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은 극도로 곤궁했던 1818년 영국 브로드우드사의 새 피아노 한 대를 선물 받았다.
그것은 빵도 아니고 돈도 못 되었지만 그가 이제껏 접했던 그 어떤 피아노보다도 강력한
해머를 장착한 말 그대로 '쇠망치 피아노' 즉 '함머클라비어 Hammerklavier'였다.
베토벤은 이 신무기를 갖고 1819년 <함머클라비어를 위한 대소나타>를 작곡했다.
당시 마흔아홉 살의 베토벤은 이 곡을 쓰고 난 후에 "이제야 작곡을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했을 만큼 '함머클라비어'는 베토벤의 역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이다.
특히 그것은 피아노 소나타라고 하기보다는 차라리 오케스트라가 동원돼야 할 만큼 거대하고
웅장한 교향곡 같은 소나타다.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에게 '함머클라비어'는 결코 쉽게 넘볼 수
없는 거대하고 또 위험천만한 연주의 산이다. 마치 히말라야의 8000미터 고봉들 중에서도
죽음의 산으로 불리는 K2 같다고나 할까.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라는 대장정에 돌입해 그 막바지에
다다랐을 때다. '함머클라비어'라는 별칭이 붙은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9번>을 듣기 위해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 들어서자, 그가 두드리는 건반은 거친 숨소리를 몰아 내쉬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주일 가까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계속해온 그였다.
그러니 과연 그가 '함머클라비어'라는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연주의 산을 넘을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그는 천근만근 무거워진 발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듯이 혼신의 힘을
다 쏟으며 그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연주의 산을 힘겹게 올랐다. '함머클라비어'는 수많은
협곡과 크레바스를 가진 K2처럼 쉬이 정상을 내주지 않았다. K2가 수많은 알피니스트들을
공포의 크레바스에서 삼켰듯이 '함머클라비어'는 피아니스트 백건우를 삼켜버릴 듯했다.
베토벤이 남긴 그 거대한 연주의 산 앞에서 그는 초라하게까지 느껴졌다.
하지만 백건우는 투혼의 몸부림을 그치지 않았다. 마침내 그는 '함머클라비어'라는 거대하고
위험천만한 연주의 산을 기어이 올랐다. 마른 잔기침마저 참고 누르며 숨죽이던 청중들은
그의 처절한 투혼 담긴 연주에 박수를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어쩌면 그 박수에는 넘어야 할
산을 바라만 보고 안주하던 자신들을 향한 질책이 숨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나 삶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하지만 대개는 평생 그 산을 쳐다만 보다 죽는다.
그 산에서 죽더라도 올라야 진짜 삶이 펼쳐짐을 모르진 않는다. 하지만 두렵고 겁나서
바라만 본다. 그러다 결국 인생의 막이 내리기 일쑤다.
자, 나의 산은 어디에 있나. 내가 넘다 죽어도 좋을 산은 과연 어디에 있나. 아직도 그 산을
발견조차 못했나? 아니면 눈앞에 두고도 오르지 못하나. 진짜 행복은 내가 넘다 죽어도 좋을
그 산을 발견하고 그 산을 오르고 또 오르다 거기서 죽는 것이 아닐까.
백건우의 투혼이 부러운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 정진홍 저,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3'에서
https://youtu.be/r4tAv-Cad1g?si=_CJvf7t77ahwEeCt