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문학관에서 주최하는 제1회 노동예술제 기념 시집 『꽃은 져도 노동은 남네』(푸른사상 동인시 13). 2022년 4월 30일 간행.
불평등한 사회구조 속에서 힘겨운 삶을 영위하면서도 현실 인식을 잃지 않고 있는 노동자를 대변하는 41명의 시인이 노래했다. 노동과 노동예술의 가치를 되새기는 시편들은 시대의 희망을 찾는 노래로 울려 퍼진다.
<푸른사상 동인시>는 전태일 열사 50주기 기념시집 『전태일은 살아있다』를 비롯해 사북항쟁 40주년 기념시집 『광부들은 힘이 세다』, 촛불집회 1주기 기념 시집 『길은 어느새 광화문』, 세월호 참사 3주기 기념 시집 『꽃으로 돌아오라』 등을 간행한 데서 보듯이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 함께한 시인들
강병철, 강태승, 공광규, 권위상, 권혁소, 김수열, 김윤환, 김이하, 김정원, 김형효, 김희정, 나종영, 맹문재, 박관서, 박선욱, 박설희, 박성한, 박일환, 양문규, 여국현, 오철수, 옥효정, 유국환, 유덕선, 유용주, 윤임수, 이은봉, 이정록, 이태정, 임경묵, 장우원, 전선용, 정세훈, 정소슬, 정연수, 정원도, 조기조, 조동흠, 조호진, 지창영, 채상근
■ 책머리에 중에서
노동문학관은 노동과 노동문학의 참된 가치와 얼을 후대에게 전하기 위해 건립되었습니다.
노동문학관의 염원인, 노동과 노동예술의 참된 가치와 얼을 담은 ‘제1회 노동예술제’를 개최하며, 그 일환으로 기념시집 『꽃은 져도 노동은 남네』를 펴냅니다.
현대를 넘어 후대를 향한, 무한한 희망을 찾아 길 떠나는 책무의 길마당에 동참한 시인 41명의 노동절 오월비 같은 시혼(詩魂)을 절절하게 듬뿍 담았습니다.
- 정세훈(노동문학관장)
■ 작품 해설 중에서
어느덧 우리 사회의 노동자는 이전 시대와는 전면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말미암아 노동자는 고용 자체가 어렵고, 고용된 노동자도 해고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자신이 언젠가는 해고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노동자들도 스스로 인지하고 있다. 그에 따라 노동자들은 새로운 세계 인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디지털 시대 이전으로 인류의 역사를 되돌릴 수 없기에 노동자에게 유리한 세상이 도래하기는 어렵다. 신자유주의 체제가 주도하는 컴퓨터가 작업장에 계속 들어서고 있기에 노동자의 해고를 막을 수 없다. 노동자들은 컴퓨터가 요구하는 기대치를 감당할 수 없다. 교육 수준이 높고, 고급 기능이 있고, 경험이 많은 노동자도 “당신, 창의력이 너무 늙었어!”(공광규, 「몸관악기」)라는 평가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에서 우려했듯이 컴퓨터의 기술이 인간의 정신 자체까지 대체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르렀다.
따라서 노동자는 정치적 인식을 가지고 행동할 필요가 있다.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사용주와 계약할 때 임금, 노동 시간, 근무 환경, 복지, 산업재해 등의 사항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노동자들의 정치 행동은 생존권 확보 차원에서 요구된다. 노동자의 노동 환경은 정치 환경과 깊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의 상황에 맞서는 노동자들의 삶은 힘들지만, 시인들의 노동시를 읽으며 그 동참을 기대한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 시집 속으로
꽃은 져도 노동은 남네
정연수
꽃이 지듯 탄광은 문을 닫네
화순
장성
도계
우리나라 마지막 광업소
꽃이 지면 열매를 맺듯 석탄은 불씨를 갈무리하네
겨울 수도사처럼 침묵하며 빈 사택 골목을 걸어가네
연탄구멍마다 동발 세우듯 한숨과 회한 뭉쳐두네
광부의 팔뚝은 종종 분노의 혈관이 핏발을 세우네
모든 탄광이 문을 닫아도
우리 도시는 탄광촌이란 이름을 버리지 못하네
꽃은 져도 꽃나무라 불리듯
탄광촌은, 폐광촌은 여전히 진폐 환자처럼 쿨럭이네
기침이 심할 때마다 꽃잎은 뚝뚝 떨어지네
광부의 발길은 종종 막장도 없는 벼랑으로 가네
그래도 꽃은 피네
노동자는 제 새끼에게도 서러운 노동을 상속하네
설움이 붉게 사무치면 꽃은 지네
꽃이 져야 열매를 맺네
어둠을 견딘 사내는 새벽으로 가네
막장을 몸에 새긴다면 내년에도 꽃은 필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