기억되게 만드셨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작은 사랑의 실천이 당신께 얼마나 위대한지를 일깨워 주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니 구원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웃을 떠올리며 최후의 심판과 주님의 기도문을 곰곰이 되새기는 가운데,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의 삶을 성찰하며 주님께 셈을 합시다.
5. 따라서 주님을 향한 사랑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다〕”(마태 26,11)하고 말씀하시고, 더 나아가 제자들에게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분 말씀도 떠올립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이는 단순한 인간적 친절을 베푸는 문제가 아니라 계시입니다. 곧 보잘것없고 힘없는 이들을 만나는 것은 역사의 주님을 만나는 근본 방식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안에서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 사랑의 새 계명은 그리스도인 삶의 본질입니다. 하느님께서 베풀어주신 무한한 사랑을 일상에서 체험하는 만큼 우리는 이웃을 더욱더 사랑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우리가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자신에게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들을 이웃으로 바라보라고 초대합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말씀을 통해서 말이죠. 그러니 동전의 양면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똑같이 바라봅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사랑하신 당신의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13,1) 그래서 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사도 4,32-37)은 서로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고, 그들 가운데에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인간의 역사에서 가난한 이들은 언제나 존재했었고,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살피는 데 한계가 있기에, 교회는 근본적으로 그 빈자리를 메꿔왔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
6.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교황명에 대한 선택 이유를 설명하시며, 교황 선출 이후에 한 추기경 친구가 자신을 껴안고 볼에 입을 맞추며 “가난한 이들을 잊지 마십시오!” 프라치스코, 커뮤니케이션 매체 대표들과의 만남, 2013.3.16., AAS, 105(2013), 381면.
라고 말하였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이는 바오로 성인이 자신의 사명을 사명을 확인하러 예루살렘에 갔을 때 교회 지도자들이 그에게 한 호소와 같습니다(갈라 2,1-10 참조). 수년 뒤에도 바오로 사도는 분명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바로 그 일을 열심히 해 왔습니다”(갈라 2,10). 가난한 이들에 대한 돌봄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큰 관심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한 나병 환자의 모습으로 직접 프란치스코를 안아 주시고 그의 삶을 변화시켜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아시시의 가난한 사람인 프란치스코 성인은 그 뛰어난 모범으로 우리에게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 여러분은 2013년 3월 13일(수) 밤을 기억하시나요? 다섯 번째 콘클라베에서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발코니에 나와서 첫인사를 전하던 순간을 말입니다. 아르헨티나의 추기경이자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인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리오
(1936.12.17-2025.4.21)가 교황 명으로 선택한 이름이 바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였습니다. 역대 교황님들이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이름입니다.
교황으로 선출되어 선종할 때까지 12년 1개월 이상 보편 교회의 수장이셨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행보를 떠올리면 왜 그랬는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2014년 8월 13-17일 진행되었던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를 위해 한국을 사목 순방하셨던 일정들이 강렬한 신앙 체험으로 남아 있기도 하니까요. 그분은 교황직을 수행하는 첫 행보부터 선종하실 때까지 끊임없이 가난한 이들을 먼저 찾아가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